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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조실당(擧措失當)
조치가 정당하지 않다는 뜻으로, 모든 조치가 정당하지 않은 횡포를 뜻한다.
擧 : 들 거
措 : 둘 조
失 : 잃을 실
當 : 당할 당
이 성어는 사기(史記) 제6권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전한다.
진시황(秦始皇) 26년(B.C. 221년) 진나라는 위(魏), 한(韓), 조(趙), 연(燕), 제(齊), 초(楚) 6국을 멸하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진시황은 곧이어 전국을 36개 군(郡)으로 나누고 도량형(度量衡)을 통일하였다. 이듬해, 위덕(威德)을 선양하기 위하여 진시황은 천하를 순수(巡狩)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219년, 진시황이 남쪽으로 낭야산(琅邪山)에 올라서 매우 기뻐하며 석 달을 머물렀다. 이때 백성 3만 호를 낭야산 아래로 이주시키고 그들에게 12년간의 부세와 요역을 면제시켜 주었다. 낭야대(琅邪臺)를 지어 비석을 세우고 비문을 새겨서 진의 공덕을 노래하면서 자기의 의기양양한 심정을 나타내었다.
憂恤黔首, 朝夕不懈, 除疑定法, 咸知所辟.
우휼검수, 조석불해, 제의정법, 함지소벽.
方伯分職, 諸治經易, 擧錯必當, 莫不如畫.
방백분직, 제치경역, 거착필당, 막불여화.
皇帝之明, 臨察四方.
황제지명, 임찰사방.
비문(碑文)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진시황(秦始皇)께서는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아침이나 저녁이나 게으름을 피지 않으시고, 의혹을 제거하고 법령을 제정하시니 백성들이 모두 법으로 금한 일을 피할 줄 알게 되었다. 지방장관의 직무가 나뉘어서 모든 정무의 시행이 용이해지고, 모든 조치가 타당하여 바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 황제께서는 현명함으로 사방을 살피셨으니.
거착필당(擧錯必當)이 나중에 정반대의 뜻인 거조실당(擧措失當)으로 바뀌었다. 거조실당이란 조치가 정당하지 않음을 뜻한다.
낭야산(琅邪山)은 지금의 산동성 교남현 동남쪽에 있다. 진시황 이전에 전국 시대 월(越)나라 구천(句踐)이 이곳에 누대(樓臺)를 세워 동해(東海)를 바라보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진시황의 낭야대와는 별개이다.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秦始皇帝者, 秦莊襄王子也.
진시황제(秦始皇帝)는 진(秦) 장양왕(莊襄王)의 아들이다.
莊襄王爲秦質子於趙, 見呂不韋姬, 悅而取之, 生始皇.
장양왕이 진(秦)나라의 질자(質子)로서 조(趙)나라에 있을 때 여불위(呂不韋)의 첩을 보고 반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해 시황(始皇)을 낳았다.
以秦昭王四十八年正月生於邯鄲, 及生, 名爲政, 姓趙氏.
시황은 진 소왕(秦昭王) 48년 정월 한단(邯鄲)에서 태어났는데, 출생하자 이름을 정(政), 성을 조(趙)라 했다.
年十三歲, 莊襄王死, 政代立爲秦王.
13세 때 장양왕이 죽자 정이 왕위를 계승해 진왕(秦王)이 되었다.
(…)
分天下以爲三十六郡, 郡置守、尉、監.
천하를 36개 군으로 나누어 군마다 수(守), 위(尉), 감(監)을 두었다.
更名民曰 黔首, 大酺.
백성을 일컫는 말을 바꾸어 검수(黔首)라고 하고, 전국에 큰 연회를 베풀었다.
收天下兵, 聚之咸陽, 銷以爲鍾鐻, 金人十二, 重各千石. 置廷宮中.
천하의 병기를 수집해 함양(咸陽)에 모아 놓고, 그것을 녹여서 종거(鍾鐻)와 12개의 동인상(銅人像)을 만들었는데 무게가 각각 1천 석(石)이었다. 모두 궁전 안에 놓아두었다.
