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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58회>
<줄거리>
신라의 친 고려계 신료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한 견훤은 목숨을 구걸하는 경애왕을 능멸하고 경애왕비로 하여금 자신과 동침할 것을 명한다. 또한 친 백제계 신료들의 주청에 따라 김씨 성을 가진 김부를 신라왕으로 세운다. 백제의 매복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왕건 일행은 행군을 서두르고 그 즈음 견훤은 고려 수군이 남해안을 침범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접하는데....
씬 포석정 (밤)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모두들 그렇게 견훤을 보고 있다.
견훤 무얼 하고 있느냐? 신라의 왕은 짐의 말이 들리지 않느냐? 어서 이것을 개처럼 핥아먹어라.
경애왕 (울며) 폐하... 폐하...
견훤 나는 너 같은 인간을 증오한다.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너 같은 인간 말이다. 너 같은 자가 왕이 되었기로 오늘날의 신라가 이렇게 된 것이다. 차라리 용감하게 죽어 그나마 남아있는 신라의 자존심을 지킴이 어떠한가?
경애왕 살려 주시오소서, 폐하.....
김부 .............(안타깝다, 눈을 감는다)
견훤 그래도 살고 싶다? 허허, 이것 참... 어서 이것을 핥아 보아라.
최승우 ...............(그저 어쩔 줄 모르고)
견훤 어서.
경애왕 아, 예, 예...
참으로 만신창이다. 경애왕은 개처럼 쏟아진 술을 핥는다. 그러다 견훤은 본다. 견훤이 웃고 있다. 그러다 술상 채 차버리며 일어선다.
견훤 구역질이 나는구나.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찼던 단검을 빼서 던져준다) 자, 내가 그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야. 여기서 죽으라.
경애왕 폐하, 폐하...
견훤 내가 그대에게 술을 따르게 하고 개처럼 핥게 하고 침을 뱉은 것은 그대에게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니라. 그 옛날 우리 백제국을 멸망시킨 신라의 빚을 갚으려 하는 것이다.
모두들 ................
견훤 우리 백제국의 마지막 임금이셨던 의자왕께서는 너희 신라, 김춘추에게 무릎을 꿇었었느니라. 거기에는 너희 신라가 불러왔던 오랑캐 당나라가 있었느니라. 당나라의 소정방이 말이다. 칠십세가 다 되었던 당시의 의자왕께서는 피눈물을 머금고 무릎을 꿇어 술을 따라 올렸느니라. 또한 당시 백제의 왕자가 신라의 왕자로부터 희롱을 당하며 얼굴에 침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잊었을지 모르겠으나 다시금 백제를 세운 나는 잊을 수 없었노라. 그래서 오늘 그대를 핍박하는 것이다. 할 말이 있느냐?
경애왕 이미 지난 일이 아니옵니까, 폐하? 제발 목숨만은 보전케 하여 주시오소서.
견훤 죽어라.
경애왕 폐하...
견훤 어서 죽어라..
경애왕 폐하....
유염 신라의 수치요. 어서 죽지 않고 무얼 하시오? 자결하시오.
경애왕 오오, 이를 어찌할꼬? 황후 어쩌면 좋소이까?
황후 (모질게 말한다) 폐하, 이미 수모를 당하실 만큼 당하셨사옵니다. 먼저 가시오소서.
경애왕 나를 보고 죽으라는 말이오? 나를 보고..?
황후 어서 칼을 드시오소서. 그리고 목에 대시오소서. 폐하, 그리하시오소서.
경애왕 오오... 어이할꼬..?
경애왕은 드디어 떨며 그 칼을 들어서 본다. 그리고 주변을 모두 훓어본다. 허나, 아무도 그의 편은 없다. 그저 연식들만 머리를 찧으며 폐하를 부르면서 통곡할 뿐이다. 경애왕은 그 칼을 보다가 떨며 목에 가져가 본다. 황후가 고개를 끄덕여 준다.
경애왕 자신이 없소이다. 도저히 자신이 없소이다. 어찌하면 좋소이까?
연식 폐하, 더 이상 머뭇거리심은 아니 되옵니다. 신이 도와드리겠사옵니다.
경애왕 그래주겠는가?
연식 예, 폐하. 어차피 신도 곧 죽을 목숨이옵니다. 용서하시오소서. 그대로 계시오소서. 용서하시오소서, 폐하.
경애왕이 목에 칼을 대고 자꾸 두리번거리자 연식이 일어나 등뒤로 가 한번 예를 올리고 그대로 밀어버린다. 경애왕이 그렇게 비명을 지르며 목에 칼이 박혀 떨다가는 절명한다.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었다. 모두들 그렇게 침묵으로 본다. 황후가 눈을 감으며 눈물을 흘린다. 견훤이 보다가 말한다.
견훤 이로써 지난날의 수치는 어느 정도 갚았느니라. 허나 이제부터는 또 할 일이 많구나. 애술 장군?
애술 예, 폐하.
견훤 지금 다시 서라벌 궁 안으로 들 것이야. 여기있는 친 고려쪽 대신들은 모조리 참하여 그 목을 저자에 걸어라.
애술 예, 폐하.
최승우 ................
견훤 가자. 더 이상 이 포석정이 보기 싫구나.
애술 예, 폐하. 폐하를 뫼시어라. 그리고 부장들은 이 자들을 모조리 처형하라.
대답소리와 동시에 비명소리가 자욱하다. 대신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연식이 죽고 영경도 그렇게 죽는다. 그 죽음에서 서서히 돌아가는 견훤의 모습들을 잡는다. 애술이 그 와중에서 다시 말한다.
애술 왕비는 폐하께서 시침을 드신다 하셨느니라. 목욕재계하여 다음 영을 대기하도록 하라. 데리고 가라.
황후 ...............
일행은 그렇게 움직여 간다. 황후도 떨고 있던 환관들에게 다시 간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경애왕을 거쳐 디졸브된다.
씬 신라 황궁 마당
곳곳에 화톳불이 타오르고 있다. 군사들이 수없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다.
