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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비
하 근 찬
처음으로 휘파람 소리가 후익 두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을 때, 윤길이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해방되기 한 해 전의 가을이었다.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
윤길이는 곧 학섭이네 집을 향해 달렸다.
학섭이는 같은 학급으로 이웃에 살기 때문에 남달리 친했다. 나이는 두 살 위였다. 그래 그런지 몰라도 그는 벌써 오래전부터 휘파람을 아주 멋있게 잘 불었다. 그가 입을 동그랗게 오므려가지고 휙, 휙 가볍게 휘파람을 날릴 때마다 윤길이는 부러워서 못 견디었다. 더구나 고개까지 까닥거리며 신명을 낼 것 같으면 완전히 야코*가 죽기도 했다.
학섭이가 가장 신명을 내는 곡은 군대에서 취침 신호로 부는 나팔소리의 곡조였다. 그때의 군대란 말할 것도 없이 일본 군대였다. 일본 군대에서 취침 신호로 부는 나팔소리의 곡조에다가 가사를 붙인 것을 그들은 곧잘 노래처럼 불렀던 것이다. “심뻬이(新兵)상은 불쌍하고나, 오늘 밤도 누워 울겠지” 이런 것이었다. 물론 그들이 만들어 붙인 가사는 아니었다. 어디서 누가 맨 먼저 지어서 퍼뜨린 것인지는 몰라도, 그들이 사는 시골구석까지 그 가사는 퍼져와 있었던 것이다. “심뻬이상은 불쌍하고나, 오늘밤도 누워 울겠지.” 곡이 경쾌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애수 같은 것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학섭이가 이 곡을 휘파람으로 곧잘 신명을 낼 때마다 윤길이는 저도 한번 그렇게 멋있게 불어보았으면 해서,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려가지고 후, 후 열심히 숨을 불어내보았으나, 번번이 헛바람만 새 나올 뿐 좀처럼 휘파람 소리는 나와주질 않았다. 그러던 것이 우연히 어떻게 후익 고운 소리가 되어 나왔으니, 정말 대견하고 기분 좋은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심뻬이상은 불쌍하고나’를 휘파람으로 학섭이처럼 멋있게 뽑을 날도 이제 멀지 않았으니 말이다. 학섭 이네 집을 향해 고샅*을 달리면서도 윤길이는 곧장 휙, 획 휘파람을 불어댔다. 아직 처음이어서 곡조 같은 것을 맞추어 불 수는 없었으나 어쨌든 이제 휙 소리만은 곧잘 흘러나왔다. 어쩌다가 소리가 나지 않고 그냥 헛바람만 새 나올 것 같으면 윤길이는 얼른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조심스럽게 후익 소리를 내보곤 다시 달렸다.
학섭이는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론 날씨가 제법 선득해졌는데도 방문을 열어놓고 앉아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몇 달 만에 한 번씩 한 애국반(그때는 반을 이렇게 불렀다)에 비루병 * 하나만큼의 석유가 배급되어 나오더니, 이젠 그것마저 숫제 끊어져버리고 만 것이다. 불 같은 건 아예 켤 생각도 안하던 시절이었다. 불뿐이 아니었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공출량(供出量)이 어찌나 겁나게 때려 매겨지는지, 아무리 풍년이 들어도 헛일이었다. 시래기죽이나마 거르지 않고 끓이게 되면 다행이었다.
“학섭아.”
윤길이의 부르는 소리에 잠시 후,
“응, 밥 묵었나?”
한 것은 학섭이가 아니라, 학섭이 아버지 고생원이었다.
학섭이는 힐끗 한번 이쪽을 돌아보곤 그대로 홀짝홀짝 숟가락질이었다. 별로 씹는 일도 없이 홀짝거리고 있는 것을 보니 오늘 저녁도 죽인 모양이었다. 고생원은 숟가락을 놓고, 그래도 잘 먹었다는 듯이 그르르 크게 트림을 하고는,
“다 묵었다. 들어온나.”
빙긋 웃었다.
고생원은 웃으면 어찌된 셈인지 두 개의 콧구멍 이 벌름벌름 움직였다. 우선 코의 생김새부터가 유별났다. 무엇에 밟히기라도 한 듯 허리는 푹 꺼져 들어가고, 끝만 뭉툭 위로 쳐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끝대가리는 노상 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주독이 올라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좀처럼 술맛을 얻어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지 꼭 고드러진* 대추처럼 되어 있었다. 그 밑에 구멍 두 개가 겁나게 크게 뚫려 있는데, 그것이 웃을 때면 벌름벌름 움직이는 판이니, 보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도리가 없었다. 고생원이 아니라 ‘코생원’ 이라는 것이었다. ‘콧구멍 생원’ 혹은 그냥 ‘구멍 생원’ 이라고도 했다.
학섭이도 숟가락을 놓았다. 숟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학섭이를 향해 윤길이는 후이익 길게 휘파람을 보냈다. 학섭이는 야, 이것 봐라 싶은 듯 힐끗 윤길이를 바라보았다. 윤길이는 우쭐해지며 씩 웃었다. 그러나 학섭이는 그까짓 것 가지고 어디서 감히 까부느냐는 듯이 싹 묵살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사립을 나서자, 학섭이는 앞장을 서며 냅다 ‘심뻬이상은 불쌍하고나’를 여느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불어대기 시작했다. 학섭이의 그 경쾌하고 거침없는 휘파람 소리에 윤길이는 팍 야코가 죽었다. 그러나 그도 이제 가만히 죽고만 있진 않았다. 휙! 휙! 휙! 고저도 장단도 없는 짤막짤막한 휘파람을 곧장 내지르며 뒤따랐다.
두 휘파람 소리는 고샅을 돌아 마을 앞 들녘으로 빠져나갔다.
추수가 끝난 들은 한없이 넓었다. 그 넓은 들 여기저기에 볏가리가 조그만 산봉우리들처럼 마련되어 있었다. 저녁이 되면 마을 아이들은 들로 쏟아져 나왔다. 숨바꼭질도 하고, 진뺏기도 하고, 때로는 센소오곳꼬(전쟁놀이)를 한다고 막대기들을 들고 야, 야 소리를 질러대기도 했다. 여기저기 마련되어 있는 볏가리가 그들의 놀이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그 뒤에 숨기도 했고, 그것을 진지로 삼기도 했고, 때로는 그 한 무더기 한 무더기가 일본·독일·이탈리아 그리고 미국·영국·중국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세계대전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놀이에 열중되면 아이들은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몰랐다. 으레 누군가 마을 어른이 나와서 자기 집 애 이름을 부르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야만 끝이 났다.
