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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바람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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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전민 시집 / 시문학시인선 594 / 시문학사(2019.09.20) /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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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일기;2
바람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여름밤 하늘의 별처럼
6.25사변 통에
아들 잃고 딸마저 빼앗겨
화병이 나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되어
한곳에 머물러
자리잡지 못한다
바람은 정이 많아
더웁혀진 가슴 속에
깃발로 펄럭이다가
고향의 짙은 냄새며
날아간 그리움의 날갯짓을
쫓아 나서보기고 하고
바람은 첫정을 심어 놓고
자취를 숨기어 버린
그녀의 현주소를 찾아
함석 대문도 흔들고
유리창문도 두드려 본다
사랑의 언어
철철 끓는 쇳물도
빨갛게 달아오른 인고의 터널을 지나야
무서운 힘, 강철로 굳어지고
혼 깊은 불씨 한 덩이
춥고 어두움 속에 남모르게 싹터
불붙은 가슴 아침해로 떠오르나
민화 한 폭
보름 달빛 곱게
색동옷 받쳐 입고
세월 나들이 나선
백두대간 암호랑이는
계룡 장터 구경나온
숫총각 하나 낚아
등 위에 들러 업고
가을 하늘 아래 첫 동네
처녀 하나 어금니로 찍어
새벽달 목 넘어갈 때까지
추억 속 대바구니에
과거의 다슬기 줍기
수박밭 며느리
봄나비, 가을 고추잠자리로
꽃과 나무, 창공이건 바위거나
싫도록 앉았다 마음껏 날고파서
말라비틀어져가는 세월
역류하는 물줄기 되돌려 놓고
동굴 빠져 불빛따라 왔어요
토끼 같은 자식, 능구렁이 남편
여우 같은 시어머니, 호랑이 시아버지
헌신발짝 엎어놓듯 해놓고
보름달 바라보며 헛간 기둥 부여잡고
삼백예순 닷새 그 어느 하루인들
뼛속 깊이 찾아드는 전율, 그 추위
그 누구 하나 알아주면 덮어줄까
2.5톤 트럭에 내 인생 모두 싣고
망 뚫고 나온 까투리처럼
들판 지나 숲, 비탈진 언덕에
장승처럼 서 있어요
산 아래 저쪽에 불빛이 보여요
내 아직은 잘 몰라요
한 세상 손뼉 치며 살아가는 법
민들레꽃은 밤에 활짝 피고
설익은 수박도 달빛 받아
분홍빛 속살 더욱 돋아나고
한낮 땡볕 받아 세상 사는 맛
찾아내는 것이 삶이 아니겠어요
삶의 답은 모범 답이 따로 없고
오답이 더 정확할 때도 있거든요
겨울밤에
까맣게 타들어가는 의식
체온이 끊겼다
밤마다
하루살이 떼 엥엥거리는 달빛
조금씩 되살아나는 불꽃
아래로 그 아래로 더 아래로
밟아도 뭉개도
꺼지지 않는 단단한 곳
텅 빈 공동(空洞)에다
잊혀진 그림을 그리자
날아간 목소리를 찾아
물레방앗간 빈 피댓줄
저녁마다 돌아가는 소리
빗속의 연가․1
바이칼호수일까
갠지스강 상류이거나
세느강 혹은 나일강일지도
아니면 아주 가까운 곳인
대청호수이거나 금강일 수도
모태는 강과 호수의 심원
그리던 하늘로 비상하다
산등성이와 나무가 가로막고
골바람의 등쌀에 못 이겨
산줄기와 해안선을 따라서
지상으로 낙하하는 천사의
