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화목 (외 1편)
김성신
달팽이가 집을 이고 젖은 그늘을 순례하는 동안
골목의 끝은 늘 막혀있어
잣나무가 꺾인 자리에 눈이 박혔다
안과 바깥이 펼쳐놓은 그림자를 따라 뿌리는
어둠을 그러쥐거나 앞발 버텨보는 습성
어디쯤인가 지금, 계단 없이 오르내린 흔적들을 당긴다
카인이 다시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만들 때
울음은 나이테를 따라 입 벌리는 동굴
당신의 고립은 눈자위가 부석부석하다
누군가 당신의 목을 의자로 앉았다
출구 없는 무덤은 차라리 아늑함
잃어버린 채 잠든 것들
목청 늘리며
골과 골을 견뎌온 바람이 두 손을 모은다
울음이 보도에 출렁인다
어름사니 발끝처럼 앞코를 들고
나 잠깐만 죽을게
어둡고 고요한 숨결이 거죽으로 엉켜
되돌아오는 모든 것들이 단전에 포개진다
어제와 오늘을 순식간에 관통하는 바람은
두려움과 길이 무릎이 돼
물음을 산란한 초록으로 도착한다
―《문장 웹진 콤마》 2024년 9월호
페트리코*
잊지 마, 내가 두 명이길 바라는 거야
빗방울은 누구나 초대하고 누구의 방문도 거절할 수 있어
이 집엔 누구도 사람이 아니어서 종종 계절의 냄새가 물씬거린다
복도의 불빛, 옷장, 미니냉장고, 커튼
거기에 서성이는 어떤 것
사라지는 어떤 것으로부터 벽은 안전할까
쫓기고 쫓는 복도의 발자국소리
수직이 횡으로 멈추는 얼굴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벽은
다만 침묵할 의무가 있다
꿈과 생시 사이로 번지는 시선
들뜬 목소리로 재를 터는 전등
창을 열면 내게 눈을 떼지 못하는 다정은 충동적이다
입속 혀가 두텁게 희어지는 동안
구석을 흔드는 웃음이
깊이 박혀 숨이 되는
달이 기울고 있다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너 닮은 한 줄을 마주쳐서
비막을 펼쳐 활공하는 하늘다람쥐처럼
동공에서 움푹해진 이름을 띄우는 듯
통기성이 좋아진 실루엣
누구도 믿지 않는
흠, 흠 따라 맡어봐
꼭 저편의 얄궂은 냄새 같아
힘겹게 몸 버둥거리자
손가락을 잇댄 사슬 풀어지고
꿈속에선 이미 잊어서
*비가 오기 시작할 때 마른 흙이 젖으면서 공기 중에 퍼지는 냄새
―계간 《문학들》 202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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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 / 전남 장흥 출생. 201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등단. 광주대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문학박사. 2022년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