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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기도의 방법 2/ 마태복음 6:9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nsrl-4DJFuo
지난 주일에 저는 여러분들에게 다양한 기도 방법 중에서 네 가지 방법을 말씀드렸습니다. 1. 레파토리 기도입니다. 기도의 순서를 정하고 순서를 따라서 기도하는 방법입니다. 2. 방언기도입니다. 방언 기도는 성령의 은사로써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3. 죄를 드러내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죄악을 드러내달라고 간구하며 자기 속에 있는 죄를 하나씩 하나씩 처리해 가는 기도입니다. 4. 명령기도입니다. 명령기도는 나의 인격이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만왕의 왕이시며 대속자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이나 사물이나 악한 영이나 환경 등을 다스리는 기도입니다. 이 방법은 엄밀하게는 기도가 아니지만 믿음으로 이 방법을 사용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기도의 법주에 포함됩니다.
오늘도 몇 가지 구체적인 기도의 방법을 나누겠습니다.
5. 하나님 앞에 머무르기입니다.
이 방법은 믿음을 가지고 그냥 하나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깨어 기도해야 하지만 기도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해야 하는데 너무나 피곤해서 기도를 할 수 없을 때 이 방법을 사용하면 좋습니다. 저는 이런 경우에 제가 하나님 앞에 있음을 고백하고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특별히 하는 것은 없지만 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있음을 확신하며 앉아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졸기도합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머무르는 기도를 할 때, 저에게는 말 4:2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가 뛰는 것처럼 기쁨과 자유와 새 힘이 생깁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습니다.
비유로 설명하겠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입니다. 한 낮의 태양이 뜨겁게 작열합니다. 구름 한 점 없고 바람도 불지 않습니다. 저는 운동장 한 가운데 서 있습니다. 운동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그런데 제 몸에서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저의 몸은 햇빛과 열을 받아서 뜨거워집니다. 그리고 잠시 후 몸에서 땀이 납니다. 그리고 피부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태양빛과 태양열을 받아서 몸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분명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영적인 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머물러 있지만 저에게는 영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냥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앉아 있을 뿐인데 하나님의 터치를 경험합니다. 낙심된 마음이 힘을 얻고, 피곤한 육체가 상쾌해지며, 눌린 영혼이 자유를 경험합니다. 저는 좀 전 까지만 해도 기도할 힘이 없었는데, 저도 모르게 기도할 힘이 생깁니다. 저는 그 힘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 하게 됩니다.
크리스찬 치유상담연구원 원장으로 사역하셨던 정태기목사님은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분은 예배 중에 하나님의 빛이 강대상으로부터 성도들에게 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빛이 성도들을 치료합니다. 예배하는 시간에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말라기 4:2에서 말하는 치료하는 광선이 강대상으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를 치료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동의합니다. 예배 시간에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치료의 광선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 중에 치유와 응답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배를 사모하고 예배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배가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빛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 빛은 바로 세상의 참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미국 보스턴에서 목회하시는 골든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어느 날, 그분이 설교 준비를 하다가 피곤하여 의자에 앉은 채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주일에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30세 정도의 낯선 사람에게 왠지 모르게 시선이 끌렸습니다. 목사님은 예배가 끝난 후 그 사람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를 찾아보니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내위원들에게 그 사람에 대하여 물어보니 그 사람의 이름이 ‘예수’라는 하더랍니다. 목사님은 사람들이 그분이 ‘예수’라고 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이후로 골든 목사님은 회중 가운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앉아계신다고 믿고 설교를 했습니다. 교인들도 예배 때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골든 목사님의 체험은 하나님께서 성경적인 사실을 꿈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 18:20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예배합니다. 여기에 참 빛 되시는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예배 시간에 예수님의 치료의 광선이 우리를 치료하고, 우리에게 새 힘을 주고, 우리의 영과 몸과 정신과 삶을 새롭게 합니다.
