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중-후기에 가장 강한 나라는 진(晋)이었습니다.
그런데 진나라의 왕실이 힘이 없어지고 권신들이 정권을 잡았는데, 처음에는 조(趙)씨 세력들이 제일 강했습니다.
그러나 조씨세력에 반대하는 무리들이 힘을 모아 한 때 조씨들을 박살냈습니다.
조씨들은 충신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해서 다시 일어나기는 했으나, 이미 지(智)씨가 우두머리가 된 후였습니다.
지씨들의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조씨들은 지씨의 아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지씨의 지도자는 지백(伯), 조씨의 지도자는 자(子)로, 공후백자남 제도에 의해서도 지씨의 위상이 조씨보다 높았고, 조씨는 위씨, 한씨 같은 다른 세력들과 같은 위치로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좀 내려오다가 조씨 가문에 영걸이 나왔으니 조무휼, 다시 말해 조양자입니다.
조양자는 위씨, 한씨 등 다른 세력들을 포섭하여, 오랜 전쟁 끝에 끝내 지백을 죽이고 지씨를 멸했습니다. 이로서 진나라는 실질적으로 조(趙)나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조양자는 위씨, 한씨 등의 세력을 박살낼 힘은 없었습니다. 자신의 힘만으로 진을 다 먹어버릴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백의 이름이 지금까지 기억되는 딱 한 가지 이유는 그의 부하였던 예양의 충성심 때문인데, 처음 예양이 조양자를 죽이러 왔을 때 예양을 베지 못했던 이유도, 조양자가 지백을 타도한 명분이 약했기 때문에 반발세력을 끌어안아야 할 필요가 있던 탓입니다.
예양이 두 번째로 조양자를 죽이려 하다 결국 그의 옷을 베고 자결한 후 조나라의 많은 의사들이 슬퍼했다는 말은, 즉 조나라에 아직도 조양자를 따르지 않던 자들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결국 조양자는 살아 있을 때에 위씨, 한씨 등 독자세력들을 통일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위씨, 한씨는 위나라, 한나라를 세워 빠져나갔고, 조나라는 이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조, 위, 한 3국은 서로 싸웠고,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으나 결론은 나지 않는 싸움이었습니다.
이러는 동안에, 야만인으로 중원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하던 진(秦)나라가 힘을 길러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되는 기원이 된 것입니다.
조씨 가문이 한 때 망하지 않았다면 이미 그 이전에 진나라의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던 만큼 시일이 지나면서 진나라를 무혈접수하고, 천하에 조나라의 이름을 떨쳤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망했기 때문에 지씨 가문이 일어날 기회를 주었고, 다시 일으켜 세우기는 했으나 옛날의 힘은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조양자 같은 영걸의 힘으로도 재통일을 할 수 없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