고향은 마음속의 수중궁궐
왕소나무 고집
모진 돌 깎여 조약돌
조약돌 달아 모래알
세찬 강줄기 품에 안고
돌고 돌아온 세월
류성룡 선생이
강가, 솔숲 자리 펴고 앉아
찾아준 나그네
술 한 잔 가득 따라주시며
귓속말로 넌지시
세상사 고되고 힘든 일
볼 것 못 볼 것
들을 것 못 들을 것
눈 씻고 귀 닦자
타이르실 때
강 저쪽에서 몰고 오는
저 솔바람 소리
오랑캐의 말발굽 소리
세상 온갖 시끄러운 소리
나무처럼
조상과 부모가 존재한 후
내가 있어 가족을 이루고
한 시대를 살아갈 수 있듯
뿌리가 없는 나무는 없고
줄기와 가지 잎이 있어야
꽃이 피고 열매도 열린다
하루 아침에 자라지도 않고
꽃과 열매도 때를 기다려
피워주며 무게 잡지 않는 신사
인간들은 배우며 살아야지
반칙 없이 때를 기다려 피며
가시를 향기로 베푸는 장미처럼
겨울 산정에서
하루는
빛처럼 다시 사라져도
조그마한 역사 한 줌
건져놓지 못한 고요의 숲
밤바람 소리마저 떠나버린
침묵의 강
막연한 기다림 속에
상현 달빛이 고마웠다
함박눈 마음밭에 내려
살 속 파고드는 촉감이 좋았다
달빛 받아 곱게 핀 눈꽃
알가지로 남아 더욱더 좋은
겨울나무 속가지
길을 걸어가다가
나 안의 나를 찾아
삶의 길을 걸어가다가
험한 빙벽이라도 만나거든
고통도 즐기면서 헤쳐가야지
협곡이 기다리면 거스르지 말고
물길 따라 묻어 흘러가야지
혹간 울창한 숲속의 나무나
향기 없는 꽃이 유혹한다 해도
마음 두지 말고 지나쳐야지
꽃보다 못한 내가 아닐진대
죽은 나무 그늘 밑에서는
잠시라도 서 있지 말아야지
길을 걸어가다가
세월산책․1
바로 몇 해 전으로만
오던 발길 되돌아가 봐도
나의 친구들은 울고 있었다
울타리 밖, 남의 슬픔을
대신 아파하고 있었다
달러 캐러 사막에 들어간
미장이 박 씨 아저씨가
미사일의 표적이 되고
봉제공 영자 아가씨는
구식 재봉틀 밑에서
젊음의 꽃이 숯검정으로 변했어도
책가방 내동댕이치고
거리에 뛰쳐나온 대학생과
고구려의 방패를 들고
날아오는 현대읭 바람을 막고 있는
오늘의 거리는 식탁 위의 고정메뉴
감동
그대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입으로 전하는 말보다
더 확신이 가는 믿음은
눈으로 쏘아주는 눈길이고
귀로 정확하게 듣는 것보다
더 확실한 진심의 울림은
마음으로 읽는 감동이지
독도
막내는 밤새껏 추워서 떨었다
망망대해 파도치는 곳에서
엄마 품이 그리워서
형제자매들이 보고파서
밤새워 뒤척이던 악몽을 토하며
괭이갈매기와 함께 울었다
어제도 오늘도 흐느껴 울었다
동해의 아침의에
해가 떠오르며 파도도 가라앉고
지나온 과거의 아픔을
현재에 의젓하게 삭이며
이제부터는 응석만 부리지 말고
투정만 부리지 말고
영원한 미래 조국의 영토임을
시침은 되돌릴 수 있어도
가을바람에 나르는
노오란 은행잎새에도
눈자죽엔 까닭 없는 이슬이
마음 밭 뜨락의
붉은 석류 알알 내비치듯
풍선 터트릴 줄 알고 있는
마음은 눈 내리는 들판
아마, 계절의 탓만도
바람이 불고 있음만도
결코 아닌가봐
시침은 되돌릴 수 있어도
세월은 바꿔놓을 수 없어
하늘을 접어 펼쳐 넣을
여름 실밥 탁 터져
망각(忘却)의 낚시에 걸려나온
푸른 하늘, 오색 무지개
안경을 벗어버린 눈으로
훔쳐보면 볼수록
머리 위는 깊은 바다
거꾸로 헤엄쳐 나르는 하루
파도에 깃을 터는 작은 새와
구름 타고 노는 물고기들이
계절의 앞뒷문 다투며
시간급 챙겨 여왕과 함께 사라지자
머슴 김씨의 등 땀내음도
시류가 쳐놓은 안개 그물에 걸리어
푸르름 밖으로 내쫓기었다
도회는 깨어져버린 항아리
담겨 있던 보석과 꿈이
보도블록 위에 흩어지고
살아 꿈틀거리는 목소리는
작취미성(昨醉未醒)의 난간 위에서
떠내려가는 침묵의 조각과