리차드 포스터의 책에 나오는 내용을 기억을 더듬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자매가 20년간 신앙생활을 했으나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 자매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뜨개질을 했습니다. 그 자매는 뜨개질을 시작하고 5분도 안 돼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지만 그 사실을 믿고 인정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믿음으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인정할 때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래 전에 우리 교회에 김00 권사님이 출석하셨습니다. 그분은 70세 가까이 되신 분으로 혼자 노모를 모셨습니다. 그분에게 재정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약 3천만 원 정도였습니다. 권사님은 그 일로 저에게 상담을 받았습니다. 저는 “권사님! 매일 저녁기도회에 나오셔서 기도하세요.”라고 권면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기도를 못해요.”, “권사님! 기도를 못하시면 기도의 자리에 앉아만 계세요.” 그 권사님은 그날부터 기도회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앉아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를 못하니 제가 말한 대로 매일 2시간씩 하나님 앞에 그냥 앉아있었습니다. 약 3개월을 그렇게 하던 중에 놀라운 방법으로 재정이 공급 되어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 그분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앉아만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분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재정의 돌파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천연기념물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입니다. 수령이 1,100살 정도이며, 높이 42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입니다. 통일신라 경순왕의 아들이 망국의 한을 품고 심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나무입니다. 그 나무가 1,100년을 한 자리에 있으니 특별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세종대왕님은 정3품에 해당하는 벼슬을 주었습니다. 당시에도 전국적으로 크고 오래된 나무였습니다. 그 나무가 천년이 넘는 고목으로 한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이제는 국가에서 천연기념물로 보호합니다. 혹시 나무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국민의 세금으로 링거까지 놓아주며 관리를 합니다. 비록 말 못하는 나무도 한 자리를 오래 동안 지키고 있으니 사람들이 특별한 나무로 지정하고 특별한 관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의 자리와 예배의 자리를 잘 지킵시다. 우리는 한 자리를 1,100년 동안 지킬 수는 없지만 밤낮으로 기도의 자리를 지킵시다. 기도가 잘 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하시고, 기도는 안 되고 졸리고 지루한 시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 앞에 머무른다는 심정으로 기도의 자리를 지킵시다. 변함없이 기도의 자리를 지키면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특별하게 보실 것입니다. 하늘의 천연기념물로 삼아주시고 천사들을 통해서 특별히 돌봐주실 것입니다.
6. 하나님 앞에 펼쳐놓기입니다.
왕하 19:14입니다.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히스기야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하나님과 히스기야를 조롱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 편지를 가지고 성전에 올라가서 펼쳐놓고 하나님께 그때의 사정을 그대로 아뢰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하나님을 조롱하니 하나님이 구원해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제가 이 기도의 방법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만난 상황과 심정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아뢰는 것입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괴로우면 괴롭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있는 그대로 아뢰십시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미우면 밉다고, 그에게 화가 나면 화난다고 그대로 말씀드리십시오. 마음속에는 미움이 가득한데 그 감정은 숨겨놓고 “주여! 사랑하길 원합니다.”라고 기도하기 전에 먼저 그가 밉다고 말씀드리십시오. 그 후에 미움은 죄이니까 하나님께 회개하고 미움의 감정을 처리 받아야 합니다.