一法度衡石丈尺, 車同軌, 書同文字.
법률과 도량형을 통일하고 수레의 궤폭을 통일했으며, 문자의 서체를 통일했다.
地東至海曁朝鮮, 西至臨洮 羌中, 南至北嚮戶, 北據河爲塞, 並陰山至遼東.
영토가 동쪽으로는 동해(東海), 조선(朝鮮)에까지 이르고, 서쪽으로는 임조(臨洮), 강중(羌中)에까지 이르며, 남쪽으로는 북향호(北嚮戶)에까지 이르고, 북쪽으로는 황하를 근거지로 해 요새를 쌓아서 음산(陰山)을 끼고 요동(遼東)에까지 이르게 했다.
徙天下豪富於咸陽十二萬戶.
전국의 부호(富豪) 12만 호를 함양으로 이주하게 했다.
諸廟及章臺 上林皆在渭南.
조묘(祖廟), 장대궁(章臺宮), 상림원(上林苑)이 모두 위수(渭水)의 남쪽 언덕에 있었다.
秦每破諸侯, 寫放其宮室, 作之咸陽北阪上,
南臨渭, 自雍門, 以東至涇渭, 殿屋複道周閣相屬,
所得諸侯美人鍾鼓, 以充入之.
이것들은 진나라가 제후들을 평정할 때마다 그 나라의 궁실을 모방해 함양의 북쪽 산기슭에 지은 것인데, 남쪽으로는 위수가 흐르고 옹문(雍門) 동쪽에서 경수(涇水), 위수(渭水)에까지 이르며, 궁전 사이의 구름다리와 주각(周閣)이 서로 연이어졌고, 제후들에게서 뺏은 미인과 종고(鍾鼓)가 이곳을 메웠다.
二十七年
二十七年, 始皇巡隴西 北地, 出雞頭山, 過回中.
27년, 진시황은 농서(隴西), 북지(北地)를 순무하고, 계두산(鷄頭山)을 지나서 회중궁(回中宮)을 경유했다.
焉作信宮渭南. 已更命信宮爲極廟, 象天極.
위수 남쪽에 신궁(信宮)을 지었다. 얼마 후에 신궁을 극묘(極廟)라고 개명해 북극성을 상징했다.
自極廟道通酈山, 作甘泉前殿. 築甬道, 自咸陽屬之.
극묘에서부터 여산(酈山)까지 길을 뚫고, 감천궁(甘泉宮)의 전전(前殿)을 지었으며, 용도(甬道)를 수축해 함양까지 통하게 했다.
是歲, 賜爵一級. 治馳道.
이해에 작위를 한 등급씩 하사했다. 치도(馳道)를 수축했다.
二十八年
二十八年, 始皇東行郡縣, 上鄒嶧山, 立石.
28년, 진시황이 동쪽으로 군현을 순무하던 중에 추역산(鄒嶧山)에 올라 비석을 세웠다.
與魯諸儒生議, 刻石頌秦德, 議封禪望祭山川之事.
노(魯) 땅의 유생들과 상의해 비석에 진(秦)의 공덕을 노래하는 내용을 새겼으며, 봉선(封禪)과 여러 산천에 대한 망제(望祭)의 일을 논의했다.
乃遂上泰山, 立石, 封, 祠祀.
그리고는 마침내 태산(泰山)에 올라서 비석을 세우고, 토단을 쌓아서 하늘에 제사 지냈다.
下, 風雨暴至, 休於樹下, 因封其樹爲五大夫.
제사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 나무 아래서 잠시 쉬었는데, 이 일로 인해서 그 나무를 오대부(五大夫)로 봉했다.
禪梁父, 刻所立石, 其辭曰;
이어 양보산(梁父山)에서 땅에 제사 지내고, 비석을 세워서 글을 새겼는데 그 비문은 다음과 같다.
