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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영적 장자여! 예수님의 흔적을 지니라!”
+ 본 문 : 갈라디아서 6장 14절 - 18절 (신약성경 309쪽)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 “잘 되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참 멋지십니다.” “잘 어울리십니다.” “새로운 느낌입니다.”
우리가 가슴의 문을 열고 상처를 드러내고,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며 살아가는 양육과 훈련이 있는 교회,
불신자를 가슴에 품고 복음전도의 열망을 가지며 사역하는 교회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육과 훈련사역에 참여하여 가슴의 문을 열고 상처를 드러내고,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며,
불신자를 가슴에 품고 복음전도의 열망을 가지며, 교회 사역에 생명거는 성도들을 보면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교회 예배와 목양철학과 말씀이 좋아 찾아오시는 교인들에게도, 너무나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과 우리교회를 초대교회의 정신, 초대교회의 원형을 회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를, 이 땅에서 영향력 있는 리더로 키우는 사명을 완수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교회의 분명한 목회의 초점은, 잘못된 전통교회의 철학과 패러다임을 바꾸고,
불신자들을 전도하여 세상을 구원하며, 한 사람의 불신자를 전도하여 양육하고 제자로 삼는 사역입니다.
여러분도 이 담임목사에게 점찍기 위해서 예배에 나오고, 사람보고 교회에 출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금붕어 키우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비실비실 죽어가는 금붕어 몇 마리를 다른 어항으로 옮겨서,
새로운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데 많은 돈과 시간을 들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친구가 말했습니다.
“이 바보 같은 사람아! 그 비실거리는 것 갖다 버리고 그 돈 가지고 금붕어를 사오면 백 마리는 사겠네.”
그때 금붕어를 키우던 사람이 정색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어 가는 금붕어 한 마리를 살리려는,
열정과 애정이 없는 사람은, 만 마리의 금붕어를 키울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물며 한 사람의 영혼을 건지기 위해서, 우리 모두 생명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신 영혼들과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고 살리기 위해서, 교회와 성도 여러분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교회가 교회 안에서 비성경적인 가치들을 뽑아내고, 하나님 나라 가치로 회복될 때!
우리 교회와 성도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불신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에 함께 몸부림 칠 것이며,
교회의 DNA, 교회의 생명인 십자가가 회복되고, 저와 성도 여러분들의 가슴에 보혈이 살아 흐를 것입니다.
여러분! 나보다 더 잘 생긴 옷 가게에 서 있는 마네킹을 보십시오. 분명히 코, 입, 손발도 멀쩡합니다.
그러나 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생각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왜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 여러분에게 예수 십자가라는 DNA가 없으면 껍데기만 남습니다. 아무 것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묻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예수님을 생각하고 십자가를 생각할 때 설레임이 있습니까?
가슴이 벅차 오르고 십자가를 전하고 싶은 애끓는 마음이 있습니까? 없다면 신앙의 생명을 상실한 것입니다.
오래 예수를 믿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예수 없이, 십자가 없이, 영생 없이 그저 살아갑니다.
그게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불신 영혼들을 보고도 아무런 부담도 가책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의 신앙생활에서 활력과 감격을 잃었다면, 틀림없이 영혼구원에 관심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예수 믿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섬겨줍니다. 그래서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1년 2년 10년,
예수 믿다보면 이제는 내가 누군가를 전도해서 섬겨주어야 사는 맛이 나고 신앙생활에 활력이 나타납니다.
처음교회 나올 때는 건강을 얻기 위해, 사업이 잘되기 위해 어린아이 같은 기도를 하면서도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예수를 믿고 나면, 이제는 영적인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리더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교회사역에 헌신함으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그렇지 못할 때 영적 침체가 옵니다. 신앙이 퇴보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교회가 예수 생명이 있어야 불신자를 전도할 수 있고, 세상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예수 십자가의 생명을 품으면, 불신영혼을 전도하는 열정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의 자랑은 예수 생명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자랑은 예수 생명의 십자가를 전한 흔적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예수 보혈의 피가 끓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발에, 불신 영혼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인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가 생긴 흔적이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입술에, 불신 영혼들에게 복음을 말하는 예수님의 생명인 십자가 보혈의 피가 묻어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시간과 재물을,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인 십자가를 전하는데 얼마만큼이나 쓰여 지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언젠가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내 제자라 확신할 수 있는,
나의 십자가 흔적을 보여다오.” 라고 요구하신다면,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보여드리겠습니까?
오늘 본문 17절 말씀은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나의 함께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아멘!
이 바울의 고백 속에서 ‘흔적’ 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원어로 ‘스티그마타’ ‘스티그마’ 입니다.
‘스티그마타 - 흔적’ 이라는 말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옛날에 노예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쇠사슬에 묶어 놓았습니다.
그래도 노예가 도망갔다가 붙잡히면, 주인 마음대로 죽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죽이면 주인에게 손해가 됩니다.
그래서 노예의 몸에 문신을 합니다. 지워지지 않도록 인두를 불에 달구어 몸에 주인의 이름을 새겨 넣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영원히 그 집의 노예입니다. 어디에 가도 인두로 새긴 낙인이 있어 절대로 도망가지 못합니다.