씬 동 조당
신라왕의 옥좌에 견훤이 앉아 있다. 그 밑으로 유염과 김웅겸, 김부를 비롯한 십수 명의 신료들이 서 있다.
견훤 옥좌가 비었으니 이제 그대들의 소원대로 김씨 왕이 앉아야 될 것이 아니겠는가?
최승우 당연하시옵니다. 우리 백제는 신라의 황도를 비록 점령했으나 그대들의 나라를 보전해 주려고 하는 것이오. 폐하께서는 지금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올시다.
유염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폐하.
김웅겸 망극하옵니다.
견훤 허면 누가 왕이 될 것인가? 말들을 해보라. 앞으로 우리 백제가 두고두고 보살펴 줄 것이니 안심하고 말들을 해보라. 유염공, 경이 하면 어떻겠소? 그 동안 공이 참 많았는데...?
유염 신이 어찌 감당을 하겠사옵니까? 신은 왕이 되고자 백제국을 도운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오로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황실이 안타까워 그리한 것이옵니다. 신은 아니옵니다.
견훤 허면 누가 좋겠소?
김웅겸 신라는 오랫동안 진골의 김씨 성에서 그 옥좌를 맡아 왔사옵니다. 항렬중 높은 어른이 계시니 그 분을 모시는 일은 당연한 일일 것이옵니다.
견훤 여기 김공 말씀인가?
김웅겸 그러하옵니다, 폐하. 살펴 헤아리시오소서.
견훤 유염공은 어찌 생각하시오.
유염 전혀 이의가 없사옵니다.
견훤 모두들 그리 생각하오?
모두들 예, 폐하.
견훤 허허, 이것 참... 백제의 황제가 신라로 와서 왕을 세우려니 참으로 힘이 드는구려. 허면, 김공이 왕을 하시구려.
김부 망극하옵니다, 폐하.
애술 허허, 우리 폐하께서 왕을 만들어 주셨으면 하례를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겠소이까? 예를 차리시오.
김부 예... (엎드려 절한다) 폐하, 신에게 왕통을 맡겨 주시니 참으로 은혜가 하회와 같사옵니다.
견훤 그 은혜를 안다면 앞으로 백제국에 두고두고 충성을 하도록 하오. 그리고 우리는 빠른 시일 안에 서로 나라를 합쳐 평화를 누림이 마땅할 것이오. 왕이 되었다면 그에 관한 것도 마땅히 잘 생각해야 할 것이오.
김부 예, 폐하. 그 말씀의 뜻을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이 황망함을 수습하는 대로 그 방안을 강구해보겠사옵니다.
견훤 자, 오늘은 밤이 너무 늦었소이다. 내일 아침까지 신료들을 모두 들라하였으니 그때, 즉위식을 하도록 하십시다. 아시겠소이까?
모두들 예, 폐하...
견훤 오늘같은 날 어찌 한잔 마시지 않을 수 있겠소? 이 역사적인 날에 말이오. 애술 장군, 전각 하나를 비워 술자리를 마련하도록 하라.
애술 예, 폐하. 부장들은 들었느냐? 속히 시행하라. 성대한 술자리를 만들도록 하라.
부장들 예, 장군
그렇게 껄껄껄 웃는 견훤의 표정에서... 디졸브
씬 궁궐 일각
궁궐 안 각 전각들 사잇길로 수많은 보화들이 수레에 실리고 있다. 그리고 한쪽으로는 궁녀들과 환관들, 관리들이 백제군에 이끌려 가고 있다. 궐 안 길마다 군사들의 경계가 삼엄하다. 그 한쪽에서 지켜보던 부장들이 계속 채근한다.
부장 금은보화는 따로 수레에 실어라. 그것들은 모두 전리품이다. 그리고 빨리 백제로 후송하라.
군사들 예, 장군.
부장 황실 곳간을 모두 열어라. 진귀한 서책들도 모두 실어라. 물건을 만드는 장인들도 모두 잡아들여 백제로 보내라.
그렇게 궐 안은 계속 어지럽다. 짐바리들과 책들과 사람들이 연이어 실려가거나 끌려가고 있다. 그 모습들에서...
씬 궐 안 어느 전각
견훤이 최승우와 애술 그리고 여러 장수들을 대동한 채 상석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유염 폐하, 얼마나 노고가 크셨사옵니까? 많이 드시오소서.
견훤 이를 말이오? 오늘 같은 날 아니 마시면 언제 또 마시겠소? 경도 드시구려.
유염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이제부터 신라는 우리 백제국의 보호국이 될 것이오. 두 나라가 잘 해보십시다.
김부 이를 말이옵니까? 그래도 폐하께서는 우리 신라국에 새로운 왕통을 세우게 하시고 후사를 잇게 해 주셨사옵니다. 망극하옵니다.
견훤 그리 말해주시니 고맙구려. 아무쪼록 대왕은 짐의 뜻과 여망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시구려.
김부 예, 폐하.
견훤 자, 한잔 하시구려.
김부 망극하옵니다.
견훤이 술을 따른다. 김부가 황송한 듯 들어서 마신다.
최승우 밤이 무척 깊었사옵니다, 폐하. 며칠간 강행군을 하셨사온데 그만 쉬심이 어떠하오리까?
견훤 허허, 무슨 소리인가, 파진찬? 술자리를 시작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두어 잔 더 마시고 쉬도록 하세. 아, 참.. 그리고 애술 장군?
애술 예, 폐하.
견훤 우리만 여기서 이렇게 마시고 즐겨서야 되겠는가? 지금 공산에 나가있는 군대가 무려 일만에 가까워. 그들에게도 먹을 것을 풍족하게 전해주도록 하이.
애술 예, 폐하. 그리 이미 시켰사옵니다. 하옵고 폐하..
견훤 말해보게.
애술 기왕에 술과 고기가 갔사옵니다. 오랜 행군과 전투에 고생이 많은 장수들에게 궁녀들을 하사하심이 어떠하시옵니까?
