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2024.4.7./ 부활절 제2주일)
예루살렘 모(母) 교회
사도행전 4:32-35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오늘은 부활절 두 번째 주일이다. 부활절은 성령강림주간까지 일곱 주간 동안 계속된다.
세계교회의 전통에 따라 부활절 인사를 나누자.
선창-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후창- “주님은 ‘정말’ 부활하셨습니다!”
선거의 계절이다. 어느 자리에서 한 목사가 요즘 넥타이 매는 것도 조심스럽다고 하였다. 무심코 파란색을 맸더니, 누가 목사님도 거기 지지하냐고 묻더라고 한다. 빨간색, 노란색, 하늘색, 주황색 모두 거슬린다면 무지개 색을 매면 될까? 아마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오해를 피하려면 나처럼 넥타이를 매지 말라고 하였다.
색동은 어떤 색도 상관없이 서로 어울린다는 점에서 모든 교회의 모습이다. 본래 교회는 모든 색깔을 다 포용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네 가지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는 하나이다(Una).
교회는 거룩하다(Sancta).
교회는 보편적이다(Catholica).
교회는 사도적이다(Apostolica).
교회의 보편성은 모든 민족,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서 배제된 사람은 없다.
지난 주간 교회 자료를 정리하다가 처음 우리 교회 이름을 지을 때 후보가 된 이름들을 발견하였다. 후보가 모두 51가지였다.
별별 유행하는 이름이 다 거명되다가 결국 색동스톨교회, 그물짜기교회로 압축되더니 색동교회로 결정되었다. 그때 생각하였다. 아하! 이분들이 의리가 있구나. 그렇게 ‘젊고 따듯하며 평화로운’ 신앙공동체로서 색동교회를 이루어가기를 바란다.
1)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첫 교회는 예루살렘교회이다. 초대 교회는 건물이 아니었다. 다만 사람들의 모임인 공동체였다. 사도행전은 처음 교회의 역사를 들려준다. 처음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 위에 세워졌고, 처음에는 미약했으나 점점 든든히 서 갔으며, 사방으로 확장되었다. 승천하시기 전,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누가는 본문에서 처음 교회를 설명하면서, 중요한 특징으로 경제적인 일체성을 증언하고 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32).
사도행전의 증언에 따르면 처음 교회가 한마음과 한 뜻으로 일치한 결과, 경제적으로 ‘유무상통’(有無相通)한 공동체가 되었음을 주장한다.
‘유무상통’이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35) 주는 경제적 이상을 공유한 공동체를 의미한다. 지금은 실체가 사라졌으나, 초기 원시공산사회를 지향하는 이념도 처음에는 그런 이상에서 출발하였다.
어떻게 이런 모습이 가능할까? 대부분 사람에게 예수님의 부활이 현실적으로 믿기 어려운 것처럼, 부활의 믿음 위에 세워진 초대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을 이해하기는 참 어렵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신앙공동체는 가능하다.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고, 주님을 찬양하며, 성찬을 나누고, 성경 말씀을 듣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교회의 모습이다.
그런데 ‘자기 재물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는’ 그런 공동체가 가능한가? 한 아버지의 자손끼리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재산을 공유한 초대 교회의 모습을 규정하면서, 원시기독교공동체라고 이름 붙이기도 하였다.
물론 그들의 재산 공유의 이상은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고난을 받던 초기 300년은 가능했지만, 교회가 안정되고 재산이 생기면서 그 정신이 오늘까지 계승되지 못하고 있다.
예루살렘 모(母) 교회를 보듯, 처음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일찍이 예수님은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고 하셨다. 자기 재산을 포기하는 것은 제자가 되는 우선 조건이었다.
예루살렘 모 교회를 따르려는 열심은 지금도 계속된다. 세계에 흩어진 교회들은 예루살렘을 방문해 처음 교회의 모습을 배웠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전통이 생겨났다. 그런 점에서 정교회는 정통교회라는 자부심이 크다. 우리교회 부활절 입례송, 부활절 인사는 그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색동교회가 여느 교회와 다른 여러 가지 점들이 많이 있다. 새로운 유행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어온 교회와 신앙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색동교회는 예수교회, 개신교회, 감리교회입니다.”
나는 내년 사순절 40일 동안 40가지 특징을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소개할 예정이다.
2)
사실 예루살렘 모 교회의 모습은 너무 이상적이 아닌가, 본받기가 참 어렵다고 말한다. 게다가 2천 년이 지난 지금, 경제 규모도, 삶의 모습도 너무 달라져서 그런 재산을 공유하는 신앙공동체는 꿈도 꾸지 못한다.
따라서 그런 공동체를 꿈꾸다가 이단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신앙촌과 같은 사례이다. 지금도 생산과 소비 등 경제적 공유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공동체의 시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헤른후터, 아미쉬, 메노나이트, 몰로칸 등 수백 년 된 사도행전 원시공동체들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우리가 십계명을 현실적으로 모두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고 해서, 십계명을 폐기할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의 이상적인 생활공동체를 무시할 수 없다. 다만 그런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아가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신앙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때로는 양보도 하고, 손해 보는 일에도 앞장선다. 이 모든 일이 내 이익과 상관없더라도, 주님의 교회를 위한 일이기에 그 청지기의 사명을 위해 수고한다.
