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시즌에는 풀코스대회가 3개나 예정이 되어 있는데 최종 메인대회는 11월 중순에 있는 일본 가나자와마라톤대회이고 이번에 참가하는 익산마라톤대회는 그 첫번째 전초전.
지난달에 월 누적거리 340Km를 넘겼으니 최근 몇년간을 통털어선 가장 훈련량을 많이 쌓아놓은 것이고 어쨌든 목표를 향해 순항을 하고 있다.
장거리훈련 차원에서 참가하는 대회이다보니 부담은 전혀 없지만 풀코스라는게 너무도 많은 변수가 있기에 안심을 할 수는 없는 일.
어제 저녁부터 새벽까지 비가 내리더니 아침엔 일단 해가 쨍쨍 비친다.
안선생님 차로 산업도로를 달려 대회장소인 원광대로 가는 동안에 햇살이 강렬하게 내려쐬고 있기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는데 일기예보 대로라면 9시 무렵부터는 구름이 많아질거라고...
오늘 코스가 도심을 지나는 게 아니고 허허벌판을 달려야 되기 때문에 해가 쨍쨍한 날씨가 된다면 무척이나 고생이 클 것 같다.
그런 내용을 두고 안선생님과 내기 수준의 날씨예측이 오가는데 난 내가 바라는대로 구름이 개떼처럼 몰려와 천지가 어두워질 것이라고...
종합운동장 트랙에서 출발해 북쪽의 후문으로 빠져나간 뒤 어양동에서 삼기방면으로 대로를 따라 가다가 공단을 관통하며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미륵사지를 지나고 금마까지 왕복하는 코스.
9시에 정확히 출발축포가 울리며 운동장을 돌아나간다.
스텐드에서 응원을 하던 어떤사람이 내가 지나갈 무렵에 "앗 아이언맨이다!" "맞네! 우와 멋있다" 그러기에 행여나 내가 입은 옷이 삼종경기 선수들이 즐겨입는 런닝슈트와 비슷한 밀착형이라 그러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주로가 정리되며 알고보니 어느 키가큰 주자가 진짜 아이언맨(영화속의) 골든슈트와 같은 무늬옷을 입고 달리고 있는 것.
괜히 혼자서 착각을 했네...쩝!
학교를 막 빠져나갈 무렵에 만난 월명마라톤 소속의 고교후배가 선배님은 오늘 목표가 어떤지를 묻길래 4'50"에서 5분 사이의 페이스로 장거리주 훈련을 한다고 생각하고 뛸 계획이라도 답했는데 그 친구는 4'30"페이스로 가겠노라고 한다.
1Km표시점에서 그 친구는 앞의 대열로 합류하며 멀어져가고 난 초반 컨디션을 점검하며 목표대로 따복따복~
그런데 4~5Km쯤 지났을 무렵에 예상치도 않았던 변수가 생기는데 전주클럽의 김성민선수가 가쁜숨을 몰아쉬며 추월을 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4'40" 내외의 페이스로 나 또한 계획보다는 살짝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4'30"쯤 되어보이는 속도로 추월을 해 나간다고 봐선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 거리를 적당히 두고 뒤를 졸졸 따라가는 형식이 되었는데 그 덕에 페이스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몸 상태로 봐선 어느정도까지 더 올려서 달려도 후반에 퍼지거나 데미지를 받진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은 드는데...그래도 몰라!
다행히도 날씨는 내가 바라던대로 해가 숨어버리고 구름이 잔뜩 낀 흐린날이 되어 크게 안심이 되었는데 거기서 머물지 않고 중간에 엄청난 소나기까지 퍼붇는다. 그것도 갈때 한차례 돌아올때도 후반에 요란한 강풍과 더불어...
5Km 22:43
10Km 23:28 [46:12]
15Km 23:06 [1:09:19]
반환점 1:39:49
졸지에 여성 2위주자와 동반주를 하게 된 셈인데 잘못하다간 망신을 당할 판이니 적쟎이 긴장이 된다.
하지만 삼기에서 넓은 공단길을 지날때까지만 해도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던 동반주는 미륵사지로 이어지는 오르막 몇차례에서 균열이 가고 이후부터는 주구장창 혼자서만 달리게 된다.
미륵사지를 지나고 특전사부대 정문에서 전체 코스 중 가장 높은 지점을 지난 것 같고 이후부터 금마 반환점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반환점을 되돌아 나오는 선두권 주자들이 마주쳐 지나가는데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하지만 그 숫자가 50을 훌쩍 넘어서고 아는 얼굴들이 많아질수록 심리적으론 위축감이 들어간다.
