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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는 계룡산을 토함산, 지리산, 태백산과 함께 오악 중의 하나로 꼽으면서 계룡산은 하늘을 향하는 용의 모양이고
'산태극', '수태극', '회룡고조' 등의 하늘의 이치를 가진 신비의 땅으로 언젠가는 이곳이 수도가 되어 천하 36국으로부터 조공을 받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역사가이자 문학가로 홍만종(洪萬宗,1643~1725)이 1678년에 지은 ‘순오지(旬五志)’에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계룡산 아래 새 수도 건설을 시작했을 때의 전설을 수록했다.
풍수지리학자들은 계룡산을 회룡고조형국(回龍顧祖形局)으로 상봉인 천황봉이 형제봉·중두봉(中頭峯)·종봉(終峯)을 이루어 이것을 제자봉(帝字峯)이라 한다. 즉 황제가 앉을 자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새 도읍지로 결론을 내리고 궁궐 축조 공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태조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계룡산은 전읍(尊邑)이 들어설 곳이라며 당장 계룡산을 떠나라고 엄포한다. 이 이야기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긍익(李肯翊,1736~ 1806)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도 실려 있다. 1393년 음력 3월부터 계룡산 신도안에 천도(遷都) 사업이 한창이던 1393년 말, 문신 하륜(河崙)의 주장에 의해 결국 계룡산 천도 계획은 백지화되고 말았다.
서애(西涯) 류성룡의 징비록(懲毖錄)에
鷄龍石白 草浦舟行 大小中華偕矣 漢陽李氏三百年之地, 在於天數 若有小遺則四百年 以後至七甲子以後申年可知也
계룡산에 도읍이 들어서는 시기는 계룡산의 돌이 하얗게 되고, 무넘이고개로 물이 넘어가 초포(草浦, 현 노성현 하류)에 배가 드나들 때 알 수 있다고 했는데, 1990년 금강 하구뚝 제방공사가 완공되자 강물이 불어 초포(草浦)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계룡산의 바위 또한 과거에는 검고 짙었던 바위가 대기오염으로 인한 산성비로 옅은 백화현상을 보이고 있다.
『기말록(其末錄)』에서는
國都連山 黎民得所 鷄龍石白 艸浦行舟 平沙三十里 南門復開 草浦西津 舟客萬里 沙岸南洞 國步千載
연산(連山)을 나라에 도읍으로 정하면 일반 백성들이 살 곳을 얻으리라. 계룡산의 돌이 흰빛이 되고, 초포(草浦)에 배가 다니고 모래벌 30리에 남문(南門)이 다시 열리고 초포 서쪽 나루는 배 탄 손님이 만리 정도 되고, 모래 언덕 남쪽 골은 나라의 운명이 천년의 세월이로다.
임진왜란의 중심에서 조정공론을 이끌었던 영의정 서애(西涯)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형인 겸암(謙庵) 류운룡(柳雲龍)은 일찍이 계룡사부설(鷄龍四府說)을 주장했는데
동유의정부(東有議政府), 서유군부(西有軍府), 남유계룡부(南有鷄龍府), 중유궁내부(中有 宮內府)로 동쪽에는 정부종합청사, 서쪽에는 군사령부인 계룡대, 남쪽에는 계룡시가 들어서서 그의 예고가 적중했다.
앞으로 중앙에는 새 세상의 황궁이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탄허(呑虛) 스님은 앞으로 다가올 후천세계에서는 계룡산을 주축으로 하여 새세상의 운세가 돌아가게 된다고 하였다.
풍수지리학의 원리로 신도안은 3백리 역룡진처(逆龍盡處)의 회룡고조맥(回龍顧祖脈)아래 산·수태극(山·水太極)에 자리한 명당 중의 으뜸은 제자봉(帝字峰) 아래에 있는 자미원국(紫微垣局)으로 전 세계를 다스릴 황제 정궁(正宮)으로 알려진 터다.
"정감록(鄭鑑錄)에는 조선왕조 다음에, 정도령(正道令)이 계룡산에 도읍하여 천년왕국을 건설하며, 또한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지가 된다고 쓰여 있다.
“정감록의 핵심이 되는 정도령을 “격암유록에는 "先天秘訣 篤信마소 鄭僉只는 虛僉只라" 선천비결에 나오는 정도령은, 정씨(鄭氏) 성(姓)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씨(鄭氏) 성(姓)을 쫓지 말라는 것이다.
