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껏 무얼 하며 그리고 왜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동안 주위의 기대에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남들보다 공부를 잘했다. 덕분에 부모님은 내가 법관이나 의사가 되리라고 굳게 믿고 계셨으며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다. 따라서 직업의 다양성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법관과 의사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 라는 직업 둘 중에서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대부분의 공부 잘한다는 학생들이 그러하듯이.
나는 고등학교 내내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며 살아왔다. 항상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나는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 곧 나의 기쁨이라고 생각해왔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에 이르기까지 나는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나를 퍽 자랑스러워 하셨나 보다. 나도 자만심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시간은 원서 쓸 즈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문과에서 시험을 치렀고 내가 목표하던 서울대 법대에 들어갈 넉넉한 점수를 받았다. 여기서 나는 또 한번 나의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행동을 했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의대에 교차 지원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나는 왜 그렇게 경솔히 행동한 것일까? 단순히 논술고사를 치르기 귀찮아서?
사실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과는, 정치학과였다. 나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같이 세계를 누비는 그런 멋진 여성이 되고 싶었다. 나에게 그런 꿈을 심어준 사람은 고등학교 때의 영어 선생님이었다. 영어 시간에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여성들에 대해서 진지하고도 열띤 어조로 설명해 주셨다.
어쨌든 나는 교차지원으로 의과대학에 들어왔다.
합격 통지서를 받아든 때부터 3월까지는 의대생-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냥 기분이 좋았다. (나는 속물이다..)
더구나 장학생이라는 위치가 나를 더욱 그렇게 만들었다.
대학 한 달 동안은 정말 정신 없이 지나간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4월이 되고 첫 시험도 봤다. 첫 시험의 결과는 그야말로 죽고싶었다. 내 뒤에는 단지 15명이 있을 따름이었다. 최하위 그룹..머리털 나고 그런 점수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기초과학이라지만 나는 너무나 뒤떨어진 그룹이었다. 장학금도 이젠 물 건너간 것 같았다. 갑자기 나의 환상들이 깨어지면서 나는 한없이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대학 와서 고작 이꼴이 되려고 그렇게 수능 공부를 했단 말인가? 수년간 나를 지탱하고 있던 힘들이 삽시간에 빠져버렸다.
너는 속물이야. 그러한 외침이 내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아직도 나는 나에 대해서 솔직하지 못하다. 이것이 내 적성이 아니라면 나는 이걸 여기서 그만두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그런데 ... 재수하기도 겁난다. 요즘 들어서 난 더욱 소심해 지고 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울고 웃고..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내색 안 하려고 노력하지만 이젠 너무 힘들다. 엄마에게 농담인 것처럼 물어보았다.
"엄마, 나 도저히 적성에 안 맞아 미치겠어. 나 재수할까봐."
엄마는 그런 소리하지 말라면서 본과 가면 나아질 거라고 했다. 그러나 본과 가서도 내가 갈 길이 아닌 것이 명확해 진다면, 그 땐 정말 심각한데.
나의 이런 고민을 배부른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 같은 고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들 다 들어가고 싶어하는 의대 들어갔으면 열심히 할 일이지, 웬 잡생각이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내게 주어진 일생을 정말 즐겁게, 그리고 보람되게 꾸며갈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런데 나는 또 망설이고 있다. 이런 내가 너무나 싫다. 나의 앞날에 대해 좀더 생각이 필요할 듯 싶다. 내가 선택한 길 - 이제 내가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