이 저녁 들녘의 대장은 학섭이었다. 키가 제일 크기도 했고, 힘이 제일 세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가 숨바꼭질이다 하면 그날 밤의 놀이는 숨바꼭질이었고, 센소오곳꼬다 하면 센소오곳꼬였다. 아무도 감히 다른 것을 하자고 이의를 내세울 수가 없었다.
6학년생이 하나 있었다. 일웅이었다. 눈이 유달리 크고 목이 가늘고 길었다. 그래 그런지 몰라도 한 학년 아래인 학섭이에게 꼼짝 못했다. 매사에 순종할 뿐 아니라 곧잘 비위까지 맞추려 들었다. 찐 고구마 같은 것을 가지고 와서는 슬그머니 손에 쥐여주기도 했다.
편이 갈라지고 놀이가 시작되면 학섭이는 으레 휘파람을 날렸다.
‘심뻬이상은 불쌍하고나’를 마치 놀이가 시작되는 신호인 듯 내뽑았다. 그러면 아이들은 절로 신이 나서 와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홀짝홀짝 뛰기도 했다. 휘파람 소리를 낼 줄 아는 아이는 제각기 덩달아서 휙휙거렸다.
아이들은 거의 모두가 맨발이었다. 맨발로 예사로 벼 밑동을 밟으며 달리는 것이었다. 마을에서뿐 아니었다. 학교에 갈 때도 맨발이었다. 간혹 신었다고 해야 짚신이 아니면 게다짝 나부랭이였다. 운동화나 고무신 같은 것은 약에 쓰려도 구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학교를 통해서 드문드문 몇 켤레씩 배급되어 나오던 검정 운동화도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만 뒤였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일응이만은 발에 운동화를 꿰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하시 모또 농장(橋本農場) 에 서기로 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하시모또 농장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일본 사람의 농장이었다. 농장이라고 하면 흔히 넓은 밭이 있어서 채소나 가꾸고, 과수나 기르고, 닭이나 치는 정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건 그게 아니었다. 철망이 둘러쳐진 넓은 터전에 큼직큼직한 창고가 들어서 있고, 사무실이 있고, 그리고 그 안쪽 깊숙한 곳에 저택이 있었다. 말하자면 농사를 짓는 농장이 아니라, 지은 농사를 거두어 들이는 농장이었다.
저택 뒤는 조그만 동산이었고,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었다. 그 깊숙한 저택에 하시모또라는 일인이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하시모또라는 일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똑똑히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저 막연히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지, 깊숙한 저택에 들어박혀서 일절 바깥엘 나오지 않았다. 간혹 출타를 할 때도 읍에서 일부러 다꾸시(택시)를 불러서 차 안에 엇비슷이 누워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 생김새를 볼 수가 없었다. 농장의 직원들마저 가까이 대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대리인이 모든 일을 관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리인이 하시모또의 사위라는 말도 있었고, 처남이라는 설도 있었다. 이 대리인 역시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하시모또네 가족이 몇 사람인지도 분명치 않았다. 실은 진짜 하시모또는 이 저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 토오꾜오에 살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여기 있는 하시모또는 진짜 하시모또의 동생이라는 것이었다. 알쏭달쏭한 얘기였다. 말하자면 이 농장 주인인 하시모또는 안개에 싸인 것 같은 존재였다.
또 한 가지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족제비였다. 저택 뒤에 있는 대나무 숲은 대낮에도 그 속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우거져 있었다. 그 대나무 숲속에 삼십 년 묵은 족제비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족제비 역시 똑똑히 본 사람은 없었다. 막연한 얘기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째서 때때로 마을의 닭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며, 논밭의 곡식이 흩어지기 일쑤냐는 것이었다. 뱀을 물고 대숲으로 쏜살같이 사라지는, 개만한 족제비를 보았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두 가지 설이 있었다. 족제비굴이 대나무 숲속에 있다는 설과, 그렇지 않고 창고 밑에 있다는 설이었다. 대체로 대나무 숲속에 있다는 설을 사람들은 지지하는 편이었으나, 창고 밑에 있다는 설도 묵살될 아무런 까닭이 없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이렇게들 생각했다.
족제비에 대해서는 어른들보다도 아이들이 더 열심 이었다. 아이들은 족제비굴이 대나무 숲속에 있다는 설을 절대로 좋아했다.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대나무 숲속에 두 눈을 반질거리며 도사리고 있어야 그럴듯하지, 그렇지 않고 삼십 년이나 묵은 족제비가 창고 밑 같은 데 엎드려 있대서야 말씀이 아니었다.
이렇게 하시모또와 족제비에 관해서뿐 아니라, 그 큼직큼직한 창고 속도 마을 사람들은 궁금했다. 그 속에 벼가 들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었다. 그러나 얼마나 되는 벼가 들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창고 하나에 천 가마니는 들어 있을 것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족히 오천 가마니는 들어간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일천 가마니의 절반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허망한 얘기들이었다.
아무튼 이런 거창한 농장에 일웅이의 아버지가 서기로 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이 모두 맨발 아니면 짚신이나 게다짝 같은 것을 끌고 다닐 때 일웅이만은 운동화를 신고 다닐 법도 한 일이었다.
“심뻬이상은 불쌍하고나.” 학섭이의 휘파람 소리가 저녁들에 퍼졌다. 윤길이도 휙! 휙! 휙! 냅다 불어댔다. 윤길이의 휘파람 소리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이도 있었다. 오늘 저녁은 센소오곳꼬였다. 추축국, 연합국 두 편으로 갈라진 아이들은 제각기 막대기를 한 개씩 들고, 와― 기세를 올리며 진을 쳤다. 논바닥의 세계대전이 또 벌어지는 것이었다.
맨 처음 양편에서 졸때기*가 하나씩 나와 막대기를 휘두르며 칼싸움을 시작한다. 지면 전사자가 되어 물러나고, 이기면 다음 사람을 상대한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두 사람, 세 사람씩 한목* 나가 싸우게 되고, 마침내는 무더기로 백병전이 전개된다. 결국 이긴 편도 진 편도 없는 것이다. 서로 만세를 불러대는 것이다. 이런 전쟁을 두어 차례 치르고 나면 모두 지쳐서 나가떨어진다. 더러는 한두 군데 혹이 생겨서 끙끙거리기도 한다.