사실 교회가 더 교회다워지려면 더 미련해질 필요가 있다. 세상의 계산법이 아니라, 세상의 경쟁방식이 아니라, 세상의 능률과 성과주의가 아니라, 더 예수님의 세상과 동떨어진 방식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더 유능해지기 위한 모습이 아니라 더 바보스러워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처음 교회의 모습이었다.
사회학자 리하르트 뮌히는 교회의 사명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경제이론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말해 주지 않으며, 무엇이 올바른 상거래이며 무엇이 좋은 인생인지에 대해서 침묵한다.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 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이다.”
처음 교회에서 사도들이 한 일은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경제공동체는 애초부터 목적이 아니었다. 다만 신앙공동체의 결과물일 뿐이다. 처음 교회의 목적과 사명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일이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33).
제대로 부활을 증거하고, 바르게 은혜를 사모하다 보니 이상적인 신앙공동체를 이룬 것이다. 이렇듯 부활을 증거 하는 사도들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큰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였다.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누어 줌이라”(34-35).
사도들이 전하는 예수 부활의 메시지에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재산을 드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려는 전적인 헌신을 결단함으로써, 처음 교회는 재산을 공유하는 유무상통한 공동체가 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은혜와 기쁨과 감격이었던가? 얼마나 그들의 삶에 은혜를 끼쳤기에 자신의 재산을 모두 바치려고 했을까? 이렇듯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의 삶에 전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람들의 변화라는 분명한 열매를 가져왔다.
예수님의 부활은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주님의 부활을 믿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변화뿐 아니라, 삶의 모습에 변화를 가져왔다. 처음 교회가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공동체가 가능한 근거는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약속에 근거한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3)
강화도에 교산감리교회가 있다. 강화 섬 128곳 감리교회의 모교회이다. 이곳에 작은 역사박물관도 있다.
개척자인 이승환은 강화도 양사 사람으로 일찍 인천에 나가 주막을 열어 큰돈을 벌었다. 인천에서 살면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그는 주막에서 술을 팔아서 돈을 번 자신보다 어머니가 먼저 세례받기를 원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세례를 받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마을의 김 초시를 비롯한 지역 유생들이 외국인 선교사가 마을을 방문하는 것을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승환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해안으로 나아가 인천에서 찾아온 존슨 목사의 배 위에서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의 효심으로 강화도의 첫 세례자는 이승환의 어머니가 되었다.
이후 이승환의 집에서 첫 예배가 시작되었고, 그것이 오늘의 교산교회에 이른다. 1893년, 갑오경장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의 일이다.
당시 항의했던 김 초시는 개종하여 교산교회의 첫 목회자가 되었다. 그가 한국 그리스도교 처음 목회자의 한 사람인 김상임 전도사이다. 얼마나 소중한 한국교회의 초기 역사인가?
자식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도 귀하지만, 실은 어머니의 마음은 훨씬 크고 넓다. 그러니 교회는 어머니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 건강한 자녀보다 병든 자녀를 더 생각하고, 집 안에 있는 자녀보다 집 나간 자녀를 생각하며, 출세한 자녀보다 실패한 자녀에게, 장성한 자녀보다 어린 자녀에게 마음을 두는 것이 어머니의 심정이다.
지난 주에 들은 이야기다. 톨레레게 예배지기 말씀에 그가 그날 하루 톨레레게를 열심히 살핀다고 한다. 누가 너무 늦게 요절을 올리거나, 누가 빠뜨리거나 하면 마음이 쓰인단다. 무슨 일일까? 어디 아픈가? 그런데 뜻밖에 누가 올리면 참 반갑다고 했다. 선한 목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마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아마 모든 예배지기들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대체로 교회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이다. 우리는 죄와 흠이 많은 사람들이다. 이러한 교만함과 연약함 때문에 질그릇처럼 깨지기 쉽다.
그럼에도 교회의 힘은, 교회의 능력은, 교회의 자랑은 복음을 통해 한사람 한 사람의 심령과 삶이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변화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세상과 사회를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
처음 교회가 가족 이상의 가족이었고, 주님 안에서 재산까지도 공유했던 형제자매 이상이었던 것처럼 14살이 된 우리 색동교회가 그렇게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32)야 가능할 것이다.
교회의 기초는 부활하신 주님이다. 우리의 능력은 바로 복음이고, 기도와 감사의 생활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에서 나온다. 교회의 힘은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
처음 교회는 곧 처음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바로 나를 통해 부활의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신다. 주님께서 나를 도우신다. 나를 사랑하신다. 내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고, 복음의 본질을 굳게 붙잡으며, 희망을 놓지 않는 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은 색동교회를 통해 부활의 신비를 드러내기를 원하신다. 그런 은총의 빛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