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熙 대통령 기념∙도서관
서울 麻浦區 上岩洞 박정희기념∙도서관은 박정희기념사업회에서 朴 前 大統領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도서관이다.
1999년 金大中 전 대통령이 박정희기념사업회에 재정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시작되었으며,
기념사업회는 공공도서관 성격의 기념도서관으로 지어 서울시에 기부하는 조건으로 상암동
부지를 무상임대 받고 김대중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208억 원에 민간기부금 500억 원을 추가하여
2004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했으나 募金額이 100억 원에 그쳐 사업이 표류되었다.
원래 장소는 상암동이 아니고 용산이었으나 盧武鉉 정부 때 공사가 중단되고 국고보조금 지원도
무산위기에 처해 공사는 계속해서 미뤄졌고 결국 李明博 대통령 집권 당시 上岩洞으로 장소가
확정되어 다시 공사가 시작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기부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보조금 교부를 취소할 수 있다’는 당초 조건에 따라
국고보조금 가운데 170억 원을 2005년 회수했으나 소송에 나선 기념사업회가 대법원의 판결에서
승소했으며, 2009~2010년 全經聯 등 財界에서 270억 원을 모금하는 등 재 모금이 순조롭게
이루어져 도서관은 2011년 말 완공되어 착공 20여 년 만인 2012년에 개관하였다.
그러나 박정희대통령 기념∙도서관이 자리한 麻浦區가 지역구인 당시 새정치연합 鄭淸來 의원은
지난 총선 때부터 박정희대통령 기념관을 폐쇄하고, 어린이 도서관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는 등 폐지 주장을 공식 제기해왔다고 한다.
그런 餘波인지 전철역에서 박정희 기념∙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이정표가 없어 행인 세 사람에게
물어서 갔는데 도서관에 가서 확인했더니 이정표 설치에 관계기관의 견제가 많은 것 같다.
시설은 지상 3층, 연면적 5,290㎡(1,603평)이며, 주요 내부시설은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전시실을
비롯하여 閱覽室, 특별자료 열람실 등에 所藏자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인
1960~70년대의 근대화 사업 관련자료와 朴正熙 著書, 사진, 영상자료, 생애기록물,
박정희 評傳 등이 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1999년 9월 발족한 社團法人 박정희대통령 기념 사업회가 母胎로
2012년 2월 기념∙도서관을 개관하고, 2013년 6월 財團法人으로 전환되었다.
사단법인 시절 초대 회장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한 申鉉碻 씨에 이어
柳陽洙 씨(전 동력자원부 장관)와 金正濂 씨(전 대통령비서실당)가 2∙3대 회장을 지냈으며,
재단법인으로 전환 후 理事長은 초대 金淇春(대통령비서실장 역임), 2대 孫炳斗(전 西江대학교
총장)에 이어 현재는 左承喜(嶺南大 대학원 석좌교수)가 3대 이사장을 맡고 있다.
朴正熙 대통령 기념∙도서관 사진을 2회로 나누어 올린다.
2016. 07.05 孤 山 朴 春 慶
朴正熙 대통령 기념∙도서관(2-1)
(01)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상암근린공원 앞
(02)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표석
(03)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04)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정면
(05)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정면
(06) 朴正熙 大統領 影幀
(07) 세계은행 경제개발원의 敎材로 채택
(08)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동해북부선 개통식 -1962.11.06-
(09) 박정희 대통령 서울-춘천도로 포장공사 준공식 -1965.12.03-
(10) 한국 최초의 懸垂橋 南海大橋 -1973.06.22 준공-
(11) 故 陸英修 女史(8.15 逝去) 國民葬 永訣式 -1974.08.19-
(12) 박정희 대통령, 어린이회관 개관식 참석
(13) 박정희 대통령 영결식(逝去 1979.10.26) -1979.11.03-
(14) 나의 피와 땀을 마을과 조국에.
(15) 우리나라의 비참한 현실
1961년 1인당 국민총생산액(GDP)은 필리핀은 물론 스리랑카,
北韓, 방글라데시 보다 적은 世界 最貧國이었다.
(16) 1960년대 초 우리나라의 實相
구호물품(밀가루, 옥수수가루) 배급을 기다리는 아이들
*이런 모습은 사진만이 아니라 우리世代가 직접 경험한 현실이었다.
(17) 5∙16혁명은 民族中興과 近代化 革命이었다.
(18) 혁명공약(革命公約)
*제4항: 絶望과 飢餓線上에서 허덕이는 民生苦를 時急히 해결하고
國家自主經濟 再建에 總力을 傾注한다.
(19) <國家와 革命과 나> -朴正熙 大統領 著書-
(20) 박정희 대통령의 卓越한 政策選擇
(21)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의 독일방문,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뤼브케 대통령 내외.
