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는 세상에 여러 종류의 시장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각 시장의 특성을 파악하고 카테고리화합니다. 독점시장이니, 과점시장이니 하는 말들이 바로 이런 구분짓기에서 생겨났습니다.
- 경제학원론정도의 지식만 있다면 주류 경제학이 완전경쟁시장을 가장 완벽한 형태의 시장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Dead Weight Loss 가 최소화되기 (=없기) 때문이죠.
- Dead weight
Loss (이하 DWL) 는 사실 경제학자들이 만들어낸 허구적인 개념에 불과합니다. 중상주의라는 경제 정책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아담 스미스가 그렇게 명명하고 개념을 형상화시켰듯이, 스미스의 후손들인 현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상상속의 개념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설명하는 것을 즐깁니다.
-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DWL 는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과 공급자측이 정하는 '권장 소비자가' 가 다를 경우 발생하는 소비자측의 손실중 일부를 이야기합니다. 그 손실분중 일부는 공급자측에 돌아갑니다.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정해질 경우 생성되는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한다면 당연히 더 큰 이득이 생겨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발생한 손실분중 일부는 시장의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못하고 '버려' 지게 되는데, 이게 DWL 입니다. 수식으로 도출하자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생략하도록 하지요.
- 완전 경쟁 시장하에서는 공급곡선이 수평이 되고, 이 곡선이 바로 가격이 됩니다. 즉 이 시장에서는 무수한 공급자와 소비자가 존재하고 각각의 경제주체는 전체 시장의 균형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시장으로의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고, 균형 가격하에서의 profit 은 항상 zero 입니다.
- 하지만 이익이 0이라면 누가 시장에 공급을 하려고 할까요? 단기에는 약간의 이득을 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fluctuation 이 존재합니다. 주식시장에서 단타로 치고 빠지는 사람들이 좋은 예이지요. 그들은 장기적인 시장 예측은 할 수 없지만 단기적인 차액은 챙길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 완전경쟁시장이 왜 가장 완벽한 시장이라고 주장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이유들도 더 있습니다. 첫째로 catch up effect 가 상당히 빠릅니다. 즉 한 공급자가 시장을 점유할 수 있는 기술을 장기간 오래 가지고 있기 힘듭니다. 기술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고, 한 기업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은 빠른 속도로 사라집니다. 가격은 하락하고, 더 많은 소비자가 더 좋은 기술을 더 빠르게 소비할 수 있습니다.
- 둘째로,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의 needs 가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반영되는 곳이 완전경쟁시장입니다. 이들은 단기적인 이윤을 얻기 위해 어느 누구보다 시장 조사를 철저히 합니다. 그리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다른 어떤 공급자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공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초기선점효과가 가장 극대화되는 곳이 바로 이 완전경쟁시장이지요.
- 현존하는 주류 경제학은 흔히 신자유주의 경제학으로 불리죠. 그 이유는 이 경제학의 페러다임이 기본적으로 공급보다는 수요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를 통제하는 국가보다, 상품을 생산하는 공급자보다 이 모두를 소비하는 소비자를 중심에 놓고 사고합니다. 민주주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설명력도 상당히 강한 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비중심적인 경제학에서 가장 애호하는 시장 형태는 단연코 완전경쟁시장입니다. 무척 소비자중심적이기 때문이지요.
- 그런데, 우리가 이야기하는 완전경쟁시장이 실제 현실에서 존재합니까?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 이제 애플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애플이 제공하는 아이폰이라는 기계는 플랫폼입니다. 이 플랫폼에서는 별다른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 소비자가 휴대폰시장에서 소비하는 패턴은 크게 두가지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플랫폼을 구입하고, 통신업체를 정합니다.
- 이 두가지 패턴 모두 상당히 독점적이고, 또 과점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이 많이 챙기는 구조이지요. 휴대폰을 생산하는 업체도 소수, 통신사업자도 소수이다 보니 소비자는 선택을 강요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다수의 휴대폰이 있다 해도, 광고에서 선전하는 몇가지 '신제품' 중 하나를 고르는 식이었습니다. 컨텐츠도 별다르지 않았습니다.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고 음악을 다운받고 게임을 다운받고 하는 것이 상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DMB 도 그렇고요. 정부에서 사업자를 선정하고 소비자는 사업자가 내보내는 방송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선택이라고 해도 강요된 선택이었죠. 다운받는 게임도 소비자의 needs 가 충분히 고려되었다기 보다는 휴대폰의 성능과 아주 전통적인 형태의 엔터테인먼트만이 고려되었습니다. 벨소리? 정도만이 예외적인 컨텐츠였죠.
