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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디아서 5: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1 진리는 계명과 율법이다
다윗은 ‘여호와의 율법과 모든 계명은 진리’라고 고백 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은 태초부터 진리이므로 여호와의 모든 규례들(율법)은 영원하다고 고백했다. (시편119: 142,151,160). 또한 예슈아께서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증언하셨다(요17:17). 즉 여호와의 율법과 모든 명령들은 진리이고 변하지 않으므로 우리를 거룩하게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자유의 법을 말한다고 해서, 율법 지키는 것을 그만두고 진리에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해한다면 불법에 미혹된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진리로부터 자유가 아니라 진리 안에서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항상 사단의 목표는 우리가 진리에 불순종하여 저주 아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만 분별한다면 우린 쉽게 사단의 계략을 알아차리고 무효화시킬 수 있다. 태초에 있었던 첫 번째 범죄도 불순종이었다. 언제나 우리의 싸움은 불순종하게 하는 어둠과의 전쟁이다.
주의 공의는 영원한 공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시119:142,151,160)
2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한다
2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한다
오늘날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마치 불법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정말 그럴까? 예를 들어 보겠다.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면 가장 먼저 안식교를 떠올리며 이단인지 의심한다. 유월절을 지킨다고 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떠올리며 이단인지 의심한다. 여호와의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는 것이 마치 이단적인 것처럼 인식되는 오늘을 우린 살고 있다. 과연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 심지어 여호와의 절기라고 말하면 여호와 증인이 아닌지 까지 의심 한다. 그러나 계명과 율법은 여호와께서 직접 이 땅에 강림하셔서 손가락으로 써 주셨다(출31:13-17). 안식일(샤밧)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하게 구별하는 영원한 표증(sign)으로 주셨고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자는 ‘여호와의 계명들을 지킨다’고 말씀하셨다(요일5:3). 또한 ‘예슈아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자’라고 요한은 증언하고 있고(요일2:3) ‘하나님의 아들을 안다고 하면서 예슈아의 명령들(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거짓말하는 자이고 진리가 그 속에 없다’라고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다(요일2:4). 예슈아의 명령과 아버지의 명령이 다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옛 계명과 동일하다(요일2:7). 그러나 새 계명으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사랑을 몸소 보이셨기 때문이다. 분명 옛 계명이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계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명할 수 없다. 샤밧을 사는 것은 예슈아를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자의 마땅한 삶인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출31:13-17)
3 교회가 이방화된 이유
초기 기독교가 이방화된 역사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자. 성경에 나와 있듯이 예루살렘에 예슈아를 메시아로 믿는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모두 율법에 열심이었다. 다만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고 전통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는 바울을 모세를 거절한다고 오해했다(행21:20,21). 이러한 오해가 있었지만 예슈아를 믿으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은 당시 초대교회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두 번의 유대인 반란을 겪으면서 결국 유대인과 예슈아를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메시아닉 쥬)이 분리되었다. 첫 번째는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에 따르면, 성전이 파괴될 때(CE 70년) 믿는 유대인들이 산기슭에 자리잡은 ‘벨라’로 도망함으로써 반역자로 간주되어 일차 분리되었다. 이는 예루살렘이 에워싸이면 산으로 도망하라는 예슈아의 말씀에 따른 것이었다(눅21:20,21). 그러나 이 모습은 수많은 동족이 죽어갈 때 마치 나라를 버리고 도망한 반역자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눅21:20,21)
두 번째는 유대인 반란 동안(CE 132-135) 랍비 아키바가 시몬 바르코흐바를 메시아로 선언함으로써, 믿는 유대인들이 더이상 그에게 충성할 수 없고 협력할 수 없어 본격적으로 분리되었다. 이처럼 메시아를 바르코흐바로 지목하고 복종을 강요하기 전까지는 유대교와 함께 했고 예배의 형태도 동일했다. 그러나 가톨릭이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수많은 이교도들이 교회로 몰려 들어왔고 거짓 평화와 화합을 추구하기 위해 교회는 이교도 문화를 흡수하고 모든 종교를 아우르기 시작했다. 당시 유일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어길 수 없었던 유대인들이 이방 신을 따르게 하고 율법을 없애려 했던 왕의 명령에 굴복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반유대주의 반율법주의가 만연하게 되었고 교회가 핍박을 피하기 위해 율법과 절기와 같은 유대성을 포기하고 이교도 문화를 따르면서 이방화되었다. 그 결과 유대인은 정복당한 경쟁자로 여겨지고, 유대인의 정체성에 머물러 율법을 지키고 싶어했던 많은 신자들은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호와의 때와 법이 이교도의 때와 법으로 바뀌었고, 개신교와 유대교는 마치 뿌리가 다른 것처럼 나뉘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율법은 지켜서는 안되는 이교도적인 것, 마귀적인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여호와의 때와 법을 회복할 때가 되었다. 말씀의 회복은 왜곡시켰던 어둠의 머리를 부수고 나 자신뿐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내가 아직도 사람의 기쁨을 구하려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니라”(갈1:10) ‘샤밧을 거룩하게 지키라’라는 말씀은 일곱째 날을 나머지 날들과 구별하라는 뜻이다. 진정 영혼들을 위한다면 진리는 진리대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우리 모두를 회심시키고 지혜롭게 하기 때문이다(시19:7,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19:7,8)
