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클럽하우스라는 소셜미디어가 국내 들어오면서 짧고 굻게 대단한 인기를 누린 적이 있었다. 이 소셜미디어는 텍스트나 이미지, 영상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음성만 사용하는 sns였다. 본래의 목적은 그 이름처럼 한 사람의 연사와 소수의 토론자들의 이야기를 많게는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라이브로 함께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이폰 등 애플 생태계에서만 출시했는데도 전 세계적 붐이 일어났다.
국내에서도 유명 영화배우, 래퍼 등 유명인 몇 명이 접속해서 팬들이 좋아했었다. 방송도 아닌 같은 온라인 방에 접속해서 유명인들과 직접 대화를 주고받고 또 그것을 들을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근데 이게 또 한국에 들어오니 로컬라이징 되어서 유명인들과의 대화보단 낮선 사람들과 음성으로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 놓는 방으로 인기가 높았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시들했지만, 초창기 이용자 입장으로 당시의 열기는 굉장했더랬다. 어느 정도였는고 하니, 어제 저녁때 열린 방이 자고 일어나서 출근 시간이 되어도 그대로 진행될 정도였다. 밤 새서 대화한 것이다. 이 초기 기간 동안 하루 1, 2시간 수면하면서 클럽하우스를 했다는 분들을 종종 만나볼 수 있었다. 낮에 직장에서 틈틈이 자면서 밤에는 클럽하우스를 했다 하니, 아마도 친밀감에 고팠던 현대인들에게 목소리로 밤새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나보다.
인기가 있다보니, 문화도 생겼다. 클럽하우스에서 유행하던 헤어질 때는 다들 이렇게 인사했다. "현생하러 갈께요." ‘현생하다’는 ‘현실 생활을 하다’의 준말로, 클럽하우스를 로그아웃하고 이제 현실세계의 삶을 살아가기/유지하기 위해 나가는 것을 의미했다. 단순히 한 온라인 서비스에서 로그아웃하는 행위일 뿐인데 이를 지칭하는 단어가 생긴 것이다. 몰입된 나머지 마치 클럽하우스 경험이 진짜이고, 현실이라는 가상공간으로 접속하러 간다는 뉘앙스마저 느껴진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메타버스형 교회에서 헌신된 성도들이 주말사역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간다는 것이 마치 이런 클럽하우스의 "현생" 경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생하게 된 클럽하우스 이용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해 본다. 현생하는 동안 이 현생(직장, 학교, 육아 등)을 빨리 마치고 다시 클럽하우스로 접속하기를 바란다. 그 기간동안 자신은 마치 클럽하우스 경험을 위해서 사는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그것이 활력이 되기에 일상에서도 뭔가 주변 사람들이 변화를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서비스에 대한 몰입이 떨어지는 순간이다. 어쨌든 클럽하우스는 현실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면 다시 원래의 삶의 형태를 찾게 될 것이다. ‘아 클럽하우스가 가상공간이고 여기가 현실이었지’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자연히 접속률이 떨어지게 되겠다. 여전히 매력을 느껴서 반복적으로 꾸준히 접속하는 일부 충성도 높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인기가 하락한다. 한국 클럽하우스 서비스가 겪어온 길이다.
메타버스형 교회는 분명 어느 시점까지는 교회에 몰입시킨다는 장점을 지녔고, 성도들 역시 매주 교회를 다니며 매력을 느껴왔고 충성도를 높여 왔다. 하지만 실생활에 영향을 주기 원하는 교회이면서도 현실과는 단절된 메타버스형 교회는 매주 “현생”하는 경험을 하는 성도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 주말의 분주함과 주중의 분주함을 모두 감당하기 힘든 세대들은 점차로 현생을 넘어서 현실에만 살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근데 또 하필 그 때 코로나가 터졌다. 사람들은 장기간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메타버스형 교회에서 이것을 ‘대규모의 강제 현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성도가 높던 성도들일수록 그 경험은 낮선 것이다. 그 중 일부는 이전의 방식을 계속 그리워 하겠지만, 또 그 중 일부는 메타버스형 교회 밖의 삶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된다. 코로나로 인한 초장기간 동안 이루어 지고 있는 역대급 규모의 "강제 현생". 이것이 현재 교회의 경험인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초점맞춰지고 나면 메타버스형 교회로 돌아오기가 어려워진다.
이렇게 보면, 코로나로 인한 교회의 위기는 사실 메타버스형 교회구조의 위기였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문제, 점점 더 커져 가고 있던 메타버스형 교회는 현대 사회에서 지속되기 어렵다는 취약점을 매력과 몰입으로 유지해 왔던 것을 코로나가 폭발시켜 버린 셈이다.
기존 교회를 메타버스형 교회로 보았기 때문에 생기는 강점과 단점이 분명해 졌다. 강점은 클럽하우스처럼 몰입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한 번 장기간의 현생을 경험하고 나면, 다시 그 의미를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메타버스형 교회의 회복 대신에 새로운 해결책에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세습을 받아들이는 초대형 교회들, 그리고 거기에서 총회까지 진행하게 되는 최근의 한계들은 메타버스형 서비스의 크기만 늘리면 된다고 믿는 교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이제 흥미를 가져보자. 메타버스형 교회구조의 한계를 벗어난 새로운 구조는 어떠해야 할까? 그것은 로그인과 로그아웃이 없는 형태, 교회생활과 현생 모두에서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또 어떤 비유로 풀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