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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나의 뮤즈 루 살로메, 남성농단 악녀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Lou Andreas Salome 1861~1937
muse 뮤즈
1. 작가, 화가 등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2. Muse 뮤즈(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시, 음악 및 다른 예술 분야를 관장하는 아홉 여신들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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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
나는 이 여자를 아주 나쁜 여자로 본다.
지식을 위해 남자들을 유혹한 지식창녀라고 부른다.
그녀가 살던 시기에는 유명하다는 사상가, 철학자, 문인, 시인들이 많았다.
먼저 만난 남자가 목사, 종교적 지식을 쌓기위해 목사와 교제아닌 접근을했고,
목사가 결혼을 원하자 거절하고 신학교를 입학했다.
두번째로 만난 남자들이 파울 레에 Paul Rée 와 그의 친구 니체 Nietzsche 이다.
이 년은 두 남자와 같이 살 것을 제안했다.
당시 남자들은 공부만 했지 애정에대해서는 순진했을까?
아니면 그 여자 말고는 왜 다른 여성들을 찾지 않았을까?
이 여자 살로메 만큼이나 못된 남자가 있었는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독일의 궤테 이다.
이 궤테라는 색기는 작품을 쓰기위해 많은 여성들을 농락하고
여러 여성들에게 상처를 주고, 한 여성은 자살하게 만들고, 몇 여성들은 혼자 살게 만들었다.
이 여자 살로메는 국정농단 아닌 남성 농단[독점자] monopolist for males 이다.
자기 지식을 채우기위해 남자들을 데리고 놀았던 여자.
왜 행복보다 지식이 더 중요했을까?
나이가 15살[영어에는 18살 위로 나온다]위 인 남자와 결혼을 하면서
성생활 없는 결혼을 원했다. 결혼 아닌 동거를 해도 성생활을 한다.
아마 그 남자에게는 성적 매력을 못느꼈나보다.
그리고 영어에는 성생활 없이 43년을 살았다고 나온다.
지식 창녀에 반해서 성의 노예가 �榮� 유명하다는
못만 남자들 Nietzsche, Rilke,
파울 레에 Paul Rée, 심리학자 Fre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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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 살로메 소개 Lou Andreas Salomé
그 아래는 서프라이즈 기사 내용
루 안드레아스살로메(Lou Andreas-Salomé, 1861 ~ 1937)
독일의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 많은 소설과 수필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니체, 릴케, 프로이트 등 당대 유럽 최고의 지성인들을 매혹시키며 이들과 사랑과 교감을 나누며 이들에게 창조적 영감을 주었던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저서에는
[릴케] (Rainer Maria Rilke, 1928)
[프로이트에 대한 나의 감사] (Mein Dank an Freud 1931) 등이 있다.
* 초기생애
1861년 2월 12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프랑스계 위그노 교도인 러시아 야전군 참모본부의 고급장교 Gustav Salomé 와 북독일-덴마크계 Louise Wilm 사이에서 여섯 자녀 중 외동딸 겸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의 첫사랑은 순결했지만 비도덕적인 사랑이었다.[1]
상대는 당시 루터교 교회의 목사였던 하인리히 길로트(Heinrich Gillot)로, 그녀는 그로부터 철학, 형이상학, 논리학 등을 배우며 심도 있게 종교사를 공부했다.
후에 길로트가 그녀와 결혼할 것을 원했고, 이를 원치 않았던 그녀는 당시 여성을 받아주는 몇 안 되는 대학 중 하나였던 취리히 대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심,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대학에 입학했다.
* 파울 레에 Paul Rée 와 그의 친구 니체 Nietzsche
취리히에서 공부하던 중, 원인불명의 질병에 걸렸고, 피를 토하는 등 폐에 이상이 생겼다. 기후를 바꿔야 한다는 처방을 받고 1882년 1월 어머니와 함께 이탈리아 로마로 갔다.
그 곳에서 젊은 철학자 ‘파울 레에 Paul Rée’를 만나 철학과 신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교감했다.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던 레에는 그녀를 떠나 보내고 싶지 않아 그녀가 원했던 2명과의 동거를 위해 그의 친구인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그 상대로서 그녀에게 소개했다.
