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강산의 순교자
금강산을 닮았다는 경주의 소금강산(小金剛山 143m) 산행에서, 금강산 같은 절경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산세보다는 마음을 적시는 전설을 음미하며 걸어야 어울리는 산이기 때문이다.
경주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안강행 시내버스를 타고 용강초등학교 앞에서 내린 뒤, 학교 담장을 돌아가면 승삼저수지가 나온다. 산길은 저수지 입구 컨테이너 고물상 옆으로 열린다. 길은 넓고 깨끗한 소나무 숲길이다.
5분 정도 걸어 갈림길이 나오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월성 이 씨’ 묘를 거쳐 체육시설을 지난다.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급경사 길을 내려서면 사거리, 왼쪽으로 가면 천광사에 닫고, 오른쪽 길은 다불마을로 가는 길이다. 직진하여 아기자기한 바위와 소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은 암릉을 타고 오르면 정상이다. 쉬엄쉬엄 걸었지만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무가 시야를 가리고 있는 정상에서 백률사로 하산한다, 오른쪽 비탈길을 잠시 내려오면 왼쪽으로 백률사의 지붕이 보인다. 백률사는 순교자 이차돈을 위해 지은 절이다.
지증왕의 생부인 습보갈문왕의 후예인 이차돈(異次頓)은 불교를 믿었지만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음을 한탄했다. 법흥왕 또한 불력(佛力)으로 나라를 번영시키려 했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불교를 공인할 수 없었다.
왕의 뜻을 짐작한 이차돈이,
“저녁에 신이 죽어서 아침에 불교가 행하여진다면 임금님께서는 영원히 편안할 것”이라며 포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왕은,
“사비왕이 고행할 때, 새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살을 베어 새의 먹이로 준 일이 있었다. 하물며 불법을 받아들여 만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내가 어찌 죄 없는 너를 죽이겠는가.” 하고 거절한다. 그러나 이차돈의 고집도 완강했다.
이차돈은 절을 짓고 불사를 시작했다. 신하들의 불만이 극에 다다라 이차돈을 죽이라고 아우성치자, 왕은 마지못한 듯이 처형을 승인한다. 그렇게 해서 스물두 살 젊은 이차돈의 목이 베어지자 머리는 하늘로 날아갔다. 목에서는 흰 젖이 나와 한 길이나 솟구쳤고 땅이 진동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비가 내린다. 길에서는 사람들의 통곡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동식물들도 웅성거린다.
크게 놀란 신하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자 왕은 불교를 공인하고, 이차돈의 목이 날아가서 떨어진 소금강산 정상 아래에 지추사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지추사는 백률사의 옛 이름이다.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의 목숨쯤은 우습게 여기는 권력자들이 허다한 오늘의 세태와 비교한다면, 새 한 마리의 목숨조차 귀하게 여기는 왕이 다스렸던 그 시절은 얼마나 평화로웠을까.
백률사에서 돌계단을 밟고 조금 내려가면 굴불사지 사면석불을 만난다.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아갈 때, 땅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파보았더니 사면에 석불이 새겨진 바위가 나왔다. 그 바위가 사면석불이다. 바위에는 아미타불삼존불상, 약사여래좌상, 11면관세음보살상 등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었지만 부처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무엇이 그 얼굴에서 미소를 빼앗아갔을까?
소금강산과 마주보고 있는 금학산(297m)을 오르기 위해 사면석불 옆 ‘주차금지’ 팻말 뒷길을 따라 능선에 오른다. 능선에서는 왼쪽 정상 쪽으로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오른쪽 길을 택한다.
‘임란창의경주김공묘’를 지나면 다시 갈림길, 오른쪽 공동묘지를 지나가면 유난히 샛길이 많이 나오지만 마주보이는 금학산으로 간다는 기분으로 내려가면 차도.
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예비군 각개전투훈련장을 가로지른다. 몇 개의 철탑을 지나서 올라선 능선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곧바로 묘지가 있는 금학산 정상이다.
돌아보면 엎드려 기도하고 있는 가냘픈 여인을 닮은 소금강산이 내려다보인다. 불가(佛家)에서 금강(金剛)이란, 자기 마음 안에서 일체의 번뇌를 깨뜨릴 수 있는 변하지 않는 진리, 또는 불법(佛法)을 말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가 어찌 불법뿐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도 진리를 위해 죽음을 택했다. 또 안토니오주교, 마르티노신부 등의 선교사들이 서해의 아름다운 섬들이 바라보이는 바닷가 갈매못에서 효수를 당한다.
새로운 종교의 전도는 묵은 밭에 씨앗을 뿌려 싹을 틔우는 것처럼 어렵고, 몸속에 들어온 이물질을 받아들일 때 느껴야 하는 격렬한 아픔을 인내해야 한다. 신념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종교뿐 만은 아니겠지만 순교자들은 죽음으로 그 이름을 아름답게 했다.
하기야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반목과 질시, 증오와 살육 등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지만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신을 믿는 착한 사람들이 아직은 많이 남아 있는 까닭일 게다.
하산은 정상에서 왼쪽 길로 30m 정도 내려와 오른쪽 풀숲에 가려진 길을 찾는다. 이 후 몇 번의 갈림길이 나오지만 소금강산과 나란히 걷는다는 기분으로 능선을 타면 어렵지 않게 하산할 수 있다. 사슴농장을 지나 들머리였던 승삼저수지 입구에서 3시간 30분간의 산행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