(22) 간호사 善으로 출국
*간호사의 서독 파견은 1962년 20여 명의 간호학생들이 파견되고,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만300여 명의 간호사들이 서독으로 건너갔으며 1973년 서독 전체 병원에서 일하는
한국 간호사는 6000명이 넘었다.
당시 국민 소득 87달러, 인구 2400만 명에 실업자는 250만 명이 넘었으며,
종업원 200명 이상의 기업은 54개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간호사와 광부 派獨은
실업 해소와 외화 획득을 위한 돌파구였다. (*조선일보 1963. 11. 14)
(23) 1964년 박정희 대통령 採鑛現場 방문
1963.12,21 출국한 제1진은 大卒者가 20%나 되어 '紳士 鑛夫'라 불렸으며,
모두 8,300여 명의 한국 광부들이 서독에서 일했다.
* 1964.12.10, 광부와 간호사 300여명이 루르 지방의 함보른 탄광회사 강당으로 모여들었고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을 찾았다.
광부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했는데 "대한사람 대한으로…" 부분에선 흐느낌 때문에 더 이상
노래가 들리지 않았다. 演壇에 오른 대통령은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 이때 연설은 중단되고 장내를 가득 메운 울음소리가 轉移되어 대통령마저
울었기 때문이며 令夫人과 隨行員들도 모두 울었다.
광부와 간호사들의 송금액은 年間 5,000만 달러로 한때 GNP(국민총생산)의 2%에
달했다. (*조선일보 1963. 11. 14)
(24) 全 産業의 輸出化-수출 100억불 달성
1964년 수출 1억불 달성 이래 13년만인 1977년 수출 100억불을 달성했다.
(25) 1977년 100억불 수출의 날 박정희 대통령 일기 중에서
(26) 가발(假髮) 공장
(27) 엿장수와 아이들
엿가락이 유일한 間食이었던 시절 엿장수의 가위소리에 아이들은 집에 있는 고물들을
들고 나가 엿을 바꾸어 먹었는데 1960년대 가발수출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잘라 돈을 받고 팔기도 했다.
(28) 봉제(縫製) 공장, 당시에는 淸溪川邊에 많이 있었다.
(29) 전기가 없는 호롱불 밑에서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30) 전력난 해결대책-원자력발전소
(31) “싸우며 건설하자” -고속도로 건설
(32) 박정희 대통령의 고속도로 건설 계획 構想 메모
(33)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
1968년 2월 1일에 착공하여, 1970년 7월 7일 총 길이428㎞, 왕복 4차선으로 완공되었다.
당시 고속도로공사계획을 兩金 野黨指導者는 물론 野黨을 중심으로 知識人과 學界,
言論界 등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달래내고개(淸溪山 옛골 天臨山烽燧址 동쪽)에는 <京釜高速道路 첫 發破記念碑>가 있었다.
1968년 2월 1일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시작을 알리는 첫 발파 지점에 당시 공사에 최초로
투입된 육군 제1201建設工兵團 제220대대 용사들의 빛나는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 2월 15일 한국도로공사(사장 朴基錫)에서 건립하였다.
경부고속도로를 확장한 뒤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34) 경부고속도로 당재터널(현 옥천터널) 공사현장
경부고속도로 현장 감독관으로는 陸士와 學軍團 출신 工兵將校 중에서 獨身인
尉官將校들을 선발∙투입하였다.
당재터널은 경부고속도로의 最 難工事구간으로 고속도로 준공식 이틀 전(1970.07.05)에
완공했는데 당시 시공회사인 現代建設 鄭周永 회장이 현장에 常駐하면서 독려하고 總力을
기울인 곳이다.
(35) 경부고속도로 준공식 -1970.07.07-
(36) 고속도로 준공 기념탑, 秋風嶺
서울-부산간 고속도로(428km)의 중간(서울 기점 214.22km)이며
가장 높은 추풍령(해발 240.5m)에 건설과 번영을 상징하는
높이 30.8m의 탑을 세웠다.
(37) 새마을운동
(38) 개량 전 시골 초가집
(39) 개량 전 시골집
(40) 아궁이와 부엌
(41) 농촌새마을사업, 주택 및 지붕개량 작업
(42) 주택 및 지붕 개량
(43) 새마을 운동 후
(44) 새마을교육-공장 새마을운동-학교 새마을운동
(45) 도시 새마을운동
(46) 水資源의 효율적 관리-治水
(47) 用途別 댐 건설
多目的댐, 河口 뚝, 發電專用 댐, 생활 및 공업용수 전용 댐, 농업용수 댐.
(48) 山林綠化 주요정책
(49) 민둥산이 푸른 산으로.
그 당시 ‘이산 저 산 다 잡아먹고 입 딱 벌리고 있는 게 뭐게?’하는 수수께끼가 있었는데
답은 ‘아궁이’였다.
(50) 산림녹화 전과 후
- 朴正熙 대통령 기념∙도서관(2-2)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