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에 감동이 있는 월드클래스 버거, 멜팅소울
디에디트 2025. 3. 6
안녕, 객원 에디터 김은아다. 지난주, 미쉐린 가이드가 따끈따끈한 2025년의 리스트를 발표했다. 1스타, 2스타, 3스타까지 미쉐린의 별을 단 레스토랑은 총 37곳. 오늘은 그중에서도 지난 해보다 한 차원 높은 평가를 받은 승급의 주인공, 밍글스(3스타)와 기가스(1스타), 곧 더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 의심치 않는 솔밤(1스타) 리뷰를 하려고 한다. 모두 직접 다녀왔다.
세 곳은 모두 코스당 30만 원을 호가하는 파인다이닝이다. 한끼에 그만한 가격을 지불할 가치가 있을까? 반문할 수밖에 없는 (정말 아주 매우)높은 가격이다. 그러나 파인다이닝은 음식이 아니라 경험을 판매하는 곳에 가깝다. 맛과 향과 비주얼과 공간과 분위기라는 총체적인 경험. 그리하여 파인다이닝의 가격은 음식값이 아니라 테마파크 입장료에 가깝다. 비싼 입장권이 결코 아깝지 않았던 세 곳에서의 경험을 나눈다.
모수를 이을 국내 유일 3스타
밍글스
미쉐린 가이드 발표식의 꽃은 역시 최고 등급인 ‘3스타’ 발표다. 특히 올해는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한국의 유일한 3스타 레스토랑이었던 모수가 문을 닫으면서, 과연 그 공석을 채울 레스토랑이 등장할까 궁금증을 모았기 때문. 그 주인공은 바로 밍글스였다.
아마 파인다이닝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밍글스는 2017년 한국에 미쉐린 가이드가 처음 론칭했을 때 1스타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2스타를 연이어 받으며 굳건히 자리매김해온 곳이다.
밍글스는 한식에 방점을 찍고, 식재료에서 떠올릴 수 있는 맛에서 가장 우아한 맛을 뽑아낸다. 그래서인지 ‘불호’였던 식재료도 이곳에서는 아무 불편함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나의 경우에는 콩국이 그랬다. 개인적으로는 콩을 갈아서 만든 모든 마실거리, 그러니까 두유와 콩국수는 몇 번이나 시도해도 즐길 수 없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갈빗살을 배춧잎으로 감싼 뒤 따뜻한 콩국을 부어주는 디쉬는 스스로의 취향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콩국의 맛이란.
미나리를 상큼한 셔벗으로, 어란을 감칠맛 넘치는 소스로, 능이로 만든 전통주를 아이스크림으로. 아무리 ‘불호’인 식재료였다 한들, 창의적인 접근법으로 마음을 사르르 녹이고 만다.
디저트에서도 이러한 시도는 이어진다. 한국 전통 식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을 주제로 한 시그니처 디저트는 장트리오가 그렇다. 된장 크림뷔렐레, 간장 카라멜라이즈드 피칸, 고추장 튀밥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라는 도화지 위에서 어우러진다.
밍글스에서 또 하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그릇이다. ‘그릇 덕후’라면 브랜드를 확인하기 위해 당장 뒤집어보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 정도다. 이곳에서 쓰는 기물은 대부분 강민구 셰프가 직접 작가에게 의뢰해, 밍글스만을 위해 제작한 것들이다. 고아한 백자와 은은하게 반짝이는 은식기 위에 수놓아진 색색의 요리는 ‘작품’이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중요한 건 이 변주가 어디까지나 한식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 강민구 셰프가 밍글스를 열 당시의 목표는 한국을 찾은 외국인 손님들에게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인상적인 경험을 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것에서 진정한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은 그 대상을 잘 알고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 아닐까. 한식에 익숙한 우리야말로 밍글스가 얼마나 특별한지, 또 새로운지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미쉐린 가이드의 3스타는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서 일부러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곳’을 의미한다. 실제로 밍글스는 먼 여정을 감수할 만한 곳이다. 오감으로 한식의 새로운 지평을 마주하기 위해서.