신라말기 도선국사는 그의 저서 『도선비기(道詵秘記)』에서 개성은 5백년 도읍지이고, 한양은 4백년 도읍지이며, 계룡산의 신도안은 8백년의 도읍지라고 하였다. ≪도선비기道詵祕記≫는 도선과 일행선사(一行禪師)가 우리 나라 산천의 길흉에 대해 나눈 문답으로 되어 있으며, 조선 말기의 혼란 끝에 조선이 망하고 결국 계룡산에 도읍이 들어서게 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류운룡(柳雲龍)의 계룡사부설(鷄龍四府說)
동유의정부(東有議政府), 서유군부(西有軍府), 남유계룡부(南有鷄龍府), 중유궁내부(中有 宮內府)로 동쪽에는 정부종합청사, 서쪽에는 군사령부인 계룡대, 남쪽에는 계룡시가 들어섰다.
동유의정부(東有議政府), 동쪽에는 정부종합청사
서유군부(西有軍府), 서쪽에는 군사령부인 계룡대
남유계룡부(南有鷄龍府), 남쪽에는 계룡시
중유궁내부(中有 宮內府) 앞으로 중앙에는 새 세상의 황궁이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 「정북창(鄭北窓)」 선생(1506~1549)은 조선 중종, 명종 때의 학자, 충청도 온양 사람으로『궁을가(弓乙歌)』는 북창 선생이 미래사의 전개과정을 가사형식에 담아 후세에 전한 것이다.
“조선강산(朝鮮江山) 명산(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 다시난다. 사명당(四明堂)이 갱생하니 승평시대(昇平時代) 불원이라 창생도탄 없어진다. 포덕포화(布德布化)하는 때라 … 대성지화(大聖之化) 돌아오니 궁을(弓乙)노래 불러 보자.
진표율사에 관한 기사는 『송고승전(宋高僧傳)』 외에 일연의 『삼국유사』에도 비교적 상세한 편이어서 『진표전간眞表傳簡』’조와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조에 중복되어 나오고 진표의 제자들 이야기도 『심지계조心地繼祖』’조에 실려 있다.
신라와 백제시대 때 부터 꽃피기 시작한 도솔천의 천주님(미륵부처님)에 대한 신앙은 진표 대성사로 부터 영글어 민중신앙으로 개화되었다.
법상종의 개조(開祖)이기도 한 그는, 일찍이 12세 때 어머니와 아버지(眞乃末)의 출가 허락을 받고 고향(전주 만경현 대정리)을 떠나 곧장 전북 김제군에 있는 금산사(金山寺)에 가서 숭제법사로부터 사미계(沙彌戒)를 받았다.
그리고 미륵님으로부터 직접 법을 구하여 대도를 펴겠다는 큰 뜻을 가슴에 품고 전국 명산을 순행하다가, 27세 되던 경덕왕 19년(庚子, 760) 부안 변산에 있는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에 들어가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초인적인 정열을 발휘하며 구도에 정진하였다.
쌀 두 가마를 쪄서 말린 양식을 가지고 입산한 그는 하루에 두어 홉씩 먹으며 미륵불상 앞에서 지극정성으로 참회하며 기도하였다.
그러나 3년이 되어도 천상으로부터 장차 도를 통하게 되리라는 암시적인 한소식[授記]을 받지 못하자 죽을 결심으로 바위 아래로 몸을 날렸는데, 이 순간 청의동자(靑衣童子)가 진표 대성사를 손으로 받아 바위에 올려 놓고 사라졌다.
이에 용기를 얻고 서원을 세워 21일을 기약하고 생사를 걸고 더욱 정근(精勤)하며 온몸을 돌에 던지고 수없이 참회하자, 3일이 되었을 때는 팔굽과 두 무릎이 터져 피가 흐르고 힘줄이 드러났다.
7일째 밤에 지장보살이 주장자를 짚고 나타나 몸을 간호해 주고 가사(架裟)와 바리때를 전해주자, 더욱 확신을 갖고 혈심으로 정진하여 21일이 끝나는 날 마침내 정각 도통을 하여 천안(天眼)을 열었다.
