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본당에서 잘 하지 않는 행사가 있는데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는 성령세미나가 있다/
매주 한차례에 팔주간의 과정이다
찬양과 한시간의 강의와 한시간의 조별 나눔으로 구성되어있다.
부제시절부터 성령기도회를 하셨다는 전설적인 신부님이신 이범주바오로
가 계십니다 오늘날 사용하는 성령세미나의 교제를 신부님이 번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소모임에 관심이 있어서 동네에서 구역장을 하는,
제가 형이라고 부르는 같은 동에 사는 분이 사목회의 부회장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분으로부터 구역장을 인계받게되는데요
그때가 아마도 사십대인것 같았다.
그래서 구역내의 자매님팀 봉사자인 구역장과 반장은 저보다 연배인 분들,
저는 그분들을 누님이라고 불렀다.
그떄에도 자매님팀은 여러반으로 나누어져서 매주 한차례씩 반모임을 할정도인데
남자들의 모임은 같은 구역내에 하나의 구역모임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매님들이 구역모임에 참석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자매님들인 봉사자들은 가정방문을 통해서 형제들이 구역모임에 참석하게 했었다.
그러나 형제님이 집에 있는 시간은 퇴근이후에 저녁시간이었기에
자매님들이 형제가 집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알수없는 상태에서
저녁에 가정방문이 쉽지 않았기에 그 누님뻘되시는 자매님들인 봉사자는
저를 앞세워 가정방문을 하셨던 것이다.
그때에는 외국에 유명한 상모상이 들어와서 구역을 순례하는 행사가 있었지요
키가 큰 제가 성모님이 앞으로 향하게 가슴에 앉은채로 특정집에 모시러가고
있었다.
구역모임에 관심이 많아서 본당 구역장모임애서 실제적으로 심부름꾼인
지역장모임의 총무를 맡았다.
가때 대부분 형제구역장은 저와 연령대가 비숫하였기에
참으로 이해가 잘되고 소통도 잘 되었던 것 같았다.
구역에서나 본당행사때에는 저를 친동생처럼 가까이해주셔서
저를 앞장세운 일들이 주로 이루어졌다.
그떄에는 본당행사중에 본당창립ㄱ념일에 하는 체육대회와 정월대보름날에
하는 윷놀이는 구역단위로 이루어졌다.
성당마당에서는 연탄불을 이용하여서 여러가지 음식을 준비했다.
오뎅국물등 그리고 막걸이가 어른들에게 인기였다.
구역별 윷놀이와 구역별 단체 줄넘기가 인기였다.
어느 누역이 승리하는지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내가 속한 구역이 예선에탈락하면
내가 좋아하는 다른팀을 대신응원하기도 하였다.
본당기념일에는 본당건너편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여러사람들이 줄을 지어서 꼬리에 풍선을 달고 어느팀이 먼저 풍선을 터트리느냐를
내기했고 구역별 줄당기기도 하였다.
그떄에 참석자들은 청바지를 입고 오라는 주문을 받았기에
덩치가 큰 저로서 이를 구하기 위해서 이태원에 가기도 하였다.
미리 연습을 위해서 제가 사는 아파트의 옥상에모여서 하고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서 친교를 이루었다,
그때에 젊은 형제로 부터 영화파일을 구해다가 집에서 보기도 하였다.
외국영화는 이에 딸린 한글자막파일까지 얻을수가 있어서 영화를 보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저는 잘 먹지 못하였지만 구역장들의 단합대회는
청계산자락에 있는 식당에서 보신탕을 다들 즐겨 ㄷ시고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시흥동에서 가까운 수리골은 교우촌이었다.
최양업신부님의 아버지인 최결환성인은 감짜스러운 관헌의 습격에도
그들을 대접한 후에 순수히 끌려갔다.
그들은 처형되었고 수소문끝에 서울남쪽에 있는 사구문이라고 알려진 곳
성밖에 버려진곳에서 유해를 찾았다.
최양업신부의 형제의 이야기는 참으로 서글펐다
어머니가 죄인으로 감방에 있기에 어린아이는 엄마젖을 먹지 못해서
굶어 죽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풀려나갔지만 엄마가 걱정이었다.
아이들이 돈을 모아서 처형하는 이를 찾아가서 돈을 주면서 엄마를 단칼에
고통없이 죽여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백사장에서 처형된 이성례 마리아는 아이들이 어려서
엄마의 시신을 스습하지 못했다.
그래서 수리골에서 엄마의 무덤은 시신이 없는 가묘라고 한다.
최양업토마 신부님의 형제들의 후손들에는 많은 사제와 수도자가
배출되었고 그들에 의해서 박해시절의 이야기를 전해들으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 기록의 차이로 부부인 최경환과 이성례는 순교했지만
최경환은 103위 성인으로 이성례는 124인의 복자로 남아있게 된다.
지난주는 김대건신부와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순교자들의 이동축이를
지냈다. 우리 조선에 주님의 기쁜소식을 죽음으로 증거하는 이들을 본받아서
우리는 헌신으로 이들을 후대에게 전해야 할것입니다
작은다리를 따라서 그분의 묘소가 있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을수가 있고
성당옆을 지나는 개울은 여름에 더위를 피하는데
좋은 곳이기도 한다.
담배골입구를 올라가는 길에서는 산으로 올라가는 산책로가
만들어져있고 가까운곳에서 안양시내가 보이는 산봉우리에도 올라갈수가 있다.
그길로 가는길은 언제 생겨서 없어진지 알수가 있는 철길이 남겨져있다.
성당에서 가끔 8주일간 성령세미나를 연다.
매주마다 본당신부님외에 여러외부봉사자들이 아서 강의를 해주었다.
그러나 조별나눔을 하는 봉사자도 있었지만 이들의 출석을 체크하고 안내하는
봉사자가 있어서 레지오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저는 성령세미나에 참석할 목적없이 오로지 봉사할 목적으로 그 행사에
참여하였지만 기도회 회장님이 단순히 봉사만 할것이 아니라
기도모임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맛을 보라고 하셨기에
제가 어려움을 겪을떄에 사순절시기가 시작되는 날에 철야기도를 시작했다.
사순 .부활시기만 할려고 하였지만
아직도 이들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