견훤 궁녀들이라...? 하하하... 과연 애술 장군다운 말일세 그려. 승리한 장수들에게 시침은 당연한 것이야. 이 서라벌에 삼천 궁녀가 있었다 하였는가? 그렇다면 몇 백쯤 전리품으로 가져간들 어떻겠는가? 그리하라. 쓸만한 궁녀들을 몇 백 데리고 가 저들의 노고를 풀어주도록 하라.
애술 예, 폐하. 헤헤헤... 장수들이 폐하의 황은에 모두들 감격할 것이옵니다.
최승우 폐하, 그것은 좀 더 미루시오소서. 지금 고려의 군대가 이쪽을 향해 노도와 같이 달려오고 있사옵니다. 여인들을 주어 군기를 해이하게 함은 아니될 말씀이시옵니다.
견훤 잠시의 여독을 푸는 것이 어찌 군기를 해친다 하겠는가? 그리 하라, 애술 장군.
애술 예, 폐하. 참으로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견훤 자, 드십시다. 오늘 우리 백제와 신라의 사람들이 모여 좋은 자리를 마련하고 있소이다. 어서들 드십시다. 허허허....
그렇게 그들 잔을 들어 마시는데 애술이 다시 말한다.
애술 이보시오, 대왕.
김부 예, 장군.
애술 폐하께오서는 황후에게 시침을 드신다 하셨소이다. 어찌 되셨소이까?
김부 아, 저.. 그것은.. 미처 이 사람이 상세히 알지 못하여....
견훤 아하, 무얼 그리 서두르는가? 오늘은 이미 날이 다 밝았어. 아직 날이 많아. 서두르지 말도록 하게.
애술 예, 폐하.
견훤 고려의 왕이 온다? 고려의 왕이...? 허허허... 내 아우가 온다니 가슴이 설레이는구먼 그래. 어서 오너라, 아우야. 이 형이 아주 성대하게 맞아주마. 암 성대하게 맞아주고 말고...
모두들 ................
그렇게 술을 마시는 견훤의 여유있는 표정에서....
씬 공산
새벽이 밝고 있다. 그 여명 속에서 여전히 신덕과 상귀가 먼 산 아래를 노려보고 있다.
신덕 첩자들의 보고가 계속해 올라오고 있소이다. 고려의 왕은 황도에서 오천의 군사를 가지고 떠났고 대야성과 용주에서 신숭겸과 김락의 군대가 다시 오천의 군대를 연합하여 오고 있다고 하오이다.
상귀 아주 볼 만한 전쟁이 될 것 같사옵니다. 일찍이 몇 십리를 두고 산과 계곡과 강에 이처럼 넓게 매복을 친 경험은 없사옵니다.
신덕 엄청난 전투가 될 것이외다. 우리가 아무리 입지적으로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 고려군 또한 일만이 넘소이다. 쉽지 않은 전투일 것이외다.
상귀 이미 그리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곧 폐하께서 거느리신 본군도 이리로 오지 않겠사옵니까? 그리되면 병사들의 사기가 더욱 오를 것이옵니다.
신덕 그럴 것이외다. 참으로 묘한 일이올시다. 양쪽의 황제들께서 다시 또 맞붙게 되었소이다. 허허, 이것 참..
씬 인서트 (그 아침)
어느 강변길을 왕건의 군대가 계속해 달려오고 있다. 복지겸이 한숨을 쉬며 신방을 보고 말한다.
복지겸 군사들의 사기는 어떠한가?
신방 오늘로써 사흘 째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사옵니다. 모두들 매우 피로해 하고 있사옵니다.
복지겸 큰일일세. 폐하께서는 일찍이 이렇게 서두시는 것은 뵌 적이 없네.
왕건 (저만큼에서) 왜 이리들 길이 더딘가? 서둘라 하여라. 서둘라고 하여라.
부장1 서둘랍신다. 길을 재촉하신다. 서둘러라.
그들 그렇게 달려가면....
씬 송도 황궁 외경
씬 동 황후전
황후 오씨와 유씨, 제조상궁과 김상궁이 함께 해 있다.
오씨 신료들이 병부 관아에서 밤새 회의를 열고 있다고..?
제조상궁 예, 황후마마. 그렇다 하옵니다.
유씨 아무래도 폐하께서 무리를 하여 가신 것이 걱정들 되나 보옵니다.
김상궁 서경에서 온 유금필 장군과 박술희 장군이 만약을 염려하여 군대를 준비하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마마. 너무 심려치 마시오소서.
오씨 염려하지 말라고 해서 아니 될 일이냐? 아무리 생각해도 종잡을 수가 없구나. 그 전쟁이 무엇이라고..? 사흘길이 넘는 그곳을 그리 서둘러 가신다는 말이냐? 모두들 걱정하는 그 길을 말이야. 허허, 이것 참...
씬 동 황궁 병부 전각 안
김행선과 유금필, 박술희, 왕규, 최응, 최지몽들이 모여있다. 모두들 초조하고 긴장된 모습들이다.
김행선 이거야말로 하루가 여삼추 같다더니 요 며칠이 꼭 그렇소이다.
유금필 그러게 말이옵니다. 아무래도 병부령께서 함께 가실 것을 그랬나 보옵니다. 왠지 안심이 아니되오이다.
박술희 너무들 걱정이 크신 것 같습니다. 백제군도 일만이라 들었고 우리 군도 일만이라 합니다. 그곳은 특히나 조물성도 아닙니다. 우리가 여건이 나쁠 이유가 없사옵니다.
왕규 여건은 저들보다 좋다고 할 수 없사옵니다. 우리는 쫓아가는 입장에 있고 저들은 기다리는 입지에 있사옵니다.
최지몽 그러하옵니다. 힘이 드는 곳은 우리 쪽이옵니다. 길은 멀고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사옵니다.
최응 ..............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우리 쪽 입지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유금필 아무리 생각해도 최공께서 가셔야 했습니다. 허허, 이것 참...
