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다 떨어졌다.
이제 남은 네 장의 초록 잎들이 유난히 싱그럽다.
기적처럼 살아난 생명이다.
딸네는 올 초에 이사를 하고 나서 집을 꾸민다고
키우기 쉬운 화초로 여려 개를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내 눈엔 , 화초가 좋아서가 아니라 손님맞이용
"장식"으로 보였다.
한 달 보름 전쯤이었을까.
딸네 집 거실에 하얀 꽃이 여러 개 핀 서양란이
눈에 들어왔다.
"꽃이 피었네 " 하며 가까이 가 봤더니 꽃은
활짝 피었지만 잎들은 축 늘어져 있었다.
만져 보니 물기라고는 젼혀 없고
잎은 주름이 가득했다.
"세상에 물을 얼마나 안 줬으면 이렇게 되었을까..!"
사위가 화초에 물을 주는 것 같더라는 딸의 말은
이 집의 화초 관리도 딸 관할이 아님을 의미한다.
외출에서 돌아온 사위에게 물어보니 화분에
구멍이 없어서 물을 못 주었단다.
" 이런.... 화초 가꾸는 기초 지식이 이렇게 없다니..."
마음속의 말이다.
딸 친구 몇 명이 집들이 선물로 사 온 화분이라는데
그 애들이 다녀간 지가 벌써 두 달도 넘은 것 같다.
그 오랜 날들에 물도 한 방울 못 얻어먹었으면서
저렇게 어여쁜 꽃을 피운 서양란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내가 데려가서 살려볼게. 하지만 자신이 없어 "
그 말에 딸이 웃으며 말했다.
"엄마의 Green Thumb를 믿어요 "
"Green Thumb"는 식물을 잘 돌보는 손,
생명을 살리는 손을 말할 때 쓴다.
서양란을 내집으로 데려와 물을 충분히 주고
부엌 창가에 두었다.
나랑 자주 눈을 맞출 수 있는 자리,
부드러운 아침 햇살을 받는 자리,
조금 열린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과도 만날 수 있는
그곳에 조심스레 놓아두었다.
이틀이 지날 때까지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그 후 잎에 생기가 좀 있어 보여서 만져 보니
조금 도톰해진 느낌이다.
나는 매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사랑의 손길로 만져 주고 온정이 섞인 물을 주었더니
그 서양란은 건강한 화초로 다시 태어났다.
그 꽃이 말을 한다.
" 사랑받아 살 수 있었어요. 그 손길이 참 고마웠어요 "
나도 말한다.
"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그런데도 생기를 찾고
꽃도 오랫동안 보여주고 ... 고마워"
일주일이 넘는 여행에서 돌아온 날,
제일 먼저 그 꽃을 보러 갔다.
여전히 그 푸른 잎으로 당당히 나를 맞았다.
딸에게 서양란이 잘 살아났다고 이야기를 하니
딸이 " 역시 엄마는 Green Thumb 야 "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온전히 받을 자격이 없다.
한때 내게 위로였던 수많은 화초들이
무관심과 성의 부족으로 시들고 또는 썩고 해서
지금 뜰에는 빈 화분이 많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 시절에 화초를 가꾸는 일은
위로가 되고 화분을 사는 일은 작은 소일거리였다.
이제는 그때의 마음에 점점 멀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건 변화이며 , 회복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화초를 돌보는 일이 곧 나를 돌보는 일이었다.
더운 계절이 지나고 시원한 바람이 다시 불어올 때면
나는 또 빈 화분에 흙을 채우고 작은 생명을 심어야겠다.
그것들은 여전히 나를 위로하고 , 기쁨을 주며,
조용히 말해줄 것이다.
살아 있으라고 ,
그리고 살아낼 수 있다고 ,
그 조용한 생명처럼 ,
푸른 향기를 갖을 수 있다고 .
첫댓글 아녜스님
저도 살리는 손입니다.
건물 관리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을 때
수많은 개업식에 축하 화분들이
목마르고 외면받고
시들어 나왔을때
제가 그 들을 살리는 연구를 하였고
많은 생명을 구하고
지금도 그 관심도는 높습니다.
사랑이 먼저
그 다음 영양분이지요.
아녜스님 어찌 이리 반가운가
힘이 팡팡납니다.
사진은
장식용으로 겹사리였던
작은 입새가 잘자라서
화분 중앙을 차지 했어요.
기특하고 자랑스럽고
제 사랑 듬뿍 받네요.
화초를 정말 잘 키우시네요.
저는 글에서도 고백했지만 좋아하는 만큼
잘 키우지는 못합니다 .
그렇지만 사랑과 관심이면 그만큼 표시가 나는게
화초 기르기라는것을 잘 알지요.
오늘은 암이 깊어져서 주님곁으로 가시길 원하시는 분께
봉성체 나갔다가ㅏ 그분의 혹덩어리를 만져보며
제 손이 정말 생명을 주는 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
그런 마음이 간절 했습니다 .
건강 하세요 윤정님
Green Thumb 참 좋은 단어입니다.
Green Fingers 라고도 한다 하네요.
딸에게 인정 받은
아녜스님의 Green Thumb~
제가 보기에도 아녜스님의 손은 Green Thumb 입니다.
마음이 화초에 닿으면
화초도 늘 나의 시선 안에 머물지요.
어릴 적, '엄마 손은 약손' 이라며,
엄마의 손길이 많이 닿는 아이는 예쁘게 자란 것 같아요.
살아 있는 것은,
다 사랑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밭에 있는 작물도
'농부의 발걸음 소리 듣고 자란다' 라고 합니다.
콩꽃님의 댓글이 제 글보다 더 나은 수필 입니다 .