皇帝臨位, 作制明法, 臣下脩飭,
二十有六年, 初幷天下, 罔不賓服.
황제께서 제위에 오르시어 밝은 법도를 창제하시니 신하들은 몸을 닦고 언행을 삼갔으며, 26년에 처음으로 천하를 통일하시니 제후들이 신하로서 조현(朝見)하지 않는 자 없었다.
親巡遠方黎民, 登茲泰山, 周覽東極,
從臣思跡, 本原事業, 祗誦功德.
황제께서 친히 먼 지방의 백성들에게까지 순무해 이 태산에 올라 동쪽 끝을 바라보시니, 따르던 신하들이 지나간 일들을 회상하고 사업의 근원을 생각하며 황제의 공덕을 찬송했다.
治道運行, 諸産得宜, 皆有法式,
大義休明, 垂于後世, 順承勿革.
치국(治國)의 도가 행해지자, 모든 일들이 마땅함을 얻고 모든 법식(法式)이 생겨, 대의(大義)가 아름답게 드러나 후세에 널리 전해지며, 영원토록 계승되어 변함이 없으리라.
皇帝躬聖, 旣平天下.
황제께서 친히 정사를 베푸시어 이제 천하를 평정했도다.
不懈於治. 夙興夜寐, 建設長利, 專隆敎誨.
천하를 다스림에 게을리 하지 않으시니, 아침 일찍 일어나시고 밤늦게 주무시면서 백성들을 위해 장구(長久)한 이익을 세우시고, 백성들에 대한 가르침과 깨우침에 전념하셨다.
訓經宣達, 遠近畢理, 咸承聖志,
貴賤分明, 男女禮順, 愼遵職事.
경전(經典)을 두루 가르치시니 원근이 모두 다스려지고 백성들이 모두 황제의 성스러운 뜻을 받들며, 귀천이 분명하게 나뉘고 남녀가 예의를 따르며, 자신의 직분을 신중하게 준수했다.
昭隔內外, 靡不淸淨, 施于後嗣, 化及無窮.
안과 바깥이 밝게 구분되고 깨끗하지 않음이 없으니 후세에까지 덕정(德政)이 이어지며 교화의 미침이 무궁하리라.
遵奉遺詔, 永承重戒.
황제의 유조(遺詔)를 받들어 엄중한 훈계를 영원히 계승할지어다.
於是乃並勃海以東, 過黃 腄, 窮成山,
登之罘, 立石頌秦德焉而去.
그리고 발해(勃海)를 끼고 동쪽으로 향해 황현(黃縣), 추현(腄縣)을 지나 성산(成山)에 오르고 지부산(之罘山)에 올라, 비석을 세우고 진(秦)의 공덕을 노래한 후 떠났다.
南登琅邪, 大樂之, 留三月.
진시황이 남쪽으로 낭야산(琅邪山)에 올라서 매우 기뻐하며 석 달을 머물렀다.
乃徙黔首三萬戶琅邪臺下, 復十二歲.
이때 백성 3만 호를 낭야산 아래로 이주시키고 그들에게 12년간의 부세와 요역을 면제시켜 주었다.
作琅邪臺, 立石刻, 頌秦德, 明得意. 曰;
낭야대(琅邪臺)를 지어 비석을 세우고 비문을 새겨서 진의 공덕을 노래하면서 자기의 의기양양한 심정을 나타내었다.
維二十八年, 皇帝作始, 端平法度, 萬物之紀,
以明人事, 合同父子, 聖智仁義, 顯白道理.
28년에 황제께서 처음으로 황제에 즉위하자 법도를 바로잡아 만물의 준칙으로 삼고, 인사(人事)를 밝히시니 부자지간이 화목하고, 성지(聖智)와 인의(仁義)로써 모든 도리를 분명히 드러내셨다.
東撫東土, 以省卒士.
또한 동쪽 땅을 순무하시고 군사들을 살펴보셨다.
事已大畢, 乃臨于海.
