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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던지면 던질수록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부메랑입니다.
참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던지면 던질수록 더 풍성히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복과 저주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눅 6:38)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행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입니다.
불행하게 사는 사람은
불평을 나누어 주는 사람입니다.
주는데로 받습니다.
주는 것보다 더욱 풍성히 받습니다.
이것이 삶의 법칙이고, 관계의 법칙입니다.
어느 초등학교 시험 문제에 실제로 이런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한 학생이 쓴 답은 틀린 답이었는데요. 문제는 이랬습니다.
[다음 글에서 틀린 말을 바르게 고쳐 쓰시오.]
"헤헤, 맡있겠다. 나 혼자 먹어야지."
뭐가 틀렸을까요? 출제자인 선생님의 의도는 '맡있겠다'의 받침을 바르게 고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어떻게 답을 썼는가 하면, "나 혼자"가 틀렸다며 "같이"먹어야 한다고 고쳐 썼습니다. 비록 '같이'의 받침은 좀 틀렸지만요.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나 혼자 먹는 게 아니라 같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국어 실력은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친구입니다. 이 친구는 분명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성경에도 나누어줌으로 더욱 풍성해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여러분,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를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제외하고 네 복음서가 공통으로 다 기록한 사건이 딱 세 가지 나옵니다.
첫 번째가 방금 읽은,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 사건입니다. 두 번째는 마리아가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부은 사건입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신 사건입니다.
복음서들을 서로 비교하며 살펴보는 것을 '복음 조화'라고 하는데, 사복음서 전체를 통틀어 기록된 각각의 사건은 총 169개입니다. 그중 어떤 것은 한 사람이, 어떤 것은 두 명이 기록했습니다. 네 명이 모두 기록한 것 중 가장 많은 분량은 십자가 사건이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방금 말씀드린 세 사건이 사복음서 기자들의 눈에 모두 들어와 기록된 것입니다. 그만큼 이 사건들은 굉장히 특별합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모두 "이것은 반드시 기록해야겠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사람의 필요를 알고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가 구원받아야 하는 궁극적인 필요를 아시듯,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적인 필요도 알고 계실까요? 당연히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채워주고 계십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물고기들이 외쳤습니다. "아, 바다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때 그들은 대서양 속을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또 외쳤습니다. "우리가 들어온 바다와 대양의 파도, 푸른 물결을 단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네!"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 이 물고기들과 같습니다. 우리가 마트나 인터넷으로 먹거리를 사다 보니 하나님이 음식을 주셨다는 생각을 잘 못 합니다. 농부들은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는 쌀도 주문해서 먹으니까요. 일기예보를 보며 날씨를 확인하니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신다는 사실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수많은 축복 속에 살아가면서도 그분의 은혜를 잊어버리거나 간과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우리의 실질적인 필요를 돌보고 계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6장을 보면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공중의 새를 보고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새와 꽃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네, 성경에 입히시고 먹이신다고 나와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 이상의 깊은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생존에 필요한 것만 생각하면 꽃들과 새들이 없어도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단지 생존에 필요한 것만 공급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그대를 향한 당신의 애틋한 마음을 알려주시기 위해 땅과 공중과 하늘을 아름다운 것으로 채우셨다.“
생존에 필요한 것만 따지면 꽃과 새는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알려주시기 위해 온 세상을 아름다운 것들로 채우셨습니다.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장만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존에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표현해 자녀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려고 구비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뭐라고 할까요? 바로 '장난감'입니다.
하나님이 공중의 새와 들의 꽃을 보라고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그것들도 먹이시니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는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꽃과 새를 보여주시며 "내가 너희를 향한 애틋한 마음에 이 아름다운 장난감들을 만들어 놓았다. 이것을 본다면 너희 생존에 필요한 것은 내가 이미 다 준비해 놓았다는 사실을 믿어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꽃을 볼 때마다 "나를 위한 장난감들을 이렇게 예쁘게 만드셨으니, 내 생존에 필요한 것들은 얼마나 완벽하게 준비해 두셨을까" 하고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요, 재림 신자입니다.