워낙 딸은 그런거에 관심이 없다보니
저를 그렇게 표현해 줍니다 .
어떻게 알았는지 작은 손자가 꽃만 보면
"할머니 저 꽃 좀 봐 " 그렇게 말합니다 .
콩꽃이 피는 계절이겠네요 .
모든 작물에 비 피해가 없었으면 하는 맘입니다 .
글이 마치 서양란같습니다.
물아일체라더니
서로 닮았어요.
고맙습니다 석촌님
꽃 닮은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화초도 사람의 발걸음을 아나 봅니다. 회초키우기는 정성이 90%이니까요.
제가 그것은 확실하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
사랑하는것을 너무 잘 알지요 .
눈길이 멀어지면 금방 표시가 나요 .
매일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고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진다고 다 잘 키우는 건
아니예요.ㅠㅠ
아녜스 님은 식물 잘 키우는 Green Thumb
맞아요.
저는 화초를 사다 놓으면 죽이는게 일이거든요.
물을 언제 줘야하는지 도통 감이 안 와서요.
서양란은 색깔이 화사하고 예쁜 것같아요.
제 경험으로 보면 멀리서 바라만 보는것도
필요 하더군요 .
지나친 관심으로 물을 너무 자주 주는게
화초를 죽이는 첫번째 이유 일 것입니다 .
색깔은 예쁘고 오래가는데 향기는 없습니다 ㅎㅎ
손은 두뇌죠. 님은 머리가 좋은가 봅니다.
글이 생각났어요. ㅎ
지오님이 머리가 좋으시네요.
남의 글을 보고 퍼뜩 글감이 생각나니까요 .ㅎㅎ
화초 만큼이나 글이 아름답군요
아네스님 님도 아름다운 화초의 꽃같은
모습, 동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공주 모습으로 그려지네요
근데 따님 사위 하시니 평범한 우리들의 보통 엄마인가요?
저는 나국화님이 글을 잘 쓰시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수필방에도 써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
제가 너무 여리여리 한 척 했나요 ?ㅎㅎ
알고 보면 엄청 씩씩하고 용감한 아낙입니다 .
'Green Thumb'
이번에 이 단어를 처음 알았어요.
참 곱고 예쁜 말이네요.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오롯이 손끝을 통해서 식물들에게 전해져 보답하듯 생기를 되찾나봅니다.
서양란 꽃도 예쁘지만 잎도 참 푸르러니 생기 넘칩니다.
여행기 이후에 섬세하고 영롱한 느낌의 사색의 수필들을 접하고서도 나름 분주해서 그냥 퇴장했었습니다.
다가오는 계절에, 늘 그렇게
위안이 되었던 꽃들과의 새로운 재회를 통해서 아녜스 언니의 마음에도 또 싱그러운 행복이 함께 하는 날들이 되겠지요.
우린님 그러셨군요 .
다 괜찮습니다 . 이렇게 가끔 글에서 만나는것도 제게는
안심이며 한편은 제 위안이기도 합니다 .
비가 많이 왔다 하던데요 .
서울에 계시니 큰 피해는 없으셨을거라 생각하지만
습한 날씨에 건강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그렇군요 .
혼자 있을때는 얌전합니다 .
가끔은 거룩해지기도 하고요 .
그 손과 그 손에 담긴 마음에
제가 고마움을 느낍니다. ㅎ
댓글 쓰는 제 손을 보니 ㅎㅎ
손이 투박하고 참 못 생겼네요.
댓글에 답글 쓰는제 손을 보니
손도 세월을 말해주는구나 입니다 .
오늘부터 핸드크림을 바르고 자야겠습니다 .
생명을 살리는 손.
식물도 부지런해야 잘 키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아녜스님 손은 분명 생명을 살리는
금손입니다.
전 올 여름에 율마를 죽였답니다.ㅠ
제가 금손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식물은 안키우리라 마음 먹으면서도
식물을 보면 사고싶은 마음이
생기곤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손을 가진 아녜스님이
부럽습니다.
아닙니다 이베리아님 .
저도 화초 많이 죽입니다 .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축 늘어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럴때 마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 올리곤 랍니다 .
다시 화초를 잘 키워보리라고 맘을 먹었습니다 .
이베리아님 사시는곳은 비 피해는 없는지요?
충청권에 비가 많이 내렸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
@아녜스 다행히 여기는
비피해가 없답니다.
호접란이네요
우리집도
이 난을 좋아해
여러종류중
흰색이 잴예뻐
근데
아녜스네 란은
좀 짧네요
죽어가는 화초를
살릴때
그만족감은 이루말할수없지요
갑쟈기
인앤아웃 버거가
급땡기는 오후입니다
혹 golf나가셨나요?
저는 그냥 서양란이라 불러요.
꽃이 오래가서 집에 여러개가 있습니다 .
사진속의 난은 그리 크지는 않아요 .
잘 아시지요 ? 이쪽 문화가 선물이
약소하다는것 ㅎㅎ
저는 주말에는 골프 나가지 않습니다 .
바쁘기도 하지만 비싸서요 .
인앤아웃 햄버거 맛있지요
먹어본지는 꽤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먹고 싶어집니다 .ㅎㅎ
생명의 손을 지닌 울아녜스님의 따스한 성품이 생각나서 혼자 빙그레 웃음 지어봅니다.
저는 요즘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인 개구장이 울손주들이랑 매일매일 전투중이랍니다.
요즘 수피님의 생활이 안 봐도 보는듯 합니다 .
즐겁기도 하고 바쁘고 피곤하지요 .
오늘 처음 보았네요 . 수피님도 7 숫자를요 .
식사 잘 하시고 가끔 휴식도 하면서 지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