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히트>의 촬영이 막바지일즈음 경찰청 앞마당에서 그를 만났다. 차에서 겨우 새우잠에 빠지려다 말고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찬 커피를 벌컥 마시고는 털썩 의자에 앉았다.
얼굴이랑 눈이랑 팔이랑 다 빨개요.
얼마 전에 한의원에 갔었어요. 심장에 열이 너무 많아서 흉부 위로 열이 꽉 차있대요. 아침 저녁으로 한약 먹고 있어요. 집시 생활을 하고 있죠. 트렁크에 배즙도 있고 녹차도 한 박스 있고 차에서 자고.
이렇게 사는 걸 원했어요? 괜찮아요?
뭐, 좋아요. 재작년에도 같은 질문을 받았어요.<용서받지 못한 자> 때, 지하 스튜디오에서, 강원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었죠.
내가 그랬어요? 기억력이 특별히 좋은 편이에요?
첫 <GQ> 인터뷰였으니까, 첫 번째는 기억에 남으니까요.
가장 최초의 기억은 뭐예요?
오른쪽 발 데인 거요. 물이 막 끓고 있는 가마솥에 발을 넣었어요. 세 살 때라고 하는데, 흉은 안 남았어요. 상황이 또렷하게 생각나요. 할머니랑 어머니가 집에 있는 소주를 발에 막 부으셨어요.
시원했겠네요. 인터뷰 많이 했죠? 배우가 인터뷰를 하는 건 어떤 걸까요?
매체에서 나를 만나러 온다는 게 그냥 기분이 좋아요. 한 사람이라도 나를 더 알게 되겠구나 단순하게 생각하는 거죠. 인터뷰 좋아해요. 질문에 답하는 것도 재미있고.
눈이 너무 빨가니까 재밌어 보이진 않아요. <히트> 촬영이 거의 막바지죠?
훈련소에서 퇴소 날짜 기다리는 기분하고 비슷해요.
그럼 시청자들은 매사가 명민해 보이는 검사 김재윤(극중 이름)과 퇴소 날짜 기다리는 이등병 하정우를 동시에 보고 있는 건가요?
하하, 그렇진 않아요.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즐기고 집중하니까.
김재윤이었다가 하정우였다가 그런 건 어때요?
어렵게 느끼진 않는데, 아차 싶을 때는 있어요. 3개월을 쭉 긴장감 있는 사람으로 생활하다가 밖으로 나오면 그게 무너지면서 이상해요. 어떤 느낌이냐 하면 지하에서 밤새 술 먹고 아직도 밤인 줄 알고 있다가, 아 집에 가야지 하고 나와보니 해가 쨍하고 떠있을 때, 갑자기 술기운이 머리끝으로 치솟으면서, 아 과음했구나 하는 그런 느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힘을 내는 건가요?
네, 선배님들이 어떤 시기가 있다고들 하세요. (고)현정 누나한테도 힘이 없고 의욕이 잘 안 난다고 했더니, 그럴 때가 있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어요. 여기서 주저하지 말아야지, 일어서야지 하는 괜한 승부욕도 발동하고 그래요.
<히트>는 당신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알아본다는 정도? 끝나고 나야 깨닫게 될 것 같아요.
사람이 변하잖아요. 친구들이랑 늘 같은 술집을 가다가 어느날엔가는 그 술집이 망한 것도 아닌데, 다른 곳으로 가고 있잖아요.
변한다기보다는 어떤 계획들이 잘 진행되고 있어요. 어떤 배우들과도 다르게 가고자 했던 부분에 대해서 썩 괜찮은 느낌이 있어요.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다는 점이 그렇게 느끼도록 하나요?
상업적인 드라마와 병행했다는 점에서요.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예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겠죠?
네, 그런 욕심이 있어요. 한편으론 배우가 어떤 역할을 맡는 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히트>의 김재윤만 해도 처음엔 드라마를 할 생각도 없었는데 이렇게 되었잖아요. 솔직하게 말하면,‘내가 귀여운 남잔가?’하는 생각을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처음 했어요.