둘째, 단순한 삶을 바라십니다.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한 끼 식사를 베푸셨는데,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시라면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진수성찬이나 산해진미를 만드실 수는 없었을까요? 이 말씀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맛있는 것 좀 만들어 주시지' 하고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단지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차린 식물은 그들에게 유익한 교훈을 주지 못할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원래 양식이 악용되었다는 것을 이 공과로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단지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진수성찬을 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이기심과 자연 법칙에 반하는 미각의 방종으로 말미암아 한편은 과잉이 되고 다른 한편은 결핍을 초래함으로 죄와 불행이 세상에 들어왔다."
한쪽은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고, 다른 한쪽은 없어서 굶주리는 세상입니다. 미국에 '하트 어택 그릴(Heart Attack Grill)'이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한국말로 바꾸면 '심장마비 식당'입니다. 햄버거 전문점인데 병원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종업원들은 간호사 복장을 하고 있고, 고객은 환자가 되어 들어갈 때 환자 가운을 입습니다. 주문서는 처방전입니다. 거대한 크기의 햄버거를 파는데, 몸무게가 160kg 이상이면 모든 음식이 공짜입니다. 실제로 이 식당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손님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건이 몇 차례나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먹을까요?
이 세상의 문제는 '빵'의 문제가 아닙니다. 요즘 정치를 하거나 지도자를 뽑을 때 사람들은 능력을 봅니다.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어떻게 잘 먹고 잘 살게 해 줄 것인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경제나 빵의 부족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너무 많이 가지고 누군가는 너무 없습니다. 없는 사람을 위해 아파트를 자꾸 지으면 집 없는 사람이 집을 가집니까? 아닙니다. 집 없는 사람은 여전히 없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이 가집니다.
어떤 책을 보니, 현재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양은 전 세계 인구 80억, 90억 명을 다 먹여 살리고도 남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한쪽은 굶어 죽어갑니다. 그 책의 저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 세상에 부족한 것은 식량이 아니라 정의다." 분배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세상의 문제는 빵의 문제가 아니라 '죄와 이기심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빵은 다른 사람도 만들 수 있지만, 죄와 이기심의 문제는 예수님 외에 해결할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쪽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 살을 빼야 한다고 다이어트를 하고, 아프리카 같은 다른 한쪽에서는 오늘도 배를 갯으며 잠을 청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편중되어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단순하게 먹고 단순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배고픈 무리에게 대단한 진수성찬을 주지 않으시고 소박하고 담백한 식사를 주신 이유도, 그렇게 먹으나 진수성찬을 먹으나 다음 날 화장실 가면 다 똑같기 때문입니다. 안 먹을 수는 없지만 단순하게 살라는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진 것들을 언제까지 소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권지숙 시인의 '그가 부르시면'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옹기종기 땅따먹기를 하고 있다.
배고픈 것도 잊고 해가 지는 줄도 모른다.
"영수야!" 부르는 소리에 흙 묻은 손을 털며 일어선다.
따놓은 많은 땅이 아쉬워 뒤돌아보며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고,
남은 아이들은 다시 둘러앉아 왁자지껄 논다.
땅거미가 골목을 온통 덮을 즈음 아이들은 하나둘 부르는 소리에 따라 돌아가고...
부르시면 어느 날 나도 가야 하리. 아쉬워 뒤돌아보며.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도 땅따먹기와 같습니다. 부동산, 재산, 그것들을 언제까지 가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까지만입니다. 그분이 재림하셔서 우리 이름을 부르시거나, 우리의 수명이 다해 잠들 때까지만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그 소유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형제들이 그들의 소유를 늘리는 대신에 줄여야 할 때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더 좋은 나라, 하늘에 있는 나라로 옮겨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거민이 되지 말고 살림살이를 가능한 줄여서 사는 방향으로 하라."
살다 보면 살림살이도 늘고 몸에 살도 붙습니다. 몸을 관리해야 하듯 우리의 삶과 소유물도 자꾸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신과 의사 중에 유명한 이시영 박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동양, 특히 한국 여성들에게만 나타나는 '화병(Hwa-byun)'을 세계 최초로 정신의학 용어 백과사전에 등재시킨 분입니다. 이분이 은퇴 후 자연 공동체를 운영하며 주장하는 운동이 바로 '3S 운동'입니다.