니체 또한 자신을 이해하고 철학에 대해 함께 논할 수 있었던 그녀를 매우 사랑했지만 그녀는 그의 사랑을 거절하며 그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
* 베를린에서의 생활과 결혼
루살로메는 베를린에서 파울 레에 Paul Rée 와 동거하며 사회학자, 작가 등 여러 부류의 지성인들과 교류했다.
그녀는 당시 그녀의 이러한 생활을 탐탁지 않아 하던 어머니에게 베를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책을 출판하기로 결심한다.
이때의 작품이 유명한 심리소설 [하느님을 차지하려는 싸움The Struggle for God, 또는 in the fight to god, Im Kampf um Gott) 이다.
이후 그녀는 ‘파울 레에’를 떠나 15살 위인[영어는 18살 위로 나온다] 언어학자인 카알 안드레아스 Friedrich Carl Andreas[1846-1930] 와 결혼 [영어는43년 동안 함께 살았다고 했다].
영어에는 결혼이라 안하고 union 으로 표현했고, remained unconsummated [성관계 없이 남아있었다] 표현.
- consummation (결혼식 후) 첫날밤 치르기[성관계 맺기]
이 결혼 또한 정상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결혼의 조건으로 성생활이 없는 결혼생활을 걸었고 그로 인해 이들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1875-1926] 와의 교감
루살로메는 특히 독일 근대의 서정시 분야의 대가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몹시 사랑했던 여인이자 그의 예술적인 뮤즈로 유명하다.
릴케와 각별한 교제를 했는데 이들의 관계는 릴케의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원래 릴케의 이름은 르네 마리아 릴케(Rene Maria Rilke)였는데 루살로메에 의해 프랑스식 ‘르네’를 독일식 ‘라이너’로 바꾸었다.
그녀는 흘려 쓰던 릴케의 글씨체를 아름다운 글씨체로 바꾸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외에 릴케의 작품에서도 루살로메에 대한 사랑을 찾아볼 수 있다.
릴케가 그녀에게 바친 초기 시집 <그대의 축제를 위하여> (Dir Zur Feier) 에는 그녀와의 개인적 사랑의 감정을 끝없는 헌신적 자세로 표출한다.[2]
*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자 로서의 살로메 그리고 죽음
1912년 바이마르에서 열린 제3차 정신분석학회에서 그녀는 당시의 연인이었던 정신분석학자 폴 비에레(Poul Bjerre)로부터 정신분석학계의 대가, 프로이트를 소개받았다.[3]
그녀는 프로이트 로부터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었으며 이들의 우정은 정신분석의 동반자로서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일흔 살의 나이에 그녀는 당뇨병 등 몸이 허약해져 병원에서 요양이 필요하게 되었고 당시의 집필은 <프로이트에 대한 나의 감사> (Mein Dank an Freud)였다.
요통과 유방암 등으로 점점 쇠약해 진 그녀는 75세로 사망했다.
* 작품활동
1885 하느님을 차지하려는 싸움 The Struggle for God, 또는 in the fight to god, [Im Kampf um Gott]
1894 작품에 나타난 니체 Friedrich Nietzsche as Revealed in His Works,
1895 [소설] Ruth (루트)
1896 모르는 영혼에서
1898 Fenitschka 페니취카 - 어떤 방탕
1899 인간의 아이들 ?Human Being as Woman?
1901 마, 어떤 초상 Rodinka, Ma
1902 중간지대에서, In the Land In-Between: Five Stories from the Spiritual Life of Adolescent Girls.
1910 에로티시즘 eroticism,
1917 소년에게 보낸 세 통의 편지
1919 집 The House: A Family Story from the End of the Previous Century.
1922 하느님 없는 시간. 그 밖의 동화, the expressionistic drama
악마와 그 할머니 The Devil and His Grandmother
1923 Rodinka(로딘카) Russian Memoir
1928 하얀 길 위의 릴케 Rodinka: books on Rilke
1931 프로이트에 대한 나의 감사 my thanks to Fre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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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사진들
<신을 둘러싼 전쟁>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남긴 독일의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 '루 살로메'는
1861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5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철학과 종교, 예술에 흥미가 많았던 아이였으며,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을 지녔다. 19세 때는 취리히 대학교에 진학해 철학과 예술 분야를 공부했다.
