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의 '워털루 WATERLOO'를 들으면 생각나는 어원語原.
워털루의 어원에 관하여 세 가지 설이 있다. 셋 중의 하나는 정확한 사실이다.
나머지 두가지 설은 나의 창작이지만 어느 것을 믿든 그대의 자유.
그 하나,
My my, at Waterloo...오 예, 워털루에서...
Oh yeah, and I have met my destiny...나의 사랑을 만나왔네...
wo-wo-wo-wo- Waterloo 우우우우 워털루
Finally facing my Waterloo 마침내 워털루를 만나네요
1960년대 중반 스웨덴출신의 베니 안데르손과 아그네사 펠트스코크가 아바그룹을 결성하기 전 그들은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었다. 베니 안데르손은 잉글랜드 남부 사우스햄튼 대학교의 역사학과에 재학 중이었고 아그네사 펠트스코크는 런던 시내의 퀸메리 칼리지 음악과에 다니고 있었다. 베니가 사우스 햄튼에서 기차로 주말에 런던에 올라오면 아그네사는 베니를 런던 종착역인 워털루역에서 기다리곤 하였다. 런던 템즈강 남쪽 지역인 사우스뱅크에 위치한 유서 깊은 부촌인 워털루에서 그들의 사랑이 움텄고 꽃을 피운 것이다. 워털루에서 런던의 제일 아름다운 다리인 워털루브리지를 걸어서 템즈강을 건너면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지나 연인들의 거리인 트라팔가 광장과 소호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그렇게 사랑을 키웠다.
나중에 그룹을 결성한 그들은 베니가 워털루에서의 사랑과 정열을 추억하며 작곡하고 아그네사가 그것을 악보에 기보를 하는 식으로 한 곡을 만들어 냈다. 마침내 그들은 이 곡을 가지고 1974년 유로비젼(Eurovision)송 콘테스트에서 당당히 정상을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 곡이 바로 '워털루(Waterloo)'이다.
그 둘,
The history book on the shelf선반에 꽂혀있는 책은Is always repeating itself항상 반복되는 역사를 보여주죠
Waterloo - Finally facing my Waterloo워터루 - 마침내 우리 의지의 산물을 대면하게 되었군요
1850년대의 런던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농촌 인구의 급격한 도시 유입으로 인하여 과밀한 양상을 나타내어 환경 위생상태가 극도로 나빠졌다. 그리하여 콜레라 등 수인성 전염병이 창궐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막기 위하여 다각도로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수돗물의 보급과 하수도의 설치를 보급시킴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이 수그러들지 않자 정부에서는 대소변의 오물이 그대로 강으로 흘러들어 가기 때문이라 보고 화장실 개혁에 몰두하게 되었다. 1855년 하수도에 의한 오물배출을 위해 오물배제법을 제정하고 당시 런던 시장이던 앤더슨은 화장실의 개선 현상에 당시로서는 거금인 2만 파운드의 상금을 걸었다. 수없는 실패와 수많은 시련 속에서 마침내 당선된 것이 린스테드의 수세식 변기였다. 물을 사용하여 대소변을 처리하고 일정 시간 동안 저류시킨 후에 강물로 내보내는 획기적인 발명이자 인간 의지의 승리였다. 발명품의 이름은 물(Water)을 사용하는 화장실(Loo)이라 하여 워터루(Waterloo)라고 지었다.
런던시의 사업으로 제일 먼저 설치 한곳이 런던 템즈강 남쪽의 신설 기차 역사의 공중 변소였다. 그 역의 이름은 원래 그 동네의 지명을 따서 스코크역이라고 하였는데 시범 설치한 수세식 변기 ‘워터루’의 인기가 워낙 높아 사람들이 역 이름을 워털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런던 시장은 1970년에 역 이름을 워털루라고 개명해서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스웨덴의 남녀 혼성 4인조 팝/댄스 그룹 아바는 이렇게 전염병을 잡고 환경을 보존시켜 나간 역사를 담고 반복되는 실패에도 꿋꿋이 삶을 개선시켜 나가는 인류의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노래를 제작 발표하였는데 이 곡이 바로 '워털루(Waterloo)'이다.
그 셋,
Napoleon did surrender나폴레옹은 항복을 하게 됐군요
I feel like I win when I lose 지고도 이긴 것 같은 기분인데
Waterloo - Finally facing my Waterloo워터루 - 마침내 나의 패배를 대면하게 되었군요.
나폴레옹이 최후의 패배를 겪은 전투에서 워털루가 유래한다. 1815년의 이 전투는 벨기에의 브뤼쉘 남쪽 지방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의 병력과 영국의 웰링턴 공작이 지휘하는 동맹군 사이에 벌어졌다. 이 전투의 승자인 영국의 웰링턴 공은 자신의 사령부가 있던 곳의 이름을 따 이 치열했던 전투의 이름을 붙였다.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은 이를 ‘워털루’ 전투로 부르고 있다. 영국인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1817년 때마침 준공한 런던 테임즈 강의 한 다리를 워털루 다리(Waterloo Bridge)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얄궂게도 파리와 런던을 오가는 열차인 유로스타를 이 워털루역에서 출발하게 하였다. 런던이나 영국에는 워털루라는 지명은 없다.
아바는 사랑에 빠진 자신을 나폴레온이 워털루에서 참패한 것에 빗대어 노래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넘어 진 것은 결코 참패가 아니라고. 졌지만 이긴 느낌이라고.
첫댓글 이런 색다른 팝송 자료를 전해주시는 월반 박정용 회장님
호이장님! 호이장님! 우리들의 캡틴? 우리들의 호프? 우리들의 연구통(?) .....자랑스럽습니다. 짝!짝!짝!
Hi~ 월대빵님~! 그럼, 확실한건 아바님 만이 아시는건가요? 전, 맘마 미아 영화 에서 앵콜송으로 '워터루' 가 남아있는데도 뭐시가 그리 급한지 서둘러 자리를 뜨는 관객들을 보면서 황당함과 얼마나 커다란 비애를 느꼈던지 모릅니다. 엉~엉~!!
We call them fools...
아! 오해가 있나보군요. 하나는 정확한 사실이고 나머지 두가지는 내가 꾸며낸 이야기 입니다. 본문을 좀 고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