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과 견훤의 동수전투 설화가 바탕이 된 이야기길
팔공산 왕건길
신숭겸 장군 유적지와 왕산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곳에 병풍처럼 솟아오른 민족의 명산, 팔공산은 해발 1,193m 높이의 비로봉을 중심으로 굽이굽이 서로 다른
절경을 자아내고 있기에 대구시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1,000여 년 전에는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때
왕건은 생애 최대의 패전을 겪었고 오른팔과 같았던 신숭겸 장군까지 자신을 대신해 잃어야만 했다. 당시 왕건이 걸어온 전투의 흔적들이 설화라는
옷을 입은 누리길로 다시 태어났다. 총 8개 구간 35km에 이르는 ‘팔공산 왕건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동수전투가 팔공산 자락에 남긴 흔적들
왕건길을 나타내는 이정표
2012년 일반에 처음 공개된 팔공산 왕건길은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벌인 ‘동수전투’가 바탕이 된 걷기 좋은 길이다. 어느
길에나 역사와 사연이 있겠지만, 팔공산이라는 명산 자락을 따라 35km를 걸어가며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길은 흔치 않을 것이다. 설화를 따라
이어진 왕건길을 소개하기 전에 동수전투를 먼저 살펴보자.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침략하여 경애왕이 자결하였고, 이에 신라와 화친을 맺었던 고려
왕건은 군사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송악(개성)에서 쉬지 않고 팔공산까지 달려왔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된 후 초반에는 크고 작은 승패를 나누며
자웅을 겨루었다. 그러다 견훤의 계략에 빠진 왕건은 예상치 못했던 큰 패배를 겪었다. 견훤의 군사가 목전까지 따라붙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왕건의
오른팔 격인 신숭겸 장군은 결단을 내린다. 조국과 주군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로 한 것. 바로 왕건의 옷을 입고 견훤의 군사를 유인해 왕건
대신 전사했다. 이러한 부하의 헌신 덕에 왕건은 목숨을 부지하고 견훤의 손아귀를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
[왼쪽/오른쪽]왕건길과 관련한 다양한 표식이 그려진 벽면 / 왕건전망대에서 바라본 팔공산 일대
전경
지금도 팔공산 자락 곳곳에는 동수전투 당시의 사연이 담긴 지명이 여럿 남아있다. ‘지묘동’은 신숭겸 장군의 지략으로 왕이 목숨을 구했다는
의미로 장군의 유적지가 바로 이곳에 있다. 지묘동에 있는 ‘왕산’ 역시 왕건이 도주하다 숨은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 불로동에서 동화사와 파계사로
갈라지는 길목에 있는 ‘파군재’는 견훤에게 패해 군사가 흩어진 곳이고, 평광동의 옛 지명인 ‘시량이’는 왕을 잃어버렸다는 의미의 ‘실왕리’가
변음된 것이다. 또한, 왕건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안심’은 왕건이 도망치다 이곳에 이르러서야 겨우 안심하고 마음을 놓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안심공업단지 부근의 ‘반야월’ 역시 왕건이 이곳을 지나던 시각이 달이 떠 있던 한밤중(반야)이었다는 의미다. 앞서 살펴본 것 외에도 승리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는 초례봉을 비롯해 왕건을 추억하는 장소가 왕건길 곳곳에 보물처럼 숨어있다.
자연을 벗 삼아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8개 구간
왕건전망대에서는 팔공산 자락의 주요 봉우리를 확인할 수 있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
동수전투 이야기를 마음에 담았다면 왕건길로 들어설 준비는 끝났다. 길은 신숭겸 장군 유적지에서 시작된다. 유적지에 도착했다면 걸음을
재촉하기 전에 유적지 뒤편의 왕산에 잠시 시선을 두자. 후삼국 시대를 통일한 큰 업적을 남긴 왕건이 한때나마 이곳에서 몸을 피하고 있었다는 것을
환기하자는 의미다. 그리고 다시금 천 년 전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걸음을 옮기면 된다.
파란색과 붉은색 끈을 함께 묶어 왕건길을 표시하고 있다.
