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유일의 한국사찰, 홍법원. 1970년대 초반 통도사 청하스님의 원력으로 창건된 이래 40여년간 홍콩 교민불자들의 마음쉼터이자 수행도량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조국을 그리며 수십년간 타향생활을 해온 한인들에게, 홍법원은 구수한 된장냄새 솔솔 풍기는 고향집이나 다름없다. 지난 2008년 가을 비구니 근범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홍법원엔 독경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스님의 기도영험일까. 기도하는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절을 찾는 신도들도 갈수록 늘어났다. 부처님오신날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 4월25일(음력 4월 초하루). 관불의식과 연등운력, 꽃꽂이 장엄과 합창연습 등 봉축행사로 분주한 홍법원을 찾아갔다.
<사진> 홍콩 홍법원에는 타향생활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는 ‘부처님’들이 있다. 주지 근범스님을 비롯한 50여명의 신도들은 지난 4월25일 봉축을 맞아 관불의식을 봉행했다. 석가모니 정근을 하며 관불의식을 올린 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교민들에게 감로수처럼 청량한 마음 전하죠”
관불의식 행하자 신도들 얼굴마다 평화 깃들어
연등운력·꽃꽂이 장엄 등 초파일 앞두고 ‘분주’
신도들 “스님 기도 원력에 신심 절로” 한목소리
“모든 부처님을 씻겨 드리고 깨끗한 지혜로 공덕의 무리를 장엄하여 오탁악세의 중생으로 하여금 오염된 생각을 여의고 부처님의 청정한 법신을 증득하게 하소서…”
근범스님이 <욕상공덕경(浴像功德經)>의 관불게를 읊으며 관불의식을 행하자, 50여명의 신도들이 합장반배하며 부처님의 오신 뜻을 되새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하늘에서 제석천이 내려와 향탕수로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켜 드렸듯이, 우리 마음속의 번뇌망상도 함께 씻어냅시다.” 스님의 설법을 마음에 담은 신도들은 저마다 가슴에 서린 번뇌를 하나 둘 내려놓기라도 한 듯 평화로운 얼굴들이다. 김재숙(58, 법명 보현행) 신도회장은 “신도님들이 홍콩 현지에서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아가고 있지만, 고국땅을 그리는 향수병을 무시할 수는 없다”며 “홍법원은 그러한 교민들에게 감로수처럼 청량한 마음을 전해주는, 홍콩에 있는 ‘작은 코리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합창연습. 작곡을 전공한 뮤지션 서현선(36)씨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수십명의 신도들이 찬불가 ‘연등’을 부른다. ‘광명의 등 지혜의 등 연~등 연~등, 연꽃등 팔모등 누리를 밝히자~’ 합창단원이 따로 없다. 모든 신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노래 부르면 신도회 전체가 합창단이 된다. 음정이 틀리면 스님이 직접 잡아준다. 낭랑하고 청아한 독경소리로 신도들에게 환희심을 선사해주는 주지스님이 찬불가의 음정을 잡아줄 때는 ‘노래 선생님’처럼 친근하다. 신도들의 얼굴마다 웃음이 어린다.
이 날 법문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하용이 한국은행 홍콩사무소장의 특별강좌로 이뤄졌다. 아시아 최대 부호인 홍콩의 청쿵실업 리카싱(李嘉誠) 회장에게 자신이 직접 사경한 <금강경>을 선물한 인연으로 홍콩의 한국국제학교(KIS)에 장학금을 지원받는데 성공한 금융계의 유명불자다. 조계종 포교사이자 홍법원 신도인 하 소장은 이 날 갑작스런 한국행 발령을 받고 3년여의 홍콩생활을 회향하는 마음으로 홍법원서 <금강경>을 주제로 한 ‘명법문’을 펼쳐 신도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스님의 독경소리와 더불어 기도하는 신도들의 간절한 마음이 어우러진 홍법원은 이처럼 하루종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행복도량’이다. 수십년간 명맥을 유지해오면서 때로는 ‘이름뿐인 절’이 될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홍법원을 아끼고 사랑하는 신도들의 힘으로 어려울 때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다시 일어섰다.
<사진> 홍법원을 찾은 아이들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연등을 만드는 근범스님.