- 애플은 아이폰에서 아이튠즈라는 소프트웨어를 별도로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 아이튠즈에서 영화든 음악이든 어플리케이션이든 골라서 살 수 있습니다. 아이튠즈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전세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음악과 영화를 커버하기 시작합니다.
- 간단히 말해 아이튠즈라는 툴은 하나의 시장입니다.
- 그리고 아이튠즈는 매우 완전경쟁시작적인 특성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 거의 모든 음악 앨범은 $9.99 로 균일합니다. CD 제작비와 유통비등이 제거된 가격으로, 실제 CD 한장 가격보다 매우 저렴합니다. 영화도 마찬가지고요. 가격에서 무차별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철저하게 자신의 소비 패턴에 의해 음악 혹은 영화를 소비하게 됩니다.
- 공급자측에서도 생산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에 아이튠즈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신제품의 경우 광고를 조금 더 때리고 프리미엄 가격을 받는 등의 형태로 약간의 deviation 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들 모두 단기적인 이윤 창출의 한 과정이지 장기적으로는 모두 일정한 패턴의 거래 형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 어플리케이션은 매우 흥미로운 상품이고 거래 패턴입니다.
- 우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어플, 예를 들어 facebook 어플같은 경우에는 공짜입니다. 대부분의 아주 인기있는 어플은 공짜입니다. 공짜이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걸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시장의 수요가 이 어플은 공짜여야 한다는 시그널을 먼저 보냈습니다. 공급측에서 이에 응해 공짜로 어플을 내놓았고, 뒤따르는 following 소비층이 이를 더 소비하게 됩니다.
- 만약 어떤 어플이 생산되었다고 가정합시다. 예를 들어 야구게임이라고 하죠. 이 야구게임은 $4.99 로 책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튠즈 앱스토어에는 수가지 종류의 야구 게임이 '이미' 존재합니다.
1. 동일한 플랫폼을 이용할 경우 개발하는 어플의 성능이나 효용이 크게 개선될 여지는 별로 없다고 가정한다면, 싼 가격으로 소비자층이 몰리게 됩니다.
2. 만약 어플의 개발자의 노력에 의해 효용이 크게 개선된다면, 소비자층은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플을 소비하게 됩니다.
1의 경우에는 모든 소비자가 균일한 품질의 어플은 보다 싼 가격에 이용하게 됩니다. 모든 야구 게임 어플 공급자가 가격을 통해 경쟁하기 때문입니다.
2의 경우에는 소비자가 더 좋은 품질의 야구 게임 어플을 소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술은 다른 개발자에 의해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결국에는 가격도 균일하게 저렴해 지게 됩니다. 더 좋은 품질의 야구 게임을 더 싼 가격에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1과 2의 경우 모두, 소비자에게 더 나은 효용을 선물해 줍니다.
- 제가 지난 2년동안 관찰한 아이튠즈와 앱스토어의 시장 패턴은 대개 이런 식으로 흘러갔습니다. 혁신적인 어플이 개발되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플은 단기적으로 높은 가격을 책정하며 이윤을 독점합니다. 하지만 곧 또다른 어플이 개발되어 이익이 다른 공급자에게로 전이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한가지 상품 분류 (예를 들면 야구게임) 종목에 대해서 완전 경쟁 시장적인 형태로 재편이 이루어집니다. 그 종목을 소비하는 소비자는 행복해 집니다.
- 아이튠즈는 공급자로 하여금 더 나은 품질의 어플을 개발하도록 끊임없이 독촉하고 채근합니다.
- 아이튠즈는 소비자로 하여금 "search" 를 통해서 더 나은 품질의 어플을 끊임없이 찾아 내도록 자극합니다.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지요.