이런 전쟁을 오늘 저녁도 두 차례 정도 치르고 모두 늘어져 있을 때,
“저 불 봐라!”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모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파아란 불이 옆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면서 옆으로 점점이 흩어진 불이 도로 한데 커다랗게 모여들어 서글서글 타다가, 이번에는 무슨 재주를 부리는 것처럼 위로 쭈욱 뻗어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도깨비불이다!”
학섭이가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깨비불이야.”
“도깨비불 봐라.”
“도깨비불! 도깨비불!”
떠들어 대며 뛰어 일어났다.
달이 있었다. 그러나 달빛 아래서도 그 파아란 불들은 선명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시모또 농장 쪽이었다.
위로 쭈욱 뻗어 올라가던 불이 순식간에 좌르르 무너지며 픽픽 꺼져버리는가 싶더니, 번쩍 다시 한 덩어리로 살아나서 빙글빙글 맴을 도는 것이었다. 잠시 맴을 돌다가는 다시 옆으로 가볍게 흩어지자, 누군가가 그만 킬 웃으며,
“도깨비가 사아카스 (서커스) 한다!”
소리를 질렀다.
아닌 게 아니라 꼭 곡예를 하는 것 같았다.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던 아이들은 그만 긴장이 풀리며 좋아서 웃기도 하고, 된 소리 안 된 소리 지껄여대기도 했다.
“사아카스 참 잘한다, 그지?”
“도깨비니까 잘하지.”
“도깨비 한 마리가 저카나?”
“도깨빈 한 마리가 두 마리도 됐다가 세 마리도 됐다가 그런다, 아나?”
“누가 카더노?”
“울 아부지가 …”
“너거 아부지 도깨비 대장이가? 우얘 아노?”
“뭐, 이 자식!”
“헤헤……”
불은 여전히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두 덩어리로 갈라져서 나불나불 춤을 추었다. 우뚝 서서 바라보고 있던 학섭이가,
“지랄하네 !”
한마디 뱉었다.
그러자 일웅이가 얼른 받았다.
“참말로 지랄한대이. 저놈의 도깨비…….”
윤길이는 일웅이의 맞장구에 킥 웃음이 나왔으나 삼키고, 그 대신 획 휘파람을 날렸다.
잠시 후 학섭이가 아이들을 휘둘러보며,
“어떻노? 저놈의 도깨비, 오늘 밤에 안 잡아뻐릴 래구마!”
했다. 너무나 뜻밖의 말에 아무도 입 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응? 안 잡아뻐릴 래? 그렇게 모두 유우끼 (용기)가 죽었나?”
윤길이는 겁이 안 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가자!”
거머쥔 막대기에 힘을 주었다.
한 사람이 나서자, 너도나도 뒤따랐다.
“가자!”
“가자!”
“도깨비 잡자.”
“잡자!”
“잡자!”
덩달아서 졸때기들이 더 신이 났다.
일웅이도 하는 수 없는 듯 커다란 두 눈을 끔벅거리며,
“그러자.”
했다.
학섭이는 막대기칼을 번쩍 쳐들었다.
“도쯔게끼 (돌격), 도깨비를 향해서 도쯔게끼 .”
그리고 냅다, ‘심뻬이상은 불쌍하고나’ 휘파람을 불어댔다.
와 함성이 저녁들에 울려 퍼졌다. 추축군과 연합군이 그만 한 덩어리가 되어 도깨비를 잡으러 달리는 것이었다. 막대기칼들이 달빛 아래 춤을 추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처럼 선명하게 곡예를 부려 쌓던 불이 어느 결에 말끔히 사라지고, 들에는 달빛만 휑하게 깔려 있었다. 도쯔게끼는 맥이 풀리고 말았다. 도깨비가 겁이 나서 뺑소니를 친 것이라고 모두 좋아서 떠들어대며 걸어서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저기 뭐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모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도깨비다.”
“어메.”
질겁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학섭 이도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하시모또 농장의 창고가 논바닥에 그늘을 던지고 있었다. 그늘 속은 어두웠다. 그런데 그 어두운 그늘 속에서 휘청휘청 걸어 나오는 희끔한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 희끔한 것은 잠시 멈추어 서는 듯하더니, 계속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사람이제?”
“맞다. 사람이다.”
“도깨비도 꼭 사람같이 생겼다 카더라.”
“아이, 무서라!”
비실비실 뒷걸음질을 치는 아이도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윤길이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학섭아, 너거 아부지다!”
“뭐라?”
“보래, 너거 아부지지.”
“……”
“기제?”
“……”
고생원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고생원이 무슨 일로 이 밤중에 하시모또 농장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었는지 이상했다. 그 근처에 논이 있긴 했지만, 추수가 끝난 지금, 더구나 밤중에 무슨 일이 있을 까닭이 없는데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그렇게 도깨비불이 설쳐쌓는 바로 그 근처에서 무서워서 어떻게 서성거리고 있었는지 참 별일이었다.
고생원은 두 손을 뒷짐 지고 빙글빙글 웃으면서 다가왔다. 달빛 아래서도 두 개의 콧구멍이 벌름벌름 선명하게 움직였다.
“아저씨, 거기서 뭐 했어 예?”
윤길이가 물었다.
“응, 그저…….”
“밤에 일했어 예?”
“응.”
“나락도 다 빘는데 무슨 일 합니꾜? 밤에…….”
“그저…….”
고생원은 건성으로 대꾸를 하며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도깨비 못 봤어 예?”
“도깨비?”
“예.”
“우짠 도깨비는…….”
그러자 아이들은 제각기 한마디씩 떠들어 댔다.
“도깨비불이 막 사아카스 하던데예.”
“바로 저기서예.”
“새파란 불이 막 우로 올라갔다 옆으로 흩어졌다 하던데, 못 봤습니꼬?”
고생원은 한쪽 콧구멍을 늘러 찍! 코를 풀었다.
“몰라. 난 못 봤대이.”
“정말이예?”
“정말이다. 그럼 너거들은 도깨빌 봤담서 뭐 하로 여까지 왔노?”
“도깨비 잡을라고예.”
“뭐? 도깨빌 잡아? 헛헛허…….”
