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3일 러시아 석유제품의 가격 상한선을 배럴당 100달러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영토 양보'를 전제로 한 휴전안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미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에 21억 7,500만 달러 규모의 군사 지원 패키지를 발표했다. 독일도 자국의 구식 탱크 '레오파드1'의 우크라이나 공급을 승인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유럽연합(EU)과의 정상회담 후 격전지 바흐무트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블룸버그 통신:EU, 러시아 석유제품의 가격 상한선을 100달러로 설정 합의/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러-우크라 언론에서 오늘의 이슈를 찾아내 정리하는 우크라 이슈진단-3일자/편집자
◇ 윌리엄 번스 미CIA 국장의 입을 쳐다보는 까닭
윌리엄 번스 미 CIA 국장이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 1주년(24일)을 앞두고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그의 입과 일거수일투족을 전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국 CBS TV의 올리비아 가지스 기자는 3일 트위트를 통해 "번스 국장은 우크라이나에게 향후 6개월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번즈 국장은 "푸틴 대통령이 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피로가 서방을 휩쓸 것으로 장담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했다. 또 '모스크바가 (우크라이나와의) 평화협상에 대해 진지한 지 여부를 알 수 없다'는 번스 국장의 평가를 전하기도 했다.
사소한(?) 그의 발언에도 큰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는 보도가 스위스를 대표하는 독일어 일간지인 노이에 취러흐 차이퉁(Neue Zürcher Zeitung,NZZ)에서 나왔다. 스트라나.ua는 이 보도를 "흥미로운 기사"라고 했고, 일각에서는 충격적이라는 탄식도 나왔다. 번스 국장이 바이든 대통령의 밀명을 받고 지난 1월 중순 키예프(키이우)와 모스크바를 방문, 휴전을 제안했다고 것인데, 휴전안이 파격적이다.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 즉 현재 점령하고 있는 땅을 러시아에 넘기고 전쟁을 끝내는 안에 대해 양국의 수락 가능성을 타진해 보라는 지시를 번스 국장이 받았다는 것이다.
러-우크라 양국 모두 이 아이디어를 거절했다고 NZZ는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영토를 한 뼘도 포기하고 싶지 않고, 러시아는 장기전으로 갈 경우, 서방의 전쟁 피로도에 의해 대(對)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이 줄어들면서 더 많은 땅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그제서야 바이든 대통령이 주력 탱크인 에이브럼스(Abrams)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미 백악관과 러시아 크렘린은 즉각 이 보도를 부인했다. 번스 CIA 수장이 모스크바로 날아간 것도, 영토를 대가로 한 평화 거래설도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이같은 보도는 어떻게 나왔을까? 스위스를 대표하는 독일어 일간지가 '옐로 페이퍼'(황색 언론)식 작문 기사를 쓴 것일까?
번스 CIA 국장의 러시아 대화 파트너는 세르게이 나리쉬킨 러시아 해외정보국(SVR, 전 KGB의 해외정보 파트) 국장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설을 유럽 대륙에 경고하던 지난 2021년 말, 번즈 국장은 나리쉬킨 SVR 국장에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국경을 넘을 경우, 미국을 비롯한 서방(나토)측의 치명적인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지난해 11월 튀르키예(터키)의 앙카라에서 공식적으로 접촉한 미-러시아 외교 라인도 '번즈-나리쉬킨 조합'이었다.
나리쉬킨 국장의 트위트 계정
해리스 미 부통령 앞에서 취임선서하는 번스 CIA 국장/사진출처:위키피디아
스트라나.ua는 번스 국장의 지난 1월 중순 모스크바 방문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이는 아무도 없다고 강조했다. 스위스 일간지 NZZ 보도는 아예 '팩트부터 틀렸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그의 키예프 방문은 이미 미 워싱턴 포스트(WP)의 보도로 알려진 바 있다.
공교로운 것은 1월 중순께 러시아에서 나온 주요 고위 인사들의 공개 발언이다. 우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1월 18일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미 대통령의 요청으로 번스 국장과 나리쉬킨 SVR 국장이 지난해 11월 14일 앙카라에서 만났다고 공식 확인했다. 번스 국장은 나리쉬킨과 만난 그 다음날(11월 15일) 키예프로 날아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예방하고, 미국의 지원을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리쉬킨 국장은 한 술 더 떴다. 그는 1월 17일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에게 번스 국장과의 또다른 회동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는 양국의 합의에 따라 만나는 날짜가 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리아 노보스티 통신과의 회견에서는 번스 국장과의 첫번째 만남(2022년 11월 14일 앙카라의 터키 국가정보국)에 대해 "미국측과 핵 안보와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며 "회의에서 가장 자주 사용된 단어는 '전략적 안정', '핵 안보', '우크라이나', '키예프 체제' 였다"고 공개했다.