예상했던 목표치 이상으로 잘 뛰고 있으면서도 괜히 남의 눈이 의식되기도 하고 나혼자 빌빌대는 것 같아보일 것만 같고...
그러던 차에 두철이가 반환점 부근에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응원을 하고 있다.
그 새 10Km를 완주하고 차를 몰아 금마까지 달려왔다는 것.
그러고보니 풀코스가 길긴 길고 갈길 또한 멀긴 멀구나!
반환점 이후에 집중력이 좀 떨어지며 페이스도 늘어지기 시작하길래 미륵사지 부근부터 새로운 목표를 정한다.
수천명이 참가하는 메이저대회가 아니기 때문에 앞서가는 주자들이 가뭄에 콩나듯 아주 띄엄띄엄 보이는데 앞으로 1Km마다 한명씩 추월을 해서 최소 열명은 잡아야 겠다는 알량한 계획.
안경을 벗어서 허리춤에 끼워넣었는데 그 덕에 멀리 있는 주자가 흐릿하게 보이기만 할 뿐 누구인지는 추월을 하면서야 알 수 있는데 자력으로 추월을 해서 나간다는 게 이런 상황에서는 1Km에 한명조차 쉽지가 않다.
하지만 숫자를 세며 혼자서 흐믓해 하다보니 집중력은 확실히 살아난다.
삼기공단의 광로에 들어설 무렵에 다시 날씨가 험악해지더니 왕복 6차선의 하나로를 지날 무렵부턴 엄청난 횡풍이 몸을 휘청이게 하고 끝내는 비까지 퍼붇는다.
힘이 충분히 남아 있으니 망정이지 초반에 조금이라도 무리를 한 주자들의 경우엔 그야말로 초죽음이 될만한 상황.
아니나다를까 35Km를 앞둔 즈음부터는 잡혀가는 주자들이 많아진다.
이제까지는 자력으로 추월을 했다면 이 즈음에서부턴 늘어지는 사람들을 주워가는 셈.
그 덕에 목표치의 두배를 넘어서는 숫자를 잡아가며 후반에 솔솔한 재미를 봤는데 그 중엔 잡고보니 월척, 맨발 코숨의 마라톤 전도사 김삼태원장님도 포함이 되었고 고교후배도 거의 패잔병이 되어 숫자를 채워준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허허벌판 광로에서 '말리말리송'을 반복해 부르며 혼자놀기의 진수를 만끽하다보니 길고긴 여정의 끝이 다가오는데 어양동을 앞둔 지점에선 맨 처음 착각을 갖게 해준 아이언맨과 그 동료까지 만나게 된다.
아이언맨은 놀랍게도 외국인이었고 자기 동료를 어르고 달래가며 결승점을 향해 고분군투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추월을 나가는 나를 향해 '엄지 척!'을 잊지 않는 쎈쑤.
후반에는 거리표시를 체크하며 시간을 가늠하고 그러는 과정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랩타임은 제대로 기록하지를 못했다.
최종기록은 3:21:42로 나왔는데 내 시계로 잰 것보다 13초 가량이나 길게 나왔다.
어쨌든 이번시즌의 첫단추는 잘 끼워 맞춘 것 같아 크게 안심이 된다.


경기를 마친 뒤에도 비는 계속되는데 물품보관소에 맡긴 옷가지가 긴팔 트레이닝상의와 팀조끼 하나가 전부인지라 추위를 막기엔 턱도 없다.
안선생님이 들어올 때까지 저체온증에 걸리지 않고 버티려면 큰일인데...
농대건물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대에서 찬물로 몸을 씻고 비와 땀에 젖은 숏트는 짜서 입고 긴팔상의를 입는 것으로 응급조치를 하는데 그나마 건물내부에 있다보니 추위는 견딜만 하다.
에휴 정말이지 해가 떠서 땡볕이 되었어도 곤란한 상황이었을텐데 그나마 이렇게 떨고 있는 편이 낫지... 암!
첫댓글 선배님! 멋진 글 잘 보았습니다. 글 솜씨가 좋네요....
30km 이상 장거리 연습도 않하고,
족저근막염으로 풀코스는 쉽지않네요...
항상 즐런하세요.
후배님 과찬의 말씀
같은 취미를 가진 덕에 대회장에서도 만나고 그런것 자체가 참 좋지요?
부상 털어내고 비상하길 바래요
제가 보관하고 있는 사진중에 선배님 모습이 보이네요...
항상 건강하세요..
이 사진은...동아대회?
여하튼 이렇게 보니까 또 감회가 새롭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