대사(大事)가 다 끝나자 해안지역까지 왕림하셨다.
皇帝之功, 勸勞本事, 上農除末,
黔首是富, 普天之下, 摶心揖志.
황제의 공적은 근본적인 대사를 부지런히 힘쓰신 것이며, 농업을 숭상하고 상업을 억제해 백성들을 풍요롭게 하니 천하의 백성들이 마음을 하나로 하고 뜻을 모았다.
器械一量, 同書文字.
각종 기물의 도량(度量)을 통일하고 문자의 서체를 통일했다.
日月所照, 舟輿所載, 皆終其命, 莫不得意.
무릇 해와 달이 비추는 곳과 배와 수레가 다니는 곳은 어디나 황제의 명이 행해지니 뜻을 얻지 못하는 자가 없었다.
應時動事, 是維皇帝, 匡飭異俗, 陵水經地,
憂恤黔首, 朝夕不懈. 除疑定法, 咸知所辟.
사시(四時)의 변화에 따라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오직 황제이시니, 다른 풍속을 바로잡고자 산을 넘고 물을 건너셨으며, 백성들을 가엾게 여겨 아침이나 저녁이나 게으름피지 않으시고, 의혹을 제거하고 법령을 제정하니 백성들이 모두 법으로 금한 일을 피할 줄 알게 되었다.
方伯分職, 諸治經易, 擧錯必當, 莫不如畫.
지방장관의 직무가 나뉘어서 모든 정무의 시행이 용이해지고 모든 조치가 타당해 바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
皇帝之明, 臨察四方, 尊卑貴賤,
不踰次行, 姦邪不容, 皆務貞良.
황제께서 현명하심으로 사방을 두루 살피시니, 존귀한 사람이나 비천한 사람이나 모두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간교하고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고 모두 충정(忠貞)과 선량함을 힘써 구했다.
細大盡力, 莫敢怠荒, 遠邇辟隱,
專務肅莊, 端直敦忠, 事業有常.
작은 일이나 큰일을 막론하고 힘을 다해 감히 태만하거나 소홀히 함이 없으며, 멀건 가깝건 혹은 편벽한 곳에 사는 사람일지라도 오로지 엄숙과 장중함에 힘쓰고, 정직하고 충성되어야만 하는 일이 꾸준히 지속될 수 있었다.
皇帝之德, 存定四極. 誅亂除害, 興利致福.
황제의 덕이 사방의 끝까지 안정시켰다. 난리를 일으킨 자들을 토벌해 해악을 제거하고 이로움을 일으켜서 복을 이루셨다.
節事以時, 諸産繁殖, 黔首安寧,
不用兵革, 六親相保, 終無寇賊.
농번기에는 노역(勞役)을 줄여주니 모든 산업이 번성했으며, 백성들이 편안해지니 무기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육친(六親)이 서로 의지하며 보살피니 마침내 도적이 없어졌다.
驩欣奉敎, 盡知法式.
백성들이 모두 교화를 기쁘게 받들며 법령과 제도를 다 이해했다.
六合之內, 皇帝之土, 西涉流沙, 南盡北戶,
東有東海, 北過大夏, 人跡所至, 無不臣者.
천지사방이 모두 황제의 영토이니, 서쪽으로는 유사(流沙)를 건너고 남쪽으로는 북호(北戶)까지 이르며 동쪽으로는 동해(東海)를 포함하고 북쪽으로는 대하(大夏)를 지나, 사람의 발자취가 이르는 곳에는 신하라고 칭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功蓋五帝, 澤及牛馬. 莫不受德, 各安其宇.
황제의 공적은 오제(五帝)보다 뛰어났고, 은택이 소와 말에게까지 미쳤으며, 은덕을 받지 않은 자 없어 각자 평안한 생활을 영위했다.
維秦王兼有天下, 立名爲皇帝, 乃撫東土, 至于琅邪.
진왕께서 천하를 통일하시어 이름을 세워서 황제라고 칭하고, 동쪽 영토를 순무해 낭야에 이르셨다.
