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17-10-03 06:01 조회 : 830 |
| | | 월하정인(月下情人)
임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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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혜원 신윤복의 대표작 월하정인((月下情人) 영인본을 입수했다. 20 여 년 전 기획출판을 하면서 한정판으로 제작한 화첩에서 떼어온 것이었다. 하도 욕심이 나 소장한 지인에게 구구한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해 가져왔다. 구구하게 설명했다는 건 다른 것이 아니다.
수년전 나는 <월석감상>이란 작품을 써서 발표를 했다. 그런데 그것이 평론가의 눈에 띄여 월평에 실렸다. 잘된 작품으로 평가를 해준 것이었다. 작품의 소재는 소장하고 있는 수석 중에서 월석(月石)을 모티브로 삼은 것이었다.
돌에 박힌 달 모양을 월하정인도(圖))에 비유하여 상상의 나래를 펴본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월하정인을 온전한 실물크기로 보지를 못했다. 다만 책자에 나오는 것이나, 인터넷상에 떠도는 증명사진 정도의 축소된 그림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작품이 실린 후 언제 한번 실물그림을 볼 수는 없을까. 늘 소원을 하면서 풀어야 할 숙제로 안고 있었다. 한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비록 진본은 아니지만 영인본 그림을 구경하게 된 것이다. 소장한 지인의 부탁으로 한문으로 씌여진 글을 좀 봐달라는 부탁을 받은 자리에서였다. 모두 3권으로 엮여진 것을 뒤적이는데 언뜻 그 그림이 보였다.
실물크기 그대로의 그림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난 후 한동안 신열을 앓았다. 그것은 내가 소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눈앞에 가까이 나타났는데 어쩌면 기회가 아닐까. 끙끙대다가 한번 거절을 당하더라도 사정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수집가만의 촉이면서 끈기가 작동한 것이었다. 내가 누구인가. 수석의 애호가로 살아오면서 탐이 난 것을 기어이 수중에 넣고야 마는 근성을 배운 사람이 아닌가. 며칠을 벼루다가 마침내 찾아가 이야기를 꺼냈다.
기호품은 소장할 사람이 소장을 해야 하는데 나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설득했다. 그러면서 그야말로 구구하게 이것을 소재로 해서 작품을 쓴 이야기, 이것이 발표한 수필작품과 함께 하면 격이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한데 가만히 듣고 있더니 그렇다면 그리 하라고 하지 않는가.
그 대신 미안하기도 하여 답례품으로 소장하고 있는 다른 서화를 한 가방 넘겨주기는 했지만 이것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다른 그림이 끼워졌던 액자에다 포개어 거실 벽면에 걸어놓았다. 그러면서 들락거리면서 감상을 한다. 이 그림은 두 가지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는가 한다. 하나는 달이 상현형태로 반쪽 달이 뜬 달 모양인데 이는 그날 밤이 월식이 일어난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최근에 컴퓨터 시물레이션에 의해서 정조 17년인 1793년에 실제로 일어난 일로 밝혀졌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화제의 글 '밤 깊은 야삼경인데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알겠지'라는 글이다. 제 3자적인 입장에서 은근한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한데 여기서 짚어볼 것이 있다. 바로 ‘月沈沈’이란 문구인데 이를 '월심심'으로 읽을 것인가 '월침침'으로 읽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책자마다 달리 나와 있는데 이는 '沈'자가 다의적인 음과 뜻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가라앉을 심(沈)으로도 읽을 수 있고 잠길 침(沈)으로도 읽히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에 비추어 볼 때 여기에서 '침(沈)'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밀회를 하던 그날 밤은 보름달이 뜰 날이긴 했으나 월식이 일어나는 바람에 실제로는 다소 침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각을 이용하여 밀회가 이뤄졌던 것이 아닌가.
그림속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은밀하다. 월식이 일어난 야삼경에 배경의 집 모양으로 보아 사대부가에 살고 있음직한 여인이 쓰개치마를 머리에 둘러쓰고 나와 있다, 그리고 등촉을 밝히고 있는 선비는 앳되어 보인다.
두 사람은 그 시각을 약속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림속의 두 남녀는 의기투합하여 함께 어디를 가고 있는 모양은 아니다. 소곤거리고는 있지만 각기 발길을 돌리고 있다. 그러므로 정황으로 보아 은밀하기는 하지만 심중의 깊은 속내는 알길이 없다. 그래서 화가는 화제에다 그 마음은 그 둘만 이 알 것이라며 양인심사 양인지(兩人心事 兩人知)라 했던 것일까.
