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혈이 귀한 이유는 <흠 없는 유일한 피>이기 때문이라고 지난 번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이 <존재론적인 가치>라고 한다면 이후부터 열거하는 여러가지 가치는 <효용적 가치>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아무리 하나님 아들이요, 무죄한 분의 피라 할지라도 그 자체의 가치만 있을 뿐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치가 없다면 우리에게서 감탄은 자아낼 수 있을지 몰라도, 찬양과 감사는 자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성경의 여러곳에서 우리는 그 보혈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들로 인해 찬양꺼리가 되과, 감사꺼리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1:5)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5:9-10)
그래서 우리 주님의 보혈은 참으로 효용적 가치 면에서도 우주에서 제일 가는 가치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그의 피가 우리를 마귀에게서 구출해내기 위해 속전(贖錢:되찾아 오기 위해 지불되는 돈)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노예나 죄수가 된 사람을 되찾아 오려면 상당한 값을 지불해야 되는 데 그것을 성경에서는 속전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속전이 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5:10)
그러나 이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다>고만 했지 누구에게서 샀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설마 '하나님께로 부터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라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자가당착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는 값으로 산(bought) 것 이 되었으니"(고전6:20)
여기도 보면 우리를 샀다고만 하셨지 <누구로 부터 샀는지>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나 레위기 16장에 나오는 속죄일의 행사를 자세히 보면 누구에게서 샀는지가 암시되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속죄일에 두 마리의 흠없는 염소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한 마리는 여호와께 드리기 위한 것이고, 한 마리는 아사셀에게 바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8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죽여서 그 피를 지성소에 가서 속죄소에 뿌리는 것으로서 되어지지만, 아사셀에게 바치는 것은 광야로 데리고 가서 무인지경에 놓아둠으로서 다른 맹수들에게 잡아 먹히게 해야 했습니다.
이로서 광야의 아사셀에게 바쳐진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아사셀이란 광야에 살고 있는 귀신, 즉 마귀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아사셀 염소의 피는 마귀에게 바쳐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도 마귀에게 바쳐졌다는 말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해석을 불경스럽거나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하실런지 모르나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거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인류는 마귀의 꼬임에 빠져 마귀에게 종속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귀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 종의 결박을 풀어버리려면 무력이나 폭력으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진하여 마귀의 종이 되었으므로 그 상당한 값을 지불하지 않고는 되찾아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상당한 값을 주고 찾아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피가 정말로 마귀에게 드려졌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목박은 자가 누구인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였습니까? 당시에 마귀의 조종을 받은 가룟 유다와 종교지도자들과 빌라도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죽인 것은 마귀였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행2:23)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아세셀 양으로서 사람들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광야로 나가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속량하기 위하여 마귀에게 지불되어졌음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인류를 저당잡고 있는 마귀에게서 인류를 구출해 오시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마귀에게 소속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음을 절대로 의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보혈을 댓가로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를 치게 하셨느니라."(행20:28)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2:9)
그러므로 우리는 당당히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제 더이상 마귀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당한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에 이제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나는 마귀를 더이상 섬길 의무가 없다. 따라서 마귀는 더 이상 나에게 아무 권한이 없음을 선포한다!"
이 일을 누가 하셨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뜻으로지만 그리스도께서 주도적으로 이 일을 하셨습니다.
" 자기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
그러므로 우리의 해방자이신 그리스도는 영원히 찬양을 받아 마땅하신 분입니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어린 그 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첫댓글 아멘.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것은 많은 반발을 예상할 만큼 미묘한 문제입니다. 다음 번 글에서 취급하려고 했던 것입니다만, 잠깐 말씀드리면 속전이란 원칙적으로 노예를 현재 억류하고 있는 실질적인 주인에게 지불하는 것입니다. 노예를 사기 위해 그 값을 지불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자기의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새로운 주인이 되는 입장이지 억류하고 있는 주인은 아니쟎아요? 억류하고 있는 주인은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에게서(from the Devil) 샀고, 피는 마귀에게(to the Devil) 지불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물론 이 역학관계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렵겠습니다만.
아멘!