석양에 불붙은 비취색 하늘을
하나로 노래부르고 싶다
바다를 말아넣어 하늘
하늘을 접어펼쳐 바다
바람일기․1
골바람도
삥 돌아서만 지나치던
그 산 넘어 이 골탕
막 피어오르던
꽃봉오라지 소낙비 그리며
화석 되어 굳어 있고
구석구석마다
새새틈틈이 숨겨놓은
슬픔의 깊이와
꿀꺽꿀꺽 삼켜버린
깊은숨의 넓이를
한 번만 곱해 줘도
천지에서 백록담을
몇 번씩은 오고 갔을 텐데
최종 등식은 풀리지 않고
바람은 돌아만 가고
방패로 든 양심
적이 창을 들고 맹공격해 온다면
나는 방패를 들어서 막아야 산다
자존심에 뺀 창은 양심도 다치지만
방패로 든 양심은 자존심을 지킨다
여름바다를 꽃다발처럼
꺼진 배 일부러 부풀려
고무풍선 넣은 듯 살아나면
사장님이 다 된 것 같던 시대
구슬땀 흘리며 가꿔온 세월
조그마한 열매라도 맺히면
모두가 내 뜻인지 흐뭇했지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의
목줄이 유난히 솟아 있고
말끝 가지마다 황금알이 열려 있고
내몫 없어 악수하지 못할 때
시내버스에 제비처럼 날아가는
차창 밖의 오너드라이버 그 반바지가
옛 추억의 긴 그림자일 때
가을 하늘은 여름 바다를
꽃다발처럼 가슴에 안고 싶지
타고 남은 재
가을 산에 갇힌 나무들이
하나같이 바람나버렸어요
잠자던 풀밭과 억새까지도
노란꽃으로 피워대지 못한
빨간 열매로 맺혀놓지 못한
순정에 색깔을 칠하지 못한
한(恨)을 분풀이하고 있어요
만산이 단풍으로 불타고 있어요
보는 사람도 타들어가고 있어요
타고 남은 재는 한 줌도 남김없이
아내 말씀
아내는 내가 자기를 못 만났다면
집도 없는 총각 신세 못 면한 채
방랑자로 떠돌고 있을 거라고
가족들이 다 모인 명절만 되면
은근히 비틀어 놓은 꽈배기처럼
경제학 강론을 신나게 펼치신다
설마 그럴 수야 있었겠느냐만
돈 벌어야 할 때 쓰기에 바빴지
남들은 쌈짓돈 튀밥 튀겨 늘릴 때
봉창 뒤집어 먼지처럼 털어버리지
1년 열두 달 365일 중 반 이상은
책상 앞에 가부장하고 앉아 있지
인생 칠십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아내 말씀을 생존의 법칙으로 여겨
철들며 살아보려고 마음도 먹었다
햇살 비쳐들면 전깃불도 꺼버렸다
책 살 돈 아껴 우유 사 먹으며 살고
평새 펴놓은 신문 접고 주일미사 간다
민담民譚․1
-심부름꾼의 대답
옛날 마음씨는 착한데 좀 부족한 심부름꾼이
장터로 길을 걸어가다가 한 장사치를 만나
쉼터인 느티나무 밑에서 점심을 얻어먹었어
큰 나무 위에서는 까마귀 떼가 마구 울어대어
까마귀는 흉조라며 장사치는 기분이 안 좋은데
멍한 심부름꾼은 도리어 웃는 낯이 아니겠나
시내 장터에 도착한 장사치는 이유를 물어봤지
까마귀들이 울 때 그대가 웃은 까닭은 뭔가?
까마귀들이 저를 유혹하며 저에게 말하기를
짐 속에 값진 보물이 많은 당신을 죽이고
제가 상인이 되면 시체를 먹겠다고 했지요
자네가 까마귀의 유혹을 뿌리친 이유는 뭔가
저는 전생에 욕심을 벌지 못해 그 업보로
현생에 가난한 심부름꾼으로 살고 있습니다
비록 가난한 심부름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욕심으로 무도한 부귀를 누릴 수는 없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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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시는 내가 걸어온 인생길의 발자취이고 나의 삶 그 자체다
시를 쓰며 살고 있는 것이 나의 삶이기에 인생은 즐겁다.