이에 지장보살 등 수많은 도솔천중(兜率天衆)을 거느리고 오시는 도솔천의 천주님이신 미륵존불을 친견하고, 다음과 같이 점찰경(占察經) 두 권과 증과간자(證果簡子) 189개를 받는다.
“장하도다. 대장부여! 계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 신명을 아낌 없이 지성으로 참회함이여! … 이중 제8간자는 본래 깨달은 불종자를 표시함이요, 제9간자는 새로 닦아 나타나는 불종자를 표시함이니 이것으로 장래의 과보를 알리라. 이 뒤에 그대는 이 몸(육신)을 버리고 대국왕(大國王)의 몸을 받아 후에 도솔천에 나리라.” 하시고 천상으로 환어하셨다. 이 때가 율사 30세 되던 임인(762)년 4월 27일이었다. 『三國遺事』
우리나라의 미륵불 신앙은 진표율사로부터 대중화되었다. 진표율사에 대한 문헌은 <삼국유사>에 ‘진표전간眞表傳簡’ 이 있고, ‘관동풍악발연수 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가 있다. 그리고 <송고승전>에 ‘백제국 금산사 진표전’이 있다.
<송고승전>에 있는 ‘백제국 금산사 진표전’은 988년에 쓰여졌기 때문에 <삼국유사>보다 빠른 시기에 나왔지만 중국인이 기록했기 때문에 문헌적으로나 사료적으로 <삼국유사>보다 떨어진다고 평가되고 있다.
‘진표전간’은 <삼국유사>를 편찬하신 일연스님이 직접 쓰신 글이다. ‘관동풍악발연수석기’는 금강산 발연사의 주지인 영잠瑩岑스님이 1198년에 쓴 것을 일연스님의 제자인 무극無極스님이 <삼국유사>에 넣었다.
진표율사가 미륵부처님으로부터 전수받은 189개의 간자는 고려중기까지 전해진다.
<삼국유사>에는 진표율사의 제자인 영심永深스님이 속리산에서 간자 전수를 통해 법통을 계승해서 점찰법회를 열었고, 이어 심지心地스님이 간자를 전수받았다고 나온다.
신라 말기에는 석충釋沖스님이 진표율사의 가사와 간자 189개를 고려 태조 왕건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고려 16대 예종은 팔공산 동화사에 보관돼 있는 간자를 대궐 안에 가져다가 공양을 하고 예배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원각(圓覺) 대도통을 하신 진표 대성사는 자신의 때로부터 천 수백 년 후에 일어나는 천지 대개벽의 환난을 훤히 내다보고, 그 때 미륵 천주께서 동방의 이 강토에 강세해 주실 것과
자신을 큰 일꾼으로 써주실 것을 지극 정성으로 기원하였다. 그러자 미륵존불로부터 금산사내에 있는“사답(寺沓) 칠두락七斗洛” 정도 넓이의 연못인 용추못(龍沼)을 메우고 미륵존불의 불상을 세우라고 계시를 받는다.
활아자수(活我者誰)오 사답칠두락(寺沓七斗洛)에 부금(浮金)은 냉금(冷金)하니 종금(從金)하라.
엄택곡부(奄宅曲阜)라. 삼인일석(三人一夕)은 이재전전(利在田田)하니 도하지(道下止)하라.
三人一夕(修): 닦을 수修자를 파한 자(破字)
이재전전(利在田田)하니: 田田은 태전(太田)에 이로움이 있으니
도하지(道下止)하라: 그 도道에서 그치라.
현룡재전(見龍在田): 『주역』‘건괘(乾卦)’ 두 번째 효의 효사(爻辭). 원문은 ‘見龍在田 利見大人(드러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 이다. 앞으로 인종씨를 추리는 대개벽기를 맞아 생사판단을 하는 인사(人事)의 상제님 대행자가 출세하는 이치를 예고한 글귀다.
비룡재천(飛龍在天): ‘건괘(乾卦)’의 다섯 번째 효의 효사(爻辭). 원문은 ‘飛龍在天 利見大人(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 이다. 여기서 비룡(飛龍)은 불교에서 이땅에 오실 것을 말한 미륵부처님이시며, 기독교 계시록에서 장차 올자라고 말한 하나님이시다.