-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나 소니의 마켓 플레이스도 모두 아이튠즈의 이러한 시장 시스템을 그대로 베낀 것이 불과합니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동일하다는 것이지요)
-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내놓으면서 미국의 대학에서 모든 학생들이 아이패드를 들고 수업에 들어가는 풍경을 상상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한마디가 저는 애플과 스티브 잡스가 꿈꾸는 세상을 집약해서 설명하고 있다고 봅니다. 플랫폼을 하나로 통일하되, 그 플랫폼안에서 수많은 소프트웨어 공급자가 가장 효율적인 형태의 경쟁을 하는 것.
- 기본적으로 모순되는 이야기입니다. 애플이 엄청나게 크리에이티브한 집단이라고 가정해도 독점적인 위치에 올라서게 되면 아무래도 정체되기 마련입니다. 이미 애플 내부에서는 스티브 잡스 이후에 대안이 없다, 라고 까지 이야기할 정도로 창의성을 지속적으로 발휘하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때문에 플랫폼을 애플로 통일한다는 발상은 이들의 기본적인 철학 자체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 하지만 아이튠즈가 세상에 가져온 순효과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우선 아이튠즈의 대성공으로 미국내에서 불법 다운로드 이용자가 크게 줄었습니다. 너무 비싼 CD 가격을 "소비 가능한 수준" 으로 끌어 내렸고 또 엄청 간편한 조작 방법으로 다수의 소비자를 아이튠즈로 포섭함으로써 생긴 효과입니다. 공급자에게 저작권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고 소비자에겐 보다 싼 가격을 보장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꽤나 훌륭한 시장 하나를 건설한 셈입니다.
- 아이폰의 성능이 다른 휴대폰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아이폰은 지상에서 가장 좋은 플랫폼은 아닙니다.
- 하지만 아이폰과 아이튠즈 뒤에 숨은 함의를 한번쯤 살펴 보았으면 합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다릅니다. 삼성이나 노키아에서 아이튠즈에 버금가는 시스템을 가진 시장을 만들어 내지 않는 이상 아이폰이 가지는 매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 삼성은 결코 애플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기계의 성능을 빨리 따라잡아 더 나은 '기계' 를 생산하는 것은 잘할지 모르지만, 그게 이쪽 시장을 움직이는 모멘텀은 아닙니다. 그건 삼성이 더 잘알고 있겠지요. 알면서도 못하는 겁니다.
- 저는 애플빠도 아니고 아이폰빠도 아닙니다. 다만 애플이 만들어 놓은 아이튠즈라는 매체가 분명 학문적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이기 때문에 간간히 생각을 좀 해봤을 뿐입니다. 그리고 삼성은 싫어합니다. 그렇게 훌륭하다는 반도체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자기네 사원 한명의 건강도 챙겨주지 않을 정도로 비정한 기업은 싫습니다.
첫댓글 iTMS은 굉장히 혁신적이며, 마켓 자체를 뒤바꿔놓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시장을 선도하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애플역시 비정한 기업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아이패드 공장에서 스트레스로 인해 직원이 죽고, 집단 자살이 일어나도, 스티브 잡스는 '공장 자살율이 평균 이하'라며 문제 없다는 식입니다. 잡스가 뛰어난 경영인인것은 분명하지만, 말을 바꾸거나 고압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등의 인격적 문제는 그리 존경하고픈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물론 애플 모바일 디바이스를 10대 가까이 가졌거나, 혹은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애플 디바이스를 선호하는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네 맞아요. 이번 중국 공장 집단 자살 사건은 분명 애플의 행보에 큰 오점으로 남겠죠. 중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다고 해도 말이죠.
와 직접 분석하신 건가요? 대학원 과정이신가요 혹시??^^; 저는 애플 제품을 사용해 본 적이 없고 프로그래밍에 대해 문외한이라서 아이튠즈 내 거래 특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예로 드신 야구게임처럼 판매되는 어플리케이션의 동질화가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나요?? 제 여자친구가 아이폰을 쓰는데 상품의 질과 인지도에 따라 가격 차가 상당히 난다고 하던데요. 음악앨범 같은 건 거래비용도 거의 없고 정말 이상적인 시장이네요..ㅎㅎ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아이튠즈로 인해 왜곡이 심해지다 못해 이제 거의 사장되버린 모바일 프로그래밍 시장이 숨통이 살아날 기미가 보이는게 한편으로는 다행입니다. 그간 통신사의 폐쇄적인 어플 정책으로 인해 개발자들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만들다 때려친 경우가 하나 둘이 아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