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죄로 비싼 옷 한 번 못 사주고
용돈 한 번 제대로 준적 없다.
수학여행인데 용돈 필요하지 않아?
집이 가난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딸 머뭇거리다 말한다.
만원 만 주세요. 그거면 돼요!
엄마는 한 장 더 쥐어 준다.
2만원을 딸의 손에 꼭 쥐어주고 잘 갔다 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며칠 뒤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 우리 딸
아직 쓰지 못한 2만원이 호주머니에 있다.
엄마의 마음이 찢어진다.
그렇게 착 했던 우리 딸.
세상에 둘도 없는 효녀였는데...
우리 딸은 착해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듣고 가만히 있다 죽었다.
너무 착한 우리 딸이 죽었다
박지영씨는 2012년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학비를 벌기 위해
청해진해운에서 승무원 으로 일하다 변을 당했다.
박지영씨는 배가 침몰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단원고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며
“승무원들은 마지막까지 있어야 한다.
너희들 다 구하고 나도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고 남윤철 교사는 세월호 침몰 당시 난간에 매달린 채
학생들에게 일일이 구명조끼를 던져주며 구조 활동을 펼쳤다.
구조된 학생은 "안내 방송에 따라 구명조끼를 입고 가만히 있었는데,
방 안에 물이 차오르자 선생님이 오셔서 우리를 대피시켰다"며
"진작 탈출하려고 했으면
선생님까지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물이 허리쯤까지 차올랐는데도
우리를 챙기고 있는 담임선생님을 봤다"면서
"물이 키를 넘어서면서 정신없이 빠져나오고 나서 돌아보니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의롭게 갔으니까 그걸로 됐어"
아이들을 놔두고 살아 나왔어도 괴로워서 그 아인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윤철인 그런 아이였어요…
침몰하는 배안에서 끝까지 제자들을 구하다
지난 17일 오전 여객선 후미에서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2학년 6반 담임 남윤철씨의 아버지는 아들을 "그런 아이" 라고 했다
지난해 교사가 된 고 최혜정 교사는 단원고 2학년 9반 담임으로
세월호 침몰 당시에 학생들을 대피시키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에 따르면 최 교사는 사고 당시
"너희부터 나가고 뒤에 나가겠다"며 제자들부터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원고 고 최덕하 군은 세월호에 문제가 생겼음을 최초로 신고해
침몰전 구조된 174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했지만
자신은 결국 세월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고 정차웅 군은 세월호 침몰이 임박한 상황에서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준 뒤
또 다른 친구를 구하려다가 생일을 하루 앞두고 희생됐다.
고 양온유 양은 갑판까지 나가 탈출이 가능했지만
방에 남은 친구들 구한다고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고 김주아 양도 물이 차는 선실을 빠져나가 구조를 받을 수 있었지만
바닥으로 쓰러진 캐비넷에 깔려 "살려 달라"고 외치는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구하러 선실로 돌아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 씨의 부인도
배가 침몰하던 오전 10시쯤 사고 소식을 접했다.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한 끝에 어렵게 통화된 남편의 첫마디는
홀로 남겨질 두 아들과 아내 걱정이었다.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통장에 돈 있으니까 그걸로 아이들 등록금 해.
난 아이들 구하러 가야해.."
그말을 마지막 으로 통화는 끊겼다.
극적으로 홀로 구조된 다섯 살 지연 양은
한 살 터울 오빠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6살이지만 오빠는 위기의 순간에도 지연이를 믿음직하게 챙겼다.
부모와 떨어져 동생과 놀고 있다 사고가 나자
자신의 구명조끼를 양보해 동생에게 주고
오빠는 엄마 아빠를 찾아 나섰다.
오빠의 구명조끼를 입은 지연 양은 구조가 되었지만,
아직 남은 가족들은 생사를 알 수 없다.
세월호 침몰 당시 학생들 구조에 나섰던
파란 바지 구조자 김동수씨가 눈물을 흘렸다.
김동수씨는 위기에 빠진 여학생들을 구출했던 과정을 설명하며
"소방 호스를 붙잡은 학생 3~4명을 끌어올렸는데
순식간에 선실 안에 물이 차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학생들을 구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그 광경을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
놔두고 오는 제 심정은...
학생들이 '아저씨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거 놓고가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서 다시 왔어..
어머니가 좋은옷 못입히셔서 널 못만날까봐 걱정하신다는 얘기듣고
내가 너무 마음이 아팠어.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꼭 엄마 손잡고 얘기해드려..
이제 괜찮으니까 울지마시라고..
팽목항에서 실종자를 구분할 때....
" XX메이커 옷을 입고...." 하는 안내방송을 듣던 한 어머니가
내 아이가 메이커 옷을 안입어서 못찾으면 어쩌나 하시며
발을 동동 굴렀다는 기사를 본 어떤 분이 놓고 가셨나보다...
나는 이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걸까?
20140507 안산 합동분향소
"너는 돌 때 실을 잡았는데,
명주실을 새로 사서 놓을 것을, 쓰던 걸 놓아서 이리 되었을까.
엄마가 다 늙어 낳아서 오래 품지도 못하고 빨리 낳았어.
한달이라도 더 품었으면 사주가 바뀌어 살았을까.
엄마는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다.
몇푼 벌어 보겠다고 일 하느라 마지막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엄마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해.
없는 집에 너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갈께 딸은 천국에 가."
안산의 합동분향소에 씌어진 한 어머니의 편지
첫댓글 세월이 그렇게 많이 지났것만...
내 부모 내 자식이 그렇게 된듯이 가슴이 미어 지네요
이른새벽을 눈물로 머물다 갑니다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