기독교의 결론이 “새 하늘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 한 마디다. 예수의 제자 사도 요한은 ‘새 하늘 새 땅이 새로이 열리는 바로 그 때, 아버지 하나님이 오신다.
그래서 아버지가 직접 아버지의 나라, 천국을 건설하신다.’고 전했다. “예수가 직접 온다는 게 아니다. 내가 아닌 다른 분이, I am come in my father's name, and ye receive me not, if another shall come in his own name, him ye will receive.)」(요한복음 5:43)
사도 요한은 ‘백보좌 하나님’이 오신다고 했다. 장차 올자라고...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says the Lord Go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the Almighty(All-Sovereign).
유교에서 동북 간방(艮方)으로 오실 것을 말한 상제님의 조화권능으로 앞세상의 이정표를 질정하신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 神之爲衆敎之爲祖 爲母之理.... 人情多私忘本源.... 不究神市敎之本源, 如何也! 亦自失其源
신교神敎는 뭇 종교의 조상이며 모체가 되는 뿌리 진리다...말세가 되면 사욕으로 들끓어 본원을 망각하리라... 장차 신시(배달) 시대의 가르침(神市敎)인 신교神敎의 본원을 연구하지도 않으리니 어쩌리오. 제 스스로 자신의 뿌리를 상실하리라
※ 唯我神市敎理 不求禍福於虚虚寂滅之中
오직 우리 배달의 신교(神敎)는 허허적멸한 중에 화복禍福을 구하지 않는다.
※ 近世所爲死而未榮者,都被欺於憎徒之浮說
근세에는 죽어서 영화를 구하니 이것은 다 속임을 당하는 헛소리들이라.
[1만2천 도통군자와 대교주의 출세]
※ 後天井有萬二千道, 有萬二千人. 人能日行萬里, 飛揚天地如飛, 處處生不夜城, 然後眞正大教主出矣.
후천 벽두에 1만 2천 명의 도인이 출세한다. 이때에는 사람마다 하루에 만리를 가는데 천지를 날아다니는 것이 솔개가 하늘을 나는 모양 같다.
곳곳에 사람 사는 모습은 밤이 없는 성(不夜城)과 같다. 이러한 대문명이 열린 후에 참되고 올바른(眞正) 세계통일의 대교주(大敎主)가 출세하리라.
※ 未百年,壬人依神敎先導矣
자하선인이 <신교총화>를 쓴 때(1893)로부터 백 년이 못되어 이 대교주는 신교(神敎)에 의해 새 문화를 선도해 가리라.
※ 東方, 寅木. 壬則水, 水生木之理也. 壬儉之道, 必使壬姓人先遵.
우리 동방東方은 인목寅이다. 임壬은 곧 북방 수水로서 수생목水生하는 천지의 생성원리 때문이다. 단군 임검壬儉의 도道(신교)는 반드시 임성인(壬年에 태어나는 인물로 壬=一太極으로 太極帝를 말함)이 먼저 이끌어 갈 것이라.
[대한민국의 종교 진리가 천하를 통일한다]
※ 惟我宗敎之將爲天下一
오직 우리나라의 종교가 장차 천하를 건져내는 제1의 진리가 되리라.
※ (神市)眞理將明於天下, 長男運更壯, 而小女從之理 自然的
동방신시(배달)의 신교 진리가 장차 천하에 밝혀지리라. 동방 장남(震長男)의 운이 다시 용솟음치게 되며, 미국(兌小女)이 이를 순종하게 되는 이치는 우주 자연의 변화원리다.
※ 神祖古域必復, 而後神人之道 大明於世
신조(神祖: 단군성조) 때의 옛 영토를 다시 찾게 되리라. 후에 신인합발의 도가 세계에 구원의 광명을 크게 떨치리라.
불교에서 말한 메시아가 두 분으로 오신다.
말법시대가 되면 샹가(襄伽,Sankha)라는 전륜성왕과 미륵(Metteya)부처가 한시대에 등장한다고 '전륜성왕 사자후경(轉輪聖王 獅子吼經,Cakkavattisihanada Sutta)'에서 이례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때에 양커라 하는 법왕(法王)이 출세하여 정법(正法)으로 다스려 칠보(七寶)를 성취하니 무기를 쓰지 않고도 자연히 전 영토에서 항복을 받게 되느니라.