하하, 누가 그래요?
주변에서 귀엽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귀엽나? 그랬죠.
정말 자신은 몰랐다고요?
예상은 했죠. 하하.
당신에겐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어설픈 배우연이 없어요.
이런 배우도 있는 거죠.
그럼 당신에게 배우라는 자의식은 어떤 건가요?
생활하면서 어떤 걸 꼭 기억하려는 버릇이 있어요. 예를 들어 꿈을 꾸면서도 이게 꿈이구나 느낄 때가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3인칭으로 기록하려는 노력을 해요.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말투를 흉내내고 반복해보고 리액션도 해요.
사람을 처음 만나면 그를 알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쪽인가요?
알 것 같다기보단 굉장히 집중하는 편이에요. 기억하려는 마음이 강 해요. 그래서 첫인상에 많이 좌우되는 편이에요.
멍청한 질문인 줄은 알지만 일단 해볼게요.‘헉’소리 나도록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서 그런지, 당신은 왠지 연기를 잘하는 것같이 보여요. 이게 뭐죠?
제가 답하면 너무 부끄러운 답변인데요.
부끄러운 답변이라면 인정하는 거잖아요.
에이, 말하면 자기자랑이잖아요.
연기 잘한다고 생각해요?
잘한다는 건 우문이겠고요.연기는 설득력이 있느냐가 문제 같아요. 까불다가도 연기할 땐 어느새 진지해져요. 그동안 경력이 긴 건 아니지만 연기를 공부하고 고민하고 한계를 매번 느끼고 소주를 마시고 했으니까요. 내가 생각하는 배우라는 것, 또 연기라는 것에 대해 저항할 수 없는 어려움을 느껴요. 잘하고 있다는 평가에도 불안해하고 항상 그렇게 뭔가 내 자신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연기를 전공했다는 건 어떤 걸까요?
그러니까 연기를 고민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정말 간절히 좋은 배우가 되고자 했던 마음,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를 바라보던 마음들이 다 합쳐진 거죠.
연기를 고민한다는 건 뭐예요?
넘어서는 거, 창조해내는 거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는 몸에 리듬을 주면서 대사를 하는, 몸을 이렇게 흔들면서 말하는 연기를 하고자 했어요. <히트>에서는 정적인 거, 물론 드라마 연기는 얼굴로 해야한다고 하지만요. <구미호 가족>은 아예 슬랩스틱으로 가고, <숨>에서는 무조건‘비호감’으로 가고 싶었어요. 평소에‘아 정말 재수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모든 것들을 거기에 넣어봤어요. 일단 밤색으로 염색을 했어요. 제가 염색이 정말 안 어울리거든요. 그런 식으로 뭔가 나만의 것을 만들어내고 나면,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든 이전에 썼던 캐릭터를 쓰기 싫어지거든요. 그렇게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걸 고민해요.
그 고민은 이미 다음 작품으로 건너가고 있나요?
새 작품 시나리오를 보고 읽는데 전기 충격기에 맞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전기 충격기에 맞는 게 뭘까? 도대체 이게 뭘까? 생각하는 와중에 우연히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전기 충격기 장면이 나왔어요. 저런 건가? 그래서 적어놨어요.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첫댓글 아 정말 매력있는 배우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인간으로서도 배우로서도 진짜 매력 폭발이에요ㅠㅠㅠㅠㅠ 생각만 해도 설레는 사람....
이거랑 더불어서 저는 책도 좋았구, 힐링캠프 나왔던 두편 전부 좋았어요. 인터뷰를 뭔가 꾸밈없이 하는데 재치있고 똑똑하게 하는 느낌이에요ㅠ 본진이라 연기도 좋아하지만 좋아하면 좋아할 수록 이런 센스랑 성격을 더 좋아하게되는 느낌ㅎ
재밌어요 역시ㅋㅋㅋㅋ 꽤 오래전 인터뷰네요~ 근데 작성자님 중간에 중복되는 부분 있어요(속닥
엇 복사하면서 중복됐나봐요ㅠㅠㅋㅋㅋ 감사해여 줌님(소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