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고린도전서 1:1-11
바울은 고린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축복했습니다(1,2).
‘은혜와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복중에 복입니다.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의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하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6:22-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그리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겠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12:2,3).
사람들은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분이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상이나 신들에게 복을 달라고 빕니다. 그러나 하나님 외 어떤 존재도 복을 주지 못합니다.
교회가 예배드린 성도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축복합니다.
사람들은 서로 축복하며, 부모는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바울은 ‘찬송하리로다’라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신앙적인 용어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의 복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리며 찬송합니다. 성도들이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송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성도들이 자신을 구원해 주신 주님을 찬송하며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며 큰 영광이 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찬송은 하나님께는 듣기 싫은 꽹과리 소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성도들이 아닌 자들(불신자)은 하나님을 찬송할 수 없습니다. 불신들이 찬송을 불러도 그들은 은혜와 감사가 없는 찬송이므로 그들이 부르는 세상 노래(유행가)나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찬송을 좋아하십니다. 성도들은 자신을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께 찬송하며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는 아주 독특한 의미에서 성부는 성자의 하나님이시요 아버지가 되시며, 성자는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자비의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자비’란 ‘동정을 베품’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은 ‘위로’라는 말을 열 번이나 계속하여 말했습니다(3-7).
‘위로’란 낙심한 상태이거나 환난 중에 있는 자를 격려하며 용기를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난’과 ‘환난’은 예수 믿는 신앙으로 인해 당하는 어려움이지만 약간의 의미가 다릅니다.
‘고난’은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내적인 괴로움과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개인의 내적 갈등이나 질병, 경제적 궁핍 등으로 삶에서 당하는 힘든 과정을 뜻합니다.
‘환난’은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압박이나 재난, 핍박 등으로 외적으로부터 당하는 어려움을 의미합니다.
거대한 위기나 종교적 박해 같은 외부로부터 당한 특수한 고통을 ‘환난’이라고 합니다.
‘고난’과 ‘환난’은 일반적으로 혼용되어 사용되지만, 특히 종교(기독교)적인 면에서 믿음의 성숙을 위한 ‘연단’으로 이해합니다.
성도의 자세는 자신의 힘이나 의지가 아닌, 우리를 구원하시고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는 매임과 고난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영광스러운 주의 일하심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고난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환난’은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기 때문에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욕을 듣고, 매를 맞으며 죽기까지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환난도 당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환난 가운데 처한 성도를 위로하시는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4)
성도들을 환난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위로’하십니다.
바울은 자신이 겪었던 환난이 오히려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되는 근거가 되었을 뿐 아니라 환난 중에 있는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환난 중에 하나님의 위로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힘입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환난에 처해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위로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환난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위로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든가를 암시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당한 환난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이나 큰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체험했습니다.
바울이 받은 하나님의 위로가 얼마나 큰가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한 초기에 혼자 소록도를 견학한 일이 있습니다. 당시 소록도는 육지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었습니다. 나병 환자인 장로님의 가정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하면서 그분이 소록도에 오게 된 동기를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서울에서 어렵지 않게 살며 자신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직장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둥병이 발생하므로 해서 소록도에 오게 된 것입니다.
장로님은 자신이 문둥병자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문둥병자가 되지 않았다면 지옥 불꽃 가운데서 영원히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는데 문둥이가 되어서 소록도에 오게 되었고 예수를 믿어 구원받고 천국에서 영생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가 한 말을 문둥병자가 아닌 사람은 감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직 문둥병에 걸린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감사인 것입니다.
문둥병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들은 문둥병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와 같은 감사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러한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환난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아 본 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로가 어던 것인가를 알지 못합니다.
그 장로님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위로를 소록도에 있는 다른 환자들에게 위로하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소록도에 함께 수용된 나병 환자들이 그 장로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뿐 아니라 함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5)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성도가 하나님의 위로를 넘치게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고난받는 자는 고난받으심으로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미 참여한 것이요 위로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고난과 위로에 참여했듯이 고린도 교인들도 환난 중에 믿음으로 굳게 서서 그리스도와 하나 됨으로서 바울이 받았던 고난과 위로에 참여하게 되리라는 소망에서 한 말입니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6)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고린도교회 교인들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인내하면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이기지 못하면 하나님의 위로를 받지 못한다는 역설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 당하면 그 고난을 견뎌내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고난 당하는 성도들에게 역사하시므로 그 고난을 견딜 수 있게 합니다.
교회란 위로는 하나님과 좌우로는 성도들 상호간에 교제하는 곳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교제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의 범죄로 하나님과 단절되었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를 보내시어 속죄 사역을 담당하게 하심도 단절된 교제를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한 성도들은 또 다른 성도 간에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로 하여금 앞으로 그들이 어떤 고난과 핍박을 당하게 되더라도 낙심치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교훈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내부의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고 올바른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필연적으로 외부의 배척과 핍박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사단의 악한 세력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온갖 방법과 수단을 다 동원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아무 염려 없다고 안심할 때 오히려 더 큰 사단의 공격이 개시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난이 닥쳐와도 위로하시고 힘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능히 이겨낼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환난을 당하셨으나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란 중에 있는 자를 하나님께서 위로하십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로 고난도 견디며 이기게 하십니다.
바울은 결론적으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으로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난과 환난으로 인한 하나님의 위로하심으로 우리의 소망은 더욱 견고하여 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중에 있던 나사로가 낙원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앉겨 위로를 받고 있다(눅16:26)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고난을 받음으로 아브람의 품에 앉겨 위로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머잖아 주님께서 데리려 오실 것입니다. 주님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함께 누립시다.
첫댓글 💖오래 살아도 백년을 채우기 어려운게 인생입니다.
그런데도 늘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근심 걱정을 품고 살아 갑니다.
쓸모없는 남과의 비교 에서도 걱정거리를 많이 만들어오구요.
우리네 삶에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쓸데없는 걱정 일랑 툴툴 털어 버리세요.
그것이 즐겁고 건강하게 멋진 삶의 첫걸음 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으로 오래 기억되는 좋은 추억이길 바라며 행복을 향해 달려 갑시다.💖
감사합니다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잠 20:13).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