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中1, 아들의 中1 그리고 나의 中1
전 영 택
손자가 중학생이 되었다, 큰 손자가!
십삼 년 전, 아마 우수 때 쯤, 내가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되었던 날!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으로 남은 그 날의 내 마음, 아니 감정 말이다!
“여보, 아들이래요!”
아내의 상기된 목소리를 듣고, ‘아니, 내가 벌써 할아버지?’
당시의 내 나이 쉰여덟 살, 생애의 순서로 말하면 손자를 볼만한 나이었으니 뭐 그리 이상할 것 없었는데 나는 할아버지 된 일이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던 그 때의 진정한 내 마음을 실토해 본다.
“어서 가 봅시다!”
우리 부부가 산부인과에 닿을 때까지도 조금 전의 감정을 지우지 않은 채 신생아실 앞에 선 내게 안쪽의 커튼이 스르르 밀리더니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내민 한 생명체를 만나는 순간, 아! 아주 오래 전부터 눈에 익숙한 모습, 급기야 그 모습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걸린 시간은 0.1초나 걸렸을까!?
‘저 아이는 나다, 나야!’
먼저 지니고 온 생각은 흔적도 없이 지워지고 금방 눈물 머금은 반가움으로 만났던 그 아이가 나에게 새로운 삶의 가치를 안겨주며 시작한 ‘손자와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제일 친한 사이’가 되어 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을 공유하며 지냈다.
일곱 해가 지난 3월 2일, 내 손자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그 때의 내 마음을 읊은 시 한 편,
일곱 해 기다린 소원
큰손자 초등학교 입학!
등교를 돕는 날이라야 단 사흘
첫 날은 제 어미 몫,
둘째 날은 할미 손잡고 나갔다
달랑 남은 하루, 내 순서였으면……
새벽부터 눈치만 보았다
“오늘은 당신이 등교 도와주세요.”
같이 오래 산 덕일 게다
아내는 내 마음을 읽었다.
작은 손은 큰 손에 담긴 보배,
아이를 위해 수다 떨고
쉴 새 없이 웃고
보고보고 또 보고
업고 달리고 싶은 걸 참고
봄바람처럼 걸었다
‘전호영의 할아버지’
마음속에 명찰 달고
우쭐대며 교문을 들어섰다.
아이를 처음 만나던 날,
‘손잡고 학교 갈 때까지 살았으면……’
일곱 해를 기다린 소원 이루고
아이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도가 된 감탄사를 되뇌며
출근길 재촉하다 돌아보았다
저기, 저 아이는……?
바로 나였다!
이렇게 시작된 손자의 초등학교 6년은 할머니의 극성스런(?)보살핌 속에 긴 줄 모르고 보내고 ‘아니, 벌써!?’라고 ‘!, ?’표 붙여 자문하며, 중학교 교복 입은(입었다기 보다 덮었다?)아이를 대견스럽기도 하고, 장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한 마음으로 쳐다본다.
손자가 중1이 되었다, 감동의 현실!
시골로 도회로 때로는 벽지 산골로 임지를 바꿔 앉으며 교직에 몸 담았던 나의 가족들은 고달팠다. 그러느라 아이들의 학적부가 복잡할 수 밖에!
아들 하나에 딸 하나, 남매의 초등학교 학적부에는 너 댓개의 다른 교명이 기록 되었다. 최종 정착지가 수원이 되기까지 그랬다.
아들이 수원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수원중학교로 배정 받았다. 반 배치고사의 등위가 출신학교별 등위처럼 여겨지던 시절, 아들은 차석의 성적으로 입학하는 바람에 출신학교의 명예(?)를 높이는데 한 몫을 한 셈이다. 아비인 내가 아들 덕분에 평소에 가깝게 지냈던 교직 후배인 아들의 6학년 담임으로부터 “형님 아들 농사 지으셨우!” 하는 찬사를 듣는 기쁨을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으니 아닌 게 아니라 내 아들이 장하다는 생각을 지운 적이 없다.
아들이 중1이 되었던 내 가정의 아름다운 역사!
1952년은 아직 6․25전쟁 중이었다. 멀리 함경북도 아오지에서 출발한 부모님의 피란길은 힘드셨을 것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우리 형제들도 어찌 편안한 남행길이었을까, 그러나 내게 남아 있는 기억은 꼭 짚어 아프고 쓰린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다. 부모님 덕분에 특별히 배곯지 않고 피란길을 잘 견뎠는가보다.
경상북도 안동 땅, 율세동 언덕에 있는 어느 초가집 사랑채에 임시 거처를 정한 것이 인연이 되어 그곳에서 지금의 동부초등학교에 편입하였다. 당시에 안동 시내와 부근에 몇 개의 중학교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안동사범병설중학교는 영남의 명문중학교여서 시내뿐 아니라 인근 시․군에서 공부 잘하는 준재들이 다투어 입학을 원하던 시절이다. 6학년 담임선생님의 엄격하신 가르침 덕분에 나도 안동사범병설중학생이 되었다.
내가 중1이 되었던 그 전설!
손자의 중1은 감동의 현실이다.
아들의 중1은 아름다운 역사이다.
나의 중1은 빛바랜 전설이다.
현실과 역사와 전설이 아직 한 시대를 같이 살고 있다.
이 여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고 또 새 세대로 이어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손자와 아들과 나, 나와 아들과 손자!
이 하늘 아래에서, 이 땅 위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손자와 아들 그리고 이들을 있게 한 아내와 며느리, 또 있다, 두 번째로 나를 만난 작은 손자까지 합해서 여섯 식구는 딱 맞는 말, ‘행복’이라는 응집력으로 하나가 되어 매일 보고 싶고 , 늘 같이 있어도 절대로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즐긴다, 행복으로!
손자 중1, 아들 중1, 나 중1!
감동의 현실과 아름다운 역사와 빛바랜 전설이 여기, 함께 있다!
교복 입은 저 아이가 제 손자랍니다!
-2012년 2월 손자의 중1됨을 내 가정의 역사로 각인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