최응 물론 그래야 했습니다. 허나, 지금 서라벌에 있는 백제군을 빨리 끌어내려면 또 다른 방법이 절실합니다. 지금 그것 때문에 소생은 이곳 황도에 남아있었습니다.
김행선 그렇소이다. 그건 그래요. 우리 수군이 지금 남해안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백제의 뒤를 치고 들어가고 있어요. 백제도 지금쯤 기겁들을 할 겝니다. 우리 수군이 저들의 뒤를 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유금필 그렇기는 하옵니다마는... 허허, 이것 참...
씬 바다
고려의 대 선단이 가고 있다. (옛 자료 필름 무방) 그리고 해설이 이어지면서 뭍으로 상륙하는 군사들의 공격 모습이 보인다.
해설 고려 수군의 남해 전략. 고려의 수군은 18년 전인 서기 909년에 나주를 공략하여 함락시킨 이후, 두 번째로 백제가 신라의 왕도인 서라벌을 침략하던 이해 927년, 다시 남해를 공략한다. 고려는 이때에도 유감없이 그들의 해군력을 크게 발휘하여 지금의 남해인 전이산과 지금의 순천인 돌산 등 4개 항을 함락시킨다. 이는 고려가 먼 바닷길을 돌아 불시에 백제의 영토를 공략한 두 번째의 일로써 고려의 수군이 백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등히 우수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씬 전주 황도 외경
씬 동 황궁 안
공직이 막 도착한 전령의 장계를 보고 있다. 그 주변으로 능애, 능환, 종훈, 박영규, 김총, 최필, 부달, 소달들이 함께 해 있다.
공직 허허, 이거 뜻밖의 기습을 받고 있소이다. 폐하께서 지금 서라벌을 공략하시고 계시는데 고려가 이를 알고 뒤를 노리는 것 같소이다.
능환 그건 또 무슨 말이시오? 기습이라니..?
공직 지금 전이산과 돌산에 고려군이 상륙했다고 하오이다.
종훈 고려군이 말입니까? 아니, 언제 그곳까지.....?
능애 벌써 상륙을 했다는 말입니까?
공직 그렇다고 하오이다. 이야말로 불의의 기습이 아니겠습니까?
박영규 고려의 수군은 일찍이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 금성을 공략하여 아직까지 저들의 영토로 가지고 있소이다. 이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빨리 우리도 수군을 동원하여 저들을 막아야 합니다.
최필 사정이 그리 급하다면 빨리 폐하께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총 우리 수군이라고 해봤자 수군은 고려에 미치지 못합니다. 상륙한 저들을 몰아내는 것이 더 급합니다.
공직 아무튼 폐하께 이를 알리십시다. 그리고 우리는 군대를 다시 정비하여 남해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능환 저들의 기습은 계산된 것이올시다. 폐하께서 서라벌을 치고 계시니 저들은 다시 우리 후미를 쳐서 방향을 돌리려 하는 것이올시다.
종훈 소생도 그리 보옵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저들이 후방으로부터 치고 올라온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옵니다. 빠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옵니다. 군사를 준비하고 폐하를 재가를 받아 출동시키는 것이 가하다고 보옵니다.
능환 옳은 말일세. 그러나 서두를 것은 없다고 보네. 저들은 지금 급했어. 고려왕이 거느리는 군대가 서라벌로 가고 있다 하네. 양면 작전을 쓰려는 것 같네 그려. 일단 폐하께서 아니 계시니 이곳에 들어오신 태자마마의 영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네. 아니 그렇소이까, 장군?
공직 소장도 그리 봅니다. 허면, 태자 마마께 말씀을 드리십시다.
씬 동 황후전
황후 박씨와 상궁 이씨, 그리고 고비와 최상궁들이 보이고 태자들이 모두 모여 있다.
박씨 도대체 아버지와 그 아들이 무엇이 달라서 전쟁에만 가면 아들들은 지고 그 아버님은 승리를 거듭한다는 말인고..? 어찌 해서?
모두들 ................
박씨 뭐 이번에는 신검 태자 뿐 아니라 금강 태자도 곤욕을 치루었다 하니 폐하께서 누구는 혼을 내고 누구는 아니 내고, 뭐 그러실리야 없으실테지만...
고비 ............ (눈치만 본다)
신검 어마마마, 아무튼 참으로 운이 없었사옵니다. 우리 형제들이 분명 아바마마께 큰 경을 치를 것이옵니다.
박씨 (한숨) 그러게 말이오. 그러니까 제발 잘들 좀 해 보오. 이 어미가 한숨을 좀 놓게. 자꾸 그러니 벌써 있어야 할 후사에 대한 말씀이 없지 않으시오?
신검 송구하옵니다, 어마마마.
박씨 물론 하늘의 이치로 정해진 자리인데 그것이 어찌 될 리야 있겠소마는.... 부질없는 무리들이 폐하를 충동질하여 엉뚱한 생각들을 갖게 한답니다.
금강 ...........?
박씨 모쪼록 자중들 하고 그렇다고 너무 기들 죽지 말고, 의연하도록 하시오.
신검들 예, 어마마마.
박씨 금강 태자도 형제간의 우애를 더욱 돈독히 하는데에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야.
금강 예, 황후마마.
박씨 그나저나 서라벌은 지금쯤 어찌 되었을꼬...? 그곳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은 받았는데.. 지금쯤 무엇이 어찌 되었는고..?
씬 신라 황궁 남문 앞
신료들이 들어서고 있다. 한쪽에서 관리(밀사)가 여러 수하 관리들을 데리고 서책을 펴며 일일이 관리들을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친 고려계는 붓으로 이름을 지우고 있다.
관리 공은 저 문으로 가시오. (계속 보며) 박공은 저 문으로 가시오. 공은 저리로 가시오. 아아, 김공은 저문으로 가시오.
계속해 관리의 분류에 따라 그들은 각기 문을 달리해 들어간다. 안에서 비명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관리들이 섬찟하며 귀를 기울인다.
