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꽃을 비운다 / 복효근
나무가 꽃을 피운다는 것은 오해다
정작 저를 비우는 것이다
뿌리가 있어야 한다고
근본이 있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배운 이후로
무슨 저주가 이리 질길까
한 자리에 박혀
종내는 제가 판 무덤에 저를 묻어야 하다니
짐승처럼 포효하고 내달리고 싶어
얼마나 제 속을 끓였을까 곪았을까 썩었을까
언제고 부러져 몽둥이가 되고 싶은 소갈머리 왜 없을까
확 꺾여 불 질러 버리고 싶은 화기로 뭉친 몸
그래서 꽃은 나무의 토사물이거나 욕지거리다
하도 어이없어서 웃는 웃음처럼
곪아 터진 화농에서 피어나는 오색 곰팡이 같은 것
그러니까
못해먹겠다 너 죽고 나 죽자 시발
저 육두문자를 꽃 비운다 할 수는 없겠니
저를 피운다 할 수는 없겠니
활활 불피우고 싶은 마음 같은 거
후련히 확 비워버리고 싶은 마음 같은 거
그 정도는 돼야 꽃이라 하지 않겠니
어때 그래도 꽃 피우고 싶어?
— 시 전문지 《아토포스》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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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효근 시인
1962년 남원 출생. 전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1년 《시와 시학》 등단.
시집 『마늘 촛불』 『따뜻한 외면』 『꽃 아닌 것 없다』 『고요한 저녁이 왔다』 『예를 들어 무당거미』 『중심의 위치』등
청소년 시집 『운동장 편지』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
디카시집 『허수아비는 허수아비다』
교육 에세이집 『선생님 마음 사전』 등.
1995년 편운문학상 신인상, 2000년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2015년 신석정문학상, 2022년 박재삼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