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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기 게시판 스크랩 오대원 목사, 종교혼합주의 ‘WCC’와 연합하다
덕암 추천 0 조회 173 14.07.01 14:27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오대원 목사, 종교혼합주의 ‘WCC’와 연합하다


학자의 혀


아래는 오대원 목사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인터뷰의 말미에 보면 WCC에 대한 오대원 목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WCC는 종교간의 통합을 추구하는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단체입니다.

현재 WCC는 배교의 가장 큰 실체이자 집단입니다.


(WCC의 문제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http://blog.daum.net/hakema)의 ‘WCC’ 카테고리에서 추가적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런 WCC에 소속되어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오대원 목사가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를 통하여 오대원 목사의 영향력은 WCC에까지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오대원 목사가 말한대로 WCC에서는 (오대원 목사의 영향력으로)북한개발협력회의가 진행되게 된 것입니다.

 

(오대원 목사가 영향을 미치며 관계하고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도 본 블로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카테고리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 단체인 WCC와 오대원 목사는 협력과 동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오대원 목사는 그런 WCC와 얼마든지 협력하며 함께 할 것이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교단도 WCC에 가입되어 있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는 본 블로그에 이미 게시된

“한국 예수전도단 설립자 오대원 목사의 심각한 문제들"( http://blog.daum.net/hakema/344 )이란 글에도 밝힌대로 오대원 목사는 에큐메니컬(종교통합)을 추진하며, 그 신앙과 노선은 종교혼합 노선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대원 목사는 “2차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시의 수단으로 종료된 '환상'의 특별 계시화”를 시도하거나 “직통계시를 강조”하는 신비주의적이고, 은사주의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오대원 목사의 문제들은 굉장히 심각한 것들이며, 그 수준이 이단과 방불할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 블로그에 제기된 오대원 목사의 문제들은 일부분일 것이며, 그 본질과 속내는 아마도 더욱 깊고 심각한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대원 목사와 예수전도단은 이미 성경에서 많이 벗어났습니다.

오대원 목사와 예수전도단에 대한 무분별한 자세는 우리의 신앙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것입니다.

각별히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아래는 그의 인터뷰 전문입니다.

빨간색으로 밑줄친 부분이 문제의 내용입니다.






미완 <파워 인터뷰>


“통일 위해 교회가 하나되고 연합해야”

오대원 목사[한국예수전도단의 설립자, 안디옥훈련원 대표, 북한연구학교 교장]



 2008년 2월 18일 월요일부터 23일 토요일까지, 남양주 감리교교육원에서는 부흥한국 주관으로 ‘북녘 우리 동포들을 복음과 사랑으로 섬길 남북한의 통일 선교사들을 훈련’하기 위한 제 1회 북한선교학교 캠프가 열렸습니다. 5박 6일의 캠프 기간동안 주강사로서, ‘히브리서 강해’를 통하여 참석자들에게 믿음의 기본기인 말씀 훈련과 영성 훈련의 중요성을 설파한 오대원 목사를 임호정 자매(북한사랑의선교회 연구부)가 만나 ‘한반도 통일과 북한 선교’에 대한 생각을 들어 보았습니다.



-임호정 자매(이하 임) : 초창기 때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1961년도에 어떻게 한국에 오시게 되었는지, 대천덕 신부님과 인연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오대원 목사(이하 오) : 우선 선교하기로 일찍 헌신했구요. 60년에 어느 나라로 갈지 결정해야 할 때였는데, 그 때 당시 한국에 4.19 혁명이 있었고, 학생들이 참 세력이 있다는 것을 보고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님께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수전도단’도 ‘예수원’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예수원은 한 곳에 있는 공동체이고, 대천덕 신부님께서 다니면서 예수를 전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예수전도단’이란 이름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임 : 그 전에도 한국에 대해 관심이 있으셨나요?


-오 : 전혀 몰랐습니다. 한국에 관한 책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전혀 한국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한국 유학생들을 사귀면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임 : 사모님과는 어떻게 만나셨고 또 대학 때부터 YWAM 멤버셨는지요?