列侯武城侯王離, 列侯通武侯王賁,
倫侯建成侯趙亥, 倫侯昌武侯成, 倫侯武信侯馮毋擇,
丞相隗林 丞相王綰, 卿李斯, 卿王戊,
五大夫趙嬰, 五大夫楊樛 從, 與議於海上.
열후(列侯)인 무성후(武城侯) 왕리(王離)와 통무후(通武侯) 왕분(王賁), 윤후(倫侯)인 건성후(建成侯) 조해(趙亥)와 창무후(昌武侯) 성(成), 무신후(武信侯) 풍무택(馮毋擇), 승상인 외림(隗林)과 왕관(王綰), 경(卿)인 이사(李斯)와 왕무(王戊), 오대부(五大夫)인 조영(趙嬰)과 양규(楊樛) 등이 황제를 수행하며 해상에서 황제의 공덕을 함께 의론했다.
曰; 古之帝者, 地不過千里, 諸侯各守其封域,
或朝或否, 相侵暴亂, 殘伐不止, 猶刻金石, 以自爲紀.
고대의 제왕들은 영토가 사방 천리에 불과했지만 제후들이 각기 자기의 봉토만을 지키면서 어떤 이는 입조(入朝)하고 어떤 이는 입조하지 않으며, 서로 침략해 폭란(暴亂)을 일삼으며 잔살(殘殺)함이 그치지 않았음에도 금석(金石)에 글을 새겨 스스로를 기념했다.
古之五帝三王, 知敎不同, 法度不明,
仮威鬼神, 以欺遠方, 實不稱名, 故不久長.
또 옛날 오제와 삼황(三皇)은 알고 있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달라서 법도가 분명하지 않게 되자, 귀신의 위세를 빌려 먼 곳을 속이니 실제가 명분과 달랐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其身未歿, 諸侯倍叛, 法令不行.
몸이 미처 죽기도 전에 제후들이 배반하고 법령이 실행되지 않았다.
今皇帝幷一海內, 以爲郡縣, 天下和平.
지금 황제께서 천하를 통일하시고 군현을 만드시니 천하가 평화로워졌다.
昭明宗廟, 體道行德, 尊號大成.
종묘를 밝히시고 도를 나타내며 덕을 실행하시어 존경스러운 호칭이 크게 이루어졌다.
群臣相與誦皇帝功德, 刻于金石, 以爲表經.」
군신이 서로 함께 황제의 공덕을 노래하며 금석에 새겨 본보기로 삼고자 한다.
旣已, 齊人徐市等上書, 言海中有三神山,
名曰蓬萊 方丈 瀛洲, 僊人居之. 請得齋戒, 與童男女求之.
於是遣徐市發童男女數千人, 入海求僊人.
일을 마치자 제(齊)나라 사람 서불(徐市) 등이 상서(上書)해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 세 개의 신산(神山)이 있는데,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이라 하며 거기에는 신선들이 살고 있습니다. 청하건대 재계하고 나서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데리고 신선을 찾아 나서게 하소서.”라고 하자, 서불을 보내 수천 명의 동남동녀를 선발해 바다로 들어가서 신선을 찾도록 했다.
始皇還, 過彭城, 齋戒禱祠,
欲出周鼎泗水, 使千人沒水求之, 弗得.
진시황이 돌아오면서 팽성(彭城)을 지날 때, 재계하고 사당에서 기도한 후, 사수(泗水)에 빠진 주정(周鼎)을 꺼내기 위해서, 천여 명을 보내 물속에 들어가서 정을 찾도록 했으나 얻지 못했다.
乃西南渡淮水, 之衡山 南郡,
浮江, 至湘山祠, 逢大風, 幾不得渡.
그러자 서남쪽으로 회하(淮河)를 건너 형산(衡山), 남군(南郡)으로 갔다가, 장강(長江)의 물줄기를 타고 상산사(湘山祠)에 이르렀으나, 마침 큰 바람을 만나서 하마터면 강을 건너지 못할 뻔했다.