결정적인 발언은 1월 19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에게서 나왔다. 그는 기자들에게 "번스 국장이 러시아 관리들과 만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두 나라의 해외정보 파트 수장들 간의 대화가 유용했다"며 "정확한 회의 날짜는 알지 못한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양국 정보 수장들간의 새로운 접촉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며 논평을 거부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영상 캡처
스트라나.ua는 "스위스 일간지 NZZ의 '영토 거래설' 보도가 '전쟁을 끝내는 주요 공식'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서는 누구도 이같은 평화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할 수 없기 때문에(반역죄가 된다), 국가 지도층내에 지지자들이 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NZZ의 보도는 팩트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같은 방식으로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논의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키예프와 서방 동맹국들의 전략적 목표는 지금까지 군사적 승리, 혹은 모스크바가 우크라이나의 평화 조건을 수락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문제는 현실 인식이다. 서방에서는 이미 이 목표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주에만 해도 서방 언론에는 '전쟁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고(교착 상태), 어느 일방이 무조건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기사들이 실렸고,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탈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군 탱크 진격/사진출처:우크라 합참 페이스북
스트라나.ua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전했다.
"크림반도의 탈환은 우크라이나 군 전력의 문제가 아니라, 서방(NATO)의 군사 지원 규모에 달려있다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서방 측은 우크라이나군이 섣불리 크림반도를 공격해 전 세계를 핵 분쟁속으로 빠뜨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크라이나 주요 관리들이 러시아가 감히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니 (서방 측도) '레드 라인'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한 장거리 '지상발사 소직경폭탄'/출처:Saab그룹
-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미국이 키예프에 '장거리 포탄'(지상발사 소직경 폭탄)을 공급하기로 결정한 후 "푸틴 대통령이 어제(2일) 볼고그라드(옛 스탈린그라드)에서 한 발언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스탈린그라드 전투 80주년 기념 연설에서 "러시아는 (서방의 탱크 제공에) 답할 것을 갖고 있다"며 대량살상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 미 국방부가 새로운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패키지를 발표한 뒤, 블룸버그 통신은 첫 장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하이마스(HIMARS)용 '지상발사 소직경 폭탄'(GLSDB)가 9개월 후에야 우크라이나에 전달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미국 당국은 제조업체와 2억 달러 규모의 GLSDB 폭탄 공급 계약 체결을 원한다"며 "GLSDB의 우크라이나 배송이 이르면 9개월 안에 시작될 것"이라고 전했다. 사거리 150㎞에 이르는 GLSDB 폭탄은 하이마스, 혹은 M270 MLRS(다중 발사 로켓 시스템)에서 발사된다.
- 독일은 '레오파드 2' 전차 뿐만 아니라 구형 '레오파드 1' 전차도 우크라이나로 이전할 예정이지만, 사용할 포탄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쥐트도이체 차이퉁(Süddeutsche Zeitung)신문이 보도했다.
러시아 군 관할 지역 지도. 주황색 표시가 남부군관구, 왼쪽부터 서부군관구, 중앙군관구, 동부군관구로 표시돼 있다.
- 러시아 국방부는 크림반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남부군관구의 관할'로 이관했다고 스트라나.ua가 보도했다. 러시아 국방부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업데이트된 군사 구역 지도에 크림반도가 남부군관구의 관할로 표시돼 있다는 것. 남부군관구는 세르게이 쿠조블레프 대장이 지휘하고 있다고 한다.
-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3일 키예프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문제에 대해 "EU는 우크라이나가 최근 수 개월간 보여준 상당한 노력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또 "EU는 우크라이나가 이 같은 노력을 계속하고 EU 가입 신청에 대한 집행위원회의 의견에 명시된 조건을 이행하도록 권장한다"고 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엄격한 시간표는 없겠지만 가입을 위해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다"고 말했고, 미셸 의장은 "EU는 지금 우크라이나와 함께 하며, 내일도 함께일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가 EU고, EU가 우크라이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