고생원은 어이가 없는 듯 껄껄껄 웃었다. 그리고 또 코를 찍 풀어 던지며,
“도깨비가 얼매나 무섭운지 너거들 아나? 너거들 같은 거 백 명이라도 소용없다. 도깨비한테 홀리면 냇물도 행길같이 보인단다. 겁나지?”
하고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목소리를 약간 높여,
“너거들 놀더라도 이런 데까지 오면 안된다. 저 하시모또 농장 근방에는 정 말로 도깨비가 있다 카더라. 저 근방에는 낮에도 가면 안된대이! 알겠제?”
으름장을 놓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낮에도 가면 안된다’는 말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무서운 도깨비를 조심해야 된다는 말로만 알아들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간 아이들은 저마다 도깨비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자연히 고생원 이야기도 나왔다. 어떤 아이는 고생원이 바로 도깨비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해서 어른들을 웃기기도 했다. 일웅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딴 아이들보다 더 나불거렸다. 고생원은 도깨비가 무섭지도 않은지 밤중에 무슨 일로 농장 근처에서 나타나더라는 얘기를 듣자, 일웅이 아버지 최서기는,
“그래? 정말이가?”
웬 일인지 귀가 번쩍하는 모양이었다.
“정말이예.”
“흠…….”
최서기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그리고 무슨 짐작이 가는 일이라도 있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농장 어디쯤이더노?”
하고 남달리 조그마한 코를 일웅이 얼굴 앞으로 바싹 가져가는 것이었다.
까마귀떼가 뜨기 시작했다. 어디서 몰려왔는지, 수없이 많은 까마귀들이 까맣게 하늘에 묻어서 휘, 휘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다가는 우수수 논바닥에 내려앉아 까욱까욱까욱 울어대기도 했다. 밤이면 까마귀들은 하시모또 농장의 뒷동산으로 몰렸다.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날아올랐다. 하얗게 서리가 내린 아침이면 까마귀들은 논바닥에 깔려서 유난히 까욱거렸다. 이 들녘의 추위는 이렇게 까마귀들의 울음소리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런 어느 날, 군(郡)에서 공출 독려반(督勵班)이 나왔다. 하늘이 찌뿌드드하게 흐리고, 으슬으슬 추운 날이었다. 공출 독려가 이것이 처음은 물론 아니었다. 가을 들면서부터 시작해서 벌써 얼마나 그 소리를 들어왔는지 몰랐다. 애국반장의 입을 통해서, 구장의 입을 통해서, 그리고 직접 면서기들한테서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다. 그러나 군에서 독려 반이 나오기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지만, 할당된 책임량을 완수하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인 사정들이었다. 개중에는 공출을 대고도 볏가리가 봄까지 남아 있는 집도 더러 있긴 했으나, 그런 집은 자기 논을 꽤 가진 집이었고, 대개는 그게 아니었다. 대개는 남의 논을 얻어 짓고 있는 형편이었다. 남이란 주로 하시모또였다. 그러니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좇다가는 곱다시* 앉아서 굶는 도리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뜯길 것인가, 어떻게 해서 조금이라도 더 남길 것인가 하는 것이 가을 들면서부터의 대부분 농가의 궁리였다.
상대적으로 공출 독려도 그냥 말로만 끝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군에서 공출 독려반이 나왔다는 것은 마치막 수단이 동원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아무래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그런 면, 그런 부락을 사정없이 마구 덮치는 것이다. 독려란 말뿐,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 셈이었다.
군에서 독려반이 나오면 면직원은 물론 구장·반장까지 동원이 된다. 주재소의 순사까지 나선다.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공출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 터인데 하시모또 농장의 직원들까지 동원되는 것이다.
“군에서 나온다메?”
“벌써 안 나와 있나. 면소에…….”
“일찍도 왔대이, 자식들.”
“쑥대밭을 만들 모양이지.”
“내사 쑥대밭을 만들어도 할 수 없다. 털어봤자 불알밖에 나올 기 없으이.”
“헛헛허, 불알은 남아 있구만.”
“불알은 남아 있지.”
고생원도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히들히들 웃었다. 그러나 고들고들한 대추 같은 코끝은 오늘따라 거무죽죽하기까지 했다.
그날 오후, 윤길이는 하시모또 농장의 뒷동산에서 놀고 있었다. 학섭이, 일웅이도 함께였다. 토요일이어서 학교가 일찍 파했던 것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부터 아이들은 곧잘 하시모또 농장의 뒷동산에서 놀았다. 남향인 데다가 동산 한가운데가 오목하게 파여 .있어서 여간한 날씨에도 별로 추운 줄을 몰랐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무는 한 그루도 없고 잔디만 잘 깔려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거기서 구슬치기, 자치기, 혹은 제기차기 같은 것을 하기도 했고, 비탈을 이용해서 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곳은 아이들의 겨울철 놀이터인 셈이었다.
미끄럼타기는 꽤 위험한 장난이었다. 경사가 급한 데다가 잔디가 돋아나 있다고는 하지만, 미끄럼틀처럼 잘 다듬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칫하면 넘어지거나 앞으로 곤두박질하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무르팍이나 팔꿈치, 혹은 이마빼기 같은 데를 깎이기가 십상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구슬치기, 제기차기 같은 얌전한 놀이에 싫증이 나면 곧잘 미끄럼타기를 감행하는 것이었다. 한 아이가 시작하면 너도나도 뒤따랐다.
학섭이는 송판쪼가리 같은 것을 깔고 앉아서 미끄러져 내렸다. 그것은 무서운 속도였다. 보통 간덩이로는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윤길이는 발바닥과 손바닥으로 조심조심 미끄러져 내리는 축이었다. 일웅이는 그것도 잘 안되고 겁이 나서, 아예 궁둥이를 땅에 편안히 붙이고 앉아서 두 다리를 쭉 뻗은 채 미끄러져 내리는 것이었다. 양복 궁둥이야 어떻게 되든 아랑곳없었다.
오늘도 그렇게 궁둥이를 떡 붙이고 앉아서 줄줄줄 미끄러져 내려가던 일웅이가,
“저기 저 사람들 뭐 하고 있노?”
소리를 질렀다.
“어디?”
“저기.”
“글씨, 뭐 하는고?”
“땅 파는 모양이다. 그제?”
“순사도 있대이.”
“맞다. 순사도 있다.”