씬 동 문안
들어서는 친 고려계 관리들이 무자비하게 타살되고 있다. 이미 시체들이 수북히 쌓여 있고 들어서는 관리들이 철퇴에 의해 맞아 죽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는 관리들도 사시나무 떨 듯 떤다.
부장1 아, 무엇들 하오? 살아남은 신료들은 어서 안으로들 가오. 지금 등극식이 진행 중이오. 어서...
신료들은 쫓기듯 들어가고 한쪽에서는 여전히 죽어 나간다. 그 살벌함에서 위로 들려오는 아악소리....
씬 동 대전 뜰
정전 앞으로 뜰에 여러 명의 관리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초라한 등극식이다. 김부가 왕의 대례복을 입고 옥좌 앞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옆에 견훤이 앉아 있다. 마의태자의 모습도 보인다.
유염 대소신료들은 모두 들으시오. 오늘 박씨왕은 가고 새로이 진골인 김씨들이 다시 왕을 이으셨소이다. 이번에 추대하여 등극하시는 왕은 문성대왕의 6대손이시며 이찬 효종공의 아드님이시오이다. 아무쪼록 백제의 황제폐하에 의하여 대왕에 오르셨음으로 신료들은 이 점을 특별히 기억하여 종사를 뫼시는데 잘 보필해야 할 것이외다.
그렇게 유염이 일장 훈시하고 물러가면 김부(경순왕)가 말한다.
김부 경들은 들으오.
모두들 예.
김부 불행하게도 박씨왕들이 종사를 잘 돌보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러 이러한 변을 만났소이다. 그러나 백제의 황제폐하께서 우리의 종사를 보존케 하여 주셨음을 백번천번 하례를 해도 부족할 것이외다.
견훤 ............ (그렇게 보고 있고)
김부 이제 양국이 영원히 번성하고 공존하여 도울 것임을 천지신명께 맹세하는 바이며 특히나 대 백제국의 도움과 배려를 통하여 이 나라를 지킬 것임을 천명하는 바이오. 경들은 이 점을 각별히 유의하도록 하오.
그들 예, 폐하.
경순왕이 그렇게 영을 전하고 다시 견훤에게 예를 표한다. 그러면 견훤이 일어나 다시 말한다.
견훤 신라국의 대소신료들은 모두 들으라.
모두들 예....
견훤 지금 대왕이 말하였듯이 이 나라의 종묘사직을 짐이 보전하여 주었도다. 이 나라에 고려를 받들던 신료들은 지금 저 궁궐 문 밖에서 모두 죽었노라. 그대들은 앞으로도 대왕의 말처럼 신라 왕실에 충성하고 또한 우리 백제국의 은혜를 잊지 말지어다. 고려는 신라의 적이며 또한 우리 백제의 적이다. 이 점들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알겠는가?
모두들 예, 폐하...
견훤 짐은 일찍이 저 조물성에서 고려의 왕을 무릎 꿇리고 저들로부터 상부라 칭함을 받은 바 있다. 이미 저들의 형님이 되었고 또한 신라의 서라벌을 점령하였다. 과연 누가 이 삼한의 주인인가? 바로 대 백제국의 황제인 짐이니라. 아니라고 말할 자 있으면 나와 보라.
모두들 .................
견훤 이미 사실상 삼한은 통일된 것이니라. 대 백제국의 황제인 짐이 그리한 것이니라. 그대들은 이 점을 잊지 말라. 그리고 영원히 대 백제국에 충성하라. 알겠는가?
모두들 예, 폐하....
견훤 하하하... 그대들을 보니 새로운 신라의 앞날이 보이는 것 같구먼. 이보시오, 대왕? 이 경사스러운 날에 축하연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소?
김부 예, 폐하.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어서 연회장으로 가시오소서.
견훤 하하하... 그렇게 하십시다, 음....
견훤은 만족스럽다. 그렇게 신료들을 돌아보며 걸음을 옮긴다. 그런 그의 표정에서... 들려오는 아악소리...
씬 연회장
악공들이 음악을 켜고 있고 무희들이 가득히 춤을 추고 있다. 신료들이 모두 참석해 술을 마시고 있으나 분위기는 무겁다. 견훤은 호기롭게 말한다.
견훤 이보시오, 대왕?
김부 예, 폐하
견훤 우리는 이제 곧 고려의 왕을 만나러 가야 하오. 아마도 내일 아침이면 떠나야 할 것이오.
김부 말씀하셨기 때문에 알고 있사옵니다.
견훤 아마도 역사에 남는 대 전투가 이 서라벌 근처에서 벌어질 것이오. 그 승전보를 기다리도록 하오.
김부 예, 폐하.
견훤 앞으로 대왕이 어찌하는가에 따라서 이 서라벌이 다시 초토화가 되느냐 아니 되느냐가 걸려 있소이다. 짐이 화를 내지 않게 하도록들 하오.
김부 이를 말이옵니까, 폐하?
견훤 헌데, 이 좋은 날에 모두들 얼굴 표정들이 저러하오? 모두 웃으라고 하시오.
김부 예, 폐하. 백제국 황제폐하의 영이시오. 모두들 즐거이 술을 마시라 하십니다. 자, 잔들을 드시오. 그리고 크게 웃읍시다. 웃읍시다. 하하하.. (억지로 눈물 머금으며) 하하하.... 웃읍시다.
그러자 모두들 억지로 웃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며 견훤이 역시 좋아 또 끄덕인다. 그예 몰래 눈물을 훔치는 경순왕의 표정에서...
해설 경순왕. 일찍이 대야성을 지켰던 화랑의 한 사람인 김효종의 아들이다. 김효종은 화랑 시절에 이미 그 의협심과 용맹함이 뛰어났었다고 한다. 그러한 효종을 진성여왕이 불러 곡식과 집을 내려 주었으며 여왕의 조카인 헌강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해준다. 효종은 후에 대아찬을 거쳐 시중을 지내고 죽게 되는데 그의 아들이 바로 경순왕 김부인 것이다. 그러나 비극이라고나 할까? 이러한 김부가 백제의 견훤에 의해 왕위에 올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김부는 곧 견훤이 돌아간 이후 백제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다시 고려로 기울어 훗날 나라를 들어 바치게 된다. 시작과 끝이 비극적인 역할을 맡게 되는 인물인 것이다.