미륵부처께서 우주의 새 생명 세계를 열어 모든 인간을 부처(진리에 눈뜬자)로 태어나게 하시니, 이것이 땅위의 조화낙원인 용화세계로다.
이곳은 병든 세계를 고치는 위대한 대왕(大醫王)이 머무시는 곳이니, 그 때는 기후가 고르고 사시(四時)가 조화되며 여러 가지 병환이 없어지고 인심이 골라서 다 한뜻이 되는 울단월(鬱單越)의 세계와 같다." 하니라. 『 미륵 하생경』
<삼국유사>에 원각(圓覺) 대도통을 하신 진표율사는 자신의 때로부터 천 수백 년 후에 일어나는 천지 대개벽의 환난을 훤히 내다보고, 그 때 미륵부처님께서 동방의 이 강토에 강세해 주실 것과
자신을 큰 일꾼으로 써주실 것을 지극 정성으로 기원하였다. 그러자 미륵존불로부터 금산사내에 있는“사답(寺沓) 칠두락七斗洛” 정도 넓이의 연못인 용추못(龍沼)을 메우고 미륵존불의 불상을 세우라고 계시를 받는다.
진표율사는 불상을 세우기 위해 처음(762년 건립시작)에는 흙으로 연못을 메웠는데, 이튿날 보면 다 파헤쳐지는 일이 발생한다. 그 때 지장보살이 나타나서 숯으로 메우라고 일러준다.
이에 진표율사는 도력(道力)을 써서 안질을 퍼뜨린 후 `누구든지 안질을 앓는 자는 금산사 용소에 숯을 한 짐 집어넣고 못물로 눈을 닦으면 낳는다.'는 소문을 낸다.
안질에 걸린 수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숯을 집어넣으니 그제야 연못은 메워지게 되었다.
진표율사는 연못이 숯으로 메워지자 미륵불상을 받쳐 세우기 위해 연못 한 가운데에다 연꽃모양을 조각한 큰 바위(석조 연화대 또는 석련대, 현재 보물 23호)를 세웠으나, 무슨 조화에서인지 석련대(石蓮臺)는 밤 사이에 30여 미터나 떨어진 위치(현재 석련대가 있는 위치)로 옮겨져 버린다.
하루는 미륵부처님이 꿈에 현몽하여 “시루를 걸고 미륵불상을 세우라”고 계시한다. 이에 다시 진표율사는 연못 중앙에다 밑이 없는 대형 시루(甑증)를 걸고 그 위에 우물 정(井)자 형태의 받침목을 얹은 다음 쇠로 된 미륵불상을 세우게 된다(4년에 걸쳐 766년 완공).
지금도 금산사 미륵불상 밑에는 밑없는 거대한 시루가 봉안되어 있는데, 이는 동서고금에 없는 기이한 형태이며, 세계 최대의 미륵존불상이다. 3층 미륵전과 함께 국보 62호로 지정되어 있다.
寺沓七斗洛(사답칠두락)에 부금(浮金)은 냉금(冷金)하니 종금(從金)하라.
살아자수(殺我者誰)오 소두무족(小頭無足)이 신부지(神不知)라.
활아자수(活我者誰)오 사답칠두락(寺沓七斗洛)에 부금(浮金)은 냉금(冷金)하니 종금(從金)하라.
엄택곡부(奄宅曲阜)라. 삼인일석(三人一夕)은 이재전전(利在田田)하니 도하지(道下止)하라.
활아자수(活我者誰)오 사답칠두락(寺沓七斗洛)에 부금(浮金)은 냉금(冷金)하니 종금(從金)하라.
엄택곡부(奄宅曲阜)라. 삼인일석(三人一夕)은 이재전전(利在田田)하니 도하지(道下止)하라.
三人一夕(修): 닦을 수修자를 파한 자(破字)
이재전전(利在田田)하니: 田田은 태전(太田)에 이로움이 있으니
도하지(道下止)하라: 그 도道에서 그치라.
≪정북창비기 鄭北窓祕記≫는 조선 말기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십승지지(十勝之地)를 찾아야 된다는 내용과 남북이 분열되어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한다는 것, 그리고 계룡산에 도읍이 들어서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운기귀책 運奇龜策≫은 조선시대 말엽부터 계룡산으로 도읍이 확정될 때까지 일어날 중요 사건들을 연도별로 예시한 기록이다.
