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입홍합 / 마경덕 홍합에게도 입술이 있구나 껍데기에 초록 테두리를 두른 곳까지 둥근 입이다
얼굴의 절반을 차지한 커다란 입술은 뉴질랜드 초록 바다를 보호색이라고 믿었을까 투명한 초록 물빛에 숨지 못해 그곳을 떠나왔을 것이다
붉은 입을 가졌다면 혹은, 검은 입을 가졌다면 누가 네 입을 맞추려 했을까
매끼 밥상에 오른 초록입으로 해안가 마오리족은 어느 부족보다 관절이 튼튼했는데
너는 살기 위해 플랑크톤을 잡아먹고 뼈가 무른 사람은 너를 잡아먹는다
어느 시인은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을 사슴이라고 했는데 나는 네 입이 초록이어서 다행이라고 쓴다
초록검색창에 초록입이 뜬다
네 입술과 내 입을 맞추면 너는 내 관절과 입을 맞추리라
차마, 예의가 아니지만 부실한 두 무릎을 초록입술에게 내민다
- 2022년 <모던포엠> 문학상 수상작 시 --------------------------------
* 마경덕 시인 1954년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신발論』 『글러브 중독자』 『사물의 입』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북한강문학상, 두레문학상, 선경상상인 문학상 수상.
***************************************************************************************** 인간만큼 잔인한 동물이 또 있을까? “너는 살기 위해 플랑크톤을 잡아먹고 / 뼈가 무른 사람은 너를 잡아먹는다” 잡아먹고, 잡아먹고... 어머니의 자궁을 떠난 날부터 무엇에건 입부터 반응하는 인간들. 먹기 위해서라면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은 없을 것이다. 평소 식탐이 없는 나이지만,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만약 내가 며칠간 굶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고 며칠간 물 말고는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고 한다면,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나의 다소 온화한 성격은 밥 앞에서 의연할 수 있을까?...
현관문을 엶과 동시에 밥부터 찾던 아버지에게 여섯 살 어린 조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밥 때문에 결혼했느냐, 고... 당시에는 모두 허허 웃어넘겼지만 나이가 들수록 밥의 소중함을 새록새록 느끼게 된다. 무슨 일인가로 한 끼라도 놓치게 되면, 금세 기운이 딸린다. 밥 앞에서 누구도 당당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산 입 앞에선 누구도 못할 일이 없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의 시를 통하여 홍합에게도 입술이 있다는 것을, 둥근 입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살아서 홍합은 그 입으로 사랑을 하고 “살기 위해 플랑크톤을 잡아먹고” 했을 것이다. 살기 위해 시인은 그 입을 또 다른 입으로 먹는다. “붉은 입” 도 “검은 입”도 아닌, “초록입”... “초록입”은 초록이어서 슬프다. 시인을 색으로 비유할 수 있다면 나는 일순의 주저함도 없이 초록이라고 말할 것이다. 초록은 여리고 힘없는 것을 상징한다. 반면 강한 생명력 또한 지칭한다. 그 여리고 푸른 심성으로 세상을 아름답고 푸르게 만들고자 하는 이가 시인일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들은 눈물도 많다. 잘 운다.
“초록입”을 가진 시인이 “초록입” 홍합을 먹는다. “차마, 예의가 아니지만 / 부실한 두 무릎을 초록입술에게 내민다” 마치 동족의 살을 먹듯, 그리하여 시인은 홍합을 먹을 때조차 그 죽음 앞에 “차마, 예의가 아니지만”, 예를 갖추는 한 편의 시를 헌정하러 “초록입”을 여는 것이다. 어느 삶인들 귀하지 않으랴.
- 홍수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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