연회가 계속되고 있다. 모두들 웃으며 술을 마시고 있다. 애술이 보다가 묻는다.
애술 폐하, 이 즐거운 술자리에 어찌 여흥이 없을 수 있겠사옵니까? 폐하께서는 어제 승리자의 당연한 권리인 시침을 명하셨사옵니다. 왕비를 끌어내어 술을 치게 하시오소서.
최승우 ...........
견훤 허허허... 그것 참, 그럴 듯한 말일세. 장수가 전쟁에 승리하면 시침을 받는 것은 오랜 관례일세. 왕비를 나오라 하시오, 대왕.
모두들 ............... (경악한다)
최승우 폐하, 한번 더 재고하시오소서. 이런 자리에 폐왕의 왕비를 부른다는 것은 백성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옵니다.
견훤 허허, 우리에게는 그만한 권리가 있다고 하였어. 대왕, 어서 왕비를 좀 보도록 해 주시구려.
김부 예, 폐하. 환관은 무얼 하는가? 황후전에 가서 뫼셔오도록 하라.
환관들이 대답하며 달려간다.
견훤 술이 참으로 마시있구먼. 술맛이 그럴 듯 하겠어. 허허허.. 자 들 한잔씩 하십시다. 허허허...
그런 견훤의 표정에서..
씬 동 궐안 황후전 복도
환관들이 서있다.
씬 동 황후전 안
황후가 이미 옷단장을 끝냈다. 궁녀들이 재촉하고 있다.
궁녀 황후마마, 이제 곧 시침을 들라 할 것이옵니다.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황후 그럴 것이다. 지금 술자리가 한창이라 하니 어찌 아니 부르겠느냐? 자 옷단장이 다 끝났으니 이제 가야겠구나.
궁녀 어디로 가실 것이옵니까?
황후 내가 갈 곳이 어디겠느냐? 폐하께서 이미 저들에게 목숨을 잃으셨거늘 그래도 신라의 국모라는 내가 시침을 들고 목숨을 더 연명하는 것이 옳겠느냐? 자, 저것을 보아라.
대들보에 매인 긴 비단끈을 가리킨다. 궁녀들이 경악한다.
궁녀들 황후마마....
황후 내가 옷을 갈아입은 것은 저 세상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더 이상 욕을 당하지 않게 나를 도와다오. 어서...
황후는 그것을 목에 건다. 그리고 발바침으로 놓여있는 장치 위에 올라선다. 궁녀들이 울며 매달린다.
궁녀 황후마마, 고정하시오소서.
황후 나를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저들에게 능욕을 당해야 옳겠느냐? 나를 도와다오. 그것이 너희들의 마지막 할 일이니라.
궁녀 황후마마...
그때, 요란한 발소리들이 들려온다. 황후는 결심한다. 환관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환관 (E) 황후마마... 신왕의 명령이시오. 어서 문을 열고 나오시오.
황후 저 문을 닫아라. 어서.
반쯤 열려졌던 문이 닫힌다. 황후는 발로 장치를 걷어찬다. 그리고 그렇게 목이 매달린다. 궁녀들이 보며 울고 있다.
황후 (죽어가며) 다시는... 다시는... 이런 치욕을 받지.. 않도록... 신왕께 전해다오... 부디 신라를... 다시 일으키시라고... 다시...
궁녀들 황후마마, 황후마마....
궁녀들이 계속 울고 있다. 잠겨진 문을 환관들이 계속 두드리고 있다.
씬 그곳 복도
환관들 문을 열어라.. 문을 열어라.. 문을 열지 못할까?
그들은 그예 문을 부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문이 열리고 그들이 안으로 들어서다가 놀란다. 궁녀들이 울고 있고 황후의 시신이 늘어져 있는 것이다. 놀라는 그들의 표정에서....
씬 다시 연회장
견훤 (술 마시며) 나는 그대들에게 왕비의 시침을 받고자 하였소이다. 그러나 무릇 호걸이라 칭하는 내가, 그래도 대 백제국의 황제인 내가 이웃나라의 왕비를 핍박하여 잠자리를 함께 할만큼 금수는 아니오.
모두들 ..............
최승우 (안도의 한숨을 쉰다)
견훤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신라의 자존심이오. 왕비를 통하여 신라의 남아있는 자존심을 보고 싶었던 것이오. 왕비가 오면 우리 한번 그것을 다 확인해 보도록 하십시다.
최승우 그러하오이다. 우리 황제폐하께오서는 그토록 몰인정한 분은 아니십니다. 그대들도 이 점만은 분명히들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유염들 아, 예... 어찌 아니 그러시겠사옵니까?
견훤 그래도 왕비는 자존심이 있어 보였소이다. 목숨을 구걸하는 왕에게 죽으라고 하는 것을 보았소. 이 얼마나 대단한 여인인가 말이야. 그래서 내 한번 떠 보려고 하는 것이야. 떠보려고 말이야. 하하하...
그때, 영을 받고 달려갔던 환관들이 허겁지겁 되돌아 온다. 어쩔 줄 모르며 눈치를 보고 안절부절하며 선다.
김부 어찌된 일이냐? 왜 그렇게 안절부절인고..?
환관 대왕폐하, 황후마마께서.... 황후마마께서 자진을 하셨사옵니다. 목을 매셨사옵니다, 폐하...
모두들 (충격이다) .....
최승우 (눈을 질끈 감는다) ......
견훤 목을 매었다...? 목을 매..? 허허, 이거 내가 장난이 지나쳤구먼. 지나쳤어. 과연, 과연, 이 나라 왕비는 그 체면을 다 지켰도다. 그 점을 짐이 인정을 하겠노라, 인정을 하겠어. 이런, 쯧쯧쯧.... 자, 대왕?
김부 예, 폐하.