보충설명좀 드리겠습니다. 레16:8에 나오는 "아세셀을 위하여"라는 말이 원어로는 [라아자젤]로 되어 있는데, 이 말중의 첫 부분 '라'는 전치사로서 영어의 'for' 또는 'to'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어성경들(KJV.NKJV.ASV.NIV.NASB.Darby.YLT.BBE)은 'for~'를 사용하여 "아사셀, 혹은 속죄염소를 위하여"라는 의미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듯이 영어 전치사 'for'는 "에게"라는 뜻도 있죠. 즉 수여동사가 수동형일 때 간접목적어 앞에서는 <에게>로 번역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for Azazel'을 '아사셀에게'로 번역한다고 해서 잘못은 아닙니다. 한글 성경중에 제 눈을 번쩍 뜨게한 것이 있었는데 표준새번역입니다.
이 표준새번역에서는 히브리어 전치사 '라'를 그냥 '에게'로 번역하여 이렇게 해 놓았네요. "아사셀에게 바칠 염소'. 저는 이 번역이 마음에 듭니다.
그럼. 아사셀은 무엇인가? 구약에 4번 밖에 나오지 않는 단어로서 아직까지 학자들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용어인데, 성서사전에 보면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막의 귀신>이라고 기술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원어 풀이사전에서도 보면 " '마지막으로 가능한 것은 이 단어를 '하나님, 주' Lord이라는 말과 조화를 이루도록 인격적 존재를 지칭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면 아사셀은 논리적으로 하나님과 대립되는 악령(에녹 8:1, 에녹 10:4, 참조:
대하 11:15, 사 34:14, 계 18:2)이나 심지어 마귀 자신일 수 있다(KD loc. cit)."고 되어 있어 아사셀을 마귀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저는 이 견해를 지지합니다. 논리적으로 속전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마귀와의 관계를 명확히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윗 댓글에서도 밝혔듯이 하나님과 마귀와 우리의 역학관계를 완전히 규명하기란 쉽지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이루어놓으신 영적인 우리의 위치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이렇게 확정하는 것이 도움이 될거라고는 확신합니다. 많은 연구들이 있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또 '지고가는'이라는 말과 '제거하는'이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세례요한이 말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이라는 이 말은 레16:22에 나오는 말 '그 모든 불의를 지고'에 나오는 말임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지고'란 원어로 [나사]라고 하는 말인데, '들어올리다.'지어나르다. '제거하다'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볼 때, 개역한글에서 '지고가는 '이라고 번역한 것이나 킹제임스에서 '제거하는'이라고 번역한 것이나 다 맞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고갈 때는 죄 값을 아사셀에게 바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제거한다는 것은 죄 자체를 제거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샛강님이 펄쩍 뛰시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제가 말하는 것을 인정하기 싫거든요. ㅎㅎㅎ
그것이 제 정서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정서와는 상관없죠.
그래서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생각해본 결과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답니다.
샛강님도 한번 이성으로 생각해보세요.
1. 왜 예수님은 마귀가 충동질 하는 종교지도자들의 모략에 순순히 말려 들어가셨을까?
2.마귀는 우리가 위협한다고 해서 물러갈 만큼 어리숙한 존재인가?
3.마귀에게 정당한 값을 치루지 않고도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권리가 발생하는가?
4.마귀가 불의하다는 것이 우리를 불법점유해서인가? 아니면 값을 치루었는데도 계속 점유하려고 하기 때문일까?
이 글을 쓴지가 14년이나 흘렀습니다. 이제야 이 글의 잘못을 깨닫게 되어 정정하고자 합니다.
제가 윗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속량하기 위하여 마귀에게 지불되어졌음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인류를 저당잡고 있는 마귀에게서 인류를 구출해 오시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이 글을 다음과 같이 정정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속량하기 위하여 하나님에게 지불되어 졌음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를 짓게 된 대상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였으니 당연히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고, 그 값은 당연히 하나님께 드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마귀에게서도 일정부분은 드려진 것이 사실인데, 왜냐하면 아사셀에게도 한 마리의 염소가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죄값으로 드려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마도 형벌로 마귀에게 우리 주님의 육체가 수난을 받으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오랫 동안이문제를 고심했으나 최근에 와서야 오리겐의 <사단배상설>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혼란을 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