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면 즐거운 사람이 있다.
마음 가볍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사람.
첫 만남에서 목젖이 드러날 정도로 웃게 만드는 그런 남자를 만났다.
지난 일요일. 초저녁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러가는 중이라고 했다.
"혼자서요?"
길게 생각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나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소리쳤다.
"떼끼!! 혼자라니. 그건 나를 모독하는 발언이야! 혼자라니?" '진짜 속이 상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가 있었다.
"그럼 여자와 함께인가요?"
조금 기어들어가는 듯 한 내 질문이 끝나기 전에 그가 잽싸게 대답을 했다. '당연하지. 뭘 그리 당연할 걸 묻고 그래."
조영남.
그와 첫 대면하기 직전 나눈 대화 중 일부다.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신문과 TV, 그리고 라디오와 잡지 등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 아는 게 전부다. 내가 그와 직접적인 인연을 맺은 것은 한 달 전쯤 '신정아 사건'을 취재할 당시 한 시간 남짓 전화통화를 했을 뿐이다. 그가 신정아씨와 친분관계에 있다는 게 그에게 전화를 건 이유였다. 내가 그를 만나고자 한 이유 또한 '신정아' 관련 취재때문이었다.
"아, 그래. 그래. 영화 마치면 전화할게!"
그는 약속을 지켰다. 보통 '조영남급' 정도면 "연락 할게요"하고는 깜깜 무소식인 경우가 허다한데 말이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그를 만났다. 검정색 모자에 검정색 옷으로 위아래를 쫙 빼 입은 남자. 그의 키는 대한민국 남자들이 부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겸손(?)했고 그저 그렇게 생긴 얼굴 또한 뭇 남성의 시샘을 비켜 갈 정도였다.
조영남은 노래 잘하지, 그림 잘 그리지, 거기다 유려한 글빨까지. 요즘 세상에 남들은 한번 결혼하기도 쉽지 않은데 두 번 결혼했다가 이혼했고(이건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겠다^^) 홀아비인데 늘 젊은 여자들이 주변에 들끓는다. "난, 젊은 여자들과 노는 게 즐거워"라고 공언하는 '공인'인데도 별로 욕도 얻어먹지 않는다.
그와 만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정아씨 얘기를 화두에 올렸다. 그러나 그 얘기를 길게 주고받지 않았다. 취재에 큰 도움이 안 됐기 때문이다. '만남'의 목적이 취재에서 '수다'로 급선회했다.
각설하고.
아, 이 늙그수레한 남자와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빠져 봅~시~다!" 개그콘서트에서 한 개그맨이 자신의 매력에 빠져보라며 능글맞게 웃는 코너가 있었다. 그러나 조영남은 자신에게 빠져 들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빠져들었을 뿐.
그 앞에서 대화 중에 "솔직히 말하면…"이라는 단서를 달면 조영남은 버럭 화를 낸다.
"아니, 그럼 그 이전에 한 말을 죄다 거짓말이었단 말여?"하고 쏘아 붙인다.
그는 거짓말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다. 물론 거짓말과 사촌지간인 내숭도 싫어한다.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하고 싶은 말은 가슴에 담아두지 않는다.
그가 칵테일을 시키기 위해 메뉴판을 들여다 봤다.
"흠, 뭘 마실까. 오르가슴? 이거 괜찮겠다."
그가 섹시한 칵테일 이름 몇 개를 들먹였다. 하지만 결국 그가 시킨 것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칵테일이었다.
조영남을 만난 사람들로부터 마치 '늪'에 빠져들 듯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빨려 들어간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와 두 어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도 그에게 빨려 들어갔다. 그가 '인간 복덕방'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데는 '솔직함'과 상대방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 가장 큰 무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토해낸다. 그가 진행중인 MBC라디오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서도 거침없는 그의 입담은 계속된다. 방송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게 만드는 위태위태한 발언들이 매일 쏟아져 나온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부부문제로 이혼할까 말까 고민 중인 한 여성의 상담전화를 받은 그가 생방송 중에 "아, 그런 고민이 있으세요? 그럼 이혼하세요"라는 조언을 내 뱉는다. 방송에서 MC가 이혼을 조장하거나 권유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그런 상담을 하게 된 MC는 "아, 힘들겠지만 자녀를 생각해서 이혼하지 말고 부부가 진지한 대화를 나눠 문제를 해결해 보세요"라는 무난한 답을 내 놓는다. 그런데 그는 그런 상투적인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장점이다. 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 상대방에게 비춰지길 원한다.
조영남은 '내가 누군데!'라는 무게 따위는 잡지 않았다. 그 점 역시 마음에 들었다.
"난 말이지. 젊은 여자와 밥 먹고 영화보고 그러는 게 너무 좋아"라는 말을 솔직히 내 뱉는 남자.
그날 밤. 조영남과 함께 영화를 본 여인이 있다. 젊디 젊은데다 얼굴 예쁘지, 거기다 키 크고 날씬하기 까지. 나와 조영남이 만나는 자리에 까지 동행한 여자였다. 헤어지기 직전 조영남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저 여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그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누구긴! 코디네이터지."
그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자신의 방송활동 등에 필요한 코디네이터인지 인간 '조영남'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코디네이터인지. 그게 그리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 조영남 |
첫댓글 내 성격하고 비슷한데가 있네요.
자신의 삶에 언제나 당당한 조영남님도 내면엔 아픔이 많겠지요....미국에서도 많은 고생을 햇다지요...지금 노래 잘 듣고 갑니다...호수님 고운밤 되세여...^^
넉넉하고 프리한 웃음뒤에 가리워진 아픔, 내밀한 그의 만상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ㅎ 그도 나도 각자의 아픔을 부여안은체,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않은 알량한 자존심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가 아니던지~~그래도 이왕이면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음은 그를 바라보는 숱한 사람들의 위안이기도 한, 세상을 달관한듯 유머러스한 남자는 매력 있다라고~~ㅎ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