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평소에 집안일에 관심을 두지 않던 아버지가 무슨 맘을 먹었는지 집 옆 마당에 닭장을 짓는다며 나무 기둥 몇 개와 철망을 구해 와서 어느 일요일 아침부터 식구가 모두 매달려서 온종일 걸려 제법 큰 닭장을 지었다. 마침 학교에서 실업 시간에 닭과 토끼 기르기를 배우던 중이라서 나도 열심히 도왔다.
며칠 후에 어머니가 중병아리 수십 마리를 암컷으로만 골라서 사 와서 닭장을 채웠다. 수컷이 있으면 시끄럽기도 하고 성가신 문제가 있고 암컷만 있어도 알을 낳을 수 있다는 어머니 말이 좀 의아했다. 암수 교배로 생식이 이루어진다고 생물 시간에 배웠기에 어머니 말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토끼는 고기가 맛있고 번식률이 높아서 수익성이 뛰어나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 오줌이 닭장에 벌레게 생기지 않게 도움을 준다고 배웠기에 토끼도 함께 길러보자고 했더니 아버지가 사과 궤짝으로 토끼장을 만들어 닭장 한 귀퉁이 높은 곳에 매달아 주었다. 토끼를 많이 길러서 파는 이웃집에서 새끼를 암수 한 쌍으로 사 와서 토끼장에 넣으며 금세 새끼를 낳고, 그 새끼들이 또 새끼를 낳기를 몇 번만 거듭하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고 내 용돈도 많이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꿈에 부풀었다.
사료도 열심히 먹이고 풀도 열심히 뜯어 먹였더니 몇 달 후에 정말 수탉 없이도 암탉들이 열심히 알을 낳기 시작했다. 내가 닭장에 다가가면 알아보고 몰려들고 지렁이 같은 벌레를 던져주면 한 놈이 부리로 잡아채서는 구석으로 도망가고 다른 놈들은 쫓아가서 빼앗으려고 하고, 밤에는 횃대에 올라가 나란히 앉고, 둥지에서 알을 미처 꺼내지 않으면 무정란인 줄도 모르고 미련스레 알을 품고…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주인 얼굴도 익히는 것 같았다. 모이를 챙겨주는 내가 닭장에 다가가면 모여들지만, 닭에게 무심한 남동생은 쳐다도 보지 않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에 새끼일 적에 사온 토끼 한 쌍도 무럭무럭 자랐다. 학교에 다녀오면 긴 귀에 빨간 눈이 예쁜 두 놈을 바구니에 담아서 철로 변의 풀밭으로 데려가 풀어놓으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오물오물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서, 덩치를 보아서는 새끼를 많이 낳아 줘서 주인을 기쁘게 해 줄 때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 같았다. 가끔 토끼장을 들여다보면 한 놈은 열심히 사랑을 하려고 하는데 다른 놈은 거세게 저항하니 늘 우리 안에서 물어뜯으며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어느 날 실업 선생님에게 들은 대로 한 놈씩 들고 성별 감별을 해 보았더니 아뿔싸, 두 놈 다 수컷이었다. 토끼를 판 사람을 찾아가 물어내라고 했더니 다 키워 놓은 수컷 두 마리를 받고 새끼 토끼 암수 한 쌍을 주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않고, 자기가 손해 보는 거래라며 생색까지 내서 좀 기분이 나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아버지가 보고는, “새끼 두 마리를 어느 세월에 키우겠느냐? 당장 돌려주고 수컷 토끼 두 마리를 다시 받아 오너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며칠 후, 토끼 두 마리를 닭장 밖에 매달아 놓고 잡았다. 농가에서 자라서 그런 경험이 많은 아버지가 익숙한 솜씨로 토끼의 목 주위를 칼로 도리고 다리 부근 껍질을 죽 잡아당기니 가죽이 빠져나오고 토끼는 금세 뻘건 살덩어리로 바뀌었다. 동생들이야 호기심에 가득 차서 쳐다보았지만, 새끼 때부터 혼자 키우다시피 한 나는 눈물이 나고 목이 메어서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날 저녁 오랜만에 대하는 고깃국을 식구들 모두 맛있게 먹었지만 나는 고작 국물 두어 숟갈만 넘기고는 더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목이 메고 눈물이 나와서 그랬다.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잡을 때도 그랬다. 금방 먹이를 먹던 놈을 모가지를 비틀어 죽이고, 털을 뽑아서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고 배를 가르고 하는 걸 보고 있으려니 정신이 다 아뜩했다. 토끼든 닭이든 기르다 보면 서로 교감이 이루어진다.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주인을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걸 알 수 있기에 집에서 기르던 토끼나 닭을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맛있게 먹는 식구들이 참 미웠다. 그 이후 나는 오랫동안 닭고기를 먹지 못했다. 닭고기를 볼 때마다 집에서 기르던 닭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던 것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에게서 비위가 약한 아이라는 말을 늘 듣고 지내야 했다.
“한의학에서 ‘비위가 좋다.’, ‘비위가 약하다.’, ‘비위가 상했다.’, ‘비위에 거슬리다.’라는 말에는 직접적인 음식에 대한 표현은 물론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부분까지 포함된 경우가 많다. 일례로 ‘비위에 거슬리다.’라는 말은 음식이 맞지 않아 소화기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인데, 역시 감정적으로도 탐탁지 않거나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평소 생각이 많거나 고민이 많을 때 비위의 활동 장애를 유발하여 입맛이 없고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 때로는 많은 생각이 병을 만들 수도 있다. 비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평소에 생각을 조금 줄이는 것이 좋다.
‘비위 맞추다.’에서 비위의 뜻은 ‘어떤 음식물이나 일을 삭여내거나 상대하여 내는 성미’를 뜻한다. 비장과 위장이 서로 협력하여 소화를 잘 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같이 어떤 일을 할 때 서로 협력하여 잘되게 해서 남의 마음에 들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이창열/인의 한의원 원장)”
이 글을 읽으니 별것 아닌 걸 오래 마음에 간직하고, 성격이 예민해서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잘 받고, 입이 짧아서 아무거나 주는 대로 잘 먹지 못하고, 음식을 앞에 두고 깨작거리고, 남의 기분을 잘 맞추지 못하는 편인 내가 비위가 약한 사람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닭고기도 잘 먹고, 예전에 싫어하던 음식을 즐기기도 하고, 나이 들어가며 성격도 조금 느긋해진 것도 같지만, 타고난 체질이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첫댓글 어떻게 하면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느냐가 언제나의 과제