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이야기
서울공대지 2017 Winter No. 107


최기창 SNU공학컨설팅센터 산학협력중점교수
공대 홍보팀으로부터 공대소식지에 창업관련 이야기를 한 꼭지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는 그저 30대때 선후배들과 창업하던 이야기를 써보면 되겠지 했었는데, 그 때의 경험 역시 선후배가 모여 창업을 했다고는 했지만, 엄연히
사장역할을 맡았던 선배가 있었고, 나는 어쩌면 제법 우수한 월급쟁이 역할을 열심히 했었는데…… 라는
생각에 덜컥 원고를 쓰고자 수락했던 제 자신의 경솔함에 반성을 하며,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그 동안 기술벤처 창업시절의 이야기와 최근 예비창업자 육성과정에서 느꼈던 점들을 정리하여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글 솜씨가 매끄럽지 못한 점이나, 잘 정돈되지 않은 시각을 거칠게
표현하더라도 많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아울러 제게 이런 글을 쓸 기회를 주신 공대 홍보팀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필자가 아는 바로는 90년도
초반은 겁 없는 30대 공학도들에 의한 창업 붐이 있었던 시절로 기억되던 때였습니다.
TV 영상에 자막을 입힐 수 있는 기술로 시작하여 우리나라 노래방문화를 만들었던
건인전자 변대규 사장를 비롯하여, 최근에 벤처기업협회 회장을 맡았던 다산 네트워크스 남민우 사장, 필자가 몸담았었고 컴퓨터에 고화질 TV 기술을 접목시켜 국내 멀티미디어
시장을 열었던 두인전자 김광수 사장. 아래한글의 이찬진 사장,
Skype 이전에 인터넷 전화로 미국진출에 앞장섰던 새롬기술 오상수사장, 우리기술 김덕우
사장, 로커스 김형순 사장, 터보테크 장흥순 사장, 팬택전자 박병엽 사장, 핸디소프트 안영경 사장, 가산전자 오봉환 사장, 옥소리 김범훈 사장…… 이루 열거하기 힘든
수많은 기업들이 만 서른 즈음의 청년들에 의해 창업이 되었고, 대부분이 해마다 300%를 상회하는 성장률을 보이며, 우리나라 1차 벤처 붐을 일으켰었던 때이다. 당시의 창업환경은 지금과 달리
성장을 위해서는 은행을 통한 차입경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특히나 대규모
운영자금을 필요로 하는 제조업에 뛰어들었던 기술벤처들의 선전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당시의 만 서른이라 하면 우리나라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의무를 마친
나이, 즉, 국가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 마치 억눌렸던
꿈을 쫓는 것마냥 너도나도 창업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최근에 정부에서,
학교에서 창업만이 국가산업을 견인할 것이라 주장 하며, 많은 청년들을 창업으로 내모는 형국인데
반해, 당시의 기업은 ‘평생직장’, ‘종신고용’ 이라는 가치를 매우
중요한 가치인 것으로 내세우던 시절에 무엇이 만 서른의 청년들에게 창업을 독려하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
당시의 창업 세대는 부모세대가
일제식민지를 겪고, 한국전쟁을 겪으며 먹고 사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던 시절을 겪어내셨던 부모세대와 달리,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학을 나왔고, 사회에 나와보니 모든 것이 기회라 여겨졌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반면
어떤 기회를 잡아야 하는지에 대해 부모세대와 고민을 같이하기 어려운 시절. 부모세대와 환경과 경험치가
달라 소통이 어려운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군사부일체라 배웠지만, 군사부를
‘꼰데’라 부르며, 기성세대와 불통하던 세대들이 당시의 창업세대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세대들은 기성세대를 부정하고, 새로운 기회가 있다
믿고, 기성 세대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너도나도 창업에 뛰어들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로 꼽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기술변화
80년대초에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등장을 하면서 벤처 1세대들은 대학시절 새로운 기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마이크로프로세서가 가져오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를 전세계와 같은 시기에
시차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기술수용도가 높은 벤처 1세대들은 디지털 기술을 무기로 너도나도 새로운 디지털 생태계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9600 보어레이트 통신으로 천리안 하이텔과 같은 PC 통신을 통해 빠르게 새로운 기술이 전파되기 시작했고, 발 빠른
벤처기업들이 다양한 디지털 디바이스들을 컴퓨터를 중심으로 국내 IT 산업을 이끌어 나갔다. 이 당시는 아날로그 기술에서 디지털 기술로 변화가 이루어지던 시절이었던 만큼 새로운 기술 수용도가 높았던 당시의
창업세대들은 기술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냈기에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는 산업을 이끌어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창업에 뛰어들었던 것 이
두 번째 이유로 꼽습니다.