4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지 마라
버가모 교회는 순교당할 때에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후에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어 책망을 받았다(계2:12-16). 니골라 당의 교리는 영지주의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곧 “영은 깨끗하고 죄가 없으며 성결하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눈에 보이는 몸으로 죄를 짓는 것이고 영은 죄와 무관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어서 하나님이 영혼을 부르실 때 몸은 썩어 흙으로 돌아가므로 육체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영은 구원받을 수 있다.”라는 잘못된 주장을 한 것이다. 이처럼 초대 교회에 환란이 왔을 때 가톨릭은 유대교와 스스로 분리됨으로 환란을 피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교회에 유대성이 사라지고 이방화 된 것이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2:12-16)
# 갈라디아서 5: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5 불순종하도록 미혹하다
‘권면’은 헬라어 πεισμονη(페이스모네)로 ‘설득하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를 히브리어로는 פתוי(피투, temptation)로 ‘시험, 유혹, 미혹’으로 번역했다. 여호와의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한 것이므로 권면이나 설득보다는 불순종에 미혹시킨 피투의 의미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미혹시키기 위해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우리가 2000년 동안 설득 당하여 미혹되었다 해도 우리가 따르고 있는 교리가 순종의 교리인지 불순종의 교리인지 분별하면 된다. 우리를 위하는 것 같은 교리일지라도 진리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기억해야 한다. 진리는 진리 그대로 받아야 한다. 진리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는 것은 마귀의 가르침이며 미혹이다. 디모데는 마귀의 교리를 경고했다. 결혼은 거룩한 것이며 여호와께서 음식이라고 정하신 것은 먹기에 정결하다. 그러나 귀신의 가르침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거룩하며 어떤 고기는(정결한 고기일지라도) 먹지 않는 것이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리에서 벗어난 모든 가르침은 미혹이고 마귀의 교리이다. 경건해 보일지라도 말이다(딤전4:1-3). 이를 통해 디모데는 앞으로 일어날 가톨릭과 불교등 결혼을 금하고 고기를 금하는 미혹된 종교가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딤전4:1-3)
6 죄를 통해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
율법(진리)에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당연히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복음이 이방화되면서, 수많은 오해에서 나온 인본주의적 가르침이다.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주의 복음이 성령의 가르침일까? 아니면, 어둠의 가르침일까? 우리가 죄를 짓고 불법하면 누가 이득을 보는가? 죄를 통해 우리의 권세를 빼앗고 종 삼을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고 사망은 불법을 통해 왕 노릇한다. 즉 죄는 우리가 사망에 이르도록 우리를 이끌고 다스린다. 이와 똑같이 의로움은 영생에 이르도록 은혜가 왕 노릇하게 한다(롬5:21). 그러므로 우린 예슈아를 통해 의로움이 왕노릇하도록 생명을 택해야 한다. 예슈아를 믿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미혹은 당연히 사단으로부터 온 것이다. 이것을 분별해야만 불법의 교리를 바로 잡을 수 있다. 결국 예슈아께서 죽으시면서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셨지만 다시 죄를 범한다면 죄에게 자유를 빼앗기고 왕권을 내어주는 주도권 전쟁과 같은 것이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롬5:21)
# 갈라디아서 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7 불순종의 누룩을 조심하라
‘진리에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가르침은 누룩과 같다. 누룩은 빵을 부풀리기도 하지만 곰팡이로서 모든 것을 더럽히고 썩게 만든다. 잘못된 교리는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눈을 어둡게 하여 분별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어둠은 우리의 관점을 바꾸고자 한다. 관점만 바꾸면 그 영향력이 대단하여 결과를 뒤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적 관점을 인본주의적 관점으로 바꾸기만 하면, 말씀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각자 원하는 하나님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러한 심각한 오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불순종을 거절하고 율법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순종을 거절하면 불법하게 하는 거짓 교사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다. 예슈아께서는 한 번도 율법을 폐하지 않으셨으며 율법을 범한 적도 없으시다. 오히려 율법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어놓으셨다. 이처럼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말씀에 대한 1000퍼센트 순종이다.
