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하다 / 이승하
시체를 통해 죽음의 이유를 밝혀야 한다
잘 죽어야 하는데 그대 못 죽었다
요즘 드라마에도 뉴스에도 나오는 ‘국과수 부검’이란 말
고무장갑을 끼고 메스를 든다
막 부패하기 시작한 시체
더 부패하기 전에
이 세상에는 미해결의 주검이 있다
한 번 죽는 것도 억울한데 두 번을?
아니! 영혼이라도 원한 없도록
타살이냐 자살이냐
타살이면 어떻게? 누가?
자살이면 어떻게? 왜?
장기 하나하나를 들어내어
사인을 찾아낸 뒤 사인한다
하나하나 적출했다가 하나로 봉합한다
이제 그대 안치될 수 있다면…… 안락하게
이제 그대 평화로울 수 있다면…… 영원히
잠들어라 죽음의 이유를 내가 밝혔다
죽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
사람이 시체를 먹고 산다
……오늘은 복날이니 삼계탕을 먹어야겠다
- 웹진 『시인광장』 202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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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 시인
1960년 경북 의성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감시와 처벌의 나날』 『나무 앞에서의 기도』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예수·폭력』 등.
시선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으로 경기문학대상 수상.
현재 중앙대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