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믿음과 온전한 믿음
야고보서 2:14-26
야고보서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기록했습니다. 야고보는 예수가 살았을 때는 예수를 믿지 않았지만 예수의 죽음과 부활 승천하심을 보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 믿게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를 믿게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감독이 되었습니다. 야고보서는 로마 제국에 흩으진 유대인 출신 성도들에게 야고보가 보낸 편지입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로부터 유대교의 본격적인 박해로 성도들은 흩어졌 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다고 믿는 그들에게 ‘행함’을 강조하여 쓴 편지입니다.
흩어진 그들은 유대인들을 피하여 숨어야 했으므로 성도들 간의 갈등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총회장)으로서 그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야고보는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14) 라는 질문과 함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17)고 말했습니다.
야고보서는 바울이 강조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 득의’(以信 得意) 사상을 정면으로 대치되는 ‘이행 득의’(以行 得意) 사상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행함을 강조함으로써 성도들이 믿음과 행함의 균형 잡힌 신앙을 갖도록 가르쳤습니다.
야고보는 먼저 ‘행함 없는 믿음’의 실례를 말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15)란 말씀은 신앙으로 하나 된 교회 안에 당시 성도들의 생활이 어떠했든가를 알 수 있습니다.
‘헐벗고 일용할 양식’ 이 두 가지가 부족하다는 것은 흩어진 그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던 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헐벗고 굶주린 그들을 앞에 두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믿음이 있는 척하며 ‘평안히 가라’, ‘배부르게 하라’고 말하는 것은 베풀지 않으면서 말만 앞세우는 당시 가진자들 입니다.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말한 것은 헐벗고 굶주리는 그들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말이었습니다.
가난한 자의 굶주린 배는 말로써 채워지는 것이 아니며, 헐벗은 몸은 입히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입에 발린 소리는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 말입니다.
사도 요한도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라고 말했습니다.
야고보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17)라고 말했습니다. ‘죽은 믿음’은 구원을 얻을 수 없는 믿음입니다. 지옥 불 속의 고통을 예고하는 말입니다.
‘행함’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뿐만 아니라 믿음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자비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다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음을 보시고 저주하여 말라 죽게 하셨습니다(막11:14).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라 죽게 하신 것은 당시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의 심판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행함이 없는 믿음은 결국 심판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은 지옥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배부르게 하라’, ‘더웁게 하라’는 말은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는 입에 발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인자가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최후의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마25:31-46).
그때 예수님께서 ‘내 형제 중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있다는 어떤 사람이 야고보를 보고 ‘자기는 믿음이 있고 야고보는 행할 뿐이라’고 주장하며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가 그에게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보이겠다’라고 말했습니다(18).
바람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나무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믿음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행함을 보고 그에게 믿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계속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공격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19)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믿는다는 것’은 성경의 기본적인 진리입니다(신6:4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 요소입니다.
그러나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뿐입니다.
믿음 없는 자가 입으로 신앙 고백하고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은 참된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행함 없는 믿음을 자랑하는 자들을 보고 ‘허탄한 사람아’라고 말했습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20).
‘허탄한 사람’이란 문자적으로 ‘속이 빈 사람’,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자랑하는 자를 보고 ‘허탄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허탄한 사람’은 아무런 유익이 없는 무가치성을 의미합니다. 행함이 없는 신앙은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는 아브라함과 라합 두 사람의 믿음을 말했습니다. 먼저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을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번제’는 흠 없는 수소, 숫양, 숫염소, 가난한 경우 비둘기를 제단 위에서 완전히 불사른 연기와 향기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은 소나 양을 제물로 불사르듯이 이삭을 불살라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쉽지 않은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이 이삭을 결박하여 칼로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고 부르시고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22:1-19).
아브라함이 그의 독생자 이삭을 받침으로 그가 믿음으로 행함을 입증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그는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행위는 믿음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다’(22) 라고 말했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구원받고 영생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날 때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라는 말씀을 반대로 이해하면 ‘행함 없는 죽은 믿음’은 구원과 영생이 없는 음부의 불꽃 가운데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믿음입니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과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22). 이 말씀은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구원과 영생하는 온전한 믿음’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야고보는 두 번째로 라합의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25).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여리고 사람으로 이방인입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고 대적함으로 멸망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리고의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수2:9-11). 라합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아는 것뿐 아니라 잡히면 죽게 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숨겨주고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도록 가르쳐 주었습니다(수2장).
야고보는 라합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24)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숨겨주고 접대하고 다른 길로 나가도록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라합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25).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믿음은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그들도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으로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됩니다.
야고보는 행함 없는 믿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결론적으로 말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6)
‘행함이 없는 믿음’을 ‘영혼 없는 몸’으로 비유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은 구원도 영생도 얻지 못하는 영원한 지옥 불 가운데로 던져질 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자신이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의 사람이 아닌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서 영생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보고도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면 그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것을 베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에게 한 것’은 누구나 쉽게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행함 없는 ‘죽은 믿음의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비를 베풀며 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셔서 구원받고 주님 부르시는 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합시다.
첫댓글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은 사랑을 나눌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작은 것 이라도 아끼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검소함 이라고 합니다.
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진실한 말 한마디로 믿음과 행복을 줄수 있는 마음 이라고 하네요.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불러온다구 했으니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양보를 하면서 살아가는 하루 되시길 기원 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잠 26:10).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