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29]『처음 만나는 청와대』라는 신간
신간을 아무리 사지 않으려 해도 사지 않을 도리가 없는 책들이 있다. 『(이제는 모두의 명소) 처음 만나는 청와대』(안충기 지음, 위즈덤하우스 2022년 12월 발간, 286쪽, 16000원)가 그것이었다. 지은이는 1990년 후반 광화문 시절 나와 함께 거의 날마다 잔을 부딪친 몇 안되는 '술친구'였다. 그즈음, 그는 다른 신문사로 자리를 옮겼고, 우리에게는 낯선 ‘펜화’를 그리고 그 신문에도 연재를 한다고 들었다. 펜화가 무엇인지 아시리라 믿는다. 순전히 철필로만 건축물이나 풍경을 세밀하게 그리는 그림, 사진같아 속을 뻔한 그림, 김영택이라는 작가가 국내에서 유일한 줄 알았는데, 그에 버금가거나 앞서 간다는 말을 들었다. 아는 이가 그렇게 실력이 있다고하니 듣기에 좋았다. 아무튼, 재주가 많은 친구인 줄은 진작 알았으므로, 그의 건승과 건필을 빌었을 뿐, 그동안 소원했다면 무척 소원했다.
최근 그의 ‘여사친’으로부터 그가 <펜화서울> 전시회를 개최했다는 말을 게 듣고, 아무래도 도록圖錄이라도 한 권 사야겠다고 시간을 내 들렀다. 근 10년만에 만나는데도, 그는(아니 우리는) 역시 여전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지, 어디 가겠는가? 대뜸 와인 한 병을 꺼내더니 “다 마시고 가시라”고 한다. 도록은 만들지도 않았고, 최근 펴낸 책은 없어서 못드리니 서점에서 사라며 보여준 게 이 책이었다. 아주 모처럼, 오늘 오전 4시간여만에 그 책을 정독, 완독, 통독했다. 책값이 ‘1’도 아깝지 않은, 아주 짱짱한 인문지리서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책이라면 몇 권이라도 사겠다. 우리 주변에 쓰레기글과 쓰레기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난 5월이후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 ‘무모한’ 대통령 덕분에 청와대가 83년만에 전면개방되는 시대가 되었다. 언론인 감각이 있기에 참 잽싸게도 냈다. 제법 발품을 많이 판 냄새도 나고, 많은 밤도 지새웠을 터. 대통령도 ‘백퍼’ 몰랐을 청와대 이야기가 구석구석, 오목조목,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있었다. 한 건물에 대해 이토록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은지 미처 놀랐다.
청와대와 직접 관련이 있는 수많은 사실史實들과 사실事實 그리고 수많은 일화逸話, 이를테면 ▲이름 내력 ▲나무와 풀의 천국 ▲처음 베일을 멋은 문화유산 ▲사연 많은 예술품 ▲0.725초의 승부, 경호처 ▲역대 대통령 초상화 ▲1.21 무장공비사건과 ‘김신조 소나무’ ▲풍수로 본 청와대 등을 비롯하여 ▲청와대 주변 물길 ▲백악산 가는 길 ▲청와대 동쪽과 서쪽 지역의 얽히고설킨 사연 등을, 신문기자 아니랄까봐 객관적인 시각으로 줄곧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리일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느니, 그때 보이는 것은 그전과 사뭇 다를 게 틀림없지 않겠는가. 글이 술술술 눈이 미끄러지게 읽힌다. 그의 글쓰기 장점이다(나의 경우처럼). 이런 글에 관심없는 이들도 재밌게 읽을 것을 확신한다.
책을 접하며 처음에 청와대 건물들에 대한 펜화모음집으로 알았던 것은 큰 오산이었다. 글이 99%이다. 실제 밀착취재에 곁들인 많은 참고서적 편력 후 온축된 그의 내공과 필력이 가히 전문가 수준이었다. 화가 이전에 아주 준수한 '글작가'임을 처음 알았다. 작가에게 곧바로 “너무 흥미로웠고 시종일관 진진했슴. 경의를 표함” 카톡을 날렸다. 유홍준 님의 서울이야기 네 권(문화유산답사기 9-12권)도 재밌었지만, 그가 빠트린 수많은 컨텐츠에 대한 궁금증이 거의 다 풀린 셈이어서 ‘서울이야기 완결판’같기도 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아니 특별시민의 한 사람으로 한양도성이? 서울이 궁금하신가? 청와대는? 이 책 읽기를 강추한다. 머지 않아 되돌아갈지도 모를 대통령 집무실과 그 터의 이모저모를 알아서 손해볼 일은 없지 않은가. 청와대가 보이고 서울이 보인다. 용산 이전에 대한 논란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말 한마디도 붙이고 싶지 않다. 그것은 그것대로 역사의 관점에서 언젠가, 조만간, 평가받을 것으로 믿자.
추기: 작가는 국토國土와 지리地理에 대한 관심을 한번도 놓아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애초 화가를 꿈꾸다 대학에서 한국사를 공부했고, 어쩌다 기자가 되었다 한다. 2008년 김영태 작가를 만남을 계기로 펜화에 눈을 떴다던가. 그의 관심과 애정이 전국 주요 도시의 풍경과 건물을 펜화화하여, 중앙일보에 <비행산수>라는 시리즈 그림을 연재하게 되었으리라. 북한의 산천과 도시를 그려보는 숙제가 남았다는 작가의 앞날에 행운과 발전이 함께하기를 빌어본다. 펜화 한 편에 보통 서너 달이 걸리고, 시력이 감퇴된다는 단점이 있다고 한다.
우리의 고향 전주의 <한벽루>와 영주 <부석사>를 그려놓은 펜화를 감상해 보시라. 그 한 편의 그림을 위하여, 그가 쏟은 노력은 얼마나 지난했을 것인가. 가상한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작품 하나의 값이 천문학적(?)이어서 손도 못내미는 내가 민망했다. 흐흐.
후기: 책 뒷표지에 정재숙(전 문화재청장)님의 추천사인지 축사인지 모를 글을 마저 인용한다. "(전략) (청와대를) 세상에 다시 없을 구경거리인 양 구름처럼 몰려온 그들은 무엇을 보고 들었을까? 권력의 허무한 그림자였을까, 역사의 준엄한 목소리였을까? 사학을 공부하고, 신문기자로 살면서, 펜화로 꿈을 꾸는 저자 안충기는 그 세 겹 인생에서 우러난 서사와 서정으로 '청와대 완전정복'이라 부를 만한 충실한 안내서를 꾸렸다. 민족유산 청와대를 제대로 꿰찬 첫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