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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극, 혹은 조용히 대중들 마음에 불지르는 '연방제'?
1. '사극'의 홍수 시대에 생각하는, '역사'의 의미.
건전한 여론 형성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한국 문화 현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한국의 중세에 있어서 '역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관등이 '왕'과 이외의 특출난 인문학적 수업(아시아에서 역사공부는 도덕공부 이후이다.)을 겪은 이들이란, 국민을 통치하는 특별한 소수들을 상대로, 과거에 있었던 바로서의 당대와 과거의 기록을 적시하여 후대의 통치행위에 거울이 되어 교훈과 질책이 되도록 함에 있다.
서구 역사가 HISTORY라 하여 중심 주인공을 예수님(HIS+STORY)라고 했다면, 아시아 역사의 중심주인공은 당연히 왕이다. 아시아 역사는 난세의 경우를 기록하여 요순 시대 같은 치세를 이끄는 성군이 되겠금 후대의 지도자에 교훈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구의 역사에서 갖는 독특한 종교성에 못지 않게, 아시아 역사도 난세에 民들이 겪는 고통을 겪지 않게 하는 성군이 되는 바탕에의 종교성이 분명하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detail.nhn?mb=c&code=39894#03
조선시대 연산조 궁궐을 배경으로 질펀하게 펼쳐진 궁중 광대들의 한 판 놀음을 그린 김태웅 연극 원작 '이(爾)'을 영화화한 시대극. 이미 <황산벌>을 통해 역사 속 이야기를 영화 장르로 변모시켰던 이준익 감독이 연출하고, 감우성이 폭군 앞에서도 과감한 광대짓을 서슴지 않았던 천생 광대인 장생 역으로, 정진영이 폭정을 일삼는 연산군을, 그런 연산군이 빠져드는 미모의 젊은 광대 공대 역에 신예 이준기가, 그리고 질투심에 불타는 장녹수 역에 강성연이 연기한다.(무엇보다 유해진, 정석용, 이승훈 등 광대를 연기하는 조연들의 연기가 영화를 빛냈다.) 사약을 받은 생모(윤씨)의 비밀을 알고 무오-갑자사화의 참극을 저지른 연산군의 역사 속 이야기에다, 가난과 천시에서도 삶의 유희를 즐겼던 광대들의 모습을 반영시킨 원작의 기발한 매력을 잘 살린 이 영화는 개봉 첫 주 전국 115만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으며, 개봉 9일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였다. 제작비 60억(순제작비 44억). 최초 네이버무비 평점 1만회 돌파 영화.
사실(fact)에 허구(fiction)을 더한 팩션(faction)이란 공식 개발은, 한국 근대 최초의 역사 소설가인 월탄 박종화의 영향권을 이용하는 2세대 자체가 시조로 하는 궤변 공식이다.
<왕의 남자>에 '경극'이 나온다. 예고편을 보니 하얀 분에 경극식 분장이 나온다. 마당놀이를 많이 봐도 알지만, 한국의 마당놀이에서 악마는 '색깔'이 아니라 '탈'이 선악을 의미한다. 이게, 단순히 '허구'일까? '허구'이상의 의미를 말할까?
2. 모든 역사 이야기는 현재사
게오르그 루카치의 [역사소설론]이 역사소설 연구에 많이 인용되었어도, 정작 한권을 끝까지 정독한 국문과 학위논문이 없다. 루카치는 참 학술논문 목차 짜기의 고전을 보여주듯이 체계적 논리의 집짓기를 보여주었는데, 국문과라면 이러한 학술논문의 개념 집짓기를 부분절취인용을 할 권리가 형성이 되는 지 의문시 된다.
[역사소설론]의 백미는 책의 후반부이다. 북한이 김근태씨와 정동영씨등에 불지르는 '반보수 연대'공식의 원조인 '반파시즘 연합전선론'을 불지르는 문학예술로 '역사소설'이 어떻겠나 하는 게 게오르그 루카치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바이다. 이 결말을 모르면서 루카치를 인용한 국문과 학위논문은 로맨틱 코메디의 전체를 요약하듯한 결말을 못 보고서, 중간 일부분만 보고 다 보았다는 주장과 같다.