-오 : 대학교 때 같은 학년 친구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친구로 만나면서 클럽활동도 같이 하고, 성가대도 같이 하면서 서로 좋아 하게 되고 존경하게 되었고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3학년 봄부터 결혼할 것을 서로 인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교하고 싶은 마음을 따로 주셨는데 같이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지요. 같이 구했습니다. 어디서 어떤 사역을 할지. 대학생 전도를 희망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때는 YWAM(Youth With A Mission: 청년선교회) 을 몰랐습니다. 1972년도에 예수전도단을 창설했고, 그 후에 YWAM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YWAM에서 저희에게 그쪽 사역을 제안했지만 저희가 한국 토착사역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였고 8년 후인 80년에 YWAM과 join을 하게 되었습니다. 국제 YWAM은 우리를 ‘국제 예수전도단’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임 : 예수원 대천덕 신부님과의 인연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해 주세요.


-오 : 처음에 대신부님을 만나고 10년 동안 그분을 만나지 않았는데 그동안 대신부님께서 저희를 위해 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결국 10년 후에 대신부님을 통해 성령 세례를 받게 되었고 그때부터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임 : 처음에는 대학생 전도에 전념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그때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오 : 68년부터 서울대에서 전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서울대 학생들이 단식투쟁을 할 때 저와 함석헌 선생 둘만 서울대 출입이 허가되어 그들을 만나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함석헌 선생도 그때 알게 되었고 그분이 쓰신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감명 깊게 읽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북한에서도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남북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임 : YWAM과 join하신 후에 광주사태가 난 건가요?


-오 : 80년 광주항쟁 때 저희는 하와이에 있었습니다. TV를 통해 한국에서는 못 보던 장면을 모두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광주가 치유되면 한국이 치유되듯이 북한 문제도 그럴 것입니다.



-임 : 성령 세례를 받으셨을 때의 얘기 좀 해 주세요.


-엘렌(오대원 목사의 사모) : 너무 너무 갈급했지요. 하나님이, 그렇게 갈급하니까, 기다리셨나봐요. 장로교에서 자라면서 그런 가르침이 없었기 때문에 성령에 대한 기대가 없었어요. 그런데 10년 동안 사역하면서 많이 힘들고 연약해져서 사역을 계속 할지 말지 고민했는데, 마침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그에 대한 갈급함을 주셨습니다. 우리와 같이 기도 모임을 하던 팀원들이 모두 함께 갈급해하며 성령을 간구하였습니다. 거기서 회복하고 새로운 힘을 주셔서 빨리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그 이후 돌아와 서울대 공대의 기도 모임을 통해 성령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희를 처음 만난 후 10년 동안 대천덕 신부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셨다고, 기도하시는 중에 저희가 성령세례 받는 것을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는 예수전도단에서 매년 예수원에 올라가 캠프를 했습니다.



-임 : 홍동근 목사님과의 인연을 듣고 싶습니다.


-오 : 영락교회 다닐 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의 부모, 형제, 친척이 모두 북한에 있어서 처음으로 김일성대학에서 ‘기독교학’을 가르치게 되셨습니다. 그로 인해 그분은 한국 입국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한국정부로부터 오해를 받게 되었습니다만 남북관계에서 그분은 선구적인 역할을 하셨다고 생각됩니다. 북한에 봉수교회를 세우게 된 것도 그분이 힘을 많이 쓰셨습니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설립도 그렇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사역이라 빨갱이란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재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임 : 목사님께서도 한동안 한국에 못 들어오신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오 : 88올림픽을 앞두고였습니다. 지금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선교사들을 추방하는 것과 비슷하게, 외국선교사들이 많이 보이면 후진국처럼 보인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때 정치 활동하는 선교사 몇 분도 추방되고. 그것이 오히려 저희에게는 미국에 있는 한인 2세들을 위한 사역을 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저희들을 인도하셨다고 믿습니다.


-엘렌 : 예수전도단도 정부에서 등록허가를 내 주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부 관계자가 거의 불교인들이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임 : 북한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품게 되셨고 북한을 처음으로 방문하신 것은 언제입니까?