上問博士曰; 湘君神?
博士對曰; 聞之, 堯女, 舜之妻, 而葬此.
진시황이 박사(博士)들에게 “상군(湘君)은 어떤 신인가?” 하고 묻자, 박사들이 “요(堯)임금의 여식으로서 순(舜)임금의 아내가 되었는데, 죽어서 이곳에 묻혔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於是始皇大怒, 使刑徒三千人皆伐湘山樹, 赭其山.
그러자 진시황이 크게 노하여 복역형 죄수 3천 명을 보내 상산(湘山)의 나무를 모두 베게 해 그 산을 붉은 벌거숭이로 만들었다.
上自南郡由武關歸.
시황제가 남군으로부터 무관(武關)을 거쳐 도성으로 돌아왔다.
- 하략(下略) -
▶ 擧(거)는 회의문자로 举(거), 挙(거), 㪯(거)는 통자(通字), 舁(거)와 동자(同字), 举(거)는 약자(略字)이다. 擧(거)는 음(音)을 나타내고 더불어 같이하여 정을 주고 받는다는 與(여, 거)와 손(手)으로 물건을 들어 올린다는 뜻이 합(合)하여 들다를 뜻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움직일 동(動), 옮길 반(搬), 흔들 요(搖), 옮길 운(運), 할 위(爲), 옮길 이(移),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온 나라 모두를 거국(擧國), 온 국민이 모두 한마음 한 뜻으로 뭉치어 하나로 됨을 거국일치(擧國一致), 일에 나서서 움직이는 태도를 거동(擧動), 어떤 사람의 이름을 초들어 말함을 거명(擧名), 손을 위로 들어 올림을 거수(擧手), 스승과 학인(學人)이 만나는 일을 이르는 말을 거각(擧覺), 기를 쳐듦을 거기(擧旗), 바둑을 두는 데 포석할 자리를 결정하지 않고 둔다면 한 집도 이기기 어렵다는 거기부정(擧棋不定), 살받이 있는 곳에서 화살이 맞는 대로 기를 흔들어 알리는 한량을 거기한량(擧旗閑良), 머리를 들어 얼굴을 맞댐을 거두대면(擧頭對面),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음을 이르는 거석이홍안(擧石而紅顔), 온 세상이 다 흐리다는 거세개탁(擧世皆濁),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공손히 남편 앞에 가지고 간다는 거안제미(擧案齊眉), 이름 난 사람의 장례 때, 사회 인사들이 모여서 통곡하고 장송하는 일을 거애회장(擧哀會葬), 한 가지를 들어서 세 가지를 돌이켜 안다는 거일반삼(擧一反三), 모든 조치가 정당하지 않음을 거조실당(擧措失當), 다리 하나를 들어 어느 쪽에 두는 가에 따라 무게 중심이 이동되어 세력의 우열이 결정된다는 거족경중(擧足輕重), 명령을 좇아 시행하는 것이 민첩하지 못하다는 거행불민(擧行不敏) 등에 쓰인다.
▶ 措(조)는 형성문자로 厝(조), 错(조), 錯(조), 䥘(조)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풀어서 자유롭게 하다의 뜻(釋; 석)을 갖는 昔(석)으로 이루어지며, 손을 놓다, 그대로 놔두다의 뜻이다. 용례로는 일을 잘 정돈하여 처치함을 조치(措置), 일을 정돈하여 처리함을 조처(措處), 어떤 물건을 대상으로서 또는 존재하는 것으로서 규정함을 조정(措定), 글을 지음에 있어 글의 마디를 얽어서 만듦을 조사(措辭),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 시행함을 조거(措擧), 어디에다 몸을 둠을 조궁(措躬), 식량을 마련하는 조치를 취함을 조량(措粮), 조처하여 준비함을 조비(措備), 일을 벌여서 조처하여 행함을 조위(措爲), 조치하여 잘 처리함을 조치(措治), 깨끗하고 가난한 선비를 이르는 말을 조대(措大), 글자로 말의 뜻을 엉구어서 만듦을 조어(措語), 부끄럽거나 황송하여 몸 둘 곳이 없음을 조궁무지(措躬無地), 일이 몹시 급하여 손을 댈 여지가 없음을 조수불급(措手弗及) 등에 쓰인다.