시는 사랑에서 잉태하여 고독, 고통으로 성숙하며 큰다.
끝없는 상승과 추구의 자세, 구도자의 고행이 시의 거처다.
시작활동을 통하여 바른 시대를 꿈꾸며 나 자신을 성찰하고
건강한 이상향을 그려내 좋은 시로 옮겨보려 노력하고 있다
2019년 9월
전 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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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민詩集 [※바람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 해설 ] -
여백의 미학
-전민 11시집 『바람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에 부쳐
나태주 시인
1.
전민 시인은 그 본명이 ‘병기’인데 시를 쓰면서 ‘민’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오늘까지 사용하고 있다. 일종의 필명인 셈이다. 한자로 쓰면 ‘옥돌 민(玟)’이다. 아름다운 돌, 글의 왕(글월 文앞에 임금王)이 되어 보겠다는 소년시절 그 나름의 다짐과 결의를 담은 이름이라 본다.
내가 전민 시인을 만나고 사귀어 온 것은 꽤나 오래 전의 일이다. 1970년대 벽두, 나는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시문학 동인회 활동을 시작한 일이 있다. 동인회 이름은 <새여울>. 공주에서 공주교육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동인회였다. 나는 비록 공주교육대학 졸업생은 아니지만 그들이 끼워줘서 그들과 함께 한세월 좋은 우정과 문학의 날들을 보낸 일이 있다.
이제 와 새삼 고마운 일인데 동인지 첫 책에는 윤석산을 필두로 하여 이장희, 김정임, 구재기, 김명수, 안홍렬, 그리고 전민과 같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2집부터는 나의 소개로 권선옥 같은 시인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내가 동인회에 가입해 보니 모두가 문단 등단을 마치지 않은 신인들이었다.
이들은 모두가 문학에의 열정이 강해 그 뒤에 제각기 길을 찾아 등단의 절차를 마치고 기성시인이 되면서 시집도 내고 이제는 중견의 시인들이 다 되었다. 하기는 이들의 나이가 70살 전후이니 인생으로서도 이제는 노년의 세대라 할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전민 씨는 매우 온건하면서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별로 말이 없었고 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동인들 사이에 그야말로 티 없이 정중동으로 존재해 왔다. 그렇게 50년 가까이다. 참 오랜 세월 우리는 우정을 나누었고 또 서로 잡음 없이 잘 살았다. 피차에 감사한 노릇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전민 시인은 동인 가운데 가장 마음씨 좋은 사람이고 온유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는 자기의 인생도 그렇게 온유하고 말없이 모든 일을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영위하면서 살았다. 노자의 말씀에 상선약수(上善若水)란 말씀이 있는데 바로 전민 시인이 그런 사람이라 할 것이다.
늘상 스스로 눈높이나 관심이 낮은 데에 있었고, 남한테 있었고, 선한 데에 있었다. 타인을 안쓰럽게 보았고 긍정으로 대했고 또 한 세상을 그렇게 티 없이 부드럽게 건너면서 살았다. 어느 것에도 걸거침이 없었고 무리 없는 삶이었다. 가정생활도 그러했고 사회생활, 직장생활도 그러했다.
문단에서의 봉사나 활약도 많았던 것으로 안다. 문학단체나 문예지의 책임자를 맡아서 활동하고 또 주변의 많은 동료문인들을 챙기고 돕는 일에 앞장선 것으로 안다. 나하고 관계만 해도 그렇다. 내가 결혼을 한 것은 1973년도, 그 당시로는 만혼이었다. 주례를 박목월 선생이 서 주셨는데 결혼식 사호자가 만만치 않았다. 생각 끝에 전민 시인을 결혼식 사회자로 세웠다. 그래서 전민 시인은 박목월 선생을 모시고 나의 결혼을 무사히 잘 치르게 도와주었다.
말하자면 이러한 봉사적이면서 조용한 활동, 뒤에 숨어서 말없이 하는 활동은 전민 시인의 독특한 한 개성이다시피 했다. 그래서 시인의 주변에는 오래된 친구와 함께 새로운 지인들이 많았다. 원만하고 인격적인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2. 시인 전민
전민 시인의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 것은 1985년『시문학』추천으로서였다. 그것은 <새여울>동인으로 활동을 한 지, 10년도 훨씬 지난 다음의 일로 조금은 늦은 등단이었다. 그만큼 그는 문단 등단부터 느긋하게 대처했고 욕심이 많지 않았다.
