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것에 싣고 한참을 달렸는데 실린 것이 없었다 확인해도 믿을 수 없었으므로 믿지 않았다. 의심하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었다 목적지가 계속 바뀌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들것이 들것의 거리로 내달렸다
들것을 위해 모두 길을 터 주었다. 들것을 비워 둘 수 없어서 계속 실어 날랐다 마을 전체를 날라야 할지도 몰랐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날라야 할 것이 없을까봐 염려되었다 어딘지 모르면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누구를 구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구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살아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괜찮았다
어쩌면 쓰러질 준비를 하고 있다가 들것 앞에서 갑자기 쓰러지는 것 같았고 끌고 가지 않으면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 손에 쥐어 주기도 했다
들것을 빼앗기는 것이 두려웠다 들것을 들고 달려가면 빈 들판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풍경을 흔들 수 있는 달리기가 좋았고 들것의 역할이 좋았고 아직 들것을 들 힘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들판의 색채와 가쁜 호흡이 뒤섞였다 앞뒤 소리와 좌우 방향이 구분되지 않았다 산 것을 싣고 달리고 죽은 것을 싣고 달렸으며 끈질기게 이어진 집착은 도끼로 찍어 내면서 달렸다 실을 것이 없으면 자신이 대신 누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싣고 실리는 것을 바꿔 가며
달렸다 선택은 무작위였고 그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달리는 동안에도 실려 갈 것은 계속 태어났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들것이 모자라면 들것 뒤에 여럿이 매달리고 그것도 어려우면 업고 업히면서 가기도 했다 들것 위에서 사랑을 하고 들것 위에서 아이를 낳고 어느덧 그것은 평범한 풍속이 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