예전에 한 분이 교회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어떤 일로 오해를 하더니 그 마음에 섭섭함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면서 귀신이 역사를 하니 교회에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자기만 시험에 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흔들어놓았습니다. 제가 그 상황을 파악하고는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저는 그때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보고하듯이 기도했습니다. 그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달라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그 사람의 행동과 사람들의 반응과 교회의 형편 그리고 제 입장과 감정을 그대로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놀랍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처리해주시고, 교회에 몰아치던 시험의 폭풍을 잠잠하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하고 약 5년 동안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카드 5개로 돌려막기를 했는데 카드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하루는 제 아내가 하나님께 “하나님 돈 좀 주세요. 헌금할 돈도 없어요. 하나님! 헌금하게 돈 좀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전도사님 한 분이 와서 제 아내에게 빵을 주었습니다. “사모님! 아이들 먹이세요.”, “감사합니다.” 전도사님이 돌아가자 제 아내가 교회 문을 걸어 잠그고 하나님께 따지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언제 빵 달라고 했어요. 돈 달라고 했지요.”하나님께 따지듯이 자기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기도했습니다. 어쩌면 그 기도는 망령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감히 피조물 주제에 창조주에게 상한 감정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피조물 주제에 창조주에게 따질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기도도 받아주시는 넓은 분이십니다. 그 일이 있고 돌아오는 주일에 제 아내는 둘째 아들을 안고 유아실에 있었으나 주일이 되었는데 헌금할 돈도 없어서 마음이 많이 상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제 아내의 손을 잡고 “사모님! 이거 쓰세요.” 하더랍니다. 손을 펼쳐보니 10만 원짜리 수표가 있었습니다. 제 아내는 교회 앞 슈퍼에 가서 현금으로 바꾸어 그날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의 재정문제를 풀어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거창고등학교 전영창 교장 선생님 이야기입니다. 6.25 직후에 그분이 미국 유학 마치고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려고 거창고등학교 맡았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부채로 넘어가게 생겼습니다. 그분은 학교에서 좀 떨어진 산 속 굴에 들어가서 7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사흘이 지나도 응답은 없고 마음은 답답했습니다. 그때 그분은 고상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감정을 하나님께 숨김없이 표현했고 심지어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무리 기도를 해도응답이 없으니 답답합니다. 정 이렇게 응답을 없으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1주일 금식을 작정했으니 1주일은 채우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1주일이 지나도 응답이 없다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저는 서울로 올라가서 동아일보에 ‘하나님은 없다’고 광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협박 같은 기도를 하고 났더니 속이 시원해지더니 응답에 대한 확신이 왔습니다. 금식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와 보니 미국에서 어느 성도가 보낸 2,050달러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엄청나게 큰 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영창교장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그때의 사정과 자기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펼쳐놓고 하나님께 따지듯이, 하나님을 협박(?)한 기도에 응답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히스기야가 편지를 펼쳐놓고 기도한 것 같이 내 사정과 감정과 소원을 숨김없이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7. 찬송 부르기입니다.
종교개혁 이전의 예배에는 회중이 함께 부르는 찬양시간이 없었습니다. 4세기에 열린 라오디게아 총회에서 회중들의 찬양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예배시간에 모인 성도들은 찬양대가 라틴어로 부르는 뜻도 모르는 찬양을 들었습니다. 또 성직자들이 읽어주는 라틴어 말씀을 멀뚱멀뚱 듣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종교 개혁을 일으키고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였고, 또 회중들이 함께 찬양할 수 있도록 독일어 찬양을 직접 작사, 작곡했습니다. 루터는 회중들이 따라 부르기 쉽도록 당시 유행하던 멜로디에 찬양 가사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많은 찬송을 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찬송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대하 20:21,22입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역대하 20장에 보면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유다를 치려고 군사를 동원했습니다. 유다는 적들을 이길 능력이 없었습니다.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두려워서 백성들을 모으고 하나님에 기도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영이 야하시엘에게 임하셨고, 그를 통해서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전쟁에 승리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성가대를 조직해서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찬송을 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적들을 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역사한 것 같습니다. 희한한 일이 벌어졌는데 적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치고 박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그 무리를 보니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고,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이 전멸했습니다. 유다의 여호사밧 왕의 군대는 찬송으로 승리했습니다.
저는 어떤 때는 몇 시간 기도하는 것보다 찬송 한곡을 통해서 더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아마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그런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라고 말하는데 맞습니다. 우리는 찬송을 부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정까지 하나님께 토로할 수 있습니다.
조용순 권사님의 간증을 읽었습니다. 그분은 큰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땅이 공원부지로 묶였습니다. 땅이 공원부지가 된다는 말은 국가에 땅을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권사님은 너무 기가 막혀서 기도할 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그 땅에 가서 찬송만 불렀습니다.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 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날마다 이 찬송을 1절만 100번씩 불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공원부지가 취소되어서 그 땅을 70억에 팔았습니다. 조권사님에게 찬송은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와 같은 찬송을 받으시고 응답해주셨습니다.