오래 전, 프랑스 사람 뷔퐁은 ‘글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전민 시인의 인간과 글을 생각할 때 언뜻 떠오르는 말은 바로 이 말이다. 그의 시는 자신의 일을 직접 다루기보다는 타인의 일이나 사회적인 일을 다루면서 슬쩍 그 사이에 자신의 정서를 끼워 넣는 식으로 전개한다. 그래서 조금은 싱거운 느낌이 없지 않다. 사람과 시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흔히들 말하기를 젊은 시절의 인간을 이끌어오는 두 개의 힘이라고 그러면 앵그리와 헝그리를 말하곤 한다. 두 개는 하나의 욕구불만이기도 하고 상승 의지이기도 해서 젊은 시절의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 준다. 말하자면, 두 개, 수레바퀴의 축이라 하겠다.
대개 엥그리에 승한 사람은 사회정의나 도덕적인 쪽에 관심이 많고 사회변화에 자신의 열정을 싣기 쉽다. 그런가 하면 헝그리에 기운 사람은 자신의 문제에 집착하면서 보다 나은 자신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젊은 시절의 인간들은 그 두 가지 경향 가운데 한 가지에 치우쳐 인생을 살게 마련이다.
그런데 전민 시인은 그 두 가지 모두가 아닌 것같이 보인다. 그만큼 그의 인간과 문학은 느슨하고 무심한 듯 멀리 물러나 있다. 그동안 전민 시인은 꾸준히 그의 작품을 발표해 왔다. 문학 매체를 통해서도 발표해 왔고 시집으로도 발표해 왔다. 이번에 내는 시집은 열한 번째 시집.
기왕의 시집들과 사뭇 변화를 보이고 있다. 우선은 요설이 많이 줄었다. 요설은 시의 문장의 특성으로는 별로 바람직한 특성이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대상의 핵심을 흐려놓기 때문이다. 또 시의 문장은 거르고 걸러 줄이고 줄인 짧은 언어조직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오죽했으면 촌철살인이라 했겠는가.
조그마한 화단 안의 풀꽃들과
눈싸움을 즐겼다
때로는 고집스러운 담벼락을 뚫고
나는 새의 깃에
하늘 가슴 깊이 안겨도 보고
떠나간 사람들의 얼굴 위에
또 다른 무게로 내려앉는 상(像)
눈물의 한 올을 찾아 백두산 천지로
한라산 백록담에서 캐낸 기쁨의 한 올로
숨겨둔 보물상자를 찾아가듯
삶의 자투리를 찍어내며
-「삶의 자투리」 전문
이제 그도 후반부 인생을 사는 사람.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고 있고 오늘의 삶을 말하고 있다. 그는 오늘의 인생을 ‘자투리’로 인식하고 있다. 자투리란 본래의 것을 떼어낸 나머지 부분을 말한다. 자투리땅, 자투리 옷감 그렇게 말하는 바로 그 자투리다.