Simple (단순하게 살자)
Small (작게 살자)
Slow (천천히 가자)
그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님에도 이 운동을 합니다. 다들 너무 뛰니까, 뛰어야만 겨우 남들 걷는 만큼 사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보리떡과 물고기를 만드신 것은 그렇게 단순하게 먹고살아도 인생에 아무 지장이 없음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셋째,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설교의 핵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마가복음 6장 37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당시 모인 무리는 남자만 5천 명이었고,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최소 만 명이 넘는 대군중이었습니다.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던 제자들은 "우리가 가서 200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하고 반문했습니다.
시대의 소망 369페이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의 명령은 일종의 약속이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명령이지만 제자들에게는 줄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명령은 곧 약속입니다. 즉,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신 것은 "내가 너희를 통해 먹을 것을 주겠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신 것은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계명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명령이 언제 약속으로 성취됩니까? 바로 그 보리떡과 물고기가 예수님의 손 안에 들려졌을 때입니다.
여러분, '마중물'이라는 말을 잘 아실 것입니다. 옛날 펌프질을 할 때 바짝 말라 있으면 물이 잘 안 올라옵니다. 그때 물 한 바가지를 먼저 부어주어야 지하에 있는 무수한 물을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그 한 바가지의 물이 마중물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한 소년의 작은 도시락에 불과했습니다. 그 소년이 혼자 먹었다면 한 사람의 배고픔을 채우는 것으로 끝났겠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손에 들렸을 때 수많은 무리를 먹이는 기적의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약속이 성취되려면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이 예수님의 손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때로 우리의 재물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으며, 재능일 수도 있습니다. 나 혼자 쥐고 있으면 내 가족만 겨우 살리지만, 주님의 손에 들어가면 수많은 사람을 먹이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교훈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여기 보시는 이미지는 파블로 피카소가 1942년에 만든 '황소 머리'라는 작품입니다. 피카소가 파리의 한 뒷골목 쓰레기장에 버려진 녹슨 자전거 한 대를 보고 가져와 분해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 안장과 핸들을 떼어내어 용접한 뒤 작품으로 내놓았습니다. 이것이 50년이 지난 1990년대 런던 경매장에서 얼마에 낙찰되었는지 아십니까? 무려 293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다 타버리고 버려진 쓰레기가 화가이자 예술가인 피카소의 손에 들어갔을 때, 293억 원짜리 위대한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우리 손에 들어왔다면 고물상에 던져졌을 자전거가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가진 것들을 우리만 쓰지 말고 예수님의 손에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헌신'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가진 적은 재물, 능력, 달란트를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 증언 말씀입니다.
"우리의 재물, 우리의 재능, 우리의 애정을 감사함으로 그리스도께 바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 이 땅에서는 행복을, 이후로는 불멸의 영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 혼자 가지고 있으면 별것 아니지만, 재물과 재능, 애정과 마음까지 그분께 가져가면 이 땅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하늘에서는 구원의 영광을 잃어버리지 않게 됩니다.
제가 존경하는 디자이너 중에 카이스트 배상민 교수가 있습니다. 그분은 미국의 유명한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나와 20대 후반에 최연소 교수가 되었고, 세계 3대 디자인상을 수없이 휩쓸며 아주 잘 나갔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늘 공허했습니다. 출석하던 한인교회 목사님과 3년 동안 새벽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습니다. "내가 인간의 욕망만 부추기는 소비적인 디자인, 아름다운 쓰레기를 만드는 일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분은 기도 끝에 한국으로 돌아와 카이스트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는 쪽도 받는 쪽도 정말 가치 있고 행복한 디자인을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분이 존경하는 디자이너는 성경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브살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시고 지혜를 주신 인물입니다. 배 교수님은 이후 세계적인 디자인상을 53번이나 더 받으며 기술적으로도 크게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그분이 디자인한 몇 가지 제품을 소개해 드리면, 부직포가 자연스럽게 수분을 흡수해 뿜어내는 가습기인 '러브팟'이 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 아이들이 말라리아 모기에 물려 죽어가는 것을 보고 만든 '사운드 스프레이'가 있습니다. 뿌리는 약이나 모기장은 금방 닳아 없어지지만, 이 기기는 1분만 흔들면 3시간, 3분을 흔들면 9시간 동안 모기가 싫어하는 초음파를 반경 5m 이내로 내뿜어 줍니다. 반영구적인 제품입니다. 또 태양광 패드를 프린트하여 유리에 붙여 휴대폰을 충전하는 제품도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천재적인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지 않고, 이웃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한 것입니다.