말비다 폰 마이젠부르크의 소개로 철학자 파울 레를 만나게 된 루 살로메. 이후 파울 레는 루 살로메의 매력에 빠져 프로포즈를 했다. 하지만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루 살로메는 세 사람이 정신적으로 교류하며 함께 사는 것을 삼위일체라 부르며 꿈꿔왔다며 파울 레에게 세 사람의 동거를 제안하게 되었다. 이에 파울 레는 루 살로메가 떠날까 두려워 그 제안을 받아드렸고, 못생기고 성격도 괴팍한 자신의 친구를 꼬드겨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바로 '니체'였다.
니체 역시 17살이나 어린 루 살로메에게 푹 빠져버렸고, 급기야 사랑을 고백하게 되었다.
결국 세 사람의 삼각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깊어졌고. 심지어 니체는 루와 파울 레의 사이를 질투한 나머지 루 살로메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뜻밖에도 루 살로메가 결혼한 남자는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카를 안드레아스였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니체는 루 살로메에게 버림받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작품을 썼는데, 이 작품이 불후의 명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이후 니체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했고, 파울 레 또한 루 살로메를 잊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루 살로메와의 추억이 깃든 절벽에서투신했다.
루 살로메는 결혼 얼마 후 또 다른 남자의 고백을 받게 되었다.
그 남자는 20세기 대표 서정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였다. 사실 우정을 전제로 결혼한 루 살로메는 이후에도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소설가 야코프 바서만이 주최한 한 모임에서 릴케를 만난 루 살로메.
당시 릴케는 22세의 무명 시인으로 어린시절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성장했다.
이런 환경 탓인지 자신보다 무려 14살이나 많은 36세의 루 살로메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루 살로메와 가까워지면서 루 살로메의 권유에 따라 이름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로 바꿨고, 필체 또한 바꾸게 되었다. 무엇보다 매일 루 살로메에게 사랑의 시를 썼는데, 그 시집이 <그대의 축제를 위하여> 라이다.
무명이었던 릴케를 20세기 대표 시인으로 성장시킨 루 살로메. 그러나 자신에게 집착하는 릴케가 부담스러워지자, 4년만에 릴케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릴케는 그 후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결혼했지만, 끝내 루 살로메를 잊지 못하고 파경하게 되었다.
이후 릴케는 루 살로메만이 자신을 이해해 준 유일한 사람이라며, 평생 루 살로메를 기다리다가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1911년 정신분석학계의 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고백을 받게 된 루 살로메. 바이마르 제3차 정신분석학회에서 루 살로메를 만난 프로이트는 솔직함과 당당한 자신감 그리고 해박한 지식을 가진 루 살로메에게 반하게 되었다. 자신이 정신분석의 산문가라면 루 살로메는 정신분석의 시인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한 프로이트.
하지만 프로이트의 제자 타오스크가 루 살로메를 좋아하게 되면서 또 다시 삼각관계에 빠지게 되었다고. 이후 프로이트는 루 살로메와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을 책 <편지>로 출판했다.
니체, 릴케, 프로이트 당대 최고의 천재들에게 사랑을 받은 루 살로메. 그리고 그 후 나온 주옥같은 작품들. '루 살로메를 만나면 9개월 만에 대작을 쓰게 된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루 살로메 역시 <작품에 나타난 니체> <하얀 길 위의 릴케> <프로이트에 대한 나의 감사>등의 관련 저서를 집필했다.
이 밖에도 소설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문필가 슈테판 츠바이크' 등의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로 사랑을 받았던 루 살로메는 75세의 나이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여자는 사랑 때문에 죽지 않는다. 사랑의 결핍에 의해서 서서히 죽어간다' 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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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시대에는 이런 여자가 드물었습니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남자에게 지적인 자극을 주지만 그 남자를 서서히 죽음으로 내모는 여자
Femme Fatale=치명적인 마술적으로 유혹하는 여자입니다
루 살로메는 독일적 분위기에서 살았군요 지금의 독일은 그러한 황금기의 문화가 사라진 듯합니다
아니면 지식층에 여성이 없음에대한 그녀의 분노 때문인가요?
아마 그녀의 나쁜 성격 때문이라 생각 됩니다.
저도 지식은 추구하지만 사람을 이용하는 그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식보다 더 중요한게 평화 화합 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최순실 같은 년 하고는 화합이 불가능 합니다.
좃도각하인지 그것도 매국노 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