▶ 失(실)은 형성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乙(을, 실)로 이루어졌다. 손에서 물건이 떨어져 나가다의 뜻이 전(轉)하여 잃다의 뜻이다. 또는 손발을 움직여 춤추다가 감각을 잃어버린 멍한 상태를 본뜬 글자라고도 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잃을 상(喪), 패할 패(敗),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얻을 득(得)이다. 용례로는 잘못하여 그르침을 실수(失手), 조치를 잘못함을 실조(失措), 자격을 잃음을 실격(失格), 희망을 잃어버림을 실망(失望), 시력을 잃음을 실명(失明), 일에 성공하지 못하고 망함을 실패(失敗), 효력을 잃음 실효(失效), 생업을 잃음을 실업(失業), 주의를 잘 하지 못하여 불을 냄을 실화(失火), 처지나 지위를 잃음을 실각(失脚), 언행이 예의에서 벗어남을 실례(失禮), 본 정신을 잃음을 실신(失神), 말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실마치구(失馬治廐), 잃은 도끼나 얻은 도끼나 한가지라는 실부득부동(失斧得斧同), 정신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슬피 통곡함을 실성통곡(失性痛哭), 물건을 아무렇게나 써 버림을 실어공중(失於空中), 헛된 말로 말을 잃어버리고 터놓고 말을 하지 않아 사람을 잃는다는 실언실인(失言失人),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실우치구(失牛治廐) 등에 쓰인다.
▶ 當(당)은 형성문자로 当(당)과 통자(通字), 当(당)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밭전(田; 밭)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尙(상, 당)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尙(상, 당)은 높은 창문에서 연기가 나가는 모양에서 위, 위에 더하다, 충당하다란 뜻을 나타낸다. 田(전)은 논밭의 뜻으로, 當(당)은 이 밭과 저 밭이 서로 포개어 맞추듯이 꼭 들어 맞는 일의 뜻으로 쓰인다. 當(당)은 명사 앞에 붙어서 그 바로 그 이 지금의 등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어, 어떠한 말 뒤에 붙어서 앞에 마다 등의 뜻을 나타내는 접미어, 그 당시의 나이를 나타내는 접두어로 쓰인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마땅 의(宜), 마땅 해(該)이다. 용례로는 그 사건에 직접 관여함을 당사(當事), 그 시대의 세상을 당세(當世), 어떤 일을 만난 그때 그 자리를 당하(當下), 어떤 곳의 꼭 가운데가 되는 곳을 당중(當中), 바로 그 시각을 당각(當刻), 당면한 이제를 당금(當今), 사람의 한 평생살이를 당대(當代), 어떤 한 곳이나 일에 닿아서 이름을 당도(當到), 말로써 어찌하라고 단단히 부탁함을 당부(當付), 일이 생긴 처음을 당초(當初), 지금 바로 이 자리를 당장(當場), 일이 생긴 그때를 당시(當時), 일이 생겼던 바로 그 날을 당일(當日), 무슨 일을 당하여 정신이 헷갈려서 처치할 바를 몰라 어리둥절함을 당혹(當惑), 도리 상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당연(當然), 당선과 낙선을 당락(當落), 이 세상에서는 어깨를 겨눌 사람이 없음을 당금무배(當今無輩), 부모를 명당에 장사하여 그 아들이 곧 부귀를 누리게 됨을 이르는 말을 당대발복(當代發福), 앞으로 마땅히 닥쳐 올 일을 당래지사(當來之事), 상례에 따르지 아니하고 특별히 논하여야 마땅하다는 당이별론(當以別論)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