그렇지만 그는 그 자투리 인생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귀하게 소중하게 대하면서 잘 써먹겠다고 다짐한다. 당연한 일이고 좋은 일이다. “눈물의 한 올을 찾아 백두산 천지로/한라산 백록담에서 캐낸 기쁨”은 자기의 지난 인생에 대한 총평이다. 보람이다. “숨겨둔 보물상자를 찾아가듯/삶의 자투리를 찍어내며”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소망이고 나름대로 각오다. 이 또한 좋은 일이고 기대해 볼 만한 일이다.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누구나의 인생이라도 여벌의 인생은 없다. 누구나의 인생도 급하고 소중하고 엄중한 것이다. 인생을 엄중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그의 인생은 엄중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아내는 달걀장사 사모님
나는 수박장사 선생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양계장집 아줌마 좀
도와주며 살고 싶다며 몇 번 거들더니
아내는 아파트 통로의 달걀장사 사모님이 되었고
트럭운전사와 눈 맞아 도회지로 줄행랑친
수박밭 며느리의 홀시어머니 사정이 하 딱해서
스무 나문 통 남짓 사다가 인심 좀 썼더니
그 이튿날부터 나는 수박장사 선생님이라는
또 하나의 직함을 달고 다니게 되었다
우리 아파트의 젊은 주부들은
누구 한 할 것 없이 최고만 찾기 때문에
알이 굵은 달걀과 조금 싱싱한 수박은
눈깜짝할 사이에 다 뽑혀서 나가고
작은 것, 깨진 것, 꼭지 빠져 시든 것만 남아
중년부부인 우리들의 마지막 차지가 된다
사실은 가정에서도 매한가지다
-「달걀장사 사모님」 전문
이 시는 시인이 도회의 아프트에 살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 사람들을 도와준 일을 소재 삼아서 쓴 작품이다. 아름다운 그림이며 미소로운 작품이다. 부창부수라고 시인의 부인도 무척이나 인성이 느긋하고 좋은 사람인가 보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양계장집 아줌마 좀/도와주며 살고 싶다며 몇 번 거들더니/아내는 아파트 통로의 달걀장사 사모님이 되었”다는 얘기다. 좋은 이웃이다. 여기에 더하여 남편되는 시인은 어떤가. “트럭운전사와 눈 맞아 도회지로 줄행랑 친/수박밭 며느리의 홀시어머니 사정이 하 딱해서/스무 나문 통 사다가 인심 좀 썼더니/그 이튿날부터 나는 수박장사 선생님”이 되었노라는 자신에 대한 고백이다.
이웃으로서 이만한 좋은 이웃은 더 이상 없는 일이다. 이러한 선량과 우애가 우리 세상을 밝게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역시 시문장의 기본 심정은 선량(善良)에 있다. 선량 하나면 통하지 않는 데가 없다.
신부님 제가 백주 대낮에
눈이 먼 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
눈 똑바로 뜨고 몰래 들어가서
말린 고추를 들고 나왔습니다
다행히 아무도 본 사람은 없지만
양심이 널을 뛰어
잘못했음을 고해하러 왔습니다
당장 회개하십시오
십계명에 도둑질하지 말라 했지요
도둑질은 형제님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기는 것입니다
순간의 잘못으로 큰 실수를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요
깊이 반성하며 흔적을 지우겠어요
할머니가 볼 수 없을 거라 믿고
고추를 지고 나오며 남긴 발자욱을
성사 끝내고 가서 지워야겠어요
오점을 닦아야겠어요
아멘
-「어떤 고해성사」 전문
코믹하기까지 한 작품이다. 말하자면 해학이 들어 있는 작품이다. 해학은 능청에 그 본질이 있고 심각하고 헝클어진 현실이나 대상을 곧이곧대로 표현하지 않고 비꼬아서 표현하는 데 그 묘미가 있다. 이 시에 아노는 ‘고해성사’가 그렇고 고해성사를 대하는 주인공이 태도와 반응이 그렇다. 본말이 전도되어 있음을 은근슬쩍 비꼼이다. 그리하여 사실이나 대상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고자 한다.
어둡고 화가 나고 개탄스런 현실 앞에서 이렇게 여유를 갖고 대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서의 전민 시인의 품도요 국량(局量)이다. 국량이란 말을 사전으로 풀어보면 ‘남의 잘못을 이해하고 감싸 주며 일을 능히 처리하는 힘’이 된다. 아량과 통하는 말이다. 그만큼 전민 시인의 아량이 넓은 것이다. 이러한 아량으로 세상을 볼 때 그의 세상과 그의 시는 더 높고도 깊은 세계와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미역 냄새 해초 내음 갯골 타고
촉촉이 불어오는 솔숲 언덕에다
행주치마 너비만 한
초집 한 채 오뚝이 마련하고
둘이는 하나처럼 살겠네
토방 위엔 세파에 깎인 조가비와
천년 씻긴 조약돌이 가득하고
나는 철없는 내 아이들처럼
맨발로 모래밭을 휘젓다가
개흙이 묻은 손끝으로
원고와 헌책들을 매만지며
책갈피 작은 바다 파도 따라
갈매가 되어 나를래
뭍을 떠난 꿈의 통통선
피안에 와 닿을 때
밤 파도 소리는 일기 시작하고
비워둔 또 하나의 방에는
상현 달빛 외줄기
멀리서 들려오는 영혼의 속삭임을 부르며
가냘픈 맨살을 창틀에 부벼대며
제 몸 앓고 있을 걸세
-「바닷가에」 전문
그의 시집 원고 가운데에서 어렵게 찾아낸 개인의 소망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어쩌면 부인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은 그 어떤 유토피아 같은 것을 그려본 작품인지 모르겠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회향(回鄕) 의식이 있고 이상향을 그리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주로 유년의 삶과 관계가 깊다. 그러고 보니 시인의 고향은 바닷가 가까운 마을이었던가 보다.
