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도지 오름
제주특별자치도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오름의 정의는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을 제외한 제주특별자치도 일원에 분포하는 소화산체(小火山體)로 화구를 갖고 있으면서 화산분출물(火山噴出物)에 의해 형성된 독립화산체(獨立火山體) 또는 기생화산체(寄生火山體)를 말하는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그 개수는 인문적·자연과학적 정의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현재 공식적인 개수는 368개이다.
그동안 내가 368개의 오름을 다 오른 것은 아니지만 가봤던 곳 중에서 제일 신비스러운 곳이 문도지였다. 아마도 그곳에 처음 방문했을 때의 첫인상 때문일 것이다.
문도지오름(표고 260.3m)은 광활한 곶자왈 한가운데 솟아 있다. 그 형상이 반달 모양이라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아름다운 곡선 실루엣을 볼 수 있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야말로 사방으로 펼쳐진 곶자왈의 지붕을 한곳에서 훑을 수가 있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을 상관하지 않은 말과 소의 이동은 여행자에게는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낯섦과 여유를 준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스럽기는 했다. 사유지인 문도지가 박수기정처럼 외부인을 출입금지 시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우려일 뿐이었다. 문도지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오래 머물고 싶은 장소일수록 과거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4년 전에 왔을 때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반달 모양으로 솟은 오름 위로 말들이 자기들의 세상인 양 돌아다녔고, 마침 쏟아지는 정오의 햇살이 역광을 만들어 말들의 실루엣과 풍경을 환상처럼 연결시켜 놓았었다. 나는 그 말들 사이를 숨죽이며 지나가야 했다. 이제는 말들 대신 사람들이 많았다. 코로나 여파인지 일정한 거리를 둔 목초지 사이에서 등지를 튼 그들은 그들만의 시간을 풍경 속에 녹이고 있었다. 나도 오름 정상에 다다랐을 때 배낭을 벗고 기지개를 켰다. 이마를 훑은 바람에 땀을 식히고는 곶자왈을 훑다가 그 끝에 턱 하니 버티고 있는 한라산을 오래도록 봤다. 갑자기 십 년 후에 왔을 때에도 이 풍광이 변하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 순간을 잡아야 한다는 듯 목초지 위로 몸을 눕혔다. 곧 걸어야 할 긴 저지곶자왈과 그 끝에 싱싱하게 펼쳐질 녹차밭이 내 몸 위로 지나갔지만 나는 문도지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활짝 열고 눈을 감았다.
차노휘 (소설가·도보여행가)
문도지 오름 지도
문도지 오름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