견훤 허면 이 일은 이쯤하고, 오늘 연회를 파하도록 하십시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 이곳을 떠날 것이오. 앞으로 정례적으로 사신이 오가도록 하십시다.
김부 예, 폐하.
견훤 흥이 다 깨어졌다. 짐의 장난이 지나쳤어. 장졸들을 모두 편히 쉬게 하고 내일 아침 떠나도록 하라. 알겠는가, 애술 장군?
애술 예, 폐하.
다시 술잔을 드는 견훤의 그 표정에서...
씬 인서트 (황후전)
그렇게 걸려있는 황후의 시신에서.... 서서히 서라벌 황궁의 낙조가 드리우면서...
해설 견훤이 신라의 경애왕 비를 강제로 범했다는 한결같은 기록들의 사실, 우리는 여기서 많이 당혹하지 않을 수 없다. 기록의 면면에 보이는 그의 모습들은 사뭇 그런 일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의 기록은 중요한 것이다. 이 드라마는 궁예와 왕건과 견훤으로 이어지는 세 주인공 중 하나인 견훤의 인물됨을 결코 그렇게 폄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만한 인물이 여인 하나로 하여 후세에 욕을 남길 리 없었으리라 보기 때문인 것이다.
씬 동 궁안 어느 전각 (밤)
견훤이 최승우, 애술,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견훤 왕비의 일은 참으로 마음이 좋지를 않구먼. 하긴 뭐, 죽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지.
최승우 하오나 행여나 세간에 폐하께서 어찌 소문이 돌지가 우려가 되옵니다.
견훤 하하하... 시침을 들라 했던 것 말인가? 장난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세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야.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일세, 나. 그건 그렇고... 경들도 오늘 서라벌에서 많이 보고 느꼈을 것이야. 나라의 힘이 없으면 어찌된다는 것인지 말이야. 지금 공산에는 별 일이 없는가?
최승우 예, 폐하. 계속해 전령이 오가고 있사옵니다. 이미 고려군을 맞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하옵니다.
견훤 고려군은...?
애술 고려의 왕은 그곳의 황도인 송악을 떠나오고 있고, 신숭겸, 김락 같은 장수들이 대야성과 용주에서 병력을 합쳐 오고 있다 하옵니다. 모두 일만군이라 하옵니다.
견훤 재미있는 싸움이 되겠어. 그리고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견훤 내가 신기한 것은 파진찬의 예상이 귀신처럼 적중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그렇다면 이번에 내가 공산에서 왕건 아우를 잡는 것은 기정사실이 아니겠는가?
최승우 물론이옵니다. 페하의 세상이 열릴 것이옵니다.
견훤 기분 좋은 말이야. 이제 내일 아침 떠나서 공산에 도착하면 해거름이 되겠구먼. 거기서 왕건아우와 만나게 되겠어.
최승우 틀림없이 그렇게 되실 것이옵니다, 폐하.
견훤 아아, 육십 평생에 이번 같은 날들은 없었네. 내가 제국을 세웠을 때도 이렇게 까지 설레이지는 않았어. 나는 지금 서라벌에 와있고 다시 왕건아우를 만나네.
최승우 삼한 천지의 백성들이 폐하의 존성대명을 외치며 존경을 드릴 날이 멀지 않았사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실 것이옵니다.
견훤 옳은 말이야. 지금 다 눈에 보이네 그려. 눈에 보여. 삼한의 통일이 내 눈에 보여.
그때, 황급히 부장 1이 들어와 군례를 드리며 말한다.
부장1 폐하, 황도에서 온 급보이옵니다.
견훤 급보.... ? 급보라니..? 급한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장계를 받아본다) 뭐가 도대체 그리 급하다는 것이야. (하다가 놀란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뭐라...? 남해안 일대에 고려군이 상륙을 해?
최승우 (놀란다) 고려군이 남해안에 말이옵니까?
견훤 보게, 이걸 좀 보게. 이들이 지금 전이산과 돌산에 상륙하여 육로로 올라오고 있다네. 많은 읍성들이 함락이 되었다는 것이야.
최승우가 그 장계를 본다. 그러다가 표정이 굳어진다. 그리고 끄덕인다.
최승우 과연, 고려의 신동은 대단하옵니다. 최응이 말이옵니다. 폐하께오서 서라벌에 오시니 저들은 뒤늦게 이를 알고 빠른 수군을 동원하여 우리 백제국의 후미인 남해안을 치고 있사옵니다.
견훤 이 사람아, 남을 칭찬만 할 것이 아니라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최승우 감탄을 아니 할 수 없기에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신도 고려군이 수군을 남해로 향할 줄은 몰랐사옵니다. 아무래도 이곳의 일을 빨리 마무지 짓고 황도로 가셔야 될 것 같사옵니다.
견훤 그래도 왕건 아우는 잡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최승우 물론이옵니다. 일단 공직 장군에게 명하시어 최필 김총 장군들을 남해로 보내도록 하시오소서. 잘못하면 금성처럼 될까 두려운 일이옵니다.
견훤 (놀라서) 금성......? 어이쿠, 그건 아니 되지.. 금성처럼 되면 아니 되지. 나는 금성 이야기만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고.... 여봐라...
부장1 예, 폐하.
견훤 황도로 급히 전령을 띄워라. 최필, 김총, 두 장군과 종훈 군사는 즉시 남해로 내려가 그곳 성주들을 도우라 하라.
부장1 예, 폐하.
그렇게 부장들이 나간다. 견훤이 끄덕이며 말한다.
견훤 서둘러야겠구먼. 서둘러야겠어. 고려의 수군이라...? 이 수군은 정말 골치가 아파. 암, 골치가 아프고 말고... 빨리 준비를 하고 이곳을 뜨세.
최승우 예, 폐하..
씬 아침의 서라벌 남문
열려있는 대문으로 견훤군이 이동을 하고 있다. 김부를 비롯하여 유염, 김웅겸, 마의태자와 대신들이 모두 배웅하고 있다.