찬송을 기도처럼 하려면 한 곡 혹은 한 절 혹은 한 소절을 반복적으로 부르면서 그 찬송에 나의 마음과 감정과 기도를 실어서 불러보세요. 찬송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불러서 응답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재즈의 화음은 하나님의 위로다. 재즈의 악센트는 하나님의 은총이다”라며 자신의 앨범을 하나님께 바친 재즈 피아니스트인 곽윤찬 성도입니다.
그는 아내가 임신했을 때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라는 찬양을 수도 없이 불렀습니다. 이 곡을 많이 부른 이유는 아내가 임신 5개월 정도 되었을 때, 담당 의사는 태아의 뇌실이 커서 정상아로 태어날 확률이 적다고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몇 년을 기다려 어렵게 생긴 아이라 계속 안 좋은 생각만 들었습니다. 의사는 한 달 후에 정밀검사를 하자고 했지만 안색이 안 좋아 보였습니다.
며칠 후 그는 미국 보스턴의 공연 때문에 비행기를 탔는데, 아무리 참으려 해도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그는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라는 가사를 멀리 떨어진 태중의 아기를 향해 ‘주의 영광 그곳에 가득해’로 바꾸어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뉴욕에 도착해 보스턴까지 이동하는 내내 그는 그 곡을 300번도 더 불렀습니다. 공연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 달 내내 그 찬양을 불렀습니다. 드디어 한 달이 지나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긴 시간 동안 정밀검사를 받고는 눈물을 흘리며 검사실을 나왔습니다. “정상으로 돌아왔데...” 아내의 눈물은 너무 감격스러워서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그는 북받쳐 오는 감사를 다시 노래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다시 그 곡을 불렀습니다. ‘주의 영광 그곳에 가득해’ 그리고 그는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나의 영원한 찬양 제목이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기도를 못하시는 분들은 찬송을 하세요.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찬송에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여러분의 감정과 간구를 실어서 하나님께 올려드리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보게 될 것입니다.
8. 주여 부르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여 삼창을 하는데 어떤 분은 주여 삼창의 근거가 단 9:19이라고 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저는 이 말씀이 주여 삼창의 근거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주여 삼창을 자주합니다. 우리가 주여 삼창을 하는 이유는 마음의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부산에서 목회를 하시는 한성택목사님이 인도하는 목양집회에 가보니 “주여!” 천 번을 부르기도 하더군요.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주여!”를 천 번 부르다가 보면 어느 순간 “주여”에 내 인격 전체를 실어서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여!”를 부르다가 기도가 터지고 눈물이 터지고 응답을 받는 경험을 했습니다.
여러분! 기도가 안 되면 “주여!” 또는 “예수님”, “아버지”, “하나님!”, “성령님!”만 부르세요. 그렇게 부르면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감정과 사정을 거기에 실어서 올려드리십시오. 분명히 주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어릴 적에 어머니에게 용돈 타내던 방법입니다. 그 목사님은 부엌에서 일하는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10원만주세요.”, “돈 없어”, “엄마! 10원만”, “없다니까”, “엄마! 10원만”, “없다는데 얘가 왜 이래”, 이렇게 실랑이를 하다보면 “10원만도” 필요 없습니다. “엄마~ 어이”, “엄마~ 어이” 나중에는 “엄마~, 엄마~”만 부릅니다. 그런데 엄마를 부르지만 그 속에는 “10원만”이 감춰져있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그렇게 엄마만 찾았는데 결국 엄마는 10원을 주시더랍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주여!”만 불러도, “하나님!”만 부르고, “아버지!”만 불러도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응답하십니다.
