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설악 뺨치는 국내 최고의 계곡 산행지
동굴의 매력에 흠뻑 빠진 후 발길을 돌려 경북 울진군과의 경계지점으로 향하면 응봉산(鷹峰山)을 만나게 된다. 울진 방면에서 보면 산세가 비상하는 매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예부터 응봉으로 불렸다. 지역민들은 ‘매봉’이라 부른다. 해발 999m의 이 산은 주로 전문 산악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빼곡히 들어찬 원시림과 험준한 협곡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 백암산·통고산·함백산·태백산 삿갓봉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동해 바다를 향해 골골이 뻗어있는 계곡의 풍광은 단연 압권이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덕풍계곡. 강원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에 위치한 덕풍계곡은 ‘용소골’ ‘문지골’ ‘굉이골’ 등 크고 작은 물줄기를 품에 안고 있다. 응봉산을 오르는 길목인 ‘용소골’에서 만난 등산객들은 이곳이 내설악 백담·수렴·구곡담 계곡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자랑한다.
신라 진덕여왕때 의상대사가 날린 ‘나무 비둘기’가 덕풍계곡 용소에 떨어지면서 비경이 만들어 졌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에 나온 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원시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골 깊고 물 맑은 산기슭을 걷다보면 일상에 찌든 마음속 응어리도 자연스레 풀린다. 수려한 계곡의 명경지수(明鏡止水)를 응시하며 산천어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플라이 낚시꾼의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제왕운기 잉태한 천은사, 조선왕조 창업의 산실 준경묘·영경묘
미로면을 찾으면 역사의 향취에 매료된다. 미로면 내미로리 785번지에 위치한 천년고찰 천은사. 고려 충렬왕때 이승휴 선생이 한민족 역사 대서사시인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신라 흥덕왕 4년(829년)에 범일국사가 극락보전을 건립해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모든 건물이 불에 타 1972년 중창됐다. 향토사학자들은 “벚꽃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있는 사찰입구의 자갈 오솔길을 따라 유유자적 걷다 보면 권부세력을 비판했다가 정계에서 쫓겨나 은둔하던 이승휴 선생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사찰 뒤 등산로를 따라 쉰움산을 오르는 등반객들도 많다.
천은사 인근인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와 하사전리에는 강원도기념물 43호인 준경묘(濬慶墓)와 영경묘 (永慶墓)가 있다. 준경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부인 양무장군(陽茂將軍)의 묘이고, 영경묘는 양무장군의 부인 이씨의 묘이다. 이곳에선 매년 4월20일 전주이씨 문중의 주관으로 제례가 올려진다.
덕항산과 두타산 사이에 있는 준경묘 일대에는 금강송 군락지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지난 2005년 시민단체들이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이곳을 선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울창한 이곳 금강송은 경복궁 중수 때 자재로 쓰이기도 했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숨막히는 절경
동해안의 비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삼척 해안도로를 달려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백사장을 감싸 안 듯 밀려오는 파도와 해안가 절벽이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고, 먼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어선들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여름철 피서객들은 근덕면 초곡항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한 후 마라톤 영웅 황영조 선수의 생가와 바닷가 언덕에 자리한 기념관을 자주 찾곤 한다.
울진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향하다 보면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 잠시 들리면 새벽·저녁 시간대 사진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는 가곡천 하류의 속섬을 볼수 있다.
인근 신남마을에 위치한 해신당 공원도 이채롭다. 신남마을은 동해안 유일의 남근숭배민속(男根崇拜民俗)이 전해지는 곳이다. 해신당 공원에는 눈길이 닿는 곳마다 남근조각이 서 있다. 남근 조각이 줄지어 서게 된 것은 애바위전설 때문이다. 그 옛날 결혼을 약속한 신남마을 처녀가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에서 해초를 채취하던 중 거센 파도에 휘말려 바다에 빠져 죽은 후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이후 한 어부가 바다를 향해 오줌을 싼 후 고기가 많이 잡혔다는 얘기다. 이 마을에선 이때부터 정월대보름이면 나무로 실물모양의 남근을 깎아 처녀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해신당 공원에서 10여분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장호항을 찾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곳은 아름다운 항구와 해안가 기암절벽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국의 나폴리’로 불린다. 특히 장호항은 문어·임연수어·방어·청어·곰치·개복치·학꽁치·해뜨기 등 다양한 어종의 활어 집산지여서 누구나 횟감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장호마을에는 매년 12만여명의 체험 관광객들이 찾아 주변 풍광을 감상한 후 고동잡이, 투명카누, 바다래프팅, 스노클링, 스쿠버 다이빙 등을 즐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