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직면한 혼란에 대한 극단적이고 강경한 대책은 필연적으로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체레텔리 대통령의 집권 또한 어지러웠던 어머니 러시아 전체에 있어 새로운 혼란을 야기하는 불씨나 다름 없었고 그만큼 이념과 논리, 사상의 대립이 원인이 된 소요들이 러시아 전체로 퍼져가고 있었다.
극우, 혹은 극좌파의 노선을 달리는 정치가, 극심한 경제난과 더불어 귀를 홀리는 선동에 넘어가버린 가난한 인민들, 급작스럽게 예상을 뒤엎고 갈아치워진 집권세력에 대한 여타 정치파벌들까지도 모두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1월 17일의 아침이었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처음 열린 상원에서의 의결주제 결정은 다른것도 아닌 체레텔리 대통령의 정당성과 당위성에 대한 이의제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온건 자유주의 좌익 성향의 멘셰비키 당 부당수 파벨 밀류코프를 위시로 한 일부 소수당 소속의 상원의원들은 체레텔리 대통령의 기회주의적인 집권을 강도높게 비판했으며, 정당성 회복을 위한 수단의 하나로써 공정한 재선거 및 체레텔리 대통령의 정식 입후보를 제시했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의견은 간단히 묵살되었다. 이미 교체가 완료된 내각은 그 짧은 시간 안에서 전임자의 업무 대부분을 승계, 이행하고 있었으며 대통령에 대한 상원의 지지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하모니를 이뤘다. 오히려 비난은 밀류코프를 향했고 보이지 않는 암살의 위협은 그를 향했다.
4일 뒤의 1월 21일 자정, 이탈리아 교황령의 교황이자 전 세계 카톨릭의 정신적 지주였던 피우스 11세가 선종을 맞이했다. 이념의 대립과 외력의 압박 속에서 어지러운 교황령의 미래 속에서 짧은 추모기도를 행하고 있었던 추기경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전통의 강국, 베네치아를 이탈리아의 품에서 앗아간 불구대천의 원수 오스트리아에서 다음대의 교황을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앉히라고 강요하는 협박문을 작성, 전달해 온 것이다.
추기경단은 결코 그들의 요구를 수용할 의사가 없었다. 직후 선포된 교황령 사상 최초의 계엄령과 강경 국수주의 성향의 교황 율리우스 4세 추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요구를 불응한다는 의사를 면전에서 전달한 것과 다를 바 없었으며, 양 국의 경계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와도 같은 긴장을 전 유럽에 알렸다.
먼저 물러난 것은 의외로 오스트리아 제국이었다. 자치령에서의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재협약까지 앞둔 그들은 굳이 가상의 적국을 현실의 적국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으며 교황에의 사과문을 발송하는 것으로 사태를 매듭지었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갈등이 막 매듭지어졌을 무렵인 2월 18일, 베를린의 주식시장은 사상 유례가 없는 최악의 폭락장을 형성했다. 단 하루라는 시간동안 주가는 연중 최저점을 몇십번이고 갱신해가며 벼랑 끝을 걸었고, 주식시장이 종료되는 5시 기준으로 독일 제국은 전체 GDP 중에서 10%에 해당하는 양의 주식이 휴짓조각이 되는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베를린 주식시장의 붕괴는 당장 인접국인 네덜란드를 직격으로 때렸다. 대외무역중 90% 이상을 차지하는 독일의 경제가 곤두박질치자 그에 의존하는 네덜란드의 경제는 같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해 걷잡을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났으며, '남은 것은 단지 지폐라는 이름의 휴지조각이었다' 라고 그들 스스로가 술회할 만큼 최악에 가까웠던 그들의 공황은 시작되었다.
흔들릴 것 같지 않았던 독일 제국의 경제가 크게 출렁거리자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한 것은 극렬 좌파들에 의해 유지되고 통치되는 대전의 패전국, 프랑스 코뮌이었다.
'더 이상의 압제와 차별은 없다! 당연히 누려야 할 것, 당연히 가져야 할 것들을 손쉽게 앗아간 저들이 비틀거리는 지금이 바로 우리에겐 더없는 기회다!'
베를린 주식 시장 붕괴 소식과 더불어 프랑스 전역의 전파를 탄 프랑스 사회당의 연설은 프랑스 국민들에게 열화와도 같은 지지를 받으며 군비증강의 방아쇠를 당겼지만 독일 제국은 그들에게 신경을 돌릴 여유가 전혀 없었다.
일명 검은 월요일이라 불리게 될 최악의 경제 공황은 독일 제국과 바로 인접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에게도 어김없이 그 독니를 드러냈다. 빈 주식시장의 개장과 함께 떨어지기 시작했던 주가는 단 한번의 흔들림도 없이 급박한 하향곡선만을 그리며 떨어졌고, 단숨에 종잇조각이 되어버린 채권을 쥐고 절규하는 모습은 결코 드문 모습이 아니게 변해버렸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의 계엄령을 통해 다행히 검은 월요일의 마수를 피해간 이탈리아는 무엇보다도 강대국의 비호를 절실히 바랐다. 프랑스 코뮌의 군비증강은 다른 유럽의 어떤 나라들보다도 당장 국경을 맞댄 교황령에게 있어 강력한 위협으로 작용했고, 그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부정할 수 없는 초강대국 독일 제국과의 합종연횡은 무엇보다도 바라마지 않을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독일이 검은 월요일의 마수를 거치지 않았더라면.
이미 독일 제국은 검은 월요일의 여파로 혼란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고, 그만큼 외부의 일에 개입할 여유는 사라지고 있었다. 독일 제국에게 있어 교황령은 도움은 되지 않으면서 힘을 분산시킬게 분명한, 명분만 있는 짐덩어리라고 판단되고 있었으며 그들을 위해 검은 월요일의 여파를 맞으면서까지 전선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황제의 옳은 판단이었다.
2월 25일, 검은 월요일이 벌어진지 딱 일주일 되는 날 북구의 영구중립국 핀란드에도 공황의 마수가 뻗쳤다.
2월 27일 오후,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과학자이던 이반 파블로프가 86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하루 뒤인 29일 오전 9시, 잠시 열렸던 상트 페테르부르크 주식시장은 10시가 채 되기도 전에 그 문을 굳게 걸어잠갔다.
단 30분만에 열린 폭락장은 쫒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최저점을 갱신하며 하향 일직선을 그렸고, 대통령좌에서 1분 간격으로 침중하게 소식을 전해받던 체레텔리 대통령에 의해 강제로 그 문을 닫았다.
이미 현재진행형으로 러시아를 뒤덮고 있는 경제난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검은 월요일의 파도, 고조되는 불안과 힘이 없는 러시아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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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갑작스레 운명하시게 되어 초상을 치르느라 한동안 연재가 없었습니다.
europa.mp3
첫댓글 이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 슬슬 스토리로 진입하겠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마더 러시아는 소련이 되겠지요.
ㄷㄷㄷ
제목에 bgm 안내 넣어주시면.. 갑자기 놀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