<왕의 남자>의 기본 줄거리를 만든 월탄 박종화의 <금삼의 피>는, 정사 기록을 뒤엎는 방식을 보인다. 폭군이란 것엔 의견일치를 보이지만, 그것은 '**군'딱지를 부여한 反正(쿠데타?)세력의 평가로서 긍정시한 것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역사 기록을 중시하되, 조선왕조실록의 고색창연한 윤리론이 들어가는 부분마다 창조적 해석을 허락하는 역사소설과 사극논리의 원점이기도 하다.
월탄 박종화는 몰래 '민족의식'을 부추기는 것으로서 <역사소설>의 가치를 주장했다. 1919년의 3.1운동의 여파에서 계급문학운동까지도 독립운동 차원에서 지지했던 박종화의 개인사를 놓고 보면, 결국은 '연산군'의 형상은 계급운동으로 사이가 극단적으로 소원해졌던 카프 문학인들에서의 원망 심리의 반영으로 사료된다.
물론, 이러한 근거는 역사극의 골조를 이해하고서 '의미해석'을 할 수 있는 자들에게만 드러난다. 아닌 이들에겐, <금삼의 피>는 오늘의 기준으로 참 지루하게 쓴 옛문체 소설에 다름 아니다.
결국, <왕의 남자>가 보여주는 바도 사실은 간단하다. 공길이 이준기가 강성연이보다도 더 예뻤다고 하지만, 사실은 한국의 역대 지도자들을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배경의 철저한 연장선상이다. 여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된다는 법이 없을 것이다.
<왕의 남자>는 <그 때 그 사람들>, <효자동 이발사>, 드라마 <제5공화국>과 연장선상이라 봐야 적절하다. 사극 형태로 위장하여 쓴 것으로 어지간한 사람에겐 속내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 봐야 적절하다.
그 당시에 월탄 박종화가 <조선왕조실록>을 어기고 폭군에 인간미를 부여한 배경에는, 1919년 3.1 운동이후 독립운동 거의 소멸 이후 총독부 기관지에 기고를 해야 되는 비장한 마음을, 들키지 않은 상태로 알 사람만 알겠금 총독부의 독립운동 멸시라는 왜정사회 공공의 목소리를 조롱하는 배경이 담겨 있었다. 반면에, 폭군에 역사기록에 없는 <호모>를 더해주는 것에는 <황산벌>작가 다운 '망조'에 접어드는 국민성을 길들이려는 의지가 있다고 봐야 적절하다.
<왕의 남자>가 표현의 자유로 긍정된다면, 그리고 통치권에 대한 망조에 접어드는 국민성으로 길들이려는 황산벌 작가의 의지가 긍정된다면, 정확하게 같은 차원으로 노무현대통령이 연산군에 공길이 유시민장관의 비유도 긍정되어야 마땅하다.
3. 고구려 사극, 혹은 조용히 대중들 마음에 불지르는 '연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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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naver.com/nkartist.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106
위에 스크랩 해놓은 글들을 보면, 신문의 정치란에서 용공이념에 대해서 쌍심지 켜고 경계심 잔뜩 가졌을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역사를 소재로 하는 예술장르의 특성이 이렇다. 월탄 박종화가 총독부 기관지를 빌려서 '독립정신'으로서의 민족의식을 옹호할 만큼, 똑같이 용공 이념에 쌍심지를 켠 사람들을 정면에서 희롱해도 알아차리게 하지 못할 수 있다.
서울`1945가 [해방전후사의 인식]체계를 썼으면서 '해방공간서울'이라고 하지 않는 위장술은 사치스럽다. 어지간히 직설어법을 써도 실체적 의미파악자가 많을 수가 없는 장르이며, 조금씩 조금씩 알게 모르게 세뇌되게 하는 예술적 장르이다.
여기에서 배용준 주연의 드라마조차도 이 제목에 타당하느냐의 반론이 있을 것이다. 이는 문민정부 인식체계에 대해서, 더 이상 종교적 신앙심을 가지지 않은 정확한 계산에선 반론도 무찌를 수 있다.
한보철강과 진로는 배보다 배꼽이 더 많을 부채 차입 경영이었고, 대우 기업은 실체적 대우 기업의 몸매를 견뎌낼 수 없는 해외 확장 사업의 경영이었다. 결국은, 산술적 계산으로는 망할 기업이었으나, 문민정부의 보호막이 보호할 것이란 신앙등이 버티게 해준 것이다.