비주얼 파인다이닝 1스타
솔밤
‘와 여기 뭐지?’ 지난 12월, 솔밤에서의 디너를 마치고 나오면서 느낀 감정을 아직 기억한다. 그것은 경탄을 넘어선 감동이었다. 세 시간 동안 촘촘히 짜여진 퍼포먼스를 관람 후에 드는 감정에 가까웠다.
파인다이닝은 어느 곳보다 서비스의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싼 가격에 걸맞는 대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여느 식당보다 직원을 많이 마주치기 때문이다. 디쉬를 가져가고, 새로운 커틀러리를 세팅하고, 다음 디쉬를 내놓고. 손님과 직원은 세 시간 여의 식사 시간 동안 수시로 커뮤니케이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테이블의 리듬을 조율하는 것이 테이블 담당 매니저의 역할이다. 관건은 친밀하되,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는 것. 식당에서 직원분이 닭갈비를 볶아주는 동안의 어색함과 숨막힘을 떠올리면 어떤 느낌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솔밤은 완벽했다. 소믈리에와 매니저, 서버 등 테이블을 오가는 모든 이들의 서비스는 깔끔하되 냉정하지는 않고, 따뜻하되 선을 넘지는 않았다. 디쉬와 와인을 설명하는 이들의 말은 대본을 외워서 읽는 듯 막힘이 없고, 완결된 문장으로 이뤄졌다. 그 단정함이 손님의 마음을 함께 고양시켰다. 모수의 안성재 셰프는 서빙 담당 직원들에게 발레를 배우라고 권유한다고 하던데, 그가 추구하던 매끄러움이 이런 것이 아닐까 가늠하게 된 시간이랄까.
솔밤은 볼거리에도 목숨을 건다. 우리 레스토랑에 온 모든 손님들의 인스타 스토리를 촘촘히 바느질하겠다는 야심이 가득하다. 가장 빛나는 디쉬는 단연 ‘솔밤의 드로잉 룸’. 작은 함에 한치와 닭간, 단새우를 촘촘하게 새겨넣고, 딜오일로 마무리한 것은 황후의 보석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메추리알에 훈제 연어알을 정렬해 놓은 모양새라든가, 숟가락을 뉘일 자리, 김을 꽂은 자리마저 딱 맞게 조각해둔 건 좀 변태 같기도 하다. 봉테일이 울고갈 솔테일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 솔밤에 올 때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기를 추천한다. 보면서 감탄하느라 식사 시간이 계속 길어질 수밖에 없으니.
요리보다 오브제에 가까운 닭 구이, 나무함에서 신선처럼 등장하는(과장이 아니다) 스테이크의 비주얼은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 웃음이 나기는 한다. 그렇지만 파인다이닝은 음식이 아니라 경험이니까. 그리고 사진만큼 경험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다이닝 이름 ‘솔밤’의 흔적을 찾는 재미도 있다. 솔밤은 헤드셰프 엄태준 셰프의 고향으로, 안동에서도 소나무숲에 달빛에 비치는 광경이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한다. 안동의 로컬 메뉴 안동찜닭을 재해석한 닭 요리, 한우 스테이크에 소스를 바르는 솔잎 붓, 테이블 위의 깎은 듯한 솔방울은 고향에 대한 아름다운 헌사다.
코스의 끝무렵에는 깜찍한 퍼포먼스도 있다. 차돌국수를 먹을 젓가락을 직접 고르는 것. 각자 다른 나무로 만들어져 색도, 질감도 다른데, 일행들이 자신을 닮은 젓가락을 고르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무척 즐겁다. <해리 포터>에서 호그와트 입학 전에 자신만의 지팡이를 고르는 의식을 연상하게도 한다. 젓가락은 국수를 먹고 나면 정갈하게 포장해 들려준다. 참고로 이 젓가락은 솔밤 직원들이 직접 깎고 기름칠한 핸드메이드 제품이다.