하시모또 농장의 철망 바깥쪽이었다. 대여섯 사람이 둘러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누군가가 쭈그리고 앉아서 괭이질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철망 둑 밑을 파고 있는 것이었다. 창고가 있는 근처였다. 얼마 전 고생원이 밤중에 서성거리던 바로 그 자리였다.
윤길이와 일웅이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학섭이를 돌아보았다. 학섭이는 새파랗게 질리고 있었다.
“가보자!”
“그러자!”
윤길이와 일웅이가 냅다 뛰기 시작했으나, 학섭 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떨리는 손으로 곧장 조끼 단추를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쭈그리고 앉아서 괭이질을 하는 것은 고생원이었고, 둘러선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공출 독려반들이었다. 그리고 둑 밑에서 나온 것은 벼 세 가마니였다.
볏가마니가 불거져 나오자 둘러섰던 사람들은,
“야, 땅속에서 쌀이 나오네.”
“그것 참 신기한 노릇인데.”
“기적이지, 기적.”
어쩌고 하며 모두 비뜰어진 웃음을 웃어댔다. 그리고 그 가운데 검정 제복을 입은 순사가, 게또루(각반)에 지까따비 (일종의 농구화)를 신은 다리를 번쩍 들어,
“코노 야로오(이 새끼야) !”
하고 냅다 고생원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고생원은 땅에서 꺼낸 볏가마니 위에 꼬꾸라졌다. 그러자 꼬꾸라진 고생원의 뒷덜미를 가서 불끈 잡아 일으키며,
“이꼬우(가자)!”
순사는 두 눈을 부라렸다.
주재소는 마을 앞 한길 가에 있었다. 벽돌로 나지막한 담을 두르고 있었다.
정문을 들어서면 한쪽에는 국기 게양대가 비뚜름하게 서 있고, 한쪽에는 종대(鐘臺)가 서 있었다. 종대는 전봇대 같은 굵은 통나무 꼭대기에 종을 매달아놓은 것이었다. 제법 동이만한 종이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밑에서 잡아당기면 종이 울리도록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망치로 두들기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별로 요긴한 물건이 아니었다. 마을에 불이 나거나, 아니면 경계경보, 공습경보 때나 두들기게 되는데, 화재가 그렇게 흔히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또 일본 본토는 매일같이 폭탄세례를 받고 있었으나, 이곳에는 경계경보를 내릴 만한 사태도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한번, 경계경보를 거쳐 공습경보까지 일어난 일이 있었다. 그때 이 주재소의 종은 오래간만에 제구실을 하느라고 신나게 울렸었다. B29가 지나갔던 것이다. 맑은 하늘에 하얀 비행운을 그리며 두 대의 B29가 고공을 지나 멀리 자취를 감출 때까지 깡깡깡깡깡깡깡깡깡…… 끝없이 울렸었다. 주재소 순사부장은 그때 종대 밑에 두 다리를 떡 버티고, 주먹을 쥐고 서서 이마에 여덟팔자를 주름잡으며 B29를 노려보고 있었다. 순사부장의 코밑에는 언제나 까만 나비가 한 마리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수염이었다. 수염을 코 바로 밑에만 까맣게 남겨놓고 있는 것이었다. 그 까만 나비 같은 수염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순사부장의 그 나비수염은 화가 나거나 긴장이 되면 곧장 파르르 떨렸다.
오늘도 순사부장의 나비수염은 파르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공출 독려반에 적발되어 끌려오는 자가 한두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코노 야로오모까(이 새끼도 그래)?”
“하이(예).”
고생원이었다. 고생원은 팔을 앞으로 축 늘어뜨리고 겁먹은 소처럼 두 눈을 끔벅거리기만 했다.
순사부장의 시선이 고생원의 얼굴 한가운데 멎었다.
“난다, 코노 하나와(뭐야, 이 코는)?”
“……”
“오모시로이 하나다나(재미있는 코로군) .”
“핫핫하……”
“헛헛허……”
그리고 부장은,
“세끼닌깐노 나이 야로으따찌 (책임감이 없는 새끼들)!”
하고 싹 웃음을 거두더니, 이런 히꼬꾸민(非國民)은 실컷 좀 본때를 보여주어야 된다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고생원은 한쪽 구석으로 콱 처박히고 말았다.
밤이 되어도 고생원은 놓여나오지 않았다. 고생원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그대로 주재소에 발이 묶여 있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주재소의 어두운 담그늘에서 조그만 그림자가 움직였다. 윤길이었다.
윤길이는 담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고추를 끄집어 냈다. 찍 오줌을 갈기는 것이었다. 오줌 줄기는 담벼락을 가서 들이받고 부서져 줄줄줄 흘렀다. 곁에 섰던 일웅이가 킥 웃었다. 그리고 저도 얼른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재빨리 고추를 끄집어 냈다.
두 오줌 줄기가 담벼락을 기분 좋게 갈기고 있었으나, 학섭이는 힐끗 한번 돌아보았을 뿐 웃지도 않고 담에 딱 붙어서서 계속 발돋움을 하고 있었다. 담이 야트막해서 발돋움을 하면 곧장 안이 넘어다보였다. 희미한 남폿불이 켜져 있는 사무실 유리창문을 가만히 바라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이고 아이고, 또 곧 넘어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크 흐흐흐, 오지게 얻어걸린 모양이었다. 윤길이와 일웅이의 오줌 줄기도 뚝 그치고, 세 개의 까만 그림자는 담벼락에 얼어붙은 것 같았다.
아이크, 아이크, 흐흐흐, 신음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일웅이가 학섭 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거 아부지제?”
“……”
학섭이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너거 아부지제. 그제?”
이번에도 못 들은 체했다. 그러자 일웅이는 기어이 학섭이의 옆구리를 집적거리기까지 하며,
“그제, 너 아부지 맞제?”
했다.
순간, 학섭이는 일웅이를 향해 돌아서기가 무섭게 냅다 따귀를 한 대 후려갈겼다. 꼭 발작을 한 것 같았다.
눈에 불이 번쩍하자, 일웅이는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고 비슬거리다가 생각이 난 듯이,
“와 때리노? 와 때려? 앙! 앙!”
악을 썼다.
학섭이는 다짜고짜로 이번에는 일웅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일웅이두 가만히 있진 않았다.
저도 겁없이 학섭이의 멱살을 쥐었다.
