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알고 있었던 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한국에서 오는 남자를 만나려 8000 마일 떨어진 홍콩에 한달에 한번씩 가는 여자가 있었다.
속으로 가까이 있는 내것도 알고보면 쓸만한데 구태이 돈 들여 먼곳까지 가야되냐고 묻기도 했지만 왜 그리 꼭 해야하는 것은 좋아하기에 즉 하고싶다 일 것이다.
일전에 켄사스에 이곳 미시시피 강가 센트루이스의 윤순기 동지와 4시간 걸리는 켄사스에 본지가 50년이 되는 동지들을 보러 갔다. 홍통까지의 8000 마일과는 비교가 안되는 것이기에 하지만 350 마일 드라이브는 누구집 애들 이름이 아닌 먼 거리다.
옛날 미국의 집 찾기는 촌사람 옛날 서울집 찾다 해가 저물기만큼 그리 쉽지 않은 것으로 두툼한 아틀라스 지도책을 보며 "이리 가서 저리 가서" 하며 찾는데 "GPS "란 괴물이 나온 후 부터는 "50미터 가서 오른쪽으로 꺾고, 꺾자마자 다시 오른쪽"하고 그리고 그리 하면 "이제 여기다" 라고 가르쳐 주는 문명 덕분에 "환상적인 언덕 위의 그림집"같은 바로 그 언덕 위의 통나무집인 이석재 동지의 집에 도착한 것이다.
집 주위의 풍경이 너무 좋아 집의 앞뒤를 거닐다 한참 떨어진 집 입구까지 왔다. 그 때 한 근사한 추럭이 집으로 들어 오며 "오랜만 입니다" 하는 것이다.
한국말을 하기에 건성으로 "으응,"하고 대답은 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인 것으로 누군가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다. 한국말을 하는데 조금도 어색하지 않아서 한국말 배워 하는 맥시칸은 아닌 것 같고 하여 그 곳 켄사스 동지들을 손가락울 꼽으며 더듬다 "큰돈 만지고 산다"는 이정일 동지라는 것을 안 것이다.
미국에 오십년을 살았으면 미국 티룰 내어 " 아니 이게 누구여?" 하며 50년 묵은 반가움을 표했어야 했는데그러지를 못한 것이다.
아마 그 때 이정일 동지는 "아니 저 사람이 나를 몰라볼 이가 없는데 혹시 치매끼가 온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또 석재 동지 집 안에 와서 한 호리호리한 어떤 사람이 "김형 오랜만입니다"하는 것이다. 그게 오광헌 동지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한참 지나 이석재 동지에게 "저게 누구여?" 하고 물은 다음에 안 것이다.
우리가 살아낸 그 50년, 1972년 30 살의 청년 이승만이 제물포 항을 떠나듯 스무살 중후반의 "변강쇠는 저리가"하는 근력을 자랑하던 청년들이 생면부지의 나라 미국에 와 살아낸 50년이란 세월이 짧지않은 긴 세월이란 것을 실감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