홍법원의 모든 살림을 도맡으며 투명한 사찰재정의 원칙을 준수하는 신도운영위원회는 주지스님을 모시고 신도회를 이끌면서 홍법원을 여법한 수행기도도량으로 유지.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신도들은 현 주지 근범스님의 기도원력이 신도들의 신심을 증장시켜주고 도량 분위기를 일신시켰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하시는 스님을 보면서 마음의 안식을 되찾았어요.(허수영, 49, 법명 진여정))” “스님과 함께 천수경을 외고 108배를 하면서 타향땅에서 살아가는 외로움을 자신감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이은경, 44, 법명 법수성)” “홍법원에서 먹는 된장찌개는 그토록 그리웠던 고향집의 친정엄마 손맛처럼 맛나고 푸근해요.(김승애, 52, 법명 평등성)”
매년 부처님오신날 홍법원엔 신도들 외에도 종교를 초월한 반가운 얼굴들이 대거 찾아온다. 홍콩 총영사, 한인회장, 상공회장, 천주교회 신부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법요식을 봉행하고 부처님 오심을 찬탄한다. 이 날을 위해 근범스님은 공양주 보살들과 함께 맛깔스런 한국식 겉절이를 담그고 가지나물 오이지 더덕무침 잡채 등을 정성스레 준비한다.
홍콩 구룡공원이 한눈에 보이는 브링턴하우스 14층 홍법원 법당엔 오늘도 청아한 독경소리가 쉼없이 울린다. 공양간서 새어나오는 구수한 된장냄새는 고향땅을 그리는 교민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감싸준다. 요사채서 둘러앉아 연잎을 말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스님과 신도들의 웃음소리가 홍콩의 부처님오신날을 환한 빛으로 수놓는다.
홍콩 침사츄이=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 인터뷰 / 주지 근범스님
“타향살이에 힘든 신도들 이곳서 향수病 치유하죠”
“기도하고 또 기도할 뿐입니다.” 고국을 가슴에 품고 타향생활을 하는 홍콩 교민들이 홍법원을 안방 드나들듯 편안하게 오갈 수 있게 한 비결을 묻자, 스님은 오로지 ‘기도’라고 답했다.
“고향에 있는 부모형제, 타국서 살아가는 자기 가족들을 위해 마음을 평안하게 다스릴 수 있는 방편은 오직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마음의 안식을 되찾는 신도들을 보면, 항상 감사하고 고맙지요.”
날마다 규칙적인 기도수행을 하다보니 이제는 기도시간에 맞춰 신도들이 줄을 잇는 통에 하루라도 기도를 거를 수 없는 지경이라며 흐뭇한 웃음을 비치는 근범스님. 덕분에 홍법원 신도들은 날마다 108배 기도는 기본이요 <천수경>을 줄줄 외며 독경을 하는 등 ‘수행 근기’가 만만찮다. “신도들이 신심을 잃지 않고 홍법원을 안식처로 삼아 육바라밀 정진을 해나가면서 홍법원이 홍콩에 거주하는 한인사회의 근간이 되는 청정도량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한국불교에 목말라하는 홍콩불자들을 위해 스님은 또 오는 24일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보선스님 초청법회를 봉행한다. 부처님오신날을 이후엔 신도들과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순천 송광사 고창 선운사 여수 향일암 남해 보리암 등 기도성지를 두루 순례하는 계획도 잡고 있다.
근범스님은 기도와 공양준비 외에 재정이나 신도관리 등 사찰행정 관련 모든 업무를 신도운영위에 맡긴다. 신도운영위의 빈틈없는 종무행정은 스님을 비롯 신도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 홍콩에 한인교회가 16곳인데 반해, 홍콩 유일의 한인사찰 홍법원에서의 포교불사에 성공하기 위해 스님은 밤늦도록 외국인과 영어공부에도 주력한다.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를 나와 불교 유아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는 스님은 “언젠가는 초발심 시절부터 꿈꿔왔던 불교복지불사에 임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콩 침사츄이=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 홍콩 홍법원은…
영축총림 통도사 부방장을 역임한 청하스님의 원력으로 1971년 홍콩 코리아센터에 창건됐다.
당시 조계종 종정 청담스님의 적극적인 지원도 홍법원 창건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창건 2년만에 홍법원은 구룡 메이푸 산촌으로 이전했다. 1978년 청하스님이 통도사 주지를 맡으면서 홍법원을 떠나자, 이어 각현스님(연꽃마을 이사장)이 제 2대 홍법원장으로 주석했다. 1980년 장규찬, 손상용, 김규팔, 곽영호씨 등 거사들을 중심으로 홍콩 등기처로부터 ‘한국불교 홍콩협회 유한공사’를 설립하고 홍법원 법당 건립불사를 본격화했다.
1984년 1월 성우스님(불교텔레비전 대표)이 제3대 홍법원장으로 부임했다. 이 해 6월 현재의 홍법원 자리인 구룡침사츄이로 이전, 법당불사를 원만회향했다. 현 주지 근범스님은 이미 1980년대부터 홍법원과 인연을 맺었으며 지난 2008년부터 홍법원 주지로서 50여명의 핵심신도와 200여 가구에 달하는 신도들과 더불어 불철주야 기도정진에 임하고 있다.
[불교신문 2523호/ 5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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