놀란 것은 윤길이었다.
“와 이카노. 와 이캐!”
주재소 담 모퉁이에서 난데없는 드잡이가 벌어지는 것이었다.
잠시 후,
“난다, 코노 야로오따찌(뭐야, 이 새끼들)!”
고함소리가 버럭 담을 넘어왔다.
그러나 일웅의 울부짖는 소리는 쉬 누그러질 줄을 몰랐다.
“코노 쿠소메 (이 똥강아지들)!”
저벅저벅 걸어 나오는 기척이 들렸다.
“순사 나온다!”
윤길이가 소리를 지르자, 일웅이도 학섭이도 서로 멱살을 놓기가 바쁘게 어둠 속으로 줄행랑을 쳤다. 윤길이도 뒤따라 마구 뛰었다.
마을 골목으로 깊숙이 들어서자 학섭이는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윤길이도 멈추었다. 그러나 일웅이는 그길로 사뭇 저의 집 쪽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윤길이도 이제 집으루 돌아갈까 하는데, 학섭이는 말없이 달려온 골목 쪽을 바라보고 있더니, 윤길이를 한번 힐끗 돌아보았다. 그리고 달려온 쪽으로 도로 천천히 걸음을 떼어놓는 것이었다. 윤길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하는 수 없는 듯, 저두 뒤 따라 걸음을 떼어놓았다.
고샅을 빠져나가, 주재소의 불빛이 저만큼 가까워지자, 학섭이는 걸음을 멈추었다. 자연히 윤길이도 걸음을 멈추었다. 더 가까이 갈 생각을 않고 학섭이는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언제까지나 주재소의 불빛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윤길이도 학섭 이 곁에 서서 이따금 학섭이 얼굴을 힐끗힐끗 홈쳐보며 언제까지나 말이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학섭이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두 손을 얼른 양쪽 조끼 주머니에 찌르고는 주둥이를 쑥 앞으로 내밀었다. 느닷없이 휘파람을 내뽑는 것이었다.
휘이익, 휘이익.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였다.
윤길이는 처음엔 얼떨떨했으나, 곧 웃음이 나오며, 이거 재미있다 싶었다. 그래서 저도 덩달아 휘익, 휘익 냅다 합세를 했다.
휘이익, 휘이익.
휘익, 휘휘익, 휘휘익.
두 휘파람 소리는 어둠 속으로 주재소를 향해 마구 날았다. 그리고 숨이 차자 휘파람을 멎었다.
잠시 조용히 서 있다가 이번에는 또 학섭이가, ‘심뻬이상은 불쌍하고나’를 불기 시작했다.
심뻬이상은 불쌍하고나, 오늘 밤도 누워 울겠지. 심뻬이상은 불쌍하고나, 오늘 밤도 누워 울겠지. 심뻬이상은 불쌍하고나……
똑같은 곡을 되풀이 불어대는 것이었다. 경쾌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애수 같은 것을 띠고 있는 그 곡이 차츰 이상하게 덜덜덜 떨렸다.
윤길이는 학섭이를 가만히 돌아보았다. 울고 있는 것이었다. 학섭이는 조끼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꼿꼿이 서서 울고 있었다. ‘심뻬이상은 불쌍하고나’를 계속하면서 울고 있었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범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이튿날 고생원은 놓여나왔다. 한쪽 다리를 절름절름 절고 있었다. 그러나 고생원은 주재소에 대해서는 이렇다 한마디 말도 없었다. 하룻밤으로 놓여나온 것을 오히려 다행하게 여기는 그런 눈치였다. 다만 그곳에 볏가마니를 묻는 것을 누가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만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누가 냄새를 맡고 고자짙횰 했을까, 도대체 어떤 놈이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게 없었다.
하시모또 농장의 철망은 제법 두두룩한 둑 위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고생원은 그 둑 밑을 비스듬히 파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감쪽같이 덮어버렸던 것이다. 아무리 샅샅이 뒤진다고 하지만, 설마 거기까지야 눈을 돌리겠느냐, 더구나 하시모또 늉장의 둑인데, 생각했던 것이다.
혹시 아이들이 눈치를 챈 것이나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 밤, 아이들은 현장까지 접근하진 않았고, 그때 구덩이는 다 되어 뻐끔하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으나, 창고 그늘에 묻혀서 보일 까닭이 만무했다. 아이들이 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자, 얼른 삽을 구덩이에 던져놓고 손을 털었으며, 아이들에게 도깨비가 살고 있으니 낮에도 이 근처에 오면 안된다고 다짐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기 위해서 볏가마니를 져다가 묻은 것은 첫닭이 울 무렵이었다. 힘에 겨웠으나, 벼 세 가마니와 구덩이에 깔고 덮을 짚 스무남은 단을 두 지게로 날랐던 것이다.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운 일인데, 어떻게 들통이 나고 말았는지 참 기가 찰 노릇이었다.
고생원은 아랫목에 누워서 이따금 끙끙 앓는 소리를 하며, 천장에 앙상하게 불거져 있는 서까래를 이것저것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언뜻 머리에 와닿는 무엇이 있는지 벌떡 일어나 앉으며,
“옳다! 고놈이다!”
소리를 질렀다.
“고놈 아니고 누가 있겠노. 코놈이 보았을 끼라. 고놈이…….”
이제 알았다는 듯이 싱그레 웃기까지 했다.
족제비라는 것이었다. 족제비가 보았다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곧잘 앞을 내다보는 놈이니, 창고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보았을 게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심술궂게 코 늙은것이 그 자리를 파헤쳤을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족제비굴이 대나무숲 속에 있느냐, 창고 밑에 있느냐 하는 두 가지 설 가운데서 고생원은 이제 단연 창고 밑 설을 지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삼십 년 묵었다는 늙은 족제비를 잡아야지, 잡아서 껍질을 벗겨야지, 마음먹는 것이었다.
몸이 좀 풀린 어느 날 오후, 고생원은 양지바른 뜰에 앉아서 새끼로 막대기를 얽어매어 궤짝 같은 것을 만들고 있었다. 족제비틀인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학섭이가,
“아부지, 뭐 하십니꾜?”
물었다.
“쪽제비 잡을 끼다.”
“예? 이기 쪽제비 잡는 깁니꺼?”
“그래, 쪽제비틀 앙이가.”
학섭이는 족제비틀이라는 게 뭐 이렇게 어설프노 싶었다.