시의 내용은 구구절절이 그리움으로 가득하고 돌아간 땅에서의 삶에 대한 소망과 꿈으로 넘쳐난다. 영국 시인 예이츠 방식으로 말한다면 ‘이니스프리 호도’로의 귀환이다. 시를 분석하여 한 구절 한 구절 말할 것도 없다. 그냥 시의 전편이 그 자신의 알몸으로, 시인의 꿈과 그리움을 말해 주고 있는 바이다.
논리적으로 말할 자신은 없으되 지금껏 50년 가까이 시의 길을 동행하며 오늘에 이른 동지로서의 눈을 담보로 하여 말할 때, 전민 시인의 시는 여백의 정서를 표출하는 여백의 시가 아닌가 싶다. 남들이 비워두고 떠난 그 땅에 농작물을 심어 가꾸는 농부의 심정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시를 잠정적으로 ‘여백의 미학’이라고 이름 붙여 부르고 싶다.
전민 시인, 이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늙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것이 20대 푸른 나이였는데 어쩔 수 없이 70데 늙은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날들은 자꾸만 짧아지고 우리의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 보다 열심히 깨어서 읽고 글을 써서 우리가 쓰고 싶었던 글을 한 편이라도 더 세상에 남기고 세상을 떠납시다. 열한 번째 내는 시집 출간을 축하합니다. 이 시집에 형에게는 첫 시집이 되어 길이 형에게 효도하는 시집이 되기를 소망하고 축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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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그의 시집 원고 가운데에서 어렵게 찾아낸 개인의 소망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어쩌면 부인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은 그 어떤 유토피아 같은 것을 그려본 작품인지 모르겠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회향(回鄕) 의식이 있고 이상향을 그리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주로 유년의 삶과 관계가 깊다. 그러고 보니 시인의 고향은 바닷가 가까운 마을이었던가 보다. …… 논리적으로 말할 자신은 없으되 지금껏 50년 가까이 시의 길을 동행하며 오늘에 이른 동지로서의 눈을 담보로 하여 말할 때, 전민 시인의 시는 여백의 정서를 표출하는 여백의 시가 아닌가 싶다. 남들이 비워두고 떠난 그 땅에 농작물을 심어 가꾸는 농부의 심정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시를 잠정적으로 ‘여백의 미학’이라고 이름 붙여 부르고 싶다.
― 나태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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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민 시인∥
∙ 충남 홍성 출생(1948) 아호는 녹원綠苑. 본명은 전병기田炳基
∙ 홍성고(1968), 공주교대(1970), 충남대교육대학원(1989) 졸업
∙ 새여울시문학동인회(1971년) 창립동인, 월간 『시문학』등단(1985)
∙ 시집『주민등록증을 갱신하며』『가을비 곱게 내리는 저녁나절에는』『그대 마음 훔쳐 싣고』『가슴꽃 이야기』『바람꽃 해후』『그리움에 불타는 마음밭』『불꽃놀이』『신 사미인곡』『움직이는 풍경화』『도망친 암소』『바람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등 11권『
∙ 1993년 대전엑스포 당시 대전문인협회 사무국장, 1952년에 창간한 한국최고령종합문학지인 호서문학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역임.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시문학문인회 대전․충남지회장
∙ 대전시문화상(2004년), 문학시대 대상(2018년)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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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orn Birds Theme - Henry Mancini / 가시나무새(TV) The Thorn Birds(1983)
제작 1983년 (Mini), 미국 // 감독: Daryl Duke // 음악 : 헨리 맨시니 (Henry Mancini)
#출처: 관악산의 추억( http://cafe.daum.net/e8853/MVDb/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