그런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신13:5)
당시 바리새인들은 전통을 지키는 자들이었다(갈1:14). 전통이 율법을 폐하고 있음에도 인식하지 못했다. 즉 전통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린 말씀을 확인해봐야 한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인지 아니면 교회의 전통인지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관심이 없다면 결국 거짓말에 속고 망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도 당시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경계하라고 하셨다. 이들의 가르침은 사람의 전통이었으며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가식적인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 왜곡되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다(롬10:2). 이들의 가르침은 결국 하나님을 모르게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게 만들기 때문에 작은 곰팡이가 되어 부패하고 썩게 한다. 그래서 이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 것이다. 이들에 반해 예슈아의 가르침은 하늘의 떡이 되어 생명을 얻게 하신다. 만약 우리의 관점이 왜곡되었다면 이들처럼 음란하여 표적을 구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표적을 구하나 얻지 못할 것이다(막8:11-18).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막8:11-18)
8 예슈아는 무교병이시다
아무것도 더하거나 빼지 않은 그대로의 말씀이 무교병이라면 율법의 말씀에 더하거나 뺀 전통은 누룩이 섞인 유교병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율법에 가감하지 말고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신4:2). 또한 요한은 계시의 말에 더하는 자는 재앙이 더하고 빼는 자는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할 권리를 빼앗길 거라고 경고했다(계22:18,19) 그러므로 말씀에 가감하는 것은 실로 중대한 일임을 알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신4:2)
예슈아께서는 무교병과 같은 분이시다. 왜냐하면 무교절이 예슈아의 생애이고 목적이기 때문이다. 유월절은 무교절 준비일이기도 하며 이 날 죽으셨고 무교절 첫날인 안식일에 무덤에 있으셨고 무교절 둘째날인 초실절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교절 기간 내내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셨다. 이처럼 율법의 말씀 그대로 사셨고 율법에 대항하는(대체한) 사람의 전통을 거절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오해 받고 죽으셨다. 왜냐하면 불법하게 하는 전통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예슈아께서 죽으시면서 까지 우리가 회개하고 다시 아무것도 더하거나 빼지 않은 무교병의 삶을 살기 원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누룩이 없는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순전함'의 원어는 '태양 빛에 의해 판단되는, 진짜로서 입증된 것'을 말하며 '진실함'의 어원은 '진리, 사실, 본질'등의 뜻이다. 즉 가짜를 버리고, 거짓 가르침을 버리고 말씀의 본질, 진리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만드는 모든 교리는 버려야 하는 누룩이다. 사람의 해석은 의미를 부풀리고 변질시킬 수 있다. 아무것도 부풀린 것이 없는, 어떤 것도 보태거나 뺀 것이 없는 여호와의 말씀 그대로가 진실한 무교병의 말씀이다(고전5:7,8).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고전5:7,8)
# 갈라디아서 5: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9 길을 잃게 하는 자에게 책임이 있다
가르치는 자는 헷갈리게 가르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헷갈리게 가르치는 것은 혼란스럽게 하고 요동하게 하기 때문이다. 진리를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는 가르침은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하지 않는 것이고 길을 몰라 그로 인해 실족하게 만든다. 율법은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에게 저주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와 같이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분명한 길을 보이지 않는 스승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잃게 하는 자와 같다. 그러므로 스승에게 그 책임을 있다고 할 수 있다(신27:18) 예슈아께서 몸소 희생하여 얻으신 영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반면 많은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람은 영원히 별과 같이 빛날 것이다(단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단12:3)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27:18,26)
샤밧 예배: 토요일 11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깃발 재작 문의
https://cafe.naver.com/freeflaging
#레올람토라 #갈라디아서 #히브리적관점 #미라클조 #누룩
첫댓글
아멘!
미3:11 지도자들은 돈을 보고 판결하고 제사장들은 돈을 받고 가르치고 예언자들은 돈에 따라 점을 치는구나. 그러면서도 그들이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처럼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느냐? 우리에게 결코 재앙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는구나.
지금 시대에 진리가 없어져서 혼란스러운데...
갈증에 많은 도움이 되네요^^
샬롬~~♡
감사합니다
조금 늦게 올렸지요~~:;
jwha님의 격려가 저에게는 갈증속에 단비처럼 느껴집니다
생명의 말씀을 해주셔서
제가 또 살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jwha님 같이 세워주시고 인정해주시는 분이 계시니 반드시 공의가 회복되고 진리가 다시 세워질 줄 믿습니다
아직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할렐루야 ~^^
미3:7 선견자들이 수치를 당하고 점쟁이들이 창피를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므로 그들이 다 자기 입을 막을 것이다.”
8 그러나 나는 여호와의 영과 능력으로 인해 공의와 능력이 가득하므로 야곱에게 그 악행을, 이스라엘에게 그 죄를 선포한다.
9 이것을 들으라. 야곱 집의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이여, 공의를 싫어하고 곧은 것을 굽게 하는 사람들이여,
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악으로 세우는 사람들이여,
하나님의 말씀은 완벽한데....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으니 말씀이 없는 시대가 정말 온 것입니다.
말씀이 귀한 시대에 말씀을 본 것입니다.
평안하십시요~^^
감사합니다 ~^^
우리는 부족하나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우리는 서투르나
하나님은 전능하시네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샬롬 샬롬~♡♡♡
@자유하라
바룩하셈~!!
@jwha 바룩하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