김부 폐하, 부디 조심하시오소서.
견훤 잘 있으시오. 곧 만나게 될 것이오.
김부 예, 폐하. 조심해 가시오소서.
그들은 그렇게 간다. 신라의 신료들이 그렇게 길게 허리를 숙이며 배웅하고 있다. 꼬리를 무는 그 군사들의 모습이 그렇게 멀어지면서 그것을 보는 경순왕 김부의 참담한 표정 위로.... 디졸브
씬 길
견훤들이 그렇게 가고 있다. 견훤이 다시 말한다.
견훤 서라벌의 기억은 참으로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이야.
애술 그러하옵니다, 폐하. 전리품도 엄청나게 거두었사옵니다. 히히히...
견훤 도적질을 하라고 한 것이 아니야. 우리 백제가 부족한 것, 우리 백제에 없는 것, 우리 백제가 배워야 할 것들을 가져가라 한 것이야.
애술 알고 있사옵니다, 허허허.... 하지만 금은보화도 필요하지 않사옵니까? 산더미처럼 거두어갔사옵니다.
견훤 이런, 이런, 쯧쯨쯧..... 자, 어서들 가세. 많이들 기다릴 게야.
씬 공산
신덕과 상귀가 여전히 그렇게 부산하게 오가는 군사들을 보며 점고하고 있다. 늘어선 영채들은 끝이 없다.
상귀 폐하께서 지금 이리로 오고 계신다 하옵니다.
신덕 고려군도 양쪽에서 지금 쉬임없이 이리로 달려오고 있다 하오. 저녁 무렵이면 폐하께서 여기에 이를 것이고, 고려왕도 군대를 이끌고 바로 그 무렵에 도착을 할 것이오.
상귀 오늘 저녁은 참으로 볼만하겠사옵니다.
신덕 기다려 보십시다. 천지가 놀라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파진찬이 말한 바로 그날이올시다. 오늘이 말입니다. 하하하하....
씬 길
신숭겸과 김락, 김언, 전이갑 형제, 박수문 형제의 군대가 몰려오고 있다. 그렇게 서둘러 오면서...
김락 이렇게 서둘러서야 군사들이 어찌 견디겠습니가? 너무 숨가쁘게 서두르는 것 같습니다.
신숭겸 아직도 하루를 더 가야 합니다. 폐하께서는 이미 저녁 무렵이면 고을부에 들어가실 것입니다.
전이갑 우리와 만나기 이전에 백제군을 만날까 두려운 일이올시다.
김언 그렇게 되면 어려워집니다. 서두릅시다. 서둘러야 합니다.
김락 알겠소이다. 서둘러라... 걸음을 빨리 하라...
박수문 서둘러라.....
씬 또 다른 길
왕건들이 그렇게 오고 있다. 이들 걸음도 여전히 바쁘다. 복지겸과 신방이 왕건 옆에 바짝 붙어간다.
왕건 (하늘의 해를 본다) 해가 많이 짧아졌소이다. 서둘러 왔는데도 아직 길이 한참 남았구려.
복지겸 폐하, 하오나 곧 고을부에 이르옵니다. 그곳에서 공산 동수는 지척이옵니다. 아무래도 그쪽의 산이 깊으니 적병이 있지 않을까 우려되옵니다.
왕건 이미 앞에 계속해 첨병들을 보내고 있지 않소이까?
복지겸 하오나, 보다 섬세하고 밝은 첩보가 감지되지 않고 있사옵니다. 우리는 너무 서두르고 있으며 또한 적에 대해 정보가 없사옵니다. 이쯤해서 군사를 중지시키고 적의 정세를 알아봄이 어떠하옵니까?
왕건 서로가 뻔한 전력이올시다. 복장군 답지 않게 이번에는 너무 조심성이 많구려. 이대로 가십시다. 서라벌이 지금 급합니다.
복지겸 (하는 수 없다) 예, 폐하
그들 그렇게 지나쳐 간다.
씬 공산 입구
견훤의 군대들이 들어서고 있다. 신덕과 상귀가 맞고 있다. 견훤이 웃으며 말한다.
견훤 하하하... 별일들 없었는가?
신덕 예, 폐하.
견훤 우리는 서라벌에서 아주 재미가 있었다네. 이곳은 어떠한가?
신덕 폐하께서 보내주신 술과 고기로 모두 배불리 먹고 마셨사옵니다. 하오나 궁녀들은 돌려보냈사옵니다.
애술 아니 되었소이다. 그것 참 아니 되었소이다. 허허허...
견훤 (둘러본다) 저 보이는 것들이 다 우리의 영채인가?
신덕 예, 폐하. 대부분 위장된 것이고 실제의 병력은 적군이 오는 길목과 산 중심 안에 배치되어 있사옵니다. 모두 파진찬께서 이르신 대로 해 놓았사옵니다.
견훤 수고하였네. 곧 큰 손님이 오신다네. 파진찬은 오시는 길목까지 훤히 말해 주었어. 저들을 협곡에 다 몰아넣고 퇴로를 끊을 방책을 다시 점검하게.
신덕 예, 폐하. 우선 저 안으로 드시오소서. 폐하께서 계실 군영을 마련해 놓았사옵니다.
견훤 알겠네. 가세,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견훤 (가면서) 기가막힌 날이야. 아주 날이 곱게 지고 있구먼. 아름다운 저녁이야... 하하하하.. 이제 다 와 가겠구먼. 왕건 아우가 다 와 갈 게야. 빨리 만나고 싶구먼. 빨리 만나고 싶어. 하하하...
씬 길
야산길을 돌아 왕건군이 질주해 오고 있다.
왕건 이제 곧 서라벌이오. 우리는 서라벌 입구인 고을부에 다 이르른 것이오. 여기서 견훤왕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소이다.
복지겸 꼭 만나실 것이옵니다.
왕건 하하하... 어쨌든 나는 견훤왕을 상부라 하였소이다. 이참에 그 형님을 만나 옛 빚을 갚을 생각이오. 옛 빚 말이오.
<158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