이런 1세대 창업들은 96년 코스닥 시장이 열리면서 활황을 맞는가 했더니 Wintel (Windows + Intel의 합자어로 당시 MS 윈도우와 Intel이 PC 시장을 평정하였다는 말로 사용됨)이란 이름이 나타내듯, PC 산업이 성숙기 시장에 진입을 하면서 PC 중심의 1세대 창업 세대들이 첫 번째 고비를 만나며, 변신을 시도하기 시작합니다. 자막발생기 시장을 이끌던 건인전자는
휴맥스로 사명을 바꾸고 셋톱박스에 뛰어든 시기도 이즈음이고, PC 용 멀티미디어 제품을 내던 두인전자
역시 엠바이엔으로 사명을 바꾸고 DVD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삐삐(페이저)를 주력상품으로 커오던 팬택전자는 모토롤라 OEM 생산을 시작하는 것으로 휴대폰 제조업으로 변경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96년 코스닥시장이 열리면서 벤처업계가 활황기를 맞이하나 했었던 기간은 그 이후 전세계에 불어 닥친 외환위기, IMF 사태와 함께 빠르게 식어갔습니다. 1세대 벤처의 대부분이 IMF를 넘기지 못하고, 부도를 겪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사상 초유의
구조조정에 의한 대량실업사태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평생직장’, ‘종신고용’ 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구조조정’, ‘명예퇴직’ 이란 단어가 새로이 등장을 하면서 시작된 IMF 사태는
창업을 하면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불안감을 전국민의 뇌리에 단시간에 각인을 시켰고, 이런 불안감은 다음세대에게
고용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공무원이나 의사, 변호사들을 현세대가 다음세대에게 권하는 현상을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IMF 사태를 빠르게 극복한 우리나라는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나름 최근까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으며,
이런 성장에는 그 동안 제조중심의 대기업이 선두에 서고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후방을 맡아 동반 성장하는 ‘선단경영
체제유지’와 Fast-follower 전략이 주효했었던 것이었으나, 중국의 부상과 국내 대기업의 생산기지 이전 등의 이유로 국내 제조업 기반이 약화되면서, 대량의 청년실업문제는 국가전체가 같이 풀어야 할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많은 이들이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하고 있고, 정부는 공공기관(지자체, 대학, 정부출연기관
등)들을 통해 창업활성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도 창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창업과 관련한 제 규정들에
대한 정비, 흩어져있는 창업지원기능들에 대한 조직화들을 꾀하고 있으며,
각 단과대학별로 창업분위기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어 최근 창업분위기는 고조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공과대학 내에도 SNU공학컨설팅센터를
중심으로 3개의 창업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예비창업자 육성과 쾌속제작실과 같은 창업 인프라 일부를 담당하는 (1) 해동 아이 디어팩토리
사업, 대학원생(공학전문대학원생을 포함) 중심의 창업 공간과 창업지원을 담당할 (2) 대학원 기술창업플라자
사업을 추진 중에 있으며, 이런 두 가지 사업을 통해 배출한 창업자들을 보육할 창업보육센터 역할을 하는 (3) 신기술창업네트워크 사업의 세 가지 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필자가 몸담았던 두인전자, 팬택
모두 벤처 창업 1세대 기업들이었던 이유로 최근 예비창업자들 대상으로 강의를 할 기회가 종종 있고, 멘토링/컨설팅이란 이름으로 창업을 꿈꾸고 있거나 막 창업을 시작한
창업자들과 상담을 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창업을 하고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제가 쏟았던 열정에 대해서는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으나, 우리가 창업할 때는 부모세대를 부정하며 기술변혁기에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창업을 했었다면, 자녀 세대에 해당하는 지금의 청년창업자들에게 처한 환경이 다른데 우리가
겪었던 방식을 전달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특히나, 우리가 창업할 시절에는
대부분의 창업자는 기업 내에서 병역특례기간인 3년에서 5년정도
기업생활을 하면서 기존 기업의 한계를 직면하면서 몸담고 있던 업체의 실력치 보다 나의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기존 기업이 못하고 있는 분야에서 새로운 창업기회를 찾아낼 수 있었기에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창 업을
시작했었습니다. 사회경험이 전무한 학생들에게 창업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칫 아이디어만 가지고 창업을 해보라는
무책임함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에 경험을 좀 더 쌓도록 권유를 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이런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칫 또 다른 fast-follower를 양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
벤처
창업 1세대의 대부분은 기술변혁기에 그 흐름을 타고 빠른 성장을 보였었다면, 그 기술이 성숙되어 레드오션화 될 때에 변신을 못해 많은 기업들이 사라졌다.
그 세대를 반성하면서 요즘 창업자들에게는, 특히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을 하고자 하는 공대생들에
게는 (1) 기술변화에 주목해라. 그러기 위해서는 그 기술을
깊게 이해해라. 기술변화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사유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을 창업해라. (2) 기술만 쫓지 말고, 인간의 욕구에 대해 이해해라. Fast-follower가 아니라 First-mover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욕구를 이해하고 고객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을 해라.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이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아버지세대를
부정해라. 그들의 작은 성공은 어쩌면 fast-follower 전략을
잘 수행할 수 있는 효율만 강조하던 시절의 성공 노하우이다

요즘 해동 김정식 동문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해동아이디어 팩토리 공간에
들릴 때면 후학을 사랑하시는 선배님의 뜻에 고마움을 느끼고, 그 뜻에 부응하는 학생들 – 초췌한 얼굴로 간이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학생, 무언가 조립하고 있는 학생,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무리들, 창업한답시고 홈 베이스를 꽤 차고 앉아 이것만 완성되면 대박일거라 자신하는 예비창업자들을
만날 때면 또 다른 고마움을 느낍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창업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울공대생 모두가 창업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훌륭한 인재들이
전세계에 우뚝 서는 기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그런 훌륭한 인재들이 후배님들 중에서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훌륭한 창업자가 나오는데 제가
거름이 될 수 있다면 제 큰 보람이라 여겨, 날마다 학교에 출근하는 시간이 기쁩니다.
서두에
말씀 드렸지만 체계화되지 않고, 거칠고, 일천한 제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