하늘 아래 어느 곳을 가도 아무개의 종이라는 표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스티그마 흔적’ 입니다.
그래서 종의 흔적이 새겨지는 순간, 인권은 완전히 박탈당하고, 자신의 존재는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는 ‘스티그마 흔적’ 의 흔적을 영광으로 받아들입니다.
“나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흔적이 있다. 그러므로 나를 건드리지 말라.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이요. 내가 하는 모든 말은 곧 그리스도가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 14절 말씀입니다. 나의 고백으로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을 뜨나 눈을 감으나,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인 십자가가 보입니까?
마음의 눈을 열어 십자가를 쳐다보면, 그 속에 내 모습이 보이고 내가 앞으로 가야 할 천국이 보여야 합니다.
숱한 죄에 시달리다가도 십자가만 쳐다보면, 그 십자가로부터 내게 오는 빛으로 자유와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온갖 삶의 문제가 얼키고 설키다가도 십자가만 바라보면, 그 모든 삶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만하면 제대로 헌신했지 싶다가도, 십자가만 비리보면 부끄럽고 부족해서 견딜 수가 없어야 합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종종 임종을 지켜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임종을 앞에 둔 사람들의 고뇌는 먹고 살 걱정이 아닙니다. 죽는 것이 두려워하는 고뇌도 아닙니다.
남은 가족들에 대한 염려도 아닙니다. 임종의 고뇌는 주님의 심판대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 입니다.
심판대 앞에 선 나, 내가 일생동안 산 그 모습이 주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그 순간은 반드시 다가옵니다. 이 고통을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다 부질없습니다.
답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오직 이 한마디뿐입니다.
십자가라는 말이 나오고, 그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게 될 때, 얼굴이 비로소 환하게 밝아져 옴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14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알기를 원하고,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것들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내 모든 것을 다 희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가치 - 십자가만을 알기 원합니다. 십자가만을 자랑하기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동안 세상적인 자랑, 예수 믿은 후 자신이 체험한 자랑거리가 참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가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복음을 알게 된 후부터는, 그 모든 자랑은 모두 헛된 것이요.
예수님을 잘 믿는 일에 오히려 해로운 것임을 알고, 분토와 같이, 똥과 같이,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습니다.
그렇게 버리고 또 버리고 나니 남는 것은 오직 십자가, 그래서 십자가만을 자랑으로 삼는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 “내 육신 가운데서, 내 이력서 가운데서,
나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나에게 죄 사함을 가져다 준, 나에게 영원한 삶의 감격을 가져다 준,
나에게 삶의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한 예수님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의 대가이셨던 스펄젼 목사님의 설교는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조용히 묵상하다가 십자가 장면이 나왔는데, 그 마음속에 아무런 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나를 구원한 이 십자가의 사건 앞에, 왜 내 마음속에 감격이 사라졌습니까?
십자가의 감격을 돌려주옵소서. 십자가의 눈물을 돌려주옵소서! 보혈 피를 향한 내 눈물을 돌려 주옵소서!」
그렇습니다. 날마다 보아도, 날마다 들어도 마르지 아니할 감격의 내 눈물의 샘터는, 예수 십자가여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십자가 없이는 죄 사함이 없고, 우리의 삶이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걸 아십시오. 내게 오늘 문제가 있다면 사업이 실패한 것도 아니고, 명예를 잃어버린 것도 아닙니다.
정말 문제는 예수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로 인한 구원의 감격과 감동이 사라진 그것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고민이 무엇입니까? 밤낮 끌어안고 씨름하는 그 문제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라는 땅의 문제입니까? 여러분! 그건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 - 곧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을까?
내가 성령 충만한 삶을 어떻게 하면 더 누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불신 영혼을 구원하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찾아, 내 삶에 영광스러움을 더 해 갈 수 있을까? - 이런 삶이 성도의 우선순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 나를 자유하게 만들어 주신 분,
그리고 나에게 놀라운 생명을 가져다 주신 분, 그 예수의 흔적을 나는 지니고 있음을 자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언어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영광스럽게 나타나길 원합니다.
내 피 속에 예수님의 보혈이 흐르고, 나의 호흡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숨결이 뿜어나길 원합니다.
내 심장 속에 예수님의 고동이 맥박으로 요동치기를 원합니다. 내 걸음걸이 속에 예수님이 걷기를 원합니다.
내 눈동자 속에 예수님의 사랑과 연민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의 흔적을 갖기를 원합니다.
제 2의 성경이라고 말하는 천로역정이라는 책에 보면 등장 인물 중, 진충씨(眞忠氏)가 나옵니다.
진실하고 충성스럽다는 의미입니다. 이 진충씨가 자기의 여행을 거의 마칠 무렵에 한 가지 간증을 합니다.
“나는 나의 상처와 흔적을 주님을 사랑한 증거로서 나에게 상급을 주신 그분 앞으로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앞에 어떤 흔적을 가지고 가기를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 흔적은 최대의 신앙고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졌다는 것은, 나는 예수님의 종이요, 나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자기 소속감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땅에 살고 있으나 하늘 시민권자들입니다.