자고로 좋은 작품은 감상자에게 느낌을 많이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했는데 그런 견해에서 보면 대단한 탁월성을 보이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그림은 신윤복 특유의 유려한 필치로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이 표현되어 있다. 한눈에 보아도 뛰어난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 나의 들어와 월석감상의 품위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거기다가 얘기 꺼리가 되는 사연도 간직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격을 높여준 것인가.
이 그림이 집에 와서 소장자가 유명했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입수경위가 극적이니 만큼 앞으로 충분히 화제는 되지 않을까 한다. 거기다가 비록 영인본이지만 지금은 국보로 지정이 되어 반출도 어렵고 그래서 구하기가 쉽지 않는 그림인 것이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소장한 월석이 또 하나의 달과 얽힌 그림을 불러 들여온 격임을 생각하면서 나의 수중에 들어온 것은 어떤 인연도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해서 볼 때 마다 흐뭇한 마음이 되어 이백여 년 전의 그 시대 풍정을 느끼면서 한유를 즐긴다. (2017) |
| 안영환 | 17-10-04 10:46 | | 추석날에 이 글을 읽으니 월하정인의 정취가 새롭습니다. 선생께서는 살아온 역정과는 다르게 대단한 예술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2백여 년 전의 분위기에 젖게 하는 글, 달밤 향기가 도는 듯하외다. | |
| | 임병식 | 17-10-04 12:39 | | 안선생님 댓글 고맙습니다. 전에 수석중 월석에서 이 월하정인을 떠올리고 글을 쓴적이 있는데 이 그림을 대하자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서 기어이 입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름없는 작가지만 나중에 흥미롭게 사실을 추적하는 후배문인도 있을 것 같아서 기록으로 남기고자 서둘러 한편 써봤습니다. | |
| | 이방주 | 17-10-04 16:48 | | 선생님 저도 이 그림을 책에서만 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달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모두 공감합니다. 선생님의 월석 감상도 읽고 그 감동이 남아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이 그림을 보고 두 사람의 표정과 발모양 다리모양 팔모양 등을 보면서 에로틱한 점을 기막히게 표현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정말 좋은 작품을 구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 |
| | 임병식 | 17-10-04 20:53 | | 이방주선생님.안녕하신지요. 이 그림은 원본이 아닌 영인본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지에 복사된 그림이라 질감이나 느낌이 원본과 다름이 없어 마음에 듭니다. 원본화첩은 국보로 지정되어 복사조차도 어렵다고 하니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것으로 압니다. 욕심이 나서 다른 서화 20여점을 주고 두점과 바꾸었답니다. | |
| | 임재문 | 17-10-05 23:48 | | 임병식 선생님 ! 저도 수석을 좋아하고 그림 특히 동양화를 좋아합니다. 동양화중에서도 남종화를 제일 좋아합니다. 채색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담담한 수묵으로 정취를 더해가는 남종화가 저를 사로잡습니다. 요새는 도자기등 고서화 골동품 수집에 거의 미치다시피 몰입하고 있습니다 흔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장전 하남호 서예가의 글씨를 손에 넣고 흐뭇해 하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임병식 선생님 ! 건강하세요 ! | |
| | 임병식 | 17-10-06 06:31 | | 장전이라면 호남을 대표하는 서예가인데 그분의 글씨를 소장하게 되셨다니 축하힙니다. 저는 수석은 대부분 선물이나 박물관 등에 기증을 하고 지금은 20여점만 가지고 있답니다. | |
| | 일만성철용 | 17-10-06 10:22 | | 과문해서인가 월하인이라는 말은 들었어도 월하정인이라는 말은 저는처음 대하네요. 이 글을 읽으면서 또 한 번 생각해 봅니다. 특히 발표하신 글 같은 글에는 '그림 한 편을 글속에 얹으면 어떨까?'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수필가들은 글로만 자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일까? 글과 이미지의 만남은 왜 그리 멀리할까 하는 생각이지요. | |
| | 임병식 | 17-10-06 13:29 | | 제 생각에도 글에 삽화가 들어가면 훨씬 좋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깔끔하게 그림 배치를 할수 없으니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기행문을 쓰시면서 그림을 넣어 쓰시는 것이 늘 신기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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