“이거 갖고 우예 잡습니꾜?”
“그것도 모르나?”
“바보야, 여기다 쥐나 참새나 멩태 대가리 같은 걸 끼놓는 기라. 그럼 쪽제비란 놈이 와서 차갈라 칼 끼 앙이가. 이걸 건드리기만 하면 이기 탁 닫기는 기라. 그러면 지가 어디로 가겠노.”
고생원은 기분이 좋은 듯 슬그머니 코를 들어 멀리 찍 풀었다.
윤길이가 집에 책보를 갖다놓고, 제법, ‘심뻬이상은 불쌍하고나’를 불며 사립으로 들어섰다. 이제 윤길이도 곧잘 휘파람으로 곡조를 맞추는 것이었다.
“이기 뭐고?”
윤길이는 두 눈을 반짝거리며, 완성되어가고 있는 족제비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쪽제비틀 앙이가. 첨 봤제?”
학섭이가 이번에는 우쭐했다.
“쪽제비 틀?”
“그래, 쪽제비 잡는 거 앙이가.”
“이 안에 쪽제비가 들어오는강?”
“그래, 여기다 묵을 걸 끼놓으면 와서 탁 잡아땡긴다 말이다. 그럼 이 문이 탁 닫긴다, 아나?”
“정말이가?”
“그래.”
“아저씨, 정말인교?”
“정말이다. 고놈의 삼십 년 묵은 쪽제빌 잡아서 껍띠길 홀랑 빗길 끼다.”
그러자 윤길이는,
“야, 신난다!”
소리를 질렀다.
학섭이도 좋아서 킬킬킬 웃었다. 고생원도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족제비는 잡히지 않았다. 볏가마니를 묻었던 바로 그 둑 위 철망 가에 족제비틀을 놓고, 아침저녁으로 나가보았으나 족제비는 걸려 있지 않았다. 미끼를 갈아보기도 했으나 헛일 이었다.
아침저녁으로 고생원을 따라 열심히 족제비틀을 찾아가곤 하던 학섭이와 윤길이는 차츰 흥미를 잃고 말았다. 뭐 이렇노 싶었다. 학섭이가 먼저 떨어져나갔다. 윤길이는 족제비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혹시나 하고 따라나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번 거르고 두 번 거르더니, 결국 윤길이도 맥이 풀어져버렸다.
나중에는 고생원도 식전으로 한 번만 나가보는 것이었다. 간밤의 꿈을 되새겨보기도 하면서, 혹시 오늘은, 혹시 오늘은 했으나, 끝내 족제비는 걸려주질 않았다.
“헤, 그것참, 고놈을 잡아서 껍띠길 빗기면 돈도 몇 푼 생기는 긴데…… 헤 참.”
고생원은 싸늘한 새벽 바람 속에 쿨룩쿨룩 기침을 하기도 했다.
늦은 기러기떼가 끼르륵끼르륵 날아들면서 첫 눈이 내렸다. 그해는 눈이 많은 해였다. 첫눈이 벌써 함박눈이었다. 온 들녘은 하얗게 덮여버리고 말았다. 족제비틀도 눈에 소복이 묻히고 말았다.
이듬해 여름, 더위도 고비를 치닫고 있을 무렵, 아이들의 휘파람 곡조는 바뀌었다. 이제 ‘심뻬이상은 불쌍하고나, 오늘 밤도 누워 울겠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옛날의 딴 세상 노래가 되고 말았다. 듣기만 해도 신기하고 신나는 노래가 어디선지 자꾸자꾸 밀어닥치고 있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가 울려오고, 백두산 벋어내려…… 가 울려오고, 어둡고 괴로워라……가, 아리랑 아리랑…… 이, 도라지 도라지……가, 또 무엇이, 무엇이…… 끝없이 밀어닥치는 파도 같은 음률 속에서 아이들은 제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노래로 부르고, 휘파람으로 부르고, 또 몸으로 우쭐우쭐 박자를 맞추기도 했다.
아이들뿐이 아니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쏟아져 나왔는지, 집집마다 술이 철철철 넘쳤다. 먹는 사람도 못 먹는 사람도 모두 벌겋게 취해서 너울거렸다. 꽹과리가 나오고, 징이 나오고, 버꾸*가 나오고, 장구가 나오고, 유기 공출도 심 했는데, 어디서 나왔는지 깨갱깨갱 징징 깨갱깨갱 둥더꿍…… 밤도 없고 낮도 없이 뚱땅거렸다.
고드러진 대추처럼 오그라들던 고생원의 코가 피둥피둥 살아난 것은 물론이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실컷 주기(酒氣)가 배어들고 보니, 그것은 마치 잘 익은 자두처럼 보였다. 그 피둥피둥 살아난 코를 흔들고 콧구멍 을 벌름거리며 고생원은 누구 못지않게 들떠서 우쭐거렸다. 꽹과리도 남 못지않게 많이 쳤고, 소리도 남 못지않게 높이 질렀다. 어깨춤도 누구 못지않게 구성지게 추었다.
이렇게 온 마을, 온 고을이 들떠서 풍성풍성 돌아가고 있는데, 일웅이 아버지 최서기는 처음엔 어디로 피신이라도 했는지 도무지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는 어디서 슬금슬금 나타나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뚱땅거리는 자리에 조심조심 얼굴을 내밀었다. 나타난 최서기를 보고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굳이 시비를 걸려고 드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줄을 알자, 최서기는 그 뒤부턴 곧잘 나타나서 한몫 휩쓸리려고 애를 쓰는 것이었다.
그런 어느 날, 마을에 큰 구경거리가 생겼다. 하시모또가 일본호로 돌아가기 위해서 오늘 떠난다는 것이었다. 하시모또뿐 아니라, 이 근방에 사는 일인들은 모두 오늘 한데 모여서 떠난다는 것이다.
일인들이 간다. 특히 하시모또가 간다, 이 넓은 들녘을 거의 다 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던 하시모또가 떠난다는 것은 정말 감격적인 일이었다. 비로소 해방을 실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런 감격보다도 우선 하시모또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가, 구경 좀 하는데 더 흥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늙은 영감이며, 어떻게 생긴 얼굴일까? 지금까지의 궁금증을 좀 풀어보자는 듯이 마을 사람들은 희희낙락 떼를 지어서 하시모또 농장 쪽으로 몰려가기도 했다.