코스가 다른 파인다이닝과 비교해서 확연히 길다는 것도 장점. 다채로운 디쉬를 맛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웬만한 대식가라도 만족할 만하다.
솔밤에서의 기나긴 코스를 마쳤다면, 꼭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시길.(https://www.restaurantsolbam.com/team)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의 이름과 사진, 그리고 어떻게 솔밤에 합류했고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지를 담은 인터뷰를 읽을 수 있다. 자부심이 가득한 이 글들을 읽고 있자면, 예술의 영역에 가까운 서비스와 디쉬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 것 같다.
솔밤은 2022년 문을 연 뒤, 2023년부터 3년 연속 1스타를 따내는 중이다. 머지 않아서 더 많은 별을 따내는 것은 물론, 서비스 어워드, 소믈리에 어워드 수상자를 배출해낼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쉬운 파인다이닝 1스타, 그린스타
기가스
“어? 제 가방도 이 브랜드예요. 어디서 사셨어요? 한국에서 안 파는데.” 막 자리에 도착해 앉으려던 차, 의자를 빼주던 직원이 가방 칭찬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런 수더분한 환대와 스몰토크 덕분에, 그가 기가스의 헤드셰프 정하완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보통은 손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카리스마 있게 키친을 지휘하는 헤드셰프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 기가스의 디쉬와 서비스는 그처럼 수더분하고도 따뜻했다.
기가스가 다른 곳과 차별되는 점은 ‘팜 투 테이블’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재료를 경기도 군포의 수리산 일대의 ‘와니농장’에서 직접 재배한다. 그래서인지 특히나 채소의 사용이 다채롭다. 연잎, 타임, 물밤, 딜, 세이지. ‘풀’에서 이렇게 고유의 맛을 느끼는 것이 얼마만인지.
늦가을에 제 맛을 낸다는 추자도 고등어에는 오이, 고수, 초피가 어우러졌다. 비트의 붉은 즙과 허브 오일이 얹어져 접시 위에 알록달록 한 편의 그림처럼 그려졌다. 다 먹은 접시조차 여러 색의 물감이 번진 팔레트 같다.
디쉬들마다 허브와 채소는 인상적인 포인트가 되어준다. 숙성한 오리 가슴살 디쉬에 얹혀진 튀긴 세이지, 민트와 고수 씨앗이 그렇다. 서해 관자를 튀진 올리브로 감싸고, 이베리코 하몽을 올린 뒤 루콜라를 더한 디쉬는 각자 다른 식감과 층층이 쌓인 맛으로 다채로운 풍미를 선사한다. 짭쪼름한 하몽과 올리브, 바삭한 튀김의 질감, 말캉한 관자와 신선한 루콜라의 조합을 크리미한 소스가 끌어안은 ‘한입’이 아직도 입안에 맴돌 지경.
기가스의 미덕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깨 하나도 줄을 맞춰내는 ‘파인다이닝스러운’ 강박이 기가스에는 없다. 단지 본연의 맛과 모양새를 있는 그대로 살리는 것에 집중한다. 난해하거나 기교를 과시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힘을 뺀’ 디쉬는 방문객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아무리 살뜰한 서비스라 하더라도, 파인다이닝이라는 엄격한 공간에 들어설 때는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기 마련. 기가스에서만큼은 그저 마음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디쉬를 만끽할 수 있었다.
기가스에서의 다이닝을 완성하는 것은 공간이다. 토담을 연상케 만드는 벽, 차갑지 않은 질감의 돌 테이블, 테이블 위에 놓인 감나무의 가지. 사방의 큰 창으로는 햇볕이 내리쬐고, 계절의 옷을 입은 나무들이 액자 속 그림처럼 펼쳐졌다. 식사를 즐기는 동안 접시 위로 내내 계절이 쏟아졌다. 가장 세련되게 계절을 맞이하는 나만의 의식을 이야기하라면, 주저하지 않고 기가스에서의 다이닝을 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