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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박물관
바닷속에서 올려다본 미역 양식장의 모습이다. 햇빛의 들고 남에 따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다양한 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
- 바다 위 펼쳐놓은 밧줄서 미역종묘 60일만에 60㎝로 쑥쑥
- 깨끗한 수질·적정한 수온, 조류 상하운동으로 영양염류 풍부
- 찰지고 담백한 특징 만들어줘
- 지난해 수온 상승으로 대량 폐사…원인 밝혀내야 하는 과제 남아
3월 중순. 기장군 대변 앞바다에서는 막바지 미역 수확이 한창이다. 수온이 올라가는 4월 이후부터는 미역이 성장을 멈추기에 어민들은 겨울동안 자란 미역을 수확하고 마지막 종묘를 붙이느라 새벽부터 밤까지 바다에 머문다. 어민들의 노력, 행정기관의 지원, 시민들의 관심이 모아져 이제 기장 미역은 부산을 대표하는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 명품 기장미역의 탄생
수확해온 미역은 아낙의 손에 의해 장만되어 건조대로 이동한다. |
기장군 대변항에 도착한 것은 새벽별을 품은 여명이 바다를 설레게 하는 오전 6시께였다. 한 배 가득 싣고 온 미역을 부려놓고 다시 양식장으로 뱃머리를 돌리는 어민들의 바지런함은 고요하리라 생각했던 새벽 바다를 힘찬 활력으로 꿈틀거리게 했다. 항구에서 10여분 떨어진 바다. 양식장이라 해서 특별한 시설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다에 2~3m 간격으로 펼쳐놓은 밧줄과 밧줄이 가라앉지 않게 중간 중간에 묶어둔 부력기가 전부였다. 밧줄에 붙여둔 미역 종묘들은 60여일 지나면 60㎝ 정도 크기로 성장한다. 이 정도면 물미역으로 시장에 내 놓을만 하다. 좀 더 기다려 90일이 되면 1m 이상으로 자라 건미역의 재료가 된다. 미역 양식장 일이란 게 물고기를 키우는 양식장처럼 일일이 먹이를 줄 필요가 없어 한결 수월해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온도에 민감하고 바다 환경에 따라 폐사하는 경우가 많아 조류의 들고남에 따라 미역을 매달아 놓은 밧줄 높이를 조절해야 하니 신경 쓰이긴 매 한가지다.
바닷 속으로 들어가자 밧줄에 뿌리를 붙인 미역들이 물구나무를 선 듯 아래로 쭉쭉 뻗어있다. 순간 기장 바다의 강한 조류가 몸을 휘감아 온다. 미역에 몸이 얽히지 않게 수심 3m 정도로 내려간 후 조류에 몸을 맡기니 무빙 워크를 탄 듯 움직임이 자유롭다. 조류에 흘러가며 올려다보는 양식장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색의 향연을 펼쳐보였다. 햇살의 들고 남에 따라 미역은 노랑에서 갈색으로 다시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빽빽한 미역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아름답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부유물로 오염된 바다는 햇살을 품을 수 없기에 물속에서 햇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물이 깨끗하다는 방증이다.
어민들이 수확에 앞서 미역의 성장 정도를 확인하고 있다. |
햇빛은 바다 생명체의 에너지원이다.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는 해조류들이 만들어내는 산소와 탄수화물은 플랑크톤에서 작은 물고기 그리고 큰 물고기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의 근간이 된다. 이러다 보니 햇빛이 투과되지 못하는 오염된 바다는 해조류가 살지 못해 죽음의 바다로 전락한다. 기장 바다는 햇살을 품을 수 있는 맑고 깨끗함에다 지리적으로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지점으로 적절한 수온을 유지한다. 여기에다 조류의 상하 운동으로 영양염류의 순환이 더해져 기장 미역을 명품으로 만드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미역은 형태적인 특징으로 기장군 연근해에서 생산되는 '북방산'과 전라남도 완도 등 남해 연근해에서 생산되는 '남방산' 이 있다. 조리할 때 북방산 미역은 남방산에 비해 찰지고 담백하여 소비자들이 선호한다. 기장 미역은 국을 끓여도 잘 풀어지지 않고 찰진 맛이 유지된다 하여 '쫄쫄이 미역'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 너무나 친숙한 미역
수확해온 미역을 건조대에서 말리고 있다. 이렇게 3일 정도 자연상태에서 말린 후 건조기를 통해 남아 있는 수분을 빼고나면 건미역이 탄생한다. |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미역만큼 친숙한 해산물도 드물다. 특히 출산이나 생일상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이 바로 미역일 거다. 객지에서 생일조차 잊고 지내던 시절 누군가의 정성으로 장만된 미역국을 보면서 가슴 뭉클했던 추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미역에 남다른 감회가 있게 마련이다.