물론 고생원도 나섰고, 윤길이, 학섭이, 일웅이도 앞장을 섰다. 고생원은 벌써 몇 잔 좋게 들이켠 듯 얼굴이 불그레 물들어 있었다.
농장 정문 앞에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여서 안을 기웃거리며 수군거리고 있을 뿐, 아무도 안으로 들어가볼 생각은 않고 있었다. 고생원은 두 손을 뒷짐 진 채,
“좀 들어 가보자구마.”
하고 어정어정 정문 안으로 걸음을 들여놓았다.
고생원이 어정어정 걸어 들어가자, 킥킥 웃으며 아이들이 얼른 뒤를 따랐고, 이어서 어른들도 슬금슬금 몰려들어갔다.
농장 사무실을 지나 그 안쪽 저택이 있는 근처까지 접근했을 때, 저택 문 안에서 총을 멘 병정이 한 사람 내다보았다. 물론 일본 병정이었다. 계급장 같은 것은 다 떼어버리고, 그저 군복에 총만 메고 있었다. 오늘 혹시 무슨 변이나 일어날까 해서 음에서 나온 병정인 모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주춤하고 두어 걸음씩 물러서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 변도 일어나지는 않았다.
하시모또가 모습을 나타낸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총을 멘 병정 두 사람이 앞뒤로 호위를 한 가운데 하시모또는 가족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왔다. 유까따*에 게다를 신고, 어린애 걸음마처럼 자박자박 걷고 있었다. 키도 여느 사람의 어깨까지밖에 안 왔다. 훅 불면 넘어질 것 같은 늙은이였다. 얼른 보니 꼭 주먹만한 얼굴에 두 눈썹은 붓으로 답삭 먹을 묻혀놓은 듯 새까맸다. 턱수염은 밀어버렸는지, 처음부터 돋아나지 않았는지 맨송맨송했고, 입술 위에만 하얀 수염이 양쪽으로 가느다랗게 흐르고 있었다.
이 넓은 들녘을 온통 다 차지하다시피 한 사람이면 신수도 그만큼 훤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풍신이라는 것이 꼭 이 모양이니, 마을 사람들은 무엇에 속은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모두 기침소리 하나 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웃음소리가 터졌다.
“왓핫핫핫하……”
고생원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우스운지, 커다란 콧구멍을 사정 없이 벌름거 리며,
“우앗핫핫하……”
벌겋게 핏대가 돋아나도록 웃어젖히는 것이었다.
난데없는 유난한 웃음소리에 모두 어리둥절했다. 고생원은 웃음을 뚝 그치더니 이번에는,
“쪽제비다! 쪽제비!”
냅다 고함을 질렀다.
“우짜먼 저렇게도 꼭 쪽제비 같노! 우짜먼…… 왓핫핫하…….”
그러자 모두 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은 좋아서 못 견디었다. 윤길이와 학섭이는 휙휙, 휙휙 휘파람을 불어대기도 했다.
“삼십 년 묵은 쪽제비가 아니라, 백 년 묵은 쪽제비제.”
“대밭 속이 아니었네그려.”
“창고 밑도 아니었구마는.”
“글씨 말이지, 핫핫핫·…‥”
“헛헛헛……”
웃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두 병정이 잠시 긴장한 빛을 띠었으나, 별일은 없었다. 하시모또는 가족들에게 부축을 받으면서 자박자박 걸음을 옮기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주재소 앞 한길에 도락꾸(트럭)가 한 대 와 있었다. 이 근방의 일인들을 실어가기 위해서 읍에서 나온 군용 도락꾸였다. 울긋불긋한 봇짐 나부랭이와 함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도락꾸 위에 오르고 있었다. 교장네 가족도 오르고 있었고, 선생네도 오르고 있었고, 우편국장네도, 눈깔사탕을 팔던 잡화상네도 오르고 있었다. 주재소 순사부장네 가족도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코밑에 까만 나비 같은 수염을 달고 있던 순사부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일본이 항복을 하자.
재빨리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모두 도락꾸 위에 올랐으나, 하시모또만은 운전대 안에 실렸다.
부르릉 부르릉…… 도락꾸가 발동을 걸자,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길을 비켰다. 도락꾸는 구경꾼들 사이를 서서히 빠져나가 차츰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도락꾸를 쫓아 마구 달리기도 했다. 도락꾸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고 있을 때, 별안간 주재소의 종이 울렸다.
깡깡깡 깡깡깡 깡깡깡……
고생원이었다. 고생 원이 종대에 올라가서 망치로 종을 두들겨대는 것이었다. 온통 자기 세상인 듯이 벌쭉벌쭉 웃으며, 우쭐우쭐 어깨춤까지 추기 시작했다. 벌겋게 술이 오른 얼굴 한가운데서, 잘 익은 자두 같은 코가 벌름벌름 벌름거렸고, 삼베 중의* 속에서 배꼽도 불거져 나와 꿈틀거렸다.
“핫핫하…… 저 코생원 좀 보소.”
“과연 콧구멍 생원이 다르구마는.”
“저 배꾸무 좀 보라니까.”
“핫핫하……”
“핫핫허……”
모두 기분 좋게 웃었다.
사람들 속에 섞여 서서 최서기도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고생원을 쳐다보며, 헤헤헤…… 노오랗게 웃고 있었다. 남달리 조그마한 코가 오늘따라 더욱 잔망스러워 * 보였다.
어른들보다도 아이들이 더 좋아서 날뛰었다. 어떤 아이는 그만 만세를 불러대기도 했다.
윤길이는 실컷 웃고 나서 학섭이에게,
“너거 아부지 최고다! 최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학섭이는 화를 내지 않았다. 멋쩍은 듯,
“술이 취해서 안 그러나. 아부지도 주책이지.”
하고는 저도 그만 씩 웃었다.
윤길이는 더욱 기분이 나서 냅다 휘파람을 불어대기 시작했다. 새로 쏟아져 나온 노래를 닥치는 대로 마구 불렀다. 학섭이도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윤길이의 휘파람도 학섭 이 못지않게 가볍고 부드러웠다.
깡깡깡 깡깡깡 깡깡깡…… 종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고, 신작로 멀리 뽀얀 먼지와 함께 도락꾸는 사라져가고 있었다.
『월간문학』 15호(1970, 1); 『한국소설문학대계』 37권 (동아출판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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