≪동세기 東世記≫는 이성계의 28대 후에 조선이 망한다는 것과 일본의 침략이 있다는 것, 남북 분단으로 민족의 비극이 생기며 통일의 대업을 이루어 계룡산에 도읍할 때까지 일어나게 될 사건들을 연대에 따라 기록하고 있다.
≪삼한산림비기 三韓山林祕記≫는 대한민국 산천의 생김새와 산맥의 분포 등을 설명하고, 산천의 정기와 성정(星精)이 서로 조화되어 도읍지가 정해지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조선 500년의 수도가 되나 북악과 남악의 겁기(劫氣)로 전란과 재난이 끊일 사이가 없게 됨을 밝히고, 계룡산의 빼어난 지세로 계룡산 800년 도읍이 보장된 곳이라고 하였다.
지구촌의 앞날을 예고한 분들은 신라시대 원효대사, 의상대사, 고운 최치원 선생등의 기록이 있고, 신라말 고려 초의 왕사인 도선국사가 남긴 기록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태조의 왕사인 무학대사, 북창 정렴, 격암 남사고, 토정 이지함, 서산대사, 퇴계 이황, 율곡 이이, 겸암 류운룡, 서계 이득윤, 고산 윤선도, 반계 류형원, 강산 이서구 선생... 등, "열거한 분들은, 당대에 정신적 지도자로서, 고승이거나 대학자들이다.
아일랜드 수도승 聖 말라키 오모겐(1094~1148)
※ 1148년에 타계한 「말라키 오모겐(1094~1148)」는 그가 죽은지 450년 만인 1590년 바티칸의 고문서 보관소에서 발견되어 도미니카파의 수도사 아놀드 드 비옹의 책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Pastor et Nauta/Shepherd and Navigator: John XXIII (1958 -1963), patriarch of Venice (a city full of sailors) led his flock to a modernization of the Church through the Ecumenical Council. John chose two symbols for this Council -- a cross and a ship.
Flors Florum/Flower of Flowers: Paul VI (1963-1978) had a coat-of-arms depicting three fleurs-de-lis.
De Medietate Lunae/From the Half Moon: John Paul I (1978-) had the given name of Albino Luciani or "white light." Half-way into his short reign, a lunar eclipse occurred. De Labore Solis/From the Toil of the Sun : John Paul II was born during the solar eclipse of May 18, 1920.
* 교황 바오로 2세는 1920년 5월 18일 일식기간동안 태어났다. 실제로 1920년 5월 18일 일식이 있었다.
De Gloria Olivae/From the Glory of the Olives: The Order of Saint Benedict has claimed that this pope will come from their ranks. Saint Benedict himself prophesied that before the end of the world his Order, known also as the Olivetans, will triumphantly lead the Catholic Church in its fight against evil.
Petrus Romanus/Peter of Rome: The Final Pope? "In the final persecution of the Holy Roman Church there will reign Peter the Roman, who will feed his flock among many tribulations, after which the seven-hilled city will be destroyed and the dreadful Judge will judge the people."
그는 자신이 살았던 12세기 초반의 교황 세레스틴 2세부터 최후의 마지막 교황까지 모두 1백10여명의 인물에 대해 재임기간, 출신지, 특징, 어떤 경우는 실제 이름까지도 열거했는데 보는 이들이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대부분 정확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현재 로마 카톨릭의 법왕정치는 로마의 베드로(Peter the Roman)라는 법왕시대에 끝난다. 그런데 여기에는 끔찍한 미래 시간대에 멸망하는 마지막 교황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10번째 교황) 이후로 오직 2명의 교황만이 교황청을 통치하게 된다고 예고한 것이다.
※ 맨 마지막의 문구는 '일곱 개 언덕의 도읍(로마)은 파괴되고 무서운 재판관이 사람들을 재판하리라.'이다.
법왕 피우스 10세(Pius X, 1835~1914)가 1909년에 본 환상도 그 영향인지도 모른다. 피우스 10세는 어느날 갑자기 실신상태에 빠졌는데 얼마 후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이렇게 고백했다.
"오오, 얼마나 무서운 광경인가. 나 자신이 아니 나의 후계자인지도 모르지만, 로마법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바티칸을 떠날 때에, 사제들의 시체를 밟아 넘으며 걷지 않으면 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