예로부터 산모는 미역국을 먹어왔다. 산모는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갑상선 호르몬의 상당량을 태아에게 주기 때문에 몸이 붓게 된다. 붓기를 막기 위해서는 갑상선 호르몬에 속하는 방향족 아미노산인 티록신이 필요한데, 티록신은 요오드가 있어야만 생성된다. 미역은 요오드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몸속의 굳은 혈액을 풀어주고 몸이 붓는 것을 방지해준다. 그런데 이러한 성분 분석은 현대 과학을 통해 규명된 것일 뿐, 산모에게 미역을 먹인 역사는 상당히 오래전부터의 일이었으니 선조들의 혜안에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또 요오드는 2011년 3월11일 있었던 일본 후쿠시마 원자로 폭발 사고로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유출된 방사성 물질에는 방사성 요오드도 포함되는데 인체의 갑상선은 자연산 요오드 뿐 아니라 방사성 요오드까지 가리지 않고 흡수한다. 방사성 요오드가 흡수될 경우 방사능을 지속적으로 내뿜어 세포를 파괴한다. 방사성 요오드의 흡수를 막는 방법은 방사능을 띠지 않은 일반 요오드를 미리 섭취하는 것뿐이다. 갑상선이 요오드를 충분히 흡수하고 나면 방사성 요오드가 인체에 들어오더라도 몸 밖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분한 양의 요오드를 미리 먹어두자는 것이 요오드를 많이 함유하고 있는 미역 등 해조류에 쏠린 관심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해가 된다. 요오드를 과잉섭취해도 갑상선 호르몬 합성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요오드 하루 섭취 권장량 0.15㎎ / 하루 섭취 상한량 3㎎ / 건미역 1g 당 요오드 함량 0.11㎎) 이외에도 미역에는 비타민과 알긴산, 식물성 섬유질이 많이 들어 있어 피부를 곱게 하며 대장 운동을 도와 변비를 개선해준다. 최근에는 성인병의 원인이 되는 콜레스테롤의 증가를 막아 동맥 경화증을 예방해주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웰빙 식품으로까지 각광 받고 있다.
■ 폐사 원인규명이 필요해
한 어민이 양식장 밧줄에 이식할 미역 종묘를 다듬고 있다. |
기장 연근해 미역 생산량은 미역·다시마 특구로 지정된 2007년 4월 이후 꾸준하게 증가해 2010~2011년에는 2만7000t 톤을 생산해 184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그런데 올해는 기장미역 생산량에 비상이 걸렸다. 2011년 10월 말부터 11월까지 양식장에 이식한 미역 종묘의 절반 정도가 폐사했기 때문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은 미역 종묘의 폐사 원인을 '수온'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온이 예년 보다 2도가량 높아 종묘가 대량 폐사했다는 이야기인데 왜 수온이 올라갔는지에 대해서는 쿠로시오 해류(용존 산소량이 적은 난류)의 일시적 확장, 이상 조류의 발생 등의 추정만 있을 뿐 명확한 규명은 되지 않고 있다.
대변 해조류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태(57세) 씨는 20년 동안 미역양식을 했지만 올해 같은 경우는 없었다며 자신의 수첩에 기록된 조업일지를 보여주었다. 일지에는 미역의 생육상태와 바람방향, 조석 시간 등이 꼼꼼히 적혀있는데 주목할 점은 10월말부터 11월 중순까지 무려 19일 동안이나 북동풍이 불었다는 기록이다.
박수현 기자 |
그럼 북동풍과 수온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김 회장은 대변항 북동쪽에 있는 고리원자력 발전소를 지목한다.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하루 2200만㎥의 온배수(배출시 주변 해수의 수온보다 7℃ 정도 높다)가 섞인 바닷물이 바람에 떠밀려와 양식장 주변의 수온을 올려놓았다는 이야기이다. 미역 양식은 분양받은 종묘를 양식장 밧줄에 붙인 후 열흘 정도가 가장 중요한 시기임을 감안하면 10월말부터 11월 중순까지 불었던 북동풍과 수온 상승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장을 지키는 어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명확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기장 연안이 미역·다시마 특구로써의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기획 : 국제신문, 국토해양부 영남씨그랜트, 국립 한국해양대학교
대변항 곳곳에 마련된 건조대에서 미역들이 말려지고 있다. |
양식장 밧줄에 이식될 미역 종묘들이다. 이식 작업은 종묘가 붙은 실을 양식장 밧줄에 감아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
이른 새벽 바다로 나간 어민들이 배에 불을 밝힌 채 미역을 수확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