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순 바오로 신부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에제키엘 18,21-28 마태오 5,20ㄴ-26
세상에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눈에는 그러한 의로운 사람들보다 악인들이 잘 보이고,
또 악인들이 저지른 악행을 더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느님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하느님께서는 왜 악인들의 악행을 가만히 두고 보시는가?’
‘하느님께서 계시기는 한 것인가?’와 같은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러한 의문과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독서 말씀인 에제키엘 예언서가 우리에게 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죽음이 아닌
구원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에 이르는 길은 바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개’ 또는 ‘회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현재를, 오늘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은 현실감 없는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지상 여정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라, 지상 여정을 마친 뒤에도 지속되는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믿고 고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완성된 삶을 향하여 우리는 지금 걸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영원한 생명에 올바르게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악인과 그들의 악행이 만연하는 세상 때문에 하느님을 불신할 수 있습니다.
의인보다 악인이 더 성공하는 모습에 우리는 하느님의 정의가 사라짐을 슬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의 시간은 바로 하느님께서 하느님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회개의 기회를 주신 시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삶의 방향이 악이 아닌 하느님을 향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을 특별히 기울이는 시간이 사순 시기입니다.
악이 아닌 하느님을 향하여 돌아가려는 우리의 움직임, 그것이 바로 우리를 은총으로,
구원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인천교구 박형순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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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한준 롯젤로 신부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에제키엘 18,21-28 마태오 5,20ㄴ-26
내 의로움의 기준을 능가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의로움입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
(마태오 복음 5장 20ㄴ-26절)
우리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앞에? 아니 안에!” 스치듯 지나간 TV 광고 속 문구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왜 갑자기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 광고 문구가 떠올랐을까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추구하는 의로움이란 눈 ‘앞에’ 놓인, 글로 적힌 율법 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살인하지 않았음에 만족하지 말고 형제에게 “바보, 멍청이”라고 해서도 안 되는
죄에 대해 더욱 민감하고 세밀한 기준을 말씀하십니다.
나아가 몸이 기억하는 형식적인 예배보다 곰곰이 생각해야만 떠오르는 형제에 대한 원망이
더 중요하니, 예물을 제단에 두고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눈 ‘앞에’ 놓인 율법이 아니라 형제의 마음과 자신의 내면을 면밀히 살피는 세심한 성찰,
그리고 구체적인 화해로 의롭게 될 수 있음을 언명하십니다.
결국 우리의 미래인 하늘 나라는 눈 ‘앞에’ 있는 율법에 있지 않고, 우리 마음과 내면 ‘안에’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의로움을 능가하라는 말씀은 형식과 규정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신의 내면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라는 말씀이겠지요.
대구대교구 여한준 롯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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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 바오로 신부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에제키엘 18,21-28 마태오 5,20ㄴ-26
오늘 미사의 말씀은 <회개>를 이야기하십니다.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에제키엘 예언서 18장 21절)
악인이건 의인이건 누구에게나 구원의 길은 열려 있습니다. 삶의 과정 안에서 비록 죄악에
물들었어도 주님을 향해 돌아서는 모든 이에게 주님은 한없이 너그러우십니다.
"공정과 정의의 실천"
회개의 증거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공정과 정의의 실천으로 표현됩니다.
가던 길을 돌이켜 주님께로 방향을 바꾼 이는 그분의 마음이 바라시는 것을 함께 지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마음에는 불의하고 불공정한 기득권자들에 의해 가난과 소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들, 정의와 공정만이 희망인 이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연민의 강물이 늘 흐릅니다.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에제키엘 예언서 18장 26절)
회개하는 악인에게 그처럼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시지만, 한때 의인이었다가 도중에
주님의 길을 저버린 이에게는 매우 단호하십니다.
한때의 의로움이 면죄부가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돌아서되 주님을 향해서 돌아서는 것이 주님께서 반기시는 진정한 회개가 되겠지요.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마태오 복음 5장 24절)
예수님은 누군가에게 해를 입혀 원망 받을 일을 저질러 놓고는 천연덕스럽게 하느님 앞에
나아오는 이들에게 일단 멈추라고 하십니다.
지금 주님께 중요한 건 예물 아니라 고통을 겪고 있는 형제입니다.
사람에게 저지른 악행을 주님께 드리는 예물로 무마하려 한다면 그건 예물이 아니라
뇌물일 겁니다. 주님께서 아주 역겨워하시는 모습이지요. 주님께는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있는
그 형제의 마음을 회복시켜 주는 구체적 노력이 우선입니다.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마태오 복음 5장 25절)
누군가에게 억울한 마음이 들게 해서 고소를 당할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세상 법정에서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고소한 이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고 권하십니다.
가난하고 힘없고 약한 이들에게 일말의 죄의식도 없이 행사하는 갑질을 당연히 여기는 세상에서
하느님은 죽을 힘을 다해 마지막 몸부림으로 꿈틀거리는 이들의 편에 서는 분이십니다.
권력으로든 재물로든 신분으로 스스로 세속에서 칼자루를 쥔 쪽에 가깝다고 여긴다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신의 사고와 언행을 주님 마음에 비추어
세심히 성찰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복음 환호송)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모두가 사는 것입니다.
의인은 그 길을 충실히 걸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죄인은 죄의 길을 돌이켜 주님을 향함으로써
살 수 있습니다. 불결하고 부정하고 낡은 자아를 벗어버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마음과
새 영을 받아 입는 것이 우리에 대한 주님의 바람이 될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한없이 약하신 주님처럼 우리도 약자에 대한 연민의 감수성을 회복하여
그분을 닮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의 이기심과 무관심 때문에 우리 마음에서 밀려난 가난하고 억울하고 소외된 이들
안에 계신 주님께 다가가고 경청하고 연대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이 사순절에 화해와 일치로 주님께서 반기실 가장 값진 예물을 준비하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작은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