'수도분할'이라 흥분했던 기억을 저편으로 하고 보니, 문민정부의 부동산 밑그림은 노무현정부의 국민괴롭히는 부동산 정책의 첫 스타트였다. 김영삼대통령 부동산 정책에 대하여 '한미동맹'의 상황을 이용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중국에 속국이 되도록 하는 밑그림을 그렸고 백두산 중심의 연방 민족론을 그렸다는 비난이 가능한데, 이 비난이 아닐 가능성은 '미국'이 김정일을 붕괴시켜줄 것이며 그 전제에서는 한국의 경제력 우위가 북한주민을 넉넉히 먹여 살릴 것이라는 철부지적 순진함속에서 이다.
사극에서 '이데올로기'가 나올 가능성은 없고 상징적 양식과 모드와 코드로 구현된 과거사 정리가 이데올로기가 되어서 이야기를 건다.
고구려 사극이 말하는 바는 그곳에 가서 살 수는 없으되 우리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도록 하는 국민 단합의 효과와 같다. 살 수 없는 곳에 사는 이들의 과거사를 직접적으로 '우리'라고 일치시키는 것은 과거부터도 수상하다고 많이 드러내어져 왔다.
드라마가 나오지 않았어도 필경 고구려 드라마가 무슨 방식으로 쓰여질지는 안 봐도 훤할 것이다. 북한의 고구려사 해석이 직간접적으로 반영될 것이 확실하며, 북한의 역사 해석이 김일성의항일운동을 미화하는 어조로만 전체가 조직되었다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고구려 드라마는 갖가지 전쟁신을 통해서 북한공산당의 전제로서의 북한식 '민족'해석을 높이는 투쟁의 역사를 그릴 것이다. 역사 영화 <황산벌>이 보여준 바 처럼, 나당연합군은 북한이 바라보는 '한미동맹'으로 그려질 가능성도 높다.
물론, <왕의 남자>의 공길이를 아무 생각없이 좋아한 국민은 고구려 드라마도 쉽게 쉽게 좋아하고 높일 가능성이 높다.
공산주의를 옹호하거나 김정일체제가 붕괴되고서 그 위에서 북한주민의 자유의사가 통하지 않도록 무력군대의 장기 진압이 없는 한, 자유의사로 자유민주주의 가치관 가진 자가 자유롭게 살아갈 영토가 될 수 없는 지역에 대한 긍정 바탕은, 직접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단합심을 해치게 된다. 북한과 맞닥들이고 있는 환경을 강조하는 바를 넉넉히 무찌르고도 마는 주장으로, 김정일만 죽이면 되지 않는가 하는 식의 무당적 미신적 세계관의 개입은 소름끼친다.
4. '동북공정' 혹은 공산국 연방, 에 저항 가능성으로서의 가능성은 있나? 애초에 없고 한국의 동반속국화의 함정이었나?
고구려가 중국의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사 생각해보게 된다면, 사실은 공산국 연방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한국에 여기에 저항하라고 하는 것은 '미끼'를 내걸어서 동북공정의 북한 접수에, 저항이란 이름으로 엮어버린 함정이었다고 본다.
한민족이란 개념의 탄생 자체가 1989년 공산권 붕괴 이후에 1991년의 북한공산당의 재기 차원으로 안호상박사의 김일성에 훼절로 탄생한 것이다. 정확하게 1991년 이후에 탄생했으며 그 이전에는 한민족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한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변증법적으로 남북체제를 병렬시키는 연방제 논리를 문민정부에서 떳떳하게 합법화시켰다.
결국, 남북이 연대해서 중국 베이징 중심의 연방화에 저항해서 싸우며 '한민족'의 긍지를 찾는다는 식의 버전은, 주체사상식의 김정일 뜻대로 조종하면서 주체적 사유라는 논리 역전을 김정일 뜻대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선택해본다면, 절대적으로 한국 국민을 베이징 중심의 연방제 권역에 묶는 함정 수였다고 보여진다.
역사 드라마 자체가 긍정적일 시간은 지났다.
역사의 정사기록을 비아냥대면서, **왕조 무렵에 무협검객 아무개가 있었다는 '사극형식'빌은 완전 뻥이 아닌 바에야, 사극은 어떤 정치드라마보다도 더 세뇌강도가 센 정치극이 된다. 그것은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일관되게 현재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