https://youtu.be/LH71QPRuQDQ?list=PL4kB4e9Ps9pcPISF7NveojDw5tW2_66YR
'로버트 셀(Robert Cell)'이라는 분은 한국 재림교회에 온 최초의 의료 선교사입니다. 그 미국인 의사가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들은 말이 "아이고 아파", 가장 먼저 배운 말이 "어디 아파요?"였다고 합니다. 그분의 기록입니다.
"내 수중에 있는 의과대학 졸업장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가? 그렇다. 그것은 내 학구적 성취이자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다른 한 손에 쥐고 있던 선교사 임명장 역시 자랑스러웠다. 이것은 내 의료 기술을 인류를 위해 사용하고 복음을 전하며 덕을 끼치게 하는 증서였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보낸 14년의 세월은 고통과 슬픔의 연속이었지만, 앓고 있는 자들에게는 즐거운 날들이었다. 아픈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즐거운 특권이었다. 우리 일이 설사 금전적 보수를 받지 못하는 무급 사역이었을지라도, 우리가 봉사함으로써 변화되는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었던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
이분은 의학 지식을 자기를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돈 벌고 잘 사는 데 쓰지 않고,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먼저 예수님께 가져갔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그의 삶을 질과 양 면에서 훨씬 더 풍족하고 위대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크신 의사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수많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축복의 통로'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이런 선구자적 헌신이 있었기에 재림교회가 한국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대의 마음은 자신에게 집착되어 있다. 남들의 근심을 덜어주는 일을 통하여 자기중심의 마음이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동안 그대는 행복과 유쾌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남을 행복하게 해야 내가 진정으로 행복해집니다. 내 마음에만 집중해 있으면 아무리 행복한 일이 있어도 느끼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도움 없이도 단번에 5천 명을 먹이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기적을 베풀기 전에 "너희에게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라" 하셨고, 안드레가 가져온 소년의 작은 도시락에 축사하셨습니다. 왜 굳이 그렇게 하셨을까요? 오늘날 예수님은 바로 우리를 통해서 일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간, 재능, 달란트를 통하여 이 세상을 축복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이 문장을 마음에 새기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행복을 누리려면 타인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이적을 통해 다시 한번 말씀의 깊은 의미를 돌아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크고 작은 현실적인 필요를 다 알고 계시고, 실질적으로 채워주고 계심을 매일의 삶 속에서 확인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은 갖추고 살되, 세상과 비교하고 타인과 비교하여 더 많이 가지려고, 더 잘 살려고, 더 화려해지려고 마음을 쏟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하늘을 향해 전진하는 재림 신자임을 기억하고, 이 땅에서 삶을 단순하게 가꾸어가는 연습을 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는 보리떡과 물고기가 없어도 수많은 사람을 먹이실 수 있는 전능한 분이시지만, 굳이 사람들이 가진 작은 것을 통해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이는 먼저 우리가 가진 것들을 예수님의 손으로 가져오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임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시간, 우리의 많지 않은 재물, 우리의 소박한 재능을 나 자신과 내 가족만을 위해 움켜쥐지 않게 하시고, 예수님의 손에 온전히 올려놓음으로써 세상을 향한 축복의 통로가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든 성도가 이러한 재림 신자로서 이웃을 이롭게 하는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https://youtu.be/PdxPcW93kc4?list=RDPdxPcW93kc4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