-오 : 79년부터 북한에 대한 비전을 보여 주셔서, 북한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대한항공에 전화했습니다. 아직 평양직행 비행기는 없지만, 만약 열리면 제일 먼저 알려달라고 그랬죠. ^^ 5년 전에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저는 자주 가지 않고 저희 팀원들이 자주 갑니다. 저는 (북한과) 미국정부가 관계가 별로 안 좋아서 안가는 게 예의죠. 저는 (북한을 다녀온 저희 팀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임: 북한에서 사역 하시는 분들에 대해 소개 해주세요.


-오: 여러 분들이 거기서 10년 동안 살면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비즈니스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고아원 지원과 두유공장 운영 등 여러 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들이 오히려 북한 선교를 더욱 넓혀가고 있고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임 : 비즈니스 사역의 한계는 무엇일까요? 지하교회와의 접촉은 어렵죠?


-오 : 지하교회와 연결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을 안 만나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합니다.



-임 : 한국 교회와 선교 단체들이 다양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데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오 : 선교 사역을 하다보면 물론 담대함이 필요하지만 자칫하면 고집과 나만이 옳다는 아집으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통일을 위해 우리가 먼저 하나가 되고 연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임 : 봉수 교회에 대해서도 여러 시각이 있고 지하교회에 대한 지원에도 여러 지적과 관점들이 있는데요, 목사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오 : 김병로 박사의 말처럼 봉수교회와 칠골 교회의 20% 정도는 그루터기 교인들일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칠골 교회에서 예배하고 설교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판단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에도 미국에도 가짜교회는 많죠.



-임 : 지하교회가 없다고 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오 : 있다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는 모를 뿐이겠지요. 그런 문제는 있다, 없다나 진짜냐, 가짜냐로 비판할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지하교회가 없을 리가 없죠. 중국교회사에서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고난 받았지만 많은 지하교회 성도들이 있었죠. 독일에서 통일이 되기 전에 서독교회가 동독교회를 많이 도와줬죠. 동독 라이프찌히 교회에서는 월요 촛불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그 기도로 통일이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도 지하교회든 수면위의 교회든 교류하고 기도하면 놀라운 역사가 오리라 생각합니다.



-임 : 동독과 북한은 교회의 기반이 아주 많이 달라서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엔 좀 어려운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오 : 물론 독일과 한국의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북한의 (공식) 교회를 돕기 시작하면 복음전파를 위해서 방해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4월에 가톨릭 신부를 데리고 들어가면 성당에서 함께 기도를 드리게 되겠지만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임 : 성경배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어떤 사람들은 북한에 성경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기도 하는데요.


-오 : 물론 그렇게 많이 전달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면 못할 게 없다고 믿습니다.



-임 : 스웨덴 북한연구학교 NKSS(North Korea Study School)는 어떠했나요? 북유럽과 북한과의 관계는 좋은 편이죠?


-오 : 모두 마흔여섯 명의 학생이 참가하였습니다. 스웨덴에서 열린 것은 유럽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북유럽은 북한과 관계가 좋은 편입니다. 중립국이므로 미국과 한국에서 하는 것보다 더욱 활발하게 대북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남북한 양쪽과 모두 관계가 좋은 분들도 많고 대개 선교사라 하지 않고 기계, 농업 관련 전문 기술자들이 기술을 가르쳐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임 : 최근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서 주관한 ‘북한개발협력회의’가 있었는데 스웨덴에서 있었던 NKSS의 영향이었을까요?


-오 : 아마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북한을 위해서라면 누구와의 협력에도 열려있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공식적인 협력관계는 없지만 원래 제가 속한 미국의 교단은 WCC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임 :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가 통일한국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오 :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겸손하게 낮아지고, 다른 단체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북한 선교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스웨덴 북한연구학교 할 때 유럽에서 북한 사역하는 교회들의 네트워킹이 매우 잘 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에서도 서로 네트워킹하며 협력하는 사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북한 선교가 가능합니다. 북한을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보기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임 :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오 : 감사합니다.




[정리 : 박미애, 임호정 기자/  사진 : 임호정 기자]

 

* 인터뷰 출처 : http://cafe36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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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2.09 05:46

    첫댓글 덕암선생님 2015년 을미년 에도 좋은 글 부탁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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