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금강경 강의
究竟無我分 第 十七 제17분-3
何以故오 如來者는 卽諸法如義니라
하이고 여래자 즉제법여의
"무슨 까닭인가 하면 여래라 함은 곧 모든 법이 여여하다는 뜻이니라."
여(如)는 '그대로이다', '같다', '진리이다', '평등하다'는 불교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냥 진리라고 하는 것보다 여(如)라고 하는 것이 더 구체적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법이 여여하다는 것은 모든 법이 진리이다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여래라고도 하는데 여(如)에서 왔다는 뜻입니다.
즉, 진리에서 왔다, 진리 그 자체이다 하는 뜻이 됩니다.
부처는 진리 그 자체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이 부처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어떤 특별한 형상을 갖추셨거나 상당한 위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고
제법(諸法) 속에 다 있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가고 오고 자연이 바뀌면서 돌아오고 심지어는 가만히 있고
보이지 않는 모든 것도 다 제법에 포함됩니다.
얕은 소견에서 보면 이 세상 만유의 이치가 변화 무상하고
낱낱이 차별로 된것으로 보이지만 좀 더 눈을 뜨고 보면 만 가지의 차별 너머로
변화지 아니하고 본래로 평등하고 동일되어서 다를래야 도저히 다를 수 없는
그런 근원자리가 있습니다.
이 자리를 여여(如如)하다고 하겠습니다.
若有人이 言如來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라하면 須菩提야
약부인 언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實無有法佛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
실무유법붇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길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릴르 얻었다'고 하면
수보리야, 실로 법이 있어서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이 아니니라."
부처님께서는 설산에서의 육년간의 고행을 떠나 보리수 아래에서 납월 팔일
견명성오도(見明星悟道)를 이루었습니다.
생사의 근원적인 의문과 문제가 풀리고 모든 집착을 끊고
광대무변하고도 영원한 진리를 얻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위대하고 획기적인 깨달음도 어떤 고정된 법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게서 증득한 보리심은 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기준이나
선악시비를 떠나서 두루두루 걸쳐 있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如來所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는 於是中에 無實無虛하니라
수보리 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시중 무실무허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이 가운데는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
위대한 부처님의 깨달음은 진정 어떠한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실다움이 있다고 하면 어떤 고정된 실체가 되니 상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면『금강경』의 도리에 맞지 않게 됩니다.
어디에 기준하여 부처님이 환하게 밝아졌다고 하면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디에 기준하였다 하면 그곳에는 반야의 빛이 갈 수 없을 테니까
오도(悟道)를 이뤘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헛된 것은 더욱 더 아닙니다.
부처님이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한 것은 더욱 더 아닌 것입니다.
온 우주 전체가 깨달음 그 자체뿐이니까 실(實)이니 허(虛)니 하는 말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의식과 분별이 끊어지고 말로써 나타낼 수 없는
'언어 도단(言語 道斷)'의 자리인 것입니다.
-계속-
=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