지금은 유한한 이 세상에 살고 있으나, 세상 사람들과는 사는 목적이 다르고 종착점이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신앙인으로서, 여러분의 삶에 어떤 흔적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최후의 날에 우리의 손을 만지시며, 주님을 위해서 일한 흔적을 찾는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무릎 꿇고 기도한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얼굴에 눈물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손에 교회를 위해 충성한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내게 주신 가정과 사업에도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인류의 최대의 영광스런 흔적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악한 무리들은 잔인하게도 상처를 냈습니다.
차마 그 얼굴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양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이마는 가시에 찔린 흔적이요,
그 손과 발은 대못에 박힌 흔적이 있었으며, 그 옆구리에는 창에 깊숙이 찔린 흔적이 남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상처를 부끄럽게 생각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영광스런 흔적으로 남겨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을 때 그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 모든 흔적은 저주에서 너희를 속량한 십자가의 흔적이니, 이 흔적으로 너의 저주와 죽음이 없어졌도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의 무릎에는 기도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항상 기도의 무릎을 꿇으셨던 우리 예수님,
겟세마네 동산의 피눈물의 기도, 변화 산의 기도, 종일 일하시고도 오로지 기도에 힘쓰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얼굴에 눈물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셨고,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무리를 보시고도 우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손과 발에도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 손으로 어린이를 축복하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진흙을 손에 묻혀 소경의 눈을 고쳐 주셨습니다.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손수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까지도 씻어 주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시는 손의 흔적도 가지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손과 발에 못 박히시므로 흔적을 가지셨습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예수님은 흔적을 가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며, 친절, 온순한 성품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기도 무릎, 눈물이 있는 얼굴,
섬기는 손과 발,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는 예수님의 마음과 성품이라는 흔적이 있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위한 이 흔적을 가지셨는데, 여러분은 예수 위해 어떤 흔적을 가지셨는지요?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고난당하신 흔적을 지니셨다면, 나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흔적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영적인 추수잔치! 행복한 복음전도에,
다함께 참예하여 우리교회의 생명력이 회복되고, 우리 모두의 십자가의 신앙의 감격이 되살아나고,
예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서, 내 삶의 DNA - 예수님의 생명이 살아나는 기회로 삼아 보십시다.
행복한 영혼구원을 위한 복음전도를, 단순한 교회 프로그램 중 하나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건 영적인 전쟁입니다. “우리교회가 불신자 전도를 위해 몸부림친다.” 는 사탄을 향한 외침입니다.
교회의 생명력 DNA 예수님의 생명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내 심장에 넘어진 십자가를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내가 먼저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는 기회입니다. 주님 앞에 설 그 날, 칭찬과 면류관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다니지 않던 사람들이 교회 문턱을 한번 만이라도 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천국의 문이 열려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복음전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불신자들의 심령 문설주에 칠해지는 유월절이요. 지옥선에서 천국선으로 갈아타는, 한편의 천국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복음전도하는 날은 천국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고, 지옥에서는 마귀의 통곡이 진동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전도를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미쳤다는 말을 들을 만큼 구원할 불신 영혼들,
우리가 초청할 영적 VIP들을 적으시고, 가슴에 품고 기도합시다. 우리 모두 미쳤다는 얘기를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미치도록 사랑하지 아니했다면, 독생자를 보낼 수 있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세상일이 바빠 못한답니다. 먹고 사는 게 인생의 사명인 줄 아는 사람들의 핑계일 뿐입니다.
지금은 종말의 때입니다. 구원받을 자와 멸망할 자가 갈라지는 때입니다.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는 때입니다.
지금 영향력 있는 교회와 침체된 교회가 갈라지고 있습니다. 쓰임 받는 성도와 버림받는 성도가 갈라지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와 우리 성도들의 생명력이 회복되고, 신앙의 감격이 살아나고, 우리 삶의 DNA가 살아나고,
불신 영혼들이 살아나도록 합시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크고 놀랍게 부흥하시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함께 외칩시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도다. 아멘!」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아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사랑이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날마다의 삶이, 항상 감사하는 삶이 되기를 진실로 원합니다.
그 어떠한 환경에서도 주님을 찬미했던, 사도 바울의 가슴에 강하고 뜨겁게 흘렀던
예수님의 보혈 피로 인한 강한 믿음이 우리들의 가슴에서도 항상 솟구쳐 흐르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속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말씀들을 우리 가에 새기며 묵상해 봅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이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이요. '소유' 라는 이 선포가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서도
늘 피 끓듯 잠재하고, 우리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어질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그 어떤 고난과 박해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종 바울의 다짐과 기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주님! 이제 우리도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품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생전에 내 몸과 내 영혼에 될 수 있는 대로 주님이 친히 맛보신 그 고통을 맛보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 죄인을 위하여 그처럼 참으실 수 있었던 끝없는 사랑을 알게 하옵소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섰을 때, 가장 자랑할 수 있는 표징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흔적이 되도록, 우리가 종으로서 충성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충만하게 임재 하셔서, 주님의 권능으로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교회와 성도님들의 전도로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잘 되게 하시고 행복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