제가 과거에 영성운동을 할 때 목사님들이 오셔서 제게 상담을 받았습니다. 한 번은 임00목사님을 상담을 하는데 성령님이 제 마음에 주신 감동이 있어서 “목사님! 하루에 예수님을 천 번만 찾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목사님이 저의 상담을 받은 그날 친척 중에 강견화로 죽어가는 환자 심방했습니다. 그 환자는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의사가 며칠 넘기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임목사님은 그분이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않았는데 “예수님을 하루에 천 번씩 부르세요.”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친척 분이 생명이 위급하니까 목사님의 말대로 예수님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예수님을 부르기만 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놀랍게도 다음 날 그분의 병세가 갑자기 호전 되어 건강을 되찾고 퇴원을 하였습니다. 제가 볼 때 그분도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하다가 자기의 마음과 감정과 형편을 실어서 예수님을 부르게 되었을 것이고 그런 과정 중에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체험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주여! 주여!”하며 예수님을 찾으시면서 “주여!”라는 말 속에 자기의 마음과 생각과 감정과 소원을 실어드리세요.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보게 될 것입니다.
9. 반복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다 보면 같은 기도를 반복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반복적인 기도는 믿음이 없는 기도라며 믿음의 기도는 한 번만 하고 끝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마 26:41입니다.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있었는데, 감정적으로는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세 번이나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이 믿음이 없어서 같은 기도를 반복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확정하시기까지 기도하신 것입니다.
엘리야도 반복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왕상 18:42,43입니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하나님께 비를 내려주시기를 구했습니다. 그는 한 번 기도한 후에 사환에게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구름의 동태를 살피게 했습니다. 그렇게 일곱 번 한 후에 사환이 사람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있다고 보고를 하자 사환을 아합 왕에게 보냈습니다. 사환에게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라고 말하게 했습니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야는 같은 기도를 일곱 번이나 했습니다.
한무교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이분은 경상도 남자이고 군인출신입니다. 좋은 분이지만 굉장히 무뚝뚝하고, 말이 강해서 사람들에게 상처주기 딱 좋은 타입니다. 한목사님에게는 특별한 장점이 있습니다. 기도응답을 잘 받아냅니다. 제가 기도응답을 잘 받아낸다고 표현을 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분에게 기도 제목이 있어서 기도를 시작하시면 같은 기도를 반복합니다. 언제까지 반복하냐면 응답을 받을 때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분에게 1천만 원이 필요하다면 이분은 강단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하나님! 천만 원 주세요. 하나님! 천만 원 주세요. 하나님! 천만 원 주세요.” 이렇게 같은 기도를 응답의 확신이 올 때까지 혹은 천만 원이 목사님의 손에 들어올 때까지 반복합니다. 다른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오직 천만 원에 집중해서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한목사님은 반복 기도로 풍성한 응답을 누리셨습니다.
반복 기도로 스코틀랜드를 구한 사람이 있습니다. 존 낙스입니다. 가톨릭 신자였던 메리여왕은 스코틀랜드의 개신교 신자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존 낙스는 그 소식을 듣고 자기 서제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 스코틀랜드를 저에게 주십시오. 아니면 저를 죽여주십시오.”이었습니다. 그는 몇 시간씩 반복해서 “하나님 스코틀랜드를 저에게 주십시오. 아니면 저를 죽여주십시오.”라고 반복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존 낙스에게 응답하셨습니다. 메리 여왕이 존낙스를 죽이기 전에 하나님이 메리 여왕을 먼저 죽이셨습니다. 메리 여왕은 죽기 전에 “존 낙스 한 사람의 기도가 백만 대군보다 무섭다”고 했습니다.
반복기도는 기도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은 같은 기도를 반복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다면 응답하시고, 때로는 자녀의 간청이 부모의 뜻에 맞지 않지만 부모가 자녀의 집념에 져주듯이 하나님도 우리에게 져주시기도 하십니다.
여러분이 가진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반드시 응답 받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기도에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언제까지요? 기도응답이 올 때가지입니다.
오늘도 기도의 방법 다섯 가지를 나누었습니다.
5. 하나님 앞에 머무르기입니다.
6. 하나님 앞에 펼쳐놓기입니다.
7. 찬송 부르기입니다.
8. 주여 부르기입니다.
9. 반복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