왕건길은 전투의 흔적을 따라 용호상박길(신숭겸 장군 유적지~열재, 4.3km), 열린하늘길(~부남교, 4.5km), 묵연체험길(~물넘재,
5.4km), 문화예술길(~백안삼거리, 3.3km), 고진감래길(~평광종점, 5.2km), 호연지기길(~매여종점, 5.2km),
가팔환초길(~초례봉, 3.3km), 구사일생길(~동곡지, 4km) 등 총 8개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과 범이 실력을 겨루듯 전투를 벌인
용호상박길을 시작으로 숱한 우여곡절 끝에 겨우 목숨을 건진 구사일생길까지 길은 저마다 다른 풍경 속에서 이야기를 건넨다. 평광동 종점에서 끝나는
고진감래길만 하더라도 며칠간 쫓기다 나무꾼의 도움으로 겨우 식사를 했다는 ‘시량이’가 지척이다.
[왼쪽/오른쪽]열재에서 왕건길을 벗어나 700m 더 가면 나오는 천연염색박물관 / 2구간 인근에 있는
노태우 대통령 생가
이처럼 왕건길은 동수전투 이야기를 토대로 하였지만, 길을 걷다 보면 팔공산이 민족의 명산이라 불리는 이유를 절로 깨닫게 된다.
왕건전망대에서는 팔공산의 능선과 주요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요령봉에서는 대구의 야경을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또한, 구간 중 가장 힘들다는
초례봉에 오르면 탁 트인 주변 경관이 가슴에 담긴다. 이 외에도 자연염색박물관, 돌 그리고 공원, 방짜유기박물관, 천연기념물 제1호인
측백나무숲, 국내 최고령 홍옥 사과나무, 노태우 대통령 생가 등은 왕건길이 주는 소박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왕건길에는 두 명의 산신령이 산다
왕건길을 걸으며 ‘왕건길에는 두 명의 산신령이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설이 아니라 실제로 산신령이 등산객을 위해
숱하게 길을 오간다는 것이다. 사실을 알고 보니 두 산신령은 왕건길 조성의 일등공신이라 불리는 ‘돌 그리고’ 공원의 채희복 대표와 요령봉 바위
밑 석굴에서 지내는 곽성욱 씨를 가리키고 있었다.
>[왼쪽/가운데/오른쪽]‘팔공산 산신령’이라 불리는 돌 그리고 공원의
채희복 대표 / 맨발로 걷는 길로 꾸며진 왕건길 1구간 / 요령봉 석굴에서 지내는 산신령, 곽성욱 씨
이처럼 왕건길은 천년 세월을 훌쩍 넘겨 후세에 다시 깨운 길인만큼 길을 조성한 사람들의 남다른 애정이 서려 있다. 주요 공간마다 설치된
표지석만 하더라도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하다. 다른 길과 달리 화강암에 길의 모양 그대로를 새겨 넣은 표지석. 더욱이 8개 코스 중 가장
험난하다는 초례봉 정상에서도 표지석을 발견할 수 있다. 초례봉 주변의 돌은 풍화에 약한 마사석이 대부분이라 수백 년 세월을 기약하며 조성된
왕건길의 표지석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화강암 중에서도 석질이 좋은 참화강암에 내용을 새겨 사람이 직접 등짐을 지고 올랐다. 이 표지석들
역시 채희복 대표가 기증했다고 한다.
[왼쪽/오른쪽]방짜유기를 주제로 한 전국 유일의 방짜유기박물관 / 요령봉 정상에서 바라본
대구 일대 야경
왕건길에 깃든 숨은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은 4구간 방짜유기박물관 아래에 있는 ‘돌 그리고’ 공원과 6구간에 있는 요령봉 석굴에서 산신령을
찾아보자. 따뜻한 차 한 잔과 정감 어린 이야기를 선물로 받을 수 있기에 말이다.
여행정보
신숭겸 장군 유적지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신숭겸길
17
문의 : 053-981-6407, korean.visitkorea.or.kr
자연염색박물관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112길
17
문의 : 053-981-4330, korean.visitkorea.or.kr
방짜유기박물관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도장길 29
문의
: 053-606-6171, korean.visitkorea.or.kr
1.주변 음식점
고려산장식당 : 능이버섯전골, 송이돌솥밥 / 구시 동구
팔공산로185길 62 / 053-982-0126
고향차밭골 : 한정식, 비빔밥 정식 / 대구시 동구
파계로138길 12 / 053-981-5883
2.숙소
팔공산온천관광호텔 : 대구시 동구 팔공산로185길 11 /
053-985-8081
하늘이열리는모텔 : 대구시 동구 파계로138길 42 / 053-981-3777
첫댓글 왕건에게 공산전투는